1 개요
북한과 중국의 북한/외교 관계를 설명하는 문서이다. 중국어로는 중조관계(中朝關系)라고 한다.
2 역사
2.1 냉전 초기
북한의 성립 과정에는 소련이 주도적이었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은 중국의 혈맹이 된다. 한국과 미국이 혈맹이라 부른 것과 비슷하다. 중공 정부가 수립된 1949년 10월 1일에서 얼마 후인 10월 6일에 북한과 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북한의 정치인 중 상당수가 중국 공산당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북한군 출신 중에는 중국에서 활동한 이도 많았다.
한국전쟁 중반에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명칭으로 중국군이 참전하기도 했다.
2015년 9월 20일, 북중관계가 1962년부터 더욱 친밀해졌다는 미국 CIA 기밀문서가 공개됐다.
2.2 냉전 말기
그러다가 1980년대에 동유럽과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엄청난 반대에도 덩샤오핑의 추진으로 적극적인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며 1992년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자 북한은 굉장히 충격을 받는다. 사실 이미 중국에서도 구실이 없었을 뿐이지 북한이 그저 미국의 영향을 막는 지리적 특징을 빼면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짐덩어리에 불과한 북한의 뜻을 따르기보다, 빠른 속도로 경제력과 국력을 키우는 남한과의 수교를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는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으로 한중수교의 구실이 생기고, 곧 수교를 맺게 된다.
이는 국제사회와 외교관계가 어떻게 움직여가는지에 대한 냉정한 현실을 배워가며 성장을 이룩해나가던 대한민국과 달리 개인 권력 강화, 숭배에 더 신경쓰며 우방 중국과 소련만 철썩같이 믿었던 북한의 정치외교적 능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는 걸 보여준다.[1]
2.3 냉전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이런 배경에서 한-중 수교는 현재 북한이 독자노선 등을 이유로 핵 개발 등에 집착하기 시작한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북한과 중국은 예전보다는 소원해지고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서는 중국 입장에선 진저리가 난 모양.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들어와 인권문제 등이 국제적으로 부각되는 것도 피곤한 모양이다. [2] #
2013년 말 장성택 처형 이후로 중국은 경제 제재에 나섰고 북한에선 유류 부족으로 훈련을 못 할 정도라고 한다. 북한 군부에선 궁지에 몰리면 전쟁도 불사 않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천년원수 드립은 덤 당장 중국에서 연료공급을 중단하면 그대로 가실 분들이 배짱이 크다[3]... 사실 북한과 중국은 당장 눈앞의 한미연합 때문에 겉으로나마 친하게 지내고 있지 정작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는 탈북자 문제와 유사시 파병 문제 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북한군과 중국군이 서로 병력을 증강하면서 대치하고 있을 정도로 상호간의 신뢰 관계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4]
2015년 12월 10일에 모란봉악단이 베이징에 도착했다. 12일~14일 3일간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중국에서 공연을 하기 위한 것으로 모란봉악단의 첫 외국 공연 사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리허설까지 마치고, 매스컴에서 북중관계에 도움이 돼서 기쁘다며 멤버들이 인터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몇 시간 전, 갑자기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북한 평양으로 복귀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하였다. 원인은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정은이 수소폭탄 발언을 한 이후 공식 공연관람인사를 당 정치국원(지도자급)에서 부부장급(차관급)으로 낮추어 버렸다고. 본래 북한은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가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관람하길 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중국의 정치국원 중 한 명이라도 관람을 하기로 중국과 타협을 해서 모란봉악단이 중국에 온 것이지만 이가 파토나자 김정은이 중국측에 불만을 제기햇고 악단은 북한으로 철수해 버렸다고 한다. 기사 이로 인해 북중관계가 냉각될 것이라고 12월 13일 MBN 뉴스 8에서 전하였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수소폭탄을 이용하여 핵실험을 단행하였고 또한 핵실험이 미국이나 중국에 통보 없이 이루어졌다. 과거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이전이나 직전에 항상 러시아나 미국, 중국 등에 통보를 하였지만 이번의 경우 급작스럽게 아무런 통보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북중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는 결국 김정은에 대한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인 중국 정부의 제어 상실을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북중관계는 이번 핵실험으로 틀어질 대로 틀어졌으며, 시진핑 집권 기간 동안은 어떠한 계기 없이는 관계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안정화와 한반도 통제를 목표로 삼던 중국으로써는 심히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통한 서방세력(남한, 미국, 일본 등...) 견제란 목표가 있어 은근히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하며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갈수록 전 세계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데다 남한과 일본 모두 강경 대응으로 나오고 있어 갈수록 난처해져가고 있다.[5] 5차 북핵 이후 북한에 대한 시각이 많이 변화했으며, 어떤 학자는 김정은 제거한 뒤 주북한 중국군 주둔해서 개혁 개방하자는 급진적인 의견도 나왔다. #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견제라는 차원에선 여러모로 쓸 만한 카드이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버리거나 한도 이상으로 옥죄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사드 문제로 중국과 미국이 대립하다가, 갑자기 미국이 한발 빼는[6] 대신 대북제재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합의를 했다. 이 대북제재가 사실상 돈을 막아버리는 일이기에 북한에게 치명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언론에서 말한다.[7]
중국이 제재에 동참한 이후 북한에서 핵폭풍으로 중국을 깨부수자는 신문 기사와 배신한 중국을 짓부숴 버리자는 지시문등이 나오면서 북중관계가 상당히 틀어질 것으로 보인다. THAAD 배치 문제로 남한에 대해 폭언 날리더니 똑같이 북한에게 통수 맞은 꼴
중국을 겨냥한듯한 우회적 비난을 여러번 하고있다. 그 중 하나.
대북제재를 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무역액이 12.7%나 급증했다고한다. 중국 당국에서는 제재 이행 전에 통계라고 해명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더 두고 봐야된다는 신중론이다.
중국이 파키스탄에서 북한으로 가는 핵 관련 거래에 대해서 묵인 해줬다는 뉴스기사 # 윤병세 외교장관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북중접경지대 에서 탈영한 북한군들이 수일에 걸쳐 무장강도질을 행하고 중국 공안 2명이 중상을 입었다. # 배은망덕의 극치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에도 제재 하는거는 찬성해도 냉정,자제를 해야한다는 중국 #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국경에서 이뤄지는 교역은 활발하다는 동아일보 기사 #
또, 북한의 핵 개발에 연계됐다는 혐의로 체포된 마샤오훙(馬曉紅) 훙샹그룹 대표가 북한에서도 활발히 사업한 것으로 밝혀졌다. # 체포 당시에 중국 공안이 아니라 국가안전부에 의해 체포되었고, # 다른 중국 관료들까지 확대한다. # 흉샹그룹은 사실상 가족기업이며, 관련자 모두가 대북 문제로 연루되어져 있다. #
북한의 광물 수입은 훙샹그룹이 아닌 완샹(萬向)그룹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오히려 북중교역에서 더 활발해지고 있다.#
3 서로에 대한 인식
3.1 중국의 북한 인식
해외에서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중국의 짐덩어리. 만평에서도 중국의 족쇄나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 등으로 묘사되며, 중국 몰래 핵개발을 하거나 쓸데없는 짓을 벌이며 중국의 골치를 썩히는 짐짝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실제로도 중국인들이 남한과 북한에 갖는 인식이나 인상은 너무 차이가 크고, 항상 도발 등의 행동으로 한중관계 혹은 한중일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현재 북중관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한중관계가 나름 여러 갈등이 존재하긴 해도 FTA까지 추진할 정도로 가까워지긴 하지만 북한이 갖는 지리적 가치 때문에 중국은 북한을 대놓고 버리진 않는다. 중국은 한국에서 친미 분위기를 걷어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중국에게 있어 북한은 미국의 영향을 막아주는 완충제 같은 역할이기도 하다. 천안함 피격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태 등에서도 중국이 북한 편을 들어주는 것도 그렇고.
한편, 2014년 중반 중국에서 제작된 걸로 보이는 북한을 풍자하는 동영상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의 젊은 사람들은 북한을 자신들의 짐덩이로 생각한다고 한다. 원본 동영상 링크 조회수가 가장 높은 것. 당연히 북한은 중국에게 지워달라고 요청을 하였으나, 씹혔다.
안보리 제재 이후 중국 내 북한 식당에서 탈북한 북한 여성 종업원들을 중국이 묵인해줬다는 관측과 함께 북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나오고 있다.
3.2 북한의 중국 인식
경제적으로는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가 예전 같지 않아서 중국이 북한을 먹여살리는 곳이 된 탓에 북한의 대중 의존도는 매우 높다. 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높은 국가들이라는 대만이나 파키스탄의 중국 의존도 '따위'랑은 비교조차 안된다.[8] 동해로 나갈 수 있는 나진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도 한국, 대만은 중국과 친밀한 것이 경제적 한정이고, 정치적, 군사 및 안보적으로는 확실히 중국과 대립관계에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야말로 중국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도 한국, 대만은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끊긴다 해도 다소 피해는 입겠지만 나라가 망할 정도는 아니다. 반면 북한은... Aㅏ(...)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폭격으로 전사한 마오쩌둥의 아들인 마오안잉(毛岸英)의 묘가 평안북도 회창군에 있어 북중 혈맹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다만 북한 정부가 한국전쟁에서의 중국의 지원을 강조한다면 북한의 수령절대주의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중국관은 대단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내건 국외건 아무튼 북한이 혈맹임을 천명하는 중국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대외적으로는 혈맹 관계를 다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중국의 6.25전쟁 지원 사실을 최대한 숨기고 중국군의 전공을 축소하거나, 화교를 억압하고 중국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고 탈북자 여성에게 가혹한 대우를 하는 등. 대내적으로는 중국을 '외세'로 보고 배격하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다. 게다가 8월 종파사건 때문에 중국도 밉상 짓을 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빌붙어 이득을 챙기려 하는 북한을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된다.- ↑ 더구나 수출을 국가경제의 기반으로 삼는 대한민국의 실정상, 모든 사회적 기반 시설이나 제도등을 전부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되도록 개선해나갔던 한국과는 달리 북한은 김씨 일가 영도하의 번영이란 얼토당토 않은 일인독재 우상화 정치를 펴 개념조차 날려먹었다.
- ↑ 현재(2010년대)의 북한은 중국에게 있어서 계륵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북한에 관한한 거의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내비치고 있을 정도며, 심지어 정치 전문가들이나 학자들까지 혈맹에 얽매이지 말고 북한을 버릴 것을 권하는 의견을 내놓는 지경이다. 남한과 미국의 대북 압박에 중국 정부가 은근히 동조하자 김정은은 중국인민지원군열사릉원을 참배하기도 했다.
- ↑ 경제적인 면에서 중국은 북한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존재다. 그나마 아쉬운대로 상대해 주는 유일한 국가인데 중국마저 등을 돌려버리면 북한은 그 순간 망했어요다.
- ↑ 중국이 북한과 사이가 좋았을 때가 김일성, 김정일 통치시기였다. 그마저도 중국이 개방정책으로 경제적인 면으로는 자본주의화하자 배신으로 여기면서 서먹해지기 시작한 것. 특히 김정일은 중국 방문 당시 중국 지도부가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자 귀국 후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고 한다.
- ↑ 국제사회가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를 잘 알고있는 상황에서 핵무장 운운하며 시정잡배들이나 쓸 저속한 표현까지 해가며 막장의 진수(?)를 보이는 북한의 행태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나 되는 중국이 계속 두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중국의 입장도 곤란해진다. 더구나 남한과 일본은 북한의 무력도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되는 국가들인 고로 마냥 북한 편만 들 수는 없는 일이다.
- ↑ 비핵화 되면 사드 도입은 필요없다고 발표했다.
- ↑ 이 때문에 사드와 북핵 문제로 빅딜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고.
- ↑ 한국이나 대만은 수출시장및 현지생산같은 경제적 활동지역으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뿐이며 나머지는 미국과 같은 주요 선진국가들을 통해서도 공산품과 원료를 수입해 시장다각화 중이나 북한의 심지어 식량까지 중국에서 구입할 정도로 중국에 예속화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