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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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의 중학교
거성중학교거제여자중학교연산중학교
연일중학교연제중학교연천중학교
이사벨중학교토현중학교브니엘중학교*
* 폐교
350px[1]
350px[2]
(교표)
교명브니엘중학교
개교1966년 3월 5일[3]
폐교1998년 2월 28일[4]
유형일반계 중학교
성별남녀공학
운영형태사립
학교법인브니엘학원
소재지부산광역시 연제구 월드컵대로114번길 20 (연산4동 766-2)

1 개요

세상에 멀쩡한 학교도 얼마든지 폐교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지금은 사라진 학교지만, 한때 부산에서 가장 강렬했던 캐릭터를 보여줬던 사립학교

부산광역시 연제구에 있었던 사립 남녀공학 중학교. 1970~80년대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개신교 미션스쿨 중학교였으며, 1966년 개교 당초부터 남녀공학으로 개교하면서 부산시내에서는 오늘날 남녀공학 중학교 개념의 효시라고 할만한 학교였다. 연제구 지역에서는 두번째로 폐교된 학교지만[5], 연제구 출범 이후로 따지면 처음으로 연제구에서 폐교된 학교이자 2015년 기준으로 연제구에서 마지막으로 폐교된 학교이며, 동래교육지원청 관할 학교 중에서는 첫번째로 폐교된 학교로 기록되었다.

2 역사

이 학교의 전신은 1958년 9월 15일에 설립된 고등공민학교인 브니엘야간중학원이었다. 브니엘야간중학원은 천막과 차고에서 수업을 하던 고등공민학교로 중학교 과정을 운영했으나 정규 학교가 아니었기에 학력인정은 되지 않았다.[6] 1965년 12월 7일에 브니엘중학교의 설립이 인가 되었으며, 1966년 3월 5일에 연산4동 옛 브니엘실업고등학교(이후 브니엘종합고등학교 -> 현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부지 내에 브니엘중학교가 개교하였다. 1968년에는 브니엘종합고등학교와 함께 여자 테니스부가 동시에 창설되었으며 1970~80년대에 걸쳐서 브니엘 중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는 전국구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1978년을 전후하여 브니엘고등학교와 함께 연산9동 토곡(예전 부산과학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으로 이전이 추진하였으나 재단 문제로 1980년에 이전이 무산되었다. 1989년에 브니엘고등학교와 함께 지금의 금정구 구서동 정선학원(구 브니엘학원)부지로 이전이 추진되었으나[7] 이전 추진 과정에서 학교 위치상의 문제 및 이로 인한 금정구 구서동 일대 주민들의 반발 민원으로 학교 이전이 불허되었으며[8], 브니엘고등학교 및 브니엘여자고등학교의 구서동 신축건물 건설비용 마련을 위해 연산동 교사를 철거 및 부지를 매각해야 하는 문제로 인하여 브니엘중학교는 1995년 9월 2일에 폐교가 확정되었으며 1996학년도 부터 신입생 배정이 중단되었다. 다만 연산동 교사 철거 관계상 브니엘중학교의 잔류 학생들도 브니엘고등학교를 따라서 금정구 구서동으로 이전을 하기는 했으며 신설 중학교 과정 각종학교인 브니엘예술학교 교사에서 2년간 더부살이를 하다가 1998년 2월 13일에 마지막 졸업인 30회 졸업으로 47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것을 끝으로 1998년 2월 28일에 최종적으로 폐교되면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브니엘중학교는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폐교 당시 교직원들의 대다수는 같은 재단의 사립학교들로 배치되었지만, 일부 과원 교사들은 부산시 교육청으로 특별채용 되면서 공립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3 상징

3.1 교표

브니엘고등학교와 공통 교표인데, 심지어 브니엘중학교 교표의 영어 스펠링도 Peniel Middle School이 아닌 Peniel High School 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Middle School 이라는 표현 대신에 Junior High School을 뜻하는 표현을 쓰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

3.2 교훈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3.3 교가

작사/작곡 박환철

산보다 더 드높은 소망을 안고서
모였다 우리들은 사랑의 샘터로
브니엘 브니엘 온 누리에 뻗어 갈
그 이름도 미쁘다 우리 브니엘 학원
빛나는 역사의 창조자 역사의 창조자
길이길이 빛나라 우리 브니엘 학원.

사실 엄밀히 말해서 교가 보다는 학원(學園)가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브니엘 계열 학교들은 브니엘고등학교나 폐교된 브니엘중학교를 비롯하여, 이후에 신설된 3개교 까지도 학원가를 사용한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

3.4 교목

히말라야 시다

3.5 교화

영산홍

사실상 브니엘고등학교의 병설학교 성격이었기에 교표, 교훈, 교가, 교목, 교화를 모두 공유하였다.

4 특징

이 학교의 여자 테니스부는 1968년에 브니엘종합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와 동시에 창설되면서 건국이후 부산에서 처음으로 창설된 중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로 알려져 있다. 1972년에 창설된 동래여자중학교 테니스부와 선의의 경쟁을 벌였고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를 배양하는등 1970~80년대 부산의 테니스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학교가 폐교된 이유는 역시 때문이라는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졸업인 30회 졸업에서도 472명이 졸업한것으로 봐서 폐교 선언 직전에는 1500명에 달하는 규모였다는것을 추측할 수 있는데, 이정도면 폐교될 무렵에도 학생수가 넘치는 학교로 볼 수 있었으며 부산에서 도심공동화로 인한 학생수 급감으로 폐교된 다른 사립중학교들과는 폐교 사유가 확연히 달랐다. 이 학교를 살릴 방법은 연산동 학교부지 매각을 취소하고 기존의 연산동 교사에 잔류시키거나[9][10], 1970년대 후반의 계획 대로 연산9동 토곡으로 이전 시키거나, 동아중학교, 동주여자중학교, 영남중학교, 해동중학교 처럼 고등학교와 별도로 일반계 중학교가 위치할 수 있는 부지로 이전시키는 방법도 있지만[11] 사실 구재단에서도 멀쩡한 중학교를 폐교시키는게 내키지 않았던 나머지 브니엘중학교만은 연산4동의 예전 브니엘학원 부지에 따로 남겨두는 것을 검토했으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는 뉘앙스의 내용이 있다. #

80년대에는 학생들을 상대로 해서 교회 다녀 오고 학교에 주보를 제출하라고 하였다고 하였으며 그때 교회가지 않았던 학생들은 교회 다니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자기 것도 챙겨오라 해서 제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12] 물론 중학교가 의무교육화가 이루어지고, 학생인권과 학부모들의 입김이 이전과 비교했을 시 상당히 강력하게 작용하게 된 오늘날에 학교가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짓을 했다가는 신나게 탈탈 털리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교육청과 재단간의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도 있는 민감한 일이다.

5 학교 시설

파일:NT1FcKw.jpg
과거 브니엘 중고등학교 시설 배치

브니엘중학교 건물은 브니엘고등학교 건물과 같은 부지에 있었으며, 브니엘중학교 건물의 정확한 건축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브니엘중학교와 브니엘종합고등학교가 같은 건물을 썼던 것으로 추정되나, 고등학교 평준화를 앞두고 1973년경에 브니엘고등학교 건물이 학교 부지 안쪽으로 브니엘중학교 건물과 T자형태로 연결되는 배치로 신축되었다. 하지만 브니엘중학교 건물은 학교 건물이라는게 대로(월드컵대로)와 너무 가까이 붙어있는 것도모자라 아예 대로와 평행하고 있는데다가 방음벽 조차도 아예 없다보니 자동차 소음문제가 지적되기도 했으며, 축대를 부실하게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짓다보니 완공된지 15~20년이 지난 1980년대에는 브니엘중학교 건물이 도로쪽으로 기울어지는 문제점도 있었다고 한다.

학교 부지 면적은 1만제곱미터를 전후한 수준이었으나 학교 부지가 제대로된 사각형이 아니라 실제 체감면적은 이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는데, 믿겨지지 않겠지만 최고 전성기때는 브니엘중학교와 브니엘고등학교 2개교를 합쳐서 4천명에 육박하는 면적대비 어아마한 학생수를 자랑했다고 하며, 1학급당 60명은 기본으로 넘겼다고 한다.

6 출신 인물

  • 임서연 (도지원) : 마지막 기수인 30기로 브니엘중 2학년 재학 당시에 아역 배우로 데뷔했으며, 데뷔 직전에 학교가 폐교 확정되고 졸업할 무렵에 학교가 최종 폐교되면서 이 학교 출신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자 마지막 졸업생 472명 중에 한명으로 남아버렸다.

7 이 학교의 후신은?

이 학교의 직계(?) 후신으로 설립자 측에서는 1996년에 신설된 브니엘예술중학교를 언급하고 있지만, 브니엘예술중학교의 경우는 신설 당시 브니엘중학교의 역사와 기수, 개교기념일을 아예 계승하지 않은데다가 위치도 아예 다르고 기능적인 면에서도 전혀 달라서 설립자가 같다는 것 외에는 크게 관련이 없는 상황이며 이후로 운영주체가 여러번 바뀌면서 두 학교는 교명이나 학교 상징을 제외하면 사실상 무관하게 되었다. 게다가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이 학교를 전신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직계 후신이면서도 후신이 아닌 미묘한 관계로 컴파일과 아이키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결정적으로 고등공민학교 시절 동문들이나 기수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던 시절의 극초기 브니엘중학교 동문들이라면 몰라도 브니엘중학교 마지막 기수인 30기의 경우는 폐교식까지도 했기 때문에 1기부터 새로 시작한 브니엘예술중학교를 아예 별개의 학교로 여기고 있는 현실이다.[13] 그래도 마지막 30기 재학생들은 사라질 처지에 놓인 멀쩡한 학교를 넋 놓고 방관만 했던 것은 아니고 이에 대해 어느정도 반발을 하기도 하였지만, 1995년~1997년이라면 국내에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이었고 PC통신이 있기는 하였으나 PC 보급률이 저조하던 그 시절로써는 지금의 인터넷 처럼 대중적인 수단은 아니었기 때문에 폐교 결정에 대해 반발 하여도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물론 지금 같았으면 인터넷 상에서 여기저기 기사가 뜨면서 난리가 났을 일이다.[14]

다만 넓게 보면 브니엘중학교의 기능상 방계 후신이라 할만한 학교가 여자중학교이기는 하지만 2007년에 개교한 양동여자중학교가 연산동 일대의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개교하였기 때문에 폐교된 브니엘중학교나 저 멀리 사상구로 이전한 부일여자중학교의 기능을 어느 정도 이어간다는 점에서 직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통합 방계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브니엘중학교가 구서동으로 이전하려고 했다가 교육청에서는 이전을 거부하는 바람에 폐교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브니엘학원이 이전되는 와중에 브니엘학원 이전 대상 부지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기습 개교한 남산중학교[15] 또한 넓게 보면 직계는 아니지만 어쨋든 방계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8 트리비아

  • 폐교 직전 총 정원이 1500명 가까이 되었고 마지막 졸업생인 30기 졸업생이 472명이었기에 부산에서 폐교된 중학교 중에서는 폐교 당시 가장 많은 학생수를 자랑했던 학교로, 2016년 현재 일반적인 부산시 중학교 정원이 1000명 미만인 현재로써는 앞으로도 이 기록은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 브니엘재단에서 설립한 학교 중에서 브니엘학원 사태를 겪지 않은 유일한 학교다. 사태가 터지기 1년전에 폐교되는 바람에, 사태가 터졌을 무렵에 이 학교는 이미 이세상 학교가 아니었다. 결국 2015년 현재로써는 브니엘 학교 시리즈 중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사고나 비리가 가장 적었던(...) 학교로 남게 되었다.[16]
  • 개교 당초부터 남녀공학이었던 이 학교는 부산의 중학교 중에서는 거의 초창기에 남녀공학을 도입한 학교였는데, 그것도 무려 남녀합반이었다고 한다. 그 덕택에 남녀공학 중학교의 대명사로 통하던 시절도 있었고[17], 당시 보수적인 학부모들은 남녀공학인 브니엘중학교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다.[18] 지금도 보수적인 학부모들은 남녀공학 학교를 달가워 하지 않지 않고 단성학교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것을 저지할 정도인데, 지금으로 부터 20~50년전인 1966~1995년 당시의 인식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부산에 남녀공학 중학교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거나 본격적으로 전환된 시기는 1996년~2000년 사이로 브니엘중학교가 퇴출된 이후에서야 남녀공학 중학교들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설상가상격으로 브니엘중학교는 1975년 부터 야간제 브니엘여고와 교사를 같이 썼는데 낮에는 브니엘중학교가 쓰고, 브니엘중학교 학생들이 하교하고 나면 밤에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와서 그 교실을 사용했는데 그러다보니 가끔 브니엘중학교 학생들이 삥을 뜯기거나, 물건을 도난 당하거나 구타를 당하는 사건도 있는등[19] 이런 문제 때문에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장난 아니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이 학교의 간접적인 후신으로 개교한 공립 양동여자중학교가 당초에는 남녀공학으로 계획되었다가 개교 직전에 여자중학교로 급선회하여 개교하였다.
  • 부산시 중학교 중에서 처음으로 두발자유화를 실시했던 학교라는 말이 있다. # 1994년도 당시 대한민국의 대다수 중고등학교들이 두발 규정이 반삭 수준으로 빡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절 기준으로 남녀공학도 모자라서 두발자유화라는 점은 정말로 시대를 앞선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면모를 보면 폐교되기에는 많이 아까운 학교인 것 같기도 하고, 중학교 수요가 폭증하던 화명 신시가지 같은 다른 동네로 따로 이전해서 살려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
  • 1996년에 설립된 중학교 과정 각종학교인 브니엘예술학교는 당초에 브니엘 중학교가 쓰려던 교사(브니엘고등학교의 오른편으로 지금의 브니엘예술고등학교 교사)가 브니엘 중학교의 이전 불허로 인하여 빈 건물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브니엘중학교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브니엘예술학교는 브니엘중학교가 최종 폐교된지 8개월 후인 1998년 10월에 특성화중학교로 지정이 되어 정규 중학교로 인가를 받으면서 브니엘예술중학교가 되었다. 브니엘예술중학교와 브니엘중학교의 관계는 후신이면서도 서로간의 연결고리가 없어서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별개의 학교라는 점에서[20], 부일전자디자인고/부일외국어고등학교와 과거에 존재했던 부산해양고등학교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 브니엘중학교 인근에 있었던 사립중학교로 이사벨여자중학교(현 이사벨중학교), 거성중학교가 있었는데 이들 학교 역시도 개신교 미션스쿨로 이 학교 재단들 역시도 그 시절에는 부산에서 한가닥 하던 개신교 재단이었다.[21] 그 덕분에 동래구 미션스쿨 3파전이 되기도 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3개의 중학교들은 설립시기 조차도 비슷하며[22],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와 같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 조차도 공통점이었다. [23] 심지어 이 3개의 학교가 위치한 지역 모두 1995년에 연제구로 분구되었다. 하지만 연제구로 분구되지 마자 브니엘중학교는 퇴출되고 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70~80년대 당시 브니엘중학교보다 약체로 여겨지던 근처의 다른 사립 중학교들은 지금도 멀쩡하게 살아남아서 매우 잘 돌아가는것을 보면 더욱 대조될 따름이다(...) 브니엘중학교가 사라지면서 연제구 일대에 중학교의 수가 적정 수준이 되어 결국 이사벨중학교와 거성중학교가 본의 아니게 의문의 1승을 거두게 된 꼴. 그 외에 비슷한 시기인 1968년에 설립된 부일여자중학교도 브니엘중학교 근처인 신리삼거리쪽에 있었는데 이 학교는 종교색은 없었던 사립학교로 신라대학교 재단인 박영학원에서 운영하던 학교였으며, 2004년에 지금의 신라대학교 캠퍼스로 이전하여 신라중학교로 바뀌었고 신라중학교는 오히려 굴러온 돌이 박힌 돌(공립 사상중학교[24])을 빼내버리고 2014년 사학기관 경영평가 중학교 부문 최우수에 선정될 정도로 매우 잘 돌아가고 있다.
  • 부산의 중학교 중에서는 꽤나 앞서서 1980년경에 블레이저 교복을 도입하였다. 그 이전에는 남학생은 당연히 평범한 가쿠란을 사용했고, 여학생 교복은 지금의 경남여자중학교 교복 혹은 근처에 있었던 부일여자중학교 교복과 거의 동일한 부산지역 여자중학교 공통의 세일러복이었으며. 1981년 경의 졸업앨범에는 가쿠란/세일러복 차림의 학생들과 블레이저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혼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개교 초기 여학생 교복은 점퍼스커트 형식이었는데 타마코 마켓의 그것과 비슷했다.
  • 연산동에서 브니엘중고등학교가 사라지면서, 해당 학교 부지는 기존의 학교 건물들이 모조리 철거되고 2001년경에 반도보라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지만TARI TARI?, 반도보라 아파트 앞쪽의 어느 렌터카 업체에서 과거 브니엘중고등학교 시절의 축대 일부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이 반도보라 아파트도 사연이 있는게 원래는 브니엘한신 아파트 혹은 브니엘 아파트 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초반에 한신공영이 만드려고 하던 아파트였고 지금도 다음카페 등지에서 검색하면 관련 내용이 살짝 나오기도 하지만 브니엘학원 이전이 지연되면서 1996년으로 미뤄졌다가 브니엘학원이 부산시에게 어그로를 제대로 끄는 바람에 아파트 착공이 계속 연기 되었다. 그 와중에 1997년 한신공영 부도 사태로 한신공영이 아웃 당하자 1998년에 반도건설로 부지가 넘어가서 한신공영 대신에 반도건설이 아파트를 짓게 되었는데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가 터지면서 브니엘 이라는 명칭 조차도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브니엘 이라는 세글자 까지 빼면서 짓던 도중에 아파트 이름이 바뀌게 되어 그냥 연산 반도보라 아파트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가칭이 브니엘 아파트 였기에 한동안 브니엘 아파트로 불리우기도 했다고... 브니엘 아파트 라는 이름으로 완공 되었어도 브니엘 이라는 세 글자가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가 되어서 아마 입주민들에 의해 그냥 다른 이름으로 바꿨을 가능성도 높았을 것이다. 해당 아파트는 최근에 반도U보라로 이름을 다시 바꾼것으로 봐서 확인사살.
  • 폐교된 사립학교 학적부의 경우 관례상 같은 재단의 현존하는 사립학교가 관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브니엘중학교의 학적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브니엘고등학교나 브니엘예술중학교가 아닌 브니엘예술고등학교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8년에 브니엘예술중학교가 신축건물로 옮겨간 이후로는 학적부는 브니엘예술중학교로 이관되었다고 하는듯.
  • 2016년 들어서 장전동이 대규모 재개발로 이미 완공된 벽산블루밍 장전 디자인시티나 금정산 SK뷰를 비롯하여 2018년 완공 예정인 래미안 장전 등등 대단지 아파트들이 대거 들어서게 되면서 장전동 지역에 여학생이 갈 수 있는 중학교[25]의 필요성이 제기 되고 있다보니, 이론상으로는 돈만 충분히 있다면 장전동 인근에 학교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신축하여 폐교된 이 학교를 20여년만에 다시 이전하여 개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재단이 워낙 돈이 없는 상황에 장전동의 경우는 땅값이 비싼 동네에다가 과거에도 대진전자공업고등학교(현 대진전자통신고등학교) 개교 반대 사건도 있을 정도에 최근에는 부산시 교육청이 장전중학교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을 직접 나서서 저지할 정도로 구서동 못지 않게 학부모들이 매우 보수적이고 강경한 지역인데다가 2016년 현재로써도 브니엘계열 재단 이미지가 워낙 시궁창이다보니...지못미
  • 폐교 이후 이 학교의 동문이 쓴 글. 학교 다닐때는 이 학교가 정말 싫었는데, 폐교되어 사라져서 가슴이 아프다는 대목이 상당히 짠하다. 아무리 이미지가 좋지 못했던 학교라고 해도 해당 학교 동문들에게는 소중한 나의 모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태광여상은 재단이 마음만 먹으면 재개교라도 가능하지, 이 학교는 기존 건물은 아예 철거되어 사라졌고, 재단이 재단인지라 재개교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 브니엘예술중학교 측에서 이 항목을 본건지는 몰라도 2016년도 브니엘예술중학교 학생모집 팜플렛에서 여태까지 개교년도라고 밝혀왔던 1996년이나 2007년 개교가 아닌 브니엘야간중학원이라는 고등공민학교의 개교 년도인 1958년 개교라고 적어놓았다(...) 그렇게 따지면 서울 예원학교는 1967년 개교가 아닌 1886년 개교일텐데[26]
  1. 최고 전성기인 1981년의 사진으로 신리삼거리->연산로타리 방향으로 촬영하였다. 좌측의 건물이 브니엘중학교로 우측의 건물은 옛 브니엘고등학교 건물이다.
  2. 몰락 직전인 1990년대 초중반의 사진으로 연산로타리->신리삼거리 방향으로 촬영. 좌측의 건물이 옛 브니엘고등학교 건물, 우측의 건물이 브니엘중학교 건물이며 옛 브니엘고등학교와 같은 부지에 있었기에 사진에는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과 브니엘중학교 학생들이 동시에 모여있다.
  3. 부산광역시 교육연표 참고
  4. 폐교 확정은 1995년 9월 2일
  5. 1993년에 거제동 경남아파트 인근에서 폐교된 산업체 부설학교인 삼화여자상업고등학교가 있기는 했다. 연제구는 1995년에 동래구에서 분구되어 출범.
  6. 부산시 교육청의 고등공민학교 폐교 명부에 브니엘야간중학원이 없는것으로 봐서 이때는 정식 인가를 받은 것은 아닌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브니엘중학교의 경우 중학교 폐교 명부에는 등재되어 있다.
  7. 하지만 애초부터 부산시나 부산시 교육청은 브니엘중학교의 금정구 이전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브니엘중학교의 금정구 이전은 교육청 기록에 따르면 1989년부터 추진되었으나, 그 이후인 1991년에 인근에 공립 남산중학교가 신설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내에 사립학교가 이전해 온다고 하면 공립학교의 신설은 보류 혹은 취소 되는것이 일반적인 사례인데, 브니엘중학교가 이전해 온다는데도 공립 남산중학교가 기습적으로 신설된것은 이례적이다.
  8.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대진공고 개교 반대 시위 사건이 장전동 일대에서 크게 일어났는데, 금정구 입장에서는 이 두 학교를 동시에 인가냈다가는 앞으로 뒤탈이 상당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아예 둘 다 인가를 불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도 대진공고는 재단의 종교 문제였을뿐이지지 법적으로는 결격사유가 없었지만 브니엘중학교의 경우는 안그래도 연산동 시절에 이미지가 안좋았던 기피학교 였고 등하교 기준 거리를 초과하는 문제로도 형평성 문제가 있기에 결국 불허할 명분이 충분했던 브니엘중학교를 희생시켰다고 보면 될지도... 그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금정구에서 영락공원 이전에 대한 님비 문제로도 크게 골머리를 앓기도 했으니 셋 다 금정구에 오게 했으면 김진재 금정구 의원 입장에서나 금정구청장 입장에서나 뒤탈이 상당하였을것이다. 그러나 브니엘고등학교의 경우는 믿기지 않겠지만 연산동 시절에는 지금의 대연고 수준으로 이미지가 좋았기에 당시에는 금정구 이전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9. 실제로 과거에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와 같은 부지에 있었던 형제학교인 대신여자중학교가 1976년에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후에도 대신여자중학교는 기존의 부지에 계속 잔류하면서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가 쓰던 시설 까지도 모두 인계받아 단독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쪽은 한술 더 떠서 1979년에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와 별개의 재단으로 분리되기도 했다.
  10. 당시 기울어지는 문제가 있었던 교사는 브니엘중학교 교사로, 구 브니엘고등학교 교사는 딱히 언급이 없었던것으로 봐서 의외로 멀쩡했던 것으로 보인다. 1990년 기준으로는 20년도 채 안된 건물이기도 했으니... 게다가 상대적으로 브니엘중학교 보다 안쪽에 있다보니 그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겠고, 지금이라면 방음벽 설치, 이중창 교체, 냉방기 설치로 소음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립학교라도 일반계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다보니 건물 리모델링 같은 시설/교육환경 개선 비용은 정부에서 보조금 형태로 상당수 지원해주는데다가, 사립중학교라도 해도 학생수가 어느정도 있는 멀쩡한 중학교는 교육청에서 마음대로 폐교할수도 없기 때문에 연산동에 계속 잔류했다면 교육청에서 알아서 리모델링을 해주면서 지금쯤이면 학교 시설이 꽤나 쓸만한 수준으로 바뀌면서 손 안대고 코 풀었을 것이다. 사실 재단에서도 이 방법을 검토했으나 잔류시 드는 비용이 너무 커서 포기했다고...
  11. 지금의 양동여자중학교가 있는 부지도 과거에는 사립중학교 이전이 제안되었던 부지이기도 한데, 실제로 이곳에 브니엘중학교의 이웃(?)인 부일여자중학교가 이전을 추진하다가 재단 예산 문제(이쪽도 신라대 이전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 상태)로 나가리 된 적도 있었으니 이때를 틈타서 브니엘중학교를 여기로 이전했어도 폐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부지는 부산진구 양정동 소재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연산동 경계와 맞닿아있다보니 연산동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
  12. 이 내용은 아는 분이 이 학교 다니셨고 그때 상황을 말씀해 주신 걸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그 때 당시의 및 폐교 직전끼지의 자세한 상황을 아시는 분들은 추가 바람.
  13. 2000년대 초반에 30기 졸업생들이 다음 카페 등지에 작성한 글을 보면 브니엘중학교에 대해서 마지막, 공중분해, 없어진 학교, 사라진 학교, 폐교 같은 표현을 쓰는 것에서 브니엘중학교와 브니엘예술중학교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14. 이후 이 30기 재학생들의 적지 않은 인원들은 연제구 이사벨여자고등학교로 진학하였고(30기 재학생들은 대부분 연제구 거주민들이었다.) 이사벨여자고등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결정에 반발하기도 했지만, 당시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15. 브니엘중학교의 금정구 이전 추진이 1989년부터인데 남산중학교는 그보다 2년 가까이 지난 1991년 1월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남산동과 구서동 일대의 학생들을 수용하는 목적으로 개교하였다. 브니엘중학교가 금정구로 이전하려 한 것이 해당 지역의 학생들을 수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확인사살.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남산중학교의 경우 학교 부지 선정 조차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설립인가를 받고 인근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급하게 개교했다가 개교한 후에서야 학교 부지를 매입하여 학교 건물을 만들었다. #
  16. 1993년 국정감사에 이 학교가 나오기는 했지만 학교 이전 문제로 나온 것이었으니 이후 이 학교가 어찌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고, 1997년 5월에 식수에서 세균이 과다검출된 문제로 언론에 보도되기는 했지만, 이때는 이 학교의 생명과도 같았던 연산동 교사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 이미 부숴버린 상태고, 이 학교는 학생 모집이 진작에 중단되어 폐교를 9개월 하고도 2일 앞둔 시한부 상태였다.
  17. 1990년 당시 부산시내에 남녀공학 중학교는 딱 9개만이 존재했는데(...) 그중에서도 6개교는 짐작하는데로 인구밀도가 낮아서 학교를 여러개 두기는 애매한 지역의 중학교들이 어쩔 수 없이 학생 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남녀공학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들 학교는 모두 김해군(현 김해시) 지역 일부가 1978년(대저읍, 명지면, 가락면 일부), 1989년(가락면 일부, 녹산면)에 부산으로 편입되면서 들어온 중학교들이고, 인구가 많은 부산의 도심지역에서 남녀공학으로 운영된 중학교는 진짜 드물었다. 1990년에 부산 시내 지역에 존재했던 남녀공학 중학교는 단 4곳으로 브니엘중학교, 백양중학교, 화명중학교, 동백중학교였는데 백양중학교와 화명중학교의 경우는 1985년, 1986년에 정부시책에 의하여 시범적으로 개교한 남녀공학 중학교이고 1989년에 개교한 동백중학교 또한 비슷한 취지로 남녀공학을 도입하다보니 1985년 이전 까지는 브니엘중학교가 사실 부산 시내지역 유일 남녀공학 중학교였으며 1978년 이전에는 부산 유일의 남녀공학 중학교였다.
  18. 남녀공학이었던 브니엘종합고등학교가 남자고등학교인 브니엘고등학교가 된 이유도 고교 평준화가 시행된 당시에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남녀공학 학교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기 때문에 문교부에 의해 강제로 남고로 전환 되었다고 한다.
  19. 1980년대 산업체 부설학교 대량 등장 이후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상태가 정말 아니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 시절에 연산동 일대에 초록색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 보이면 중학생들이 겁을 먹고 도망을 갔다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20.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 이후로는 운영주체가 바뀌게 되고 그 와중에 교원들이 대거 변경되는 바람에 두 학교는 이름만 브니엘 이라는 세글자가 들어가는 공통점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된다.
  21. 거성중학교는 1990년에 지금의 재단으로 넘어가면서 개신교 색채를 완전히 잃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부산최대 개신교 미션스쿨 재단으로 알려진 김길창계열 재단 훈성학원 소속이었다. 다만 당시 거성중학교는 김길창 계열 재단에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바람에 거의 찬밥 신세였다고 한다.
  22. 이사벨여중:1965년, 브니엘중:1966년, 거성중:1968년
  23. 이사벨여중:이사벨여고, 브니엘중:브니엘고, 거성중:계성여상
  24. 2009년에 사상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폐교되었다.
  25. 관내에 있는 유일한 중학교인 장전중학교는 남학교이다.
  26.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는 이화학당의 방계 후신 관계이기도 한데, 1988년 까지는 이화학당의 직계후신인 이화여자고등학교와 같은 학교법인 소속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