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자유화

1 개요

헌법에 위배되는 지나치게 엄한 교육법이 불러일으킨 학생 인권 침해 사례
두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자유라 카더라

중학교고등학교[1]에서 두발의 길이, 모양 등을 제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에 어긋나고 교복 및 육체적 체벌 등과 함께 구 일제시대 획일화 교육의 잔재라는 주장과, 순탄한 단체생활과 학생의 원활한 관리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켜줘야 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매년 학생회장 공약에 꼭 껴있는 떡밥 중 하나다. 물론 학생회장 공약 자체가 실현될 가능성이 0에 수렴하기에(...)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학생회장이 학생들의 지지를 아주 많이 받아야 학교의 회유를 뿌리치고 원활하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의 학생회는 점수 따려는 애들이 참가하는 곳이 되어버리다시피 한 바람에 사실상 어용단체가 된지라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두발자유의 정의는 단순히 길이의 자유화에서부터 염색/파마 등 완전 자유화에 이르기까지 학교마다, 개인마다 어느정도 의견의 차이를 보인다. 단순히 단어의 의미만으로 보면 완전 자유화에 가까우나, 일단 시행한다는 학교를 보면 길이는 자유화하되 염색/퍼머는 제한하는 절충안적인 형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3이 될수록 두발자유화에 대한 의지는 꺾여가거나 혹은 규제의 존재 자체를 잊어가며, 수능이 끝난 다음부터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어차피 대학 가면 두발자유인데 뭐'하고 생각하면서 점차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가는 것. 즉 시간이 해결해주므로 나중에는 신경쓰지 않는 것.

본래 개화기 시절부터, 근대교육은 사실상 일본의 근대교육을 상당부분 참고한 형태로 도입이 되었는데, 당시 일본 근대 교육은 학생을 사관 생도처럼 육성하는 방식이었다. 학생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기 보다는 전체주의에 입각한 하나의 고급 인력으로 파악한것. 그렇기 때문에 두발부터 복장까지 철저하게 군대식 체계를 띠게 된것이다. 사실상 사관생도를 육성하는 방식으로 중/고등학교가 운영되었던 것이다. 일본식 교복의 대명사인 가쿠란도 사실 당시 서양의 군복에서 원형을 따온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군인처럼 짧은 머리를 강요하는것은 당연지사. 이것이 일제강점기 당시 그대로 이어지면서 군국주의식 교육이 확립되었고, 해방 후에 별 비판없이 이어지다가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일제의 잔재를 없애신다는 분들이 두발규제엔 적극적이다. 그리고 이 일본식 두발규제도 후술하겠지만 1차대전 당시 유럽군대(특히 독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국에서만 유난히 제재하는 건 아니다. 복장 등에 관련된 규제는 전세계 어느 학교라도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 그 정도와 규제 방법,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관리의 편의성을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단순히 어렵다는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실제로 이 제도의 당사자들인 학생의 의견 반영을 통해 적절한 합의를 도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한다는 것은 물론 문제가 있다. 사실 두발자유화는 학교-학생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의 요구사항이 모두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실제 두발규제의 근거로 사용되는 성적이나 치안 등과 두발자유의 연관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통계 등이 없는 상태라 제자리걸음 중.

진보교육감 당선 이후 학생인권조례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에 따라 다시 논의가 떠올랐다. 더군다나 해당 공약에는 "특히 학교는 두발의 길이를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구절까지 있다. 이로써 실현될 가능성이 적어도 0%는 아니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역시 유명무실한 조항이 될 수 있다, 12조 3항에 의하면 19조[2]만 잘 지키면 두발 규정을 만들 수 있도록[3]되어있는데 이는 결국 마음만 먹는다면야 12조를 무효화 시킬 수 있는 규정을 만들 수 있단 소리기도 하다.

KBS1 라디오 열린토론 2009년 12월 22일 방송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두발과 복장 단속을 금지하고, 자율 학습을 강요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조례안에 대해서 이에 반대하는 인사가 이에 대해 "전교조라는 좌익용공단체가 국가를 전복하여 적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사악한 의도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인권천국 북한? 왜 거기 지상락원이잖아 사실 북한에선 두발규제, 복장규제는 물론이고 방학중에도 1주일에 4일 정도는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며 1주일에 4일이면 우리보다 낫네? 거기에 북한답게 학교간 차별이 존재한다고 한다.

1년 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김상곤 현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조례안을 2011년 신학기 시작과 함께 정식으로 발효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 위해 일선교사들에게 의견을 청취 중인 상황이다.

결국 2011년 이후 경기도 내에서는 야간자율학습이 선택사항으로 전환되는 것과 함께 경기도의 학교 대부분이 사실상 두발자유화되었다. 역시 야자 자율화 때처럼 깽판치는 교장이 나오고 있는 듯 보이지만, 2012년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어서 사실상 전국적으로 두발자유화가 퍼질 것으로 보인다.부럽다

학생일 때는 두발규제에 심하게 반발한 사람도 나중에 사회인이 되면 정작 학생일 때보다 더 짧게 스포츠 머리로 깎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냥 학생 때부터 밀고 다니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이 있으나, 강제로 머리를 미는것과 자신이 선택해서 삭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1.1 단정한 머리

학교에선 '단정한 머리'를 하라는 것이지 두발을 규제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이 논리는 샤기컷 시대에 머리가 길면 단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머리를 짧게 깎으라는 뜻으로 편 논리였다.

현재는 샤기컷보다 비교적 짧은 투블럭이 유행하는 고로, 귀두컷을 의미하는 말로 변질되었다.

2 두발자유화 운동사례

정권은 잘 알고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내 바지가 충분히 긴 건가?'
'베일이 잘 씌워졌나?'
'화장한 게 너무 진한가?'
'나를 채찍으로 때리면 어쩌지?'

더 이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의 사상의 자유는 어디 있지?'
'나의 언론의 자유는?'
'내 삶은 살만한 걸까?'
'정치범들은 어떻게 된 걸까?'


-페르세폴리스 2권 152페이지, 이란 "호메이니"통치 시기

어느정도의 규제는 어느 나라나 있지만 특히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측면에서[4] 일반적으로 독재국가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두발과 다른 복장까지 규제를 한다. 일본, 대만, 한국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오직 학생에게 두발을 전면적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일제 군사주의의 교육이 이식되면서 "아시아적 공동체주의 독재"를 했다는 점, 그리고 자유주의 사상이 발달하면서 철폐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1 대만의 두발자유화

2.1.1 약사

2005년 4월 23일 中華民國學生反髮禁自治協會 ; 중화민국학생반발금자치협회 설립
(반 발금 = 두발규제(발금) 반대)
(협회장 北市成功高中升高三的李建緯和創會會長 ; 이건위, 타이페이 성공중고교 고3학년)
反髮禁自治協會 , 인터넷 사이트 오픈, 회원수 96,000명 확보

6월 19일 타이페이FM101.7, 中華民國學生反髮禁自治協會 회견
7월 19일 "我的頭發自己管" (아적두발자기관 = 내 머리는 내가 결정한다) 구호
홍보동영상 제작, 인터넷 배포

7월 19일 오후 1시, 타이페이 교육부 청사 앞 첫 시위
7월 24일 오전 10시 30분, 타이페이 교육부 청사 앞 시위 전격 결행
대만 남부도시 카오슝 시민광장에서도 중고교생 시위 전격 결행

7월 25일 대만 교육부 두발규제 전면폐지 결정

2.1.2 내용

2005년 대만 정부는 새학기가 시작되는 오는 9월부터 초중고생의 두발 자유화를 선언하며 신발, 양말, 복장 등에 대한 규제의 철폐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다. 이런 정부의 결정이 있기까지 대만 청소년들은 4월 23일 인터넷 사이트를 열고 11만명의 청소년들의 회원을 모았다. 이들은 24일 교육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열었으며 결국 교육부장관의 면담을 얻어냈다. 면담이 있은 직후 다음날인 25일,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두발규제의 종결을 선언한다. 이후 새학기가 시작되는 대만의 학교는 각 학교에서 학생들이 활발하게 두발규정에 대한 토론을 열며 교사들과의 적절한 규정에 대해 논의하였고 두발규제는 철폐되었다.

대만의 경우, 2000년대 들어서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화되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에 2005년 학생들의 요구를 교육부가 전격 수용하면서 두발규제폐지 지침이 내려지게 된다. 한국의 경우는 정반대로 3s정책으로 두발자유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였던 전두환정부에서 김영삼정부로 민주화가 되면서 오히려 국민의 요구에 따라 두발규제가 심해졌다. 뭐야... 이 뻘짓은

2.2 일본의 두발자유화

2차대전 이후, 지방에 따라서는 2000년대 초까지 두발규제가 있었다.[5] 한국의 두발규제도 일본에 의해서 들어 온 것이다. [6] 해방이 되고 두발규제는 여전히 지속되었으나, 1960년 전공투등의 활발한 학생운동이 이루어지고 관리교육[7]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젊은층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가속화되고 관리교육 반대운동이 지속적으로 두발 및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결과, 고등학생들의 두발규제도 완화되고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한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본의 고등학생들은 학생회자치와 방과후 자치활동[8] 등 많은 부분이 여전히 침해당했다. 하지만 전공투의 몰락과 일본내의 사회주의세력의 종말, 극우의 성장과 더불어 일본인 특유의 순종성까지 더 해 일본의 학생운동은 시작도 못해보고 멸종되었다. 이후 1990년 유토리교육을 받은 세대가 중,고등학생이 되는 시점이 되자 문부과학성은 두발규제, 자유연애, 복장규제에 대한 대대적 완화를 시행하였고 일본의 교원노조는 학생들의 자치화를 지원하였으나 일본의 학생들은 자치적이고 조직적이며 지속적인 학생조직을 만드는데 실패하였다.

일본의 야구부나 유도부 등 교내 스포츠 클럽은 지금도 완전 삭발이 많은 편이다.[9] 서브컬처에는 정작 잘 반영되지 않다만, 하나이 아즈사같은 스타일이 일반적이라고 보면 된다. 이 역시 1990년대 자유화 운동으로 거의 사라질 뻔했는데, 2000년대 이후 다시 유행으로 부활해서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2.3 중국의 두발자유화

현재 중국은 외국인학교를 제외하고는 80년대 한국의 고등학교와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일반 시민의 인권이 제한되어있으므로 학생들의 인권도 지켜지지 않는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이에 대항한 학생운동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4 한국의 두발규제 현황과 자유화 운동사례

우리 청소년들은 미래의 주역이자 언제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 발전에 한 몫을 해왔다. 그러기에 마땅히 그 위치에 걸맞게 자신의 개성과 의사를 자기 뜻대로 표현하고 자유와 권리, 인권을 제대로 누려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경쟁을 강요하는 입시위주의 학교 교육 안에서 권위에 대한 순종과 ‘학생’으로서의 의무만을 강요당해 왔다. 이런 현실을 뚫고 우리는 오늘 ‘두발자유화를 위한 청소년 행동의 날’을 열게 되었다. 이 역사적인 자리에서 앞으로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 자신을 억압하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순응하고 체념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참된 존재로 거듭날 것을 선언한다.

두발 규제는 명백하게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머리카락을 얼마나 기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함부로 만지고 기준을 정해서 강제로 자르게 하는 규정을 세우는 것 자체가 반 인권적인 행위라고 보아야한다. 현재 교육부에서 각 학교에 내려 보낸 두발규정 관련 지침은 이전보다 한 단계 나아졌지만 불충분하며 실제 학교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아직도 많은 학생회들이 학교 측의 힘에 떠밀려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학생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관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청소년들 스스로의 힘에 의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실현되는 진정한 두발자유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뜻이다.

두발 규제 문제를 포함하여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청소년 인권 문제가 개선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주는 것이지 입시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학교는 청소년들의 모든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을 ‘입시’라는 이름으로 묶어놓고 오로지 시험 문제 몇 개를 더 외우게 하고 경쟁을 강조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고민을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어딘가에서 입시경쟁으로 고통 받고 있다.

최근 내신 성적에 상대평가제도가 도입되어 많은 청소년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게 한 이러한 입시 교육의 폐해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과 제대로 된 청소년 인권의 보장을 위해 입시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확실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덮어두려 하거나 왜곡하지마라. 더 이상 어리다는 이유로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하지마라. 우리는 생각할 줄도 알고, 잘못된 것에 대해 분노할 줄도 안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라.

두발자유화를 위한 학생운동본부 2005년 5월 14일

2.4.1 약사

1995년 - 최우주 군 강제야간자율학습 위헌소송제기 의사표명
◎ PC통신 학생복지회 결성, 본격적으로 '학생인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함

1998년 - 송파공고 학내 두발자유 종이비행기·풍선 시위로 두발자유화.

2000년 3월 -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학생연합)' 결성
◎학생인권보장과 학교민주화를 필두로 하는 청소년 주체 대중조직표방

2000년 5월~12월 - 두발자유화 운동 전개
온라인 서명운동 14만명 돌파(청소년 웹연대 with)
학생인권&학교민주화 선언 및 오프라인 두발자유화 시위(학생연합)
◎ 교육부의 학교별 자율방침에 반대하여 '인권운동'의 의의를 수호

2001년 - 학교운영위원회 학생참여 운동(학생연합)
◎ 학내 운영 결정의 학생참여를 통한 형식적 학교민주주의 주장

2002년 - 교육부 공교육 내실화 정책관련 체벌 및 야간자율학습 합법화에 반대하는 운동(학생연합)관련기사
◎ 인권의 측면에서 체벌을 반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 못함.

2003년 - NEIS반대 운동(청소년의 힘, 민학연, 학생연합, 아이두, 고슴도치 등)관련기사
◎ 정보인권 개념의 등장과 확산.
18세 선거권 운동(18세 선거권 낮추기 연대, 낮추자, 등)
◎ 학교 내 억압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얻어 내고자한 운동. 청소년을 미성숙하게 바라보는 기존의 인식을 깨기 위한 시도

2004년 - 학내 종교자유를 위한 1인 시위 및 단식투쟁 & 대장정(로이 등)
◎ 전 대광고 학생회장 강의석군의 1인 시위를 통해 촉발,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학교구조를 이용한 미션스쿨의 파행적 종교강요 행위가 알려짐.

2005년 - 학생회 법제화 운동 (발전하는 학생회 가자 등)
◎ 유명무실한 학생회의 실질적 권한회복을 위해 법제적 대안제시.

2005년 3~4월 -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서 두발자유를 위한 서명운동시작
전국학교 곳곳에서 두발제한에 항의하는 락카시위 발생
◎ 2000년 자율화방침이후 달라진 게 없음. 학생들의 산발적인 저항발생

5월 7일 - 내신등급제 및 입시과열로 숨진 학생추모대회(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2005년 5월 14일 두발자유를 위한 거리축제 개최
(캠페인 - 아이두, 거리축제 - 두발자유를 위한 운동본부)
◎ 두발자유화가 아닌 학생참정권 하의 학교별 재조정인 두발자율화를 주장
◎ 2000년도와 마찬가지로 교육부의 학교별 재조정 자율화방침 지시 이를 수용함 두발제한에 대한 인권위 권고안이 나옴.

2005년 5월~6월 송파공고, 풍생고에서 두발자유를 위한 학생들의 자발적 시위가 일어남

2005년 6월~11월 서울, 전주/진주, 11월 수원 등지 두발자유 관련 소규모 집회, 캠페인 진행.

2006년, 2008년 민주노동당 권영길의원이 학생인권법을 발의하나 국회통과 실패.

2009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2.4.2 내용

한국의 경우에는 군사주의 독재속에서 미니스커트와 장발이 어른아이할 것 없이 전부 규제되었다. 1987년 당시 현대중공업 노조 위원장이었던 이갑용 씨가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자들이 1순위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 '두발규제'였다. 당시에는 공장 문 앞에서 노동자들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어버리는 일이 성행했다는 것이다. 이 때의 두발은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니라 굴종, 체념, 부끄러움, 억울함의 상징이었다.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성인들의 규제는 사라졌지만 학생들의 경우에는 악습이 전통으로 미화되면서 근 20년 간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사실 83년 교복자율화가 시행되면서 두발규제도 한동안 상당히 완화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학생인권 리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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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 한 서울소재 고등학생의 두발 상태. 강용석인데?

하지만 다시 점차 두발규제가 심해져 90년을 전후해서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두발규제가 시행되었다.

두발자유화를 할 가능성이 있었던 시기는 크게 봐서 2000년과 2005년 두 시기였는데 2000년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두발자유화 운동이 처음 일어난 시기다. 민주노동당과 비슷하게 뭐든지 처음 실패하면 지지부진하다. 이 당시 광화문과 교육부 앞에 몇 만명이 모여 집회를 요구하고 교육부 차관이 학생대표와 면담을 했을 정도였는데 교육부는 명백하게 반대의사를 밝히는 대신 얼버무리면서 시간을 끌었고 대만과 달리 학생회등의 자치조직을 가지지 못하고 단발성으로 모인 학생들은 결국 경찰 6000여명에게 해산당하였다.

2005년 참여정부 등장 이후 다시 한번 대규모 시위를 벌였지만 이미 2000년의 패배에 대한 학습과 신자유주의와 학벌주의 교육광풍이 매우 확대된 상황은 더욱 안좋아 오히려 2000년 보다도 힘이 약했으며 교육부는 면담도 하지 않았고 경찰 2000명에게 해산당하였다. [10] 2008년 촛불집회가 서울에서 퍼져나가며 청소년들이 휴대폰 문자로 거리에 모이는 것이 언론에 잠시 화제가 됐지만 정작 청소년들은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음에도 대부분이 놀러나가듯이 참석한 것이라 조직적으로 자기의 권리를 찾는데는 서툴렀고 나중에 그냥 흐지부지 되었다.

2009년 12월 경기도 교육청에서 발표한 학생인권조례 초안에서 학생 개개인에게는 개성을 실현할 권리가 있다는 항목이 명문화되면서 다시 논의가 떠올랐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위원회에 학생참여기획단 400명을 참여시킬려는 노력으로 인해 고사돼있던 청소년 활동가들은 새롭게 학생들을 모아 조직하고 이후 2010년 지방선거때 진보교육감경선에 참여함에 따라 다시 세력이 불어났다. 진보교육감 취임식날 아수나로를 위시한 학생인권단체들은 언론의 급격한 관심을 받는다. 이후 진보교육감이 공약으로 내세우고 여러 학생운동 단체들이 참여했던 학생인권조례가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 발표됨에 따라 두발자유화가 운동 11년 만에 실시되었다.

2014년 1월, 문용린 교육감의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으로 인해, 두발자유화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으나 2014년 6월 새로운 교육감이 당선됨에 따라 다시 원만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2015년 현재 교육부 컨설던트의 지식인 답변을 참조하면 한국 중학교의 60%가 두발자유화를 했다고 한다. 정말?? 신빙성 여부는 둘째치고 이 의견을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무려 40%의 중학교는 여전히 2000년대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지 않은 대전광역시 지역의 경우 고등학교 75% 중학교 96%가 여전히 두발 단속중이라고 하며, '두발단속은 인권침해'라는 의견을 제기하고 유인물을 배포한 중학생에게 학교 측이 징계를 내려 파문이 일었다.# 전형적인 문화지체현상
그리고 그 학생들을 도와줬던 분들이 이걸 또 만들었다.

2.4.3 무엇이 문제인가?

한마디로 학생이 국민으로서 지닌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권침해이기 때문이다. 두발제한이 인권 침해 행위이라는 걸 모르는 게 더욱 문제다. 즉 이것이 문제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만약 '단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학생이 두발제한을 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선생님들도 '단정해야 하기 때문에' 두발제한을 하는 것이 논리에 맞을 것이다.[11]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2005년에 중고등학교의 두발규제가 인권 침해임을 명시하고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학칙 개선을 요구했다. 2005년 YTN 기사 <인권위, "두발 강제 단속 말라"> 인권위의 권고 이후 자그마치 10년이 지난 2015년 현재 학생인권조례로 일부 지역에서 두발자유화에 대한 목소리가 드디어 성과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인권조례의 영향이 없는 상당수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기준을 들어 학생의 두발을 강제 단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두발자유화가 강력이 주장되었던 제일 큰 이유는 바로 일제의 잔재라고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895년에 시행됐던 단발령의 영향을 받았던 것과 70~80년대 정부의 단발령이 악습처럼 내려온 것이 학생의 두발규제이며, 마치 그런 악습을 "학생들은 단정해야 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심어가면서,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것이 과연 정상이냐는 것이다. "학생은 단정해야 된다."라는 기준부터 애매모호 하다. 자유로운 머리를 하고, 학생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단정하지 않다고 얘기할 사람이 있을까? 있기도 하던데 그냥 그분들이 노답인건가

"짧은 머리의 학생은 단정하고, 긴 머리의 학생은 불량하다."라는 주장은 다음의 두 마디로 반박이 가능하다.

  • 일진이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면, 그 일진은 착한 일진이 되는 것이며
  • 모범적인 학생이 치렁 치렁 머리를 기르고 다니면, 양아치가 되는가?

'머리를 짧게 해야 하는 이유들 대다수가 변명거리처럼 보이며 자기들이 보기 싫으니깐 짧게 자르라는 말'로 밖에 안보인다. 비겁한 변명...

학생도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 중 한 사람이다. 투표권만 없을 뿐이다. 또한 학생은 군인이 아니며 범죄자도 아니다. 예전에 아수나로에서 청소년들에게 교육감 선거에 한해 투표권을 달라는 것도 두발규제 때문이 가장 크긴 했으나 교육감들이나 교육부 정책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학생들인데, 정작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투표권이 없다는 것이 모순이라면 모순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공약과 정책을 내밀고 당선이 되어버리는 교육감이라도 나오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오기 때문.

2000년도까지는. 그리고 상술했듯 2016년 현재도 학생인권조례의 영향 밖에 있는 상당수의 지역에서 학생주임이나 선도부원[12]들이 등교시간 교문 앞을 지키며 머리가 긴 학생들을 잡아 이름을 적거나 아예 수업 도중 머리검사 시간을 따로 마련해 교실을 돌면서 '두발이 불량한' 학생들의 리스트를 적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두발규제에 맞지 않는 머리를 한 이른바 '단정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그 학생의 평소 행실이나 인성과는 전혀 상관 없이 단지 "두발이 불량하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처벌과 압박이 성행했다.[13] 전학을 권유 받았다거나, 학생부에서 압박을 주었다거나, 양아치 등으로 몰아세우는(교무실이나 복도에서 큰 소리로 꾸중을 한다거나) 압박을 가하는 것은 예삿일이며, 상당수의 학교에서 머리를 규정에 맞게 잘라올 때 까지 체벌을 가하는 만행을 서슴없이 가했다. 이렇듯 학생들에게 학내 규정에 대한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으면서 전근대적인 방식과 기준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건 자유 민주주의 원칙에서도 어긋나는 일이다. 학업 및 인성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두발규제를 들어 청소년의 신체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는 행태가 2016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론 띠바 뚀깐네, 시간만이 해결해 줄 듯. 현 상태에서는 아마 한 세대 정도는 지나야 두발제한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2.5 교도소의 두발자유화

원래 낙인을 찍고 권력을 과시해서 꼼짝 못하게한다는 측면에서 옛날부터 외국의 교도소도 두발 검사를 실시하고 바리깡으로 밀어주었다고 한다.[14] 그러나 인권이 향상되면서 차차 없어지고 지금은 재소자들의 상징처럼 머리에 각인된 삭발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재소자들의 머리가 길어져서 재소자 교화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은 없다. 머리 긴 재소자들이 출소하여 재범 비율이 높아졌다는 통계도 없다. 단순히 탄압의 수단일 뿐인데도 이것을 사회불안과 엮는 이유는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두려워서였다.

김대중 정부 때 재소자의 인권은 급격히 향상되었다. 그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 당사자가 교도소에서 무수히 많은 고초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대중 정부 이전엔 교도관 폭행으로 죽는 재소자도 무수히 많았고 수많은 미친짓과 신고식이 묵인되는 등. 거의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겨진 이후 처음 착수한 일이 전국의 교도소를 돌며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교도소의 인권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1999년부터 재소자의 두발제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고 항의가 이어지자, 2000년 7월 28일 수형자의 명예감정 보호차원에서 1999년부터 수원교도소 등 4개 교도소에서 4개월간 시범 시행했던 재소자들의 두발자유화를 전국의 교도소, 구치소, 감호소로 확대 시행함으로서 일반 수형자 3㎝, 모범 수형자 5㎝뭐가 다른거지?로 제한돼 있는 기결수용자의 두발 길이를 자유화해 마음대로 머리를 기를 수 있도록 허용키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21세기 선진 교정행정' 시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파마는 금지된다.

2.6 군대의 두발자유화

군대에서 위생과 청결 개념이 부족하던 고대에는 두발이 자유였지만, 근대 이후 의학이 발전하면서 군대 내에서도 위생 개념이 중요시되면서 두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단, 근대 이후 서구 군대에서 등장한 두발규제는 위생과는 거리가 먼, 그저 뽀대용 및 통일성, 군기잡기의 일환이었을 뿐이었다. 짧게 깎기는 커녕 되려 길러서 꽁지머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위생 관념이 희박하던 시절이고 한 번 만드는 데 빡센 스타일이어서 비누나 기름 등으로 떡칠을 해 올백을 만들고 그걸 몇 주씩 방치해서 각종 피부염에 시달렸다. 게다가 19세기 초까지 머리카락을 하얗게 만드는 것이 유행했고, 군대에선 이걸 의무적으로 하게 해서 밀가루를 뿌려 하얗게 만들었는데[15], 이 역시 만드는 데 힘드니 오래 방치하는 게 일상이었고 이건 피부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땀 등으로 인해 부패하면서 악취를 내뿜고, 등이 이를 갉아먹으러 밤중에 달려드는 등 여러모로 골치아팠다. 결국 민간에서도 19세기 중반부터 남성들의 머리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서 장발 규정이 없어져 올백 스타일 정도만 유지토록 했다.

현재는 전세계 대부분의 군대가 짧은 머리를 유지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참호전의 불결한 환경으로 이가 번식하자 삭발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도 한동안 올백 스타일이 신분을 불문하고 기본형으로 자리잡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독일군에서는 두발이 자유화되었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다시 규제로 바뀐일도 있었다. 자세한 건 이곳 참조 타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 장발이 적극적으로 허용된 시절의 서유럽쪽 군인들이 어떤 수준으로 머리를 길렀는지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군 복무 시절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군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짧은 군대머리가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 통일성 - 군대라는 조직 특성상 개성보다는 같은 부대원으로서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사제 전투복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16]이기도 하다.
  • 위생 - 군대는 장기간 출정나가는 경우도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씻거나 머리를 감기에 물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이 때 머리가 짧으면 필요한 물도 적고, 청결을 유지하기도 쉽다. 머리가 길면 머리에 가 생기는 등 비위생적인 환경이 조성되는 경우도 많으며 방탄헬멧을 착용시 땀이 많이 찬다.
  • 화생방 보호 - 머리가 길면 백병전시 적에게 잡힐 위험이 있다...지만 과거 얘기고 현대에는 백병전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전에서 보다 중요한 이유는 화생방전 발생시 머리가 길면 가스 마스크로 보호하는 것이 힘들다는 점[17] 때문이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보건데 아무래도 군인은 머리가 짧은게 유리한 건 사실인지라 군인에게는 두발자유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참고로, 미군의 두발 기준은 길이 제한이 아니라 남군 기준으로 모자를 썼을 때 드러나는 머리카락을 전부 밀어야 하고, 앞머리를 내렸을 때 눈썹을 덮거나 하면 안 되는 정도이다. 즉, 규정상 올백 등의 스타일도 해당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신분 불문하고 할 수 있다. 삭발한 사람이 많이 보이는 것은 관리하기 귀찮아서 밀어 버리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서구에서 남성들의 삭발이 유행해 이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보다 훨씬 덜한 점, 그리고 서양인의 두상이 전반적으로 삭발을 해도 덜 흉하다는 점 등으로 인한 것으로, 규정상 삭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짬 좀 되는 장교부사관, 혹은 삭발이 영 안 어울리는 두상이 많은 동양계 등은 머리를 적당히 기르는 경향이 많다. 또한, 수염 기르는 행위가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 금지되어 있는 국군과 달리, 콧수염까지는 기를 수 있다. 물론, 훈련병이나 사관생도 등 양성 과정의 인원들은 수염은 못 기르고, 훈련병은 남군 기준으로 삭발 혹은 그에 가깝게 깎은 뒤 수료 직전 즈음부터 조금씩 기를 수 있다.

국군의 기준은 육군의 경우 흔히 9㎜(병 기준)로 밀게 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각 군별로 다르다. 가장 머리가 긴 곳은 해군으로, 모자 썼을 때 튀어 나오는 옆머리와 뒷머리는 짧게 잘라야 하나, 앞머리 및 윗머리는 신분 불문하고(수병이든 장교든 간에) 11㎝까지 기를 수 있다. 아무래도 육군보다 위생 관리가 수월한 근무 환경이 많이 보장되고, 해군 복제의 특성상 머리가 너무 짧으면 굉장히 보기 흉하다는 점 빠박으로 밀고 세일러복 입어봐라, 함정 근무자의 경우 유사시 머리를 잡아당겨 물 속에서 끌어내기 수월한 점 등이 그 이유이다. 해병대의 상륙돌격머리가 윗머리는 기르는 형태인 것도 같은 이유이다.[18]

3 관련 문서

  1. 초등학교는 애초에 두발규정이 없어서 아주 보기 싫은 머리만 아니면 다 되니 이 문서와는 상관없다.
  2. 학생이 규정제정에 참여해야 한다.
  3. 2조 3항 학교는 정당한 사유와 제19조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학교의 규정으로써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4. 헌법에서 괜히 보장되어있는게 아니다.
  5. 고베나 나고야같은 곳에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도 완전 빡빡이 남학생을 자주 볼 수 있었다.
  6. 사실상 일본의 1940년대 이후 교육과정은 중학생 이상을 일종의 생도로 보는 생도교육이었기 때문에 두발규제가 엄격했다. 물론 1930년대까지는 그다지 두발규제가 심하지 않았다. 별건곤을 비롯한 당시 조선어 잡지에는 두발규제가 강화됨으로서 "이런 머리로는 연애를 못한다"고 하소연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7. 학생을 관리 대상으로 보고 행동 하나하나 전부 지도해야 한다는 교육. #일본위키.
  8. 우리가 애니에서 흔히 보는 수상실적이 없다고 부를 무단 폐부하는 일은 사실 매우 흔한 일이다. 당하는 입장으로선 어이가 없는 샘
  9. 한국에서도 가끔 볼 수 있긴 하지만 일본만큼 일반적이지는 않다.
  10. 그러나 이 두 차례의 시도가 완전히 쓸모없지는 않았으니, 서울의 고등학교의 학주가 거리로 나온 학생들과 대치를 하게 되면서 각 고등학교가 자중하자는 분위기로 흘러갔던 것이다. 서울의 학생들이 야자와 두발규제가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11. 실제 과거 엄격한 일본 사립 고등학교(닛세이 학원)는 한때 군사식 커리큘럼을 학생들에게 적용하면서 두발제한을 매우 철저하게 하였는데 실제 한 동영상에서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 이사장까지 모두 과거 황군(구 일본제국군)처럼 거의 대머리처럼 짧게 민 모습이 보였다.
  12. 물론, 이들도 학생인지라 위에서 하라는대로 움직이는 피해자 입장에 있다.
  13. 가장 엄격한 일부 학교는 남학생의 경우 군인 머리와 흡사하게 앞머리는 당연히 없어야 했고 윗머리 기준 14mm~15mm까지 짧게 자르게 하였다. 그래서 머리길이를 잴 때 로 직접 재거나 혹은 손을 머리 카락 사이에 집어 넣어 머리카락이 얼마나 삐져 나오는지까지 확인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스님 머리, 스님 학교'라는 별명같은 걸 붙이기도 하였다. 신문기사 참고
  14. 나치 독일에서 유태인들을 강제로 수용소로 끌러갈 때 제일 처음 순서가 머리를 강제로 미는 것이었다.
  15. 때문에 장교들 중엔 가발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
  16. 하지만 사제의 기준이 옷의 형태와 재질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가 이기 때문에, 지급품과 동일 사양의 것을 구입해 착용하는 것은 뭐라 하지 않는다. 국군은 좀 본받아라.
  17. 이것은 군대에서 면도를 규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8. 그런데, 많은 대한민국 해병대원들이 믿는 것과 달리, 이 머리 모양이 탄생했다고 알려진 미합중국 해병대는 이런 머리를 규정한 적이 없고 유행 정도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