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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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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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Oqh3Aid.png
1996년 완공 직후에 찍힌 현재의 건물 사진으로 이 건물은 3代 건물이다.

교명브니엘고등학교
한자브니엘高等學校
영문명Peniel High School
개교일1964년
교화영산홍
교목히말라야시다
성별남자고등학교
유형일반계 고등학교
운영형태사립
학교법인정선학원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체육공원로 154
(구서동 50-1)
홈페이지

1 개요

한때는 부산시내 인기 명문 고등학교중에 하나였고 충분한 저력이 있었으나, 어리석은 재단에 의해 빛이 바래진 비운의 명문사학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위치한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 주소상으로는 구서동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구서동보다는 선동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교명인 브니엘은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한 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구나" 하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으로 그곳에 붙였다고 전하는 지명이다. 교명에서도 알 수 있듯 개신교 계열 고등학교인데, 부산지역 고등학교 중에서도 종교색이 가장 강한 학교라고 볼 수 있다.[1]

2 역사

1964년에 연산로타리 근처 (현 반도보라아파트) 에서 개교하였다. 이때는 부산에서 몇 안되는 남녀공학 고등학교인 브니엘 실업고등학교로 개교하였으며 관광과와 상업선전과로 구성된 상업계열 실업계 고등학교였다. 그러다가 1968학년도부터 학과 개편으로 인문과가 신설되고, 관광과의 폐지 및 화공과가 신설되면서 브니엘 종합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으며[2], 1974년 부산지역 고교 평준화 당시 문교부에 의하여 일반계 남자고등학교로 지정되면서 실업계열 학과들이 폐지되어 남녀공학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남자 일반계 고등학교로 강제로 전환하였다.[3] 다만 1975학년도 부터는 야간제 여자반인 2부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를 운영하였다. 1989년에 재단에서 현재의 위치로 학교 이전이 확정되면서, 1996년에 연산동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이와 동시에 야간제 여자반을 브니엘 여자고등학교로 분리개교 하였다.

파일:브니엘실업고1.jpg

파일:브니엘실업고2.jpg

개교 당초의 브니엘실업고등학교 연산동 교사 모습.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동래중학교 구 교사와 비슷한 모습이다. 당초에는 1960년대 초반에 만든 2층짜리 가건물 수준의 교사를 썼는데 중아선교회라는 선교 단체에서 지원한 자금으로 만들어진 교사였다. 이 교사는 1970년대 초반 까지 쓰다가 고교 평준화를 앞두고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하기 위해 기존의 시설 기준에 미달하는 2층짜리 교사를 헐어버리고 1972년 12월에 일반계 고등학교 시설 기준에 부합하는 5층 짜리 복식구조의 교사로 신축 하였다.
사진의 색감이 약간 이상해 보이는데, 원래 흑백 사진으로 촬영해서 물감으로 덧칠하여 칼라 사진처럼 보이게 한 것이며 칼라사진이 비쌌던 당시에는 이런식으로 칼라 사진을 흉내내는게 일반적이었다.


파일:브니엘중고등학교.jpg
1990년대 초중반 연산동 끝물 시절의 모습. 사진의 연산동 시절 2代 건물은 브니엘고등학교의 마지막 리즈시절을 상징하였다.

사진에서 왼편 건물이 브니엘고등학교이고, 오른편 건물이 지금은 폐교된 舊 브니엘중학교와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같이 쓰던 건물이다. 죠스바 교복 차림의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 말고도 말고도 뭔가 낮선(?) 교복 차림(상하의가 모두 감색 교복)의 남녀 학생들이 보이는데, 이 학생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舊 브니엘중학교의 학생들이다. 이때의 브니엘고등학교 건물이 2대째 건물로 1972년 12월 완공, 브니엘중학교/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 건물이 1960년대 후반에 완공되었으며 두 학교 모두 내부 시설 수준은 에어컨만 없을 뿐이지 2000년대 초반 리모델링 이전의 금양중학교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연산동 교사의 경우는 완공된지 몇년 지나지 않아서 학교 이전이 추진되는 바람에 어차피 부술 건물이라고 생각해서 철거 직전 까지 건물 관리를 제대로 안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래도 철거 직전 까지만 해도 건물의 경년 자체는 부산시내 학교 치고는 매우 적었던 편에(연산동 브니엘고 건물은 고작 23년 남짓 쓰고 철거했다고 한다.) 속했기 때문에 사실상 철거되기 직전인데도 의외로 상태가 멀쩡해 보인다 (...)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아까운 구 교사인데, 연산동 시절에는 일대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던 고등학교 였고, 접근성이 워낙 좋고 등하교가 매우 편리하여 이러한 점에서는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지금도 학교 건물을 대수선 하는 식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아마도 연산동 일대에서 분양되는 아파트 광고에서 명문학교로 강조되는 필수요소로 현재도 개근하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계속 이 자리에 남아있다가 2016년 지금의 시점에서 시설의 노후화를 사유로 학교 이전을 추진한다면 요즘들어 부산지역에서 계속 이어지는 아파트 청약 광풍 때문에 땅값을 더 쳐줬을지도 모르는 일.

2.1 야간제 브니엘여고

1975년부터 브니엘고등학교에 2부 형태로 설치된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브니엘 종합고등학교 시절인 1968년부터 내려오던 여자 테니스부를 계속 존치하기를 원하던 학교 재단측과 근로청소년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했던 당국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브니엘중학교 교실을 빌려서 개설되었다.[4] 전형은 브니엘고등학교가 평준화 배정이었던 것과 달리, 2부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실업계 고등학교나 특수지 고등학교처럼 학교장 전형이어서 전형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으며, 1975년 당시 부산시는 대한민국의 신발산업과 원단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 학교의 주변 지역은 조선견직 공장, 미원 공장, 금성전자 공장, 롯데공업(농심그룹) 공장, 송월타올 공장 심지어 한국 최대 석면공장이었던 제일화학도 근처에 있었다같은 크고 작은 공장이 많은 산업단지에다가 노동집약적 산업이 중심이었기에 이 일대는 근로 청소년들이 꽤나 많았고, 브니엘고등학교 주변에도 소규모 야간제 비정규 학교(고등공민학교, 새마을학교)들이 여러개 존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로 대거 등장한 야간제 산업체 부설학교들은 일반 고등학교와 동일한 학력이 인정되는데다가 공격적인 마케팅(모기업의 적극적 홍보, 등록금 무료, 교복 무료, 무료 기숙사 제공, 상급학교 진학 수월)과 전국단위 모집이라는 특혜로 근로 청소년 학생들을 싹쓸이 수준으로 유치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78~1979년에 인근 지역에 조견여자상업고등학교와 태창여자상업고등학교 같은 야간제 산업체 부설학교가 연달아 개교한게 꽤나 타격을 주었고, 1988년에 강남 명문 재단이기도 한 태광산업 재단이 만든 3천명 규모의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강남 유명 명문학교와 동일한 수준의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공세를 벌인것은 하나의 쓰나미와도 같았다. 더군다나 태광산업의 경우는 당시 근로청소년들이 갈만한 회사 중에서는 근로조건이나 복리후생이 그나마 좋았던 편에 속했다. 게다가 1980년대 이후로 일반계 여자고등학교(금정, 학산, 대명, 사직)들이 인근 지역에 연달아 개교하면서 일반계 여자고등학교(주간반) 총 정원도 꾸준히 늘어나게 되면서 주간반 진학률도 높아지다보니, 2부 야간반은 상대적으로 천덕꾸러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말년에는 연합고사에 낙방한 성적 부진학생들로 정원을 겨우 메꾸는 신세로 추락하였고, 근로청소년들이 거의 안오다보니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인하여 이후에는 편법으로 남는 교실에서 주간 수업을 하여 남녀공학 고등학교와 다름없이 운영되면서 아직도 브니엘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라는 오해를 사게 되는 원인이 되어버린데다가, 야간제이면서도 정작 야간 수업을 안하다보니 정작 근로청소년들은 아예 산업체 부설학교 등지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동래구-금정구 일대의 공장들도 택지 개발로 하나둘 떠나가면서 근로청소년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다보니 학교 입장에서도 얼마 안되는 근로청소년을 모집하는 것보다 성적 부진학생을 모집하는게 더 쉽다보니 성적 부진학생들 위주로 학생을 모집하였고 그때문에 학교 이미지는 갈수록 추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2부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연산동 일대에서 공포의 대상 같은 좋지 않은쪽으로 유명하기도 했는데,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건물과 교실을 같이 쓰는 브니엘중학교 학부모들의 주된 불만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재단 측에서는 야간제 학교로써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 보다는 1978년 부터 학교 이전을 통해 새 건물을 만들어서 아예 정식 일반계 여고로 독립시키려는 방향으로 정하였는데, 이것 역시도 10년 넘게 계속 미뤄졌는데 1989년이 되어서야 겨우 확정을 지어서 18년이 지난 1996년에서야 겨우 실현되었다.

그래도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부산지역 여자 테니스에서는 남녀공학 종합고 시절인 1973년에 국제대회 우승(!!) 기룩을 필두로 1980년대까지 테니스에서 정점을 찍으면서 전국구 테니스 명문이라는 족적을 남겼지만, 1982년 중아선교회 재단의 재정 지원 중단 및 1987년에 이 학교 테니스부의 창단을 주도하고 물적 인적 지원을 하였던 사실상 이 학교 테니스부의 메인 프로듀서와도 같았던 로널드 F 뒤바 이사의 작고로 인하여 1988년[5]부터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1992년 이후로 라이벌 동래여자고등학교 테니스부에게 부산지역 정상을 넘겨주고 말았고, 1996년에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18년 만에서야 분리 독립하는 식으로 정식 일반계 고등학교로 개교 하면서 테니스부도 그쪽으로 넘겨주기는 했지만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라는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야간제반으로 학교 이미지를 갉아먹으면서 까지 20년 넘게 지켜냈던 여자 테니스부를 하루아침에 그냥 날려먹었다.[6] 그래도 동래여자중고등학교 테니스부의 해체 보다는 덜 억울한게, 동래여자중고등학교 테니스부는 정점을 찍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운영상 큰 문제도 없어서 계속 운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테니스코트를 밀어버리고 부산예술중학교와 동래여고 별관을 만들겠다는 이사장의 독단적인 행태로 인하여 어처구니 없게 해체되었지만, 브니엘여고/브니엘중 테니스부의 경우는 말년에 재정난으로 몰락을 거듭하였으나 이런 와중에서도 재단 측에서는 끝까지 안고 가려고 했으나 결국 브니엘중학교 폐교 및 재단 부도 사태로 인하여 해체되었기에 막판에는 사실상 살려낼 수 없을 지경이었고 이는 어찌보면 어느정도 변명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반계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그래도 지역내에서 평균 이상의 꽤나 준수한 학업성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전신이 되는 2부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워낙 좋지 않은 쪽으로 유명하기도 했고 테니스부도 결국은 건지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날려먹는 바람에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언급해서는 안되는 흑역사로 취급하고 있고 브니엘여고 개교 기념일 조차도 1975년이 아닌 1996년으로 정하면서 학교 연혁에서도 완전히 삭제함과 동시에 야간제 브니엘여고를 전신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으며, 지금도 브니엘 계열 3개 고등학교 중에서 2부 야간제 브니엘여고를 연혁에 포함시킨 곳은 한곳도 없다. 게다가 재단이 여러차례 바뀌면서 지금의 브니엘 시리즈 3개 고교와 전혀 관련이 없게된 야간제 브니엘여고를 학교 연혁으로 포함시킬 명분 조차도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흑역사 오브 흑역사.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 곳곳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야간제 브니엘여고에 대한 자료들도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7]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부산지역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설치되어 마지막까지 운영되었던 2부 야간제 학급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부산시내 일반계 고등학교 2부 야간 학급은 1974년 고교 평준화~1978년 산업체 부설학교 및 산업체 특별학급 등장을 기점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3 교훈

강당 우측 출입구나 교표에 있는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이 교훈으로 가끔 오인되기도 하지만 사실 진짜 교훈은 따로 있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고등학교 교훈 치고는 굉장히 긴 편인데 아마 한국의 고등학교 통틀어서 가장 긴 교훈을 자랑할 것이다. 교훈의 경우는 같은 재단 산하의 다른 학교들도 공통이며, 교문 바로 앞에 있는 교훈석에도 적혀있다.

4 특징

개교 초기에는 부산시내 고등학교 중에서 약체에 속했던 실업계 고등학교로 당시 근처로 이전해 왔던 먼 친척뻘(?)이자 라이벌이었던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보다도 인지도가 낮았을 정도였다고 하며 오죽하면 동문회 홈페이지에서 실업계 시절의 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우스갯소리급 증언이 있었을 정도였고 부산시내 유명 고등학교를 가기에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찾아온 학생들이 많았다. 건물도 2층짜리의 엉성한 가건물을 사용하였으며 베이비붐 세대의 진학으로 인하여 고등학교 수요가 폭증하던 당시 학교 치고는 상당히 작은 규모였던 전학년 총 18학급(1964년 개교 당초에는 12학급)에 불과하였다. 그래도 그 시절 동문들 중에는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1974년 사법고시 합격) 같은 크게 성공한 인물도 나오면서 개천에서 용나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기는 하였다. 그러다가 고교평준화 정책을 앞두고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을 위하여 1972년 쯔음에 2층짜리 가건물을 헐어버리고 이듬해인 1973년 부터 5층짜리 번듯한 콘크리트 건물로 신축하면서 전학년 총 30학급(인문과 15학급, 상과 15학급)으로 증편하여 완편이 되더니, 1974년에 평준화 일반계 남자고등학교로 전환 되면서 꽤나 준수한 진학 실적을 보여주면서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대신에 새로 맞이한 라이벌이었던 동인고등학교와 함께 해리어 전투기 처럼 단번에 부산의 명문 고등학교로 떠올랐으며 부산시내에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었던 학교로 유명하였다. 최고 전성기때인 1980년대 초반에는 남자 주간반만 해도 총 36학급(야간제 브니엘여고 까지 합하면 54학급)으로 늘어나면서 당시 일대에서 가장 많은 정원을 자랑하는 매머드급 학교로 불리우기도 했고, 주 야간 모두 합쳐서 2800명을 넘었던 리즈 시절도 있었다. 한때는 같은 학군의 동래고등학교와도 자웅을 겨루었던 적도 있었다는 말도 나왔을 정도. 이는 1995년 까지 이어졌으나, 1996년에 접근성이 좋지 못한 현재의 위치로의 이전 및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로 인하여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감축 크리를 당하는등 과거의 명성은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 어찌보면 원점회귀라고 해야하나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1970~1980년대 당시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에게 있어서는 의외로 이미지가 좋은 학교이기도 하다.

개신교 미션스쿨이다보니 하루에 2회 방송 예배를 하였으며, 1주일에 1번 오예스[8] 득템시간종교시간이 있다2학년 3학년은 하지않는다. 요즈음에는 아침 조례전 1회만 방송 예배를 한다. 10년전에 비하면 종교색 많이 빠졌네

부산 4학군의 고등학교지만, 1996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이후에는 4학군에서 받는 대접이 참으로 안습하다. 1지망이나 2지망에는 절대로 올라가지 않는 고등학교 중에 하나이며, 예나 지금이나 이 학교에 배정되는 학생들은 울거나 투덜거리는게 여전하다고 하는듯... 이것은 같은 재단의 다른 고등학교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연산동 시절에는 부산에서 서울대 진학률 2~3위를 다투던 명문 고등학교였고 공부를 빡세게 시키기로 유명하다보니 학부모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선호도 또한 매우 높았던 부산시내 인기 고등 학교중에 하나로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의 대연고등학교와 비슷한 위상을 자랑했으며 정말로 공부 잘하는 학교로 유명했다. 한마디로 지금의 기피학교 이미지와는 정 반대의 이미지였다는것. 1988년 한해에 서울대에 28명이나 진학시킨 적도 있었는데, 이 학교가 이전할 무렵에 지금의 연제구 일대(연산동, 거제동) 학생들이 서로 가려고 했을 정도로 인기있었던 이 학교가 연산동을 떠나는것을 연제구 일대 주민들이 반대했을 정도니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일 따름.. 하지만 학교 이전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부산시, 교육청과의 마찰이 생겨 연이어 언론에 좋지 못한 일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처음으로 국정감사에도 거론되는 등 점점 이미지가 실추되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 초반에는 새로 개교한 과학고등학교와 정규 특수목적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은 외국어고등학교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브니엘고등학교는 자츰 빛이 바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지금의 위치인 금정구로 이전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9]

그 이후로도 제대로된 재단을 만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되는 상태가 되고 말았는데, 이후 재단에서 받는 취급도 참으로 암울해서 재단에서 브니엘고등학교는 예전 연산동 시절처럼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않고 사실상 팔짱만 낀 상태로 방조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이제는 같은 재단의 브니엘 예술고등학교가 더 유명해질 지경이 되어버렸고, 브니엘예술고등학교=브니엘고등학교로 오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일부 연산동 시절의 동문들이나 나이 많으신 어른들 중에서는 아직도 브니엘고등학교가 예술고등학교로 전환했다고 오인하는 경우도 많은듯[10]... 문제가 많은 재단에다가 영 좋지 못한 입지조건 풍평피해 때문에 금정구 고등학교 중에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낮아 금정구에서 학생수 감축대상 1순위에 처해있는 열악한 현실이다.[11] 연산동 시절에 쓰던 건물도 1973년에 완공된 건물[12]이라 학교가 이전되던 1996년 당시로써는 그리 오래되었다고 보기도 힘들 정도였는데도[13] 불구하고 무리하게 이전을 추진하다가 얻은 결과는 너무나도 비참하며, 그야말로 비운의 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다. 예전 브니엘 재단 시절에 무리하게 학교를 이전하거나 미네랄 멀티를 증설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건실하게 운영하는 길을 택했더라면 아파트 광고에 단골로 오르는 필수요소가 되거나 어쩌면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유명 사학들(지방 사학들이면서도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사학들)과 비슷한 수준의 인지도 까지 끌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2007년에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 9명을 진학시키는 대이변[14]을 일으키는 덕분에 학교의 앞날이 크게 개선될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면서 구성원들을 들뜨게 만들었고# # 심지어 라이벌 학교 관계자도 대단한 성과라고 인정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전세의 역전이 코앞까지 찾아왔으나, 정작 학교를 점령한 신재단 측에서는 이러한 여세를 계속 몰고가서 적극적으로 주민들에게 홍보하여 이 학교를 다시 일으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이 당시 입시 돌풍의 주역이 되었던 3학년 교사들을 모조리 차출해서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를 신설하는데 써먹는 바람에[15], 이듬해인 2008년 입시 결과는 언재 그랬랴는 듯이 원점회귀 (...) 이 시절에 신재단이 독단적으로 국제예술중학교 신설을 강행하는것 보다는 물 들어올때 노 저어라는 말 처럼 여세를 몰고가면서 브니엘고등학교를 적극 밀어줬다면 지금처럼 금정구에서 계속 비호감 이미지로 남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과거의 명성을 어느정도 되찾았을 것이다. 상하이자동차와 쌍용자동차의 고등학교 버젼 [16] 한마디로 다시 4학군의 명문으로 복귀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갑자기 재단이 바뀌고 신재단의 횡포로 인하여 애꿎은 브니엘고등학교만 날벼락 맞아버린꼴. 결국 신재단인 정선재단도 이제는 설립자의 승소로 인하여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아버린데다가 그 정선재단 이사장 마저도 법원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백기를 들어버린 상황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로위 자동차의 사립학교 버젼인 국제예술중학교 조차도 최근에 법원의 정의구현(...)을 2연속 콤보로 당하면서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처지에 놓이는 바람에 신재단의 막장 행각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종식되고 말았다.

인터넷 상에서는 무시무시한 얼차려 짤방[17]으로 외부인들에게 잘 알려졌던 학교 였으나, 그런 무시무시한 이미지와는 대조되게 사실 10년전(!) 기준으로는 사립 고등학교 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복장규정이나 두발규정 같은 교칙이 생각보다는 널널한데다가 같은 4학군 내의 다른 고등학교에 비하면 교사들이 학생들을 빡세게 잡는다거나 그런 점은 별로 없었고 그당시 사립 고등학교 치고는 체벌이 매우 적은 편에 속했으며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거의 없었을 정도로 좋게 말하면 학생들에게 관대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두발 규정에 걸렸다고 해도 다른 고등학교에서는 비일비재했던 속칭 바리깡으로 고속도로 개통 이라던가 매타작 같은건 별로 없었고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머리좀 깎고 오라 수준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교칙 문제로 인한 불만은 적었고 이러한 점에서는 의외로 재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같은 4학군내의 다른 고등학교들과는 달리 선후배간의 똥군기[18] 같은것도 거의 없고 선후배간의 관계는 비교적 화기애애했던 수준이다 보니, 학교 분위기가 재단 문제 때문에 어수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 빡세지는 않아서 학교생활이 나름대로 편한 구석이 많았던 학교이기도 했다. OT때 다른 학교들 처럼 선후배간의 그러한 것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일은 없었고, 선생님들에 의하여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어서 의외로 놀란 학생들도 많았을 정도. 일반적인 선후배 관계 또한 다른 4학군 남자고등학교에 비하면 많이 유화된 편에 속했다. 2016년 현재도 이러한지는 추가 바람. 이런점에서도 쌍용자동차와 비슷하다[19]

5 주요 행사

  • 중생회 : 개신교 미션스쿨 답게 당연히 개신교 관련 행사이며, 해마다 5월 중에 한주 정도를 잡아서 오전 수업시간에 전교생이 강당으로 집합하여 중생회를 진행한다. 개교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아주 유서깊은 행사로 학교의 주인이 계속 바뀌면서 그 여파로 학교의 분위기가 연산동 시절과 비교했을시 다른 학교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크게 바뀌었어도 이 행사 만큼은 계속 지켜지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주로 하나멜의 CCM 공연이 메인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그 외에 설교 같은것이 있다. 종교 행사라고 해서 종교강요 문제 같은걸로 분위기가 험악해지거나 그런것은 없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가볍게 즐기는 행사쉬어가는 시간라는 인식이 강하다.
  • 학교 축제 : 브니엘고등학교의 학교 축제는 그 형태가 일정하지 않다. 어떤해는 연말에 일반적인 학교 축제 형태로 하는 적도 있었는데 2006년에는 학교에 연예인들을 초청했지만 축제 내내 CCM만 줄창 부르게 했다. 그래서 까였다. 어떤해에는 일본의 학원제(!)와 비슷한 형식을 빌려서 3개교 연합 형태로 봄에 한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학교 축제를 계속 하지 않다가, 2016년에 학생회 학생들의 노력으로 '브니엘 음악회'라는 음악회의 탈을 쓴 축제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썩 좋지않아 앞으로도 축제가 없을거 같다고 한다

6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인물 이름 - 기수의 형태로 정리하였다.

부산 4학군 평준화 원년멤버다 보니 알게 모르게 부산 4학군 사립 고등학교 중에서는 꽤나 화려한 동문진을 자랑하고 있다. 사실 동문 라인업에서는 동래고등학교동래여자고등학교 같은 100년 넘은 학교들을 제외하면 구도심 학교들에 비하면 대체적으로 역사가 짧은 학교들 위주인 4학군 내에서는 매우 탄탄한 편에 속하며 한때는 부산의 떠오르는 신흥 정치명문이라고 언론에서 평가 하기도 하였다. # #

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7.1 버스 노선

정류소 명칭노선 번호
브니엘고등학교301[24], 금정3-1, 금정3[25]

8 트리비아

  • 학교 현관이 일본의 고등학교처럼 매우 넓다. 일본의 고등학교 처럼 현관에 신발장을 설치하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설계한 것인지는 불명이지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로 유명한 효고 현립 키타고등학교와 현관 구조가 거의 같다. (동일한 건물 설계를 사용한 형제학교인 브니엘예술고등학교도 마찬가지) 그에 걸맞게 학교 내부 인테리어 또한 특이한데 동시대에 만들어진 한국의 공/사립 학교와 비교하면 교실과 복도의 인테리어가 다소 이질적이고, 오히려 동시대에 만들어진 일본의 공/사립 학교들에 더 가깝다. 연한 파스텔톤 녹색(예고는 보라색)의 매우 커다란 미닫이 형태의 교실문과, 교실과 복도 사이의 창문이 흰색 창틀에다가 한국의 다른 학교들과 비교했을시 극단적으로 작은것을 보면 마치 일본의 학교 내부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 교복이 매우 특이하기로 유명한데 잊을만하면 각종 유머사이트에 올라오기도 한다. 베이지색 바지와 남색 블레이저 상의, 붉은색 가디건이라는 배색으로 인하여 일명 죠스바 교복으로 불리우는데 부산시내 고등학교중에서는 학교장 재량으로 교복 재착용이 허용되었을 당시 첫타자로 1986년 2학기에 도입되어 2016년인 올해 기준으로 30년간 쓰이고 있는 4학군에서 가장 유서깊은 교복으로, 학생들이 바지를 입고 다니지 않는것으로 오해한 어느 주민이 경찰에 신고한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1986년 도입 당시에는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교복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30년이 지난 2016년 현재의 시점에서는... 상의 색깔만 다르다는 점 빼면 서울에 있는 서라벌고등학교 교복과도 바지 색깔이나 전체적인 디테일이 판박이인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서울의 서라벌고등학교 교복도 같은 1986년도 디자인이라고 하며 그래서인지 두 학교 모두 한때 앙드레 김이 교복을 디자인 했다는 루머가 있지만, 앙드레 김 본인이 간접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시사한 바가 있다. [26]
  •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연산동 시절에는 연산역 6번 출구 근처였기에 부산의 고등학교 중에서 이사벨고등학교와 더불어 가장 좋은 접근성을 자랑하던 학교였고 이 덕분에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선호도 또한 높았으나, 1996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이후에는 부산의 평준화 고등학교 중에서 접근성이 가장 떨어진다. 주변의 정규 대중 교통수단이 배차간격 1시간에 단 1대(그것도 카운티 딸랑 1대)로 운영되는 금정3-1번 마을버스가 전부. 태평양아파트, 동래여자고등학교금정구청 방향으로 2km 정도 걸어 나와야 시내버스 구경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 외에 금정3번이 지원운행해 주는 시간대가 있긴 하지만..... 그 덕분인지 지금도 히치하이킹 때문에 말이 많다. 과거에 36번 버스나 148-1번 버스를 브니엘고교 근처까지 연장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번번히 무산되었다. 그러던 2016년 3월 12일 301번 노선이 양산(웅상) 구간을 전면 철수하고, 부산 구간으로만 노선을 조정하여 노포동공영차고지~부산대학교~브니엘고교 간으로 변경하여 운행한다. 배차간격은 30분으로 고질적인 교통 불편 문제가 어느정도 해소될 전망. 브니엘고교 측은 178번이 폐지된 2008년 이후 약 8년만에 시내버스가 다시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178번이 배차 간격 90분의 있으나 마나 한 노선이라는것을 생각하면 학교가 이전한지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시내버스라고 할만한 노선이 들어오는 셈. 그러나 2016년 현재 버스에 승객이 없어 항상 텅텅 빈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한다
  • 원래는 연산9동 토곡의 부산학생과학관 및 예전 부산과학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로 1978년 쯔음에 이전하려고 했으나# # 재단 재정 문제로 인하여 1980년에 최종 무산되고 결국 그 부지는 부산시 교육청이 대신 매입하여 부산학생과학관과 부산과학고등학교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한 절호의 찬스를 부산시 교육청에게 내주고 난 뒤 1989년에서야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는것을 확정했으나 그당시에도 교통수단의 부재 및 학교가 너무 외진곳에 있다는 문제로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와 교육청에서 1992년 3월 까지 수년간 계속 반려 하다가 1992년에 샤바샤바한건지는 몰라도 어찌어찌하여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는것을 승인 받았고 1996년에 학교 이전이 이루어졌으나 결과는 다들 아시는대로 (...) 토곡 지역은 연제구의 대표적인 주거지역(베드타운)이자 주변환경과 학군이 준수한 동네로써 동래구(안락동), 수영구(망미동) 생활권과 직결되는 지역인데, 차라리 원래 계획대로 토곡으로 이전이 성사되었더라면 지금쯤 대연고, 지산고, 동인고 처럼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립고등학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아쉬운 사실이다.
  • 부실한 급식으로 인하여 2007년에 브니엘여고와 연합하여 500명 가량의 학생들이 단체로 급식을 거부하는 시위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사실 이쪽은 학교 문제 보다는 학교법인(재단) 차원의 문제인데, 지금도 급식으로 인한 불만이 자주 나오는것을 보면 현재도 급식 문제는 개선되지 않은듯... 학교법인의 갑질 사실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학교 급식은 예전에 비해서는 매우 개선된 편이지만(특히 2014년에 이사장이 쫓겨난 이후로), 여전히 입학한지 길어야 3년인 학생들의 객관적 입맛에는 맛이 없다고 한다.
  • 급식으로 악명이 높은 학교이기는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부산시내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는 최초로 (1996년) 급식을 실시한 학교이기도 하며 전국적으로도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급식을 실시하였다.# 당초에는 제일제당 FS사업부 (현 CJ프레시웨이)에서 위탁운영 하였으며,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중에서는 최초로 대기업에 급식을 위탁운영한 학교 중에 하나였다. # 하지만 어느새부터인가 제일제당 FS사업부가 철수했는데 정확한 철수 시기는 불명.
  • 2006년~2007년 쯔음에 학교 수영장을 만드는것을 추진하기도 했고 실제로 가정통신문 까지 돌리면서 학생들을 설레이게 했지만, 얼마 안가서 예산 문제로 나가리 되었다. 사실 이 학교의 초기 설계도(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도 학교 수영장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 2007년~2008년 쯔음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전환 떡밥이 나돌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교육부에서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사립학교는 자사고 전환 신청을 불허하겠다고 못을 박은데다가, 그 무렵에 이사장 아들 학적부 사건이나 브니엘예술고 입시부정 의혹 사건 같은 여러가지 사건사고가 줄줄이 터진데다가 저조한 법정전입금 납부율 및 재단이 부실재단으로 워낙 유명하다보니 당연히 전환 신청 조차도 못한듯... 하지만 2012년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 떡밥이 다시 나돌면서 한바탕 언플을 했던 것으로 봐서 자사고로 전환할 의지는 확실히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의 이사장이 퇴출 되면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의 전환은 삼성그룹 같은 유명 대기업 재단에 인수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불가능할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사고로 전환해서 같은 재단의 국제중 처럼 운영되던(...) 브니엘 국제예술중학교와 연계하려 했던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이 실현되었다면 전국에서 몇 안되는 실업계->일반고->자사고 테크트리를 탄 고등학교가 되었을것이다.
  • 2000년대 중반 당시에는 금정구 일대의 통학 봉고차(주로 15인승 차량) 아저씨들이 가장 기피하는 학교였다. 브니엘고등학교가 접근성도 영 좋지 못한데다가 학교법인 브니엘학원에서 수익사업(?)으로 운영하던 통학버스[27]도 당시로써는 꽤나 비싼 이용 요금에다가 에어컨도 안나올 정도로 정말로 낡은 차량이었고, 그 시절은 서전학원 같은 부산지역 대형 종합학원의 전성기였기에 대형 종합학원을 다니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아서 하교시에는 통학버스가 아닌 학원에서 무료로 운행하는 냉난방 까지도 되는 학원버스나 학원 봉고차를 타고 가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법인 브니엘학원 차량사업부(뉴월드)는 무조건 왕복 요금을 받으려고 했다. 통학버스 편도 요금제 신설 문제는 브니엘고등학교 학생회장, 부회장 선거에서도 단골로 나왔지만 브니엘고등학교에 비협조적인 학교 법인 브니엘학원에서 이런것을 들어줄리는 만무했고, 결국 몇몇 학생들 끼리 모여서 저렴하게 편도 요금을 받는 통학 봉고차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학교법인 브니엘학원은 자신들의 수익 사업인 통학버스의 일거리를 통학 봉고차들이 빼앗는 다는 이유로, 금정구 일대의 통학 봉고차 아저씨들과 한동안 마찰을 빚었고 학교법인 브니엘학원 직원들과 통학 봉고차 아저씨들이 싸우기 까지 했다.[28] 물론 다른 사립학교들은 그런거 없는데, 유독 학교법인 브니엘학원만 그러했다고 한다. 심지어 하교시에 대형 학원에서 무료로 운영해주던 봉고차들 까지도 학교법인 브니엘학원과 마찰을 빚었는데, 브니엘학원 측에서는 저것들 때문에 통학버스 편도요금제 신설을 학생들이 요구한다고 학원 봉고차들 조차도 학교 근처로 못오게 하는등 여러모로 소인배적인 행각을 보여줬고, 금정구 일대 봉고차 아저씨들은 다른것도 아닌 학교법인이 그렇게 돈독이 올랐다고 힐난하였다고 한다.
  • 2006년에 금정구 소재 일반계 고등학교로써는 거의 최초로 일본(큐슈 지방 일원)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일대 고등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해 연말에 일대 중학교에 뿌린 학교 홍보 전단지에는 2007년 부터는 일본 나라/오사카/교토 일원으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홍보 했지만 2007년에도 2006년과 동일하게 일본 큐슈 지방으로 간것은 함정. 그러다가 2008년 이후 부터는 환율 급등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일대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2015년 이후로 계속 제주도 코스를 선택했다. 설문조사에서는 당연히 중국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제주도로 결정되었다. 우리땐 에버랜드 갔는데....
  • 금정구 소재의 다른 고등학교들이 대부분 주로 일본의 고등학교 같은 해외 고등학교들과 자매결연을 맺었으나, 브니엘고등학교나 그의 형제고등학교들은 현재도 해외의 고등학교들과는 자매결연을 맺지 않고 있는듯 하다. 연산4동 시절 브니엘고등학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부산지역 고등학교 중에서는 상당히 앞서서 일본에 진출한 선봉장 중의 하나였다는것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지만, 브니엘학원 재단 부도 사태 이후로 운영주체가 여러번 변경되다보니 (...)
  • 2014년 가을 즈음에 부산권에서 유명한 모 건설업체가 이 학교를 포함한 학교법인을 인수한다는 카더라성 떡밥이 아주 잠깐 돌기는 했는데, 얼마 안가 흐지부지된것 같다. 해당 건설업체는 경남권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사학 재단이기도 하며 폐교위기의 사학들을 인수하여 성공적으로 정상화를 실현한 사학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도 유명하다보니, 인수만 성사되었어도 이 학교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실상은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를 노린거 같지만 하지만 설사 인수가 성사되었다고 해도 그 건설업체 재단은 인수했던 학교들의 교명을 모두 동X 돌림으로 바꾼 전적이 있다보니 동문회 측에서는 브니엘이라는 교명이 없어지게 되는것에 대해 당연히 큰 반발이 있었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그 재단이 개신교와는 전혀 무관한 재단이라서 종교적 성향 문제 가지고도 설립자가 소송을 걸 수 밖에 없게 되다보니 결국 그러한 문제 때문에 해당 건설업체가 인수를 포기한듯 하다.
  • 200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브니엘고등학교 + 이사벨여자고등학교 통합 동문회가 존재하였다고 한다.(부산대 EBEL, 부경대 NISA, 동아대 PIES, 해양대 브니엘이사벨 동문회 등등...)[29] 브니엘고등학교가 연제구 일대의 남자고등학교를 담당했고, 이사벨고등학교가 당시에는 이사벨여자고등학교연제구 일대의 여자고등학교를 담당한데다가 두 학교 모두 도심지의 개신교 사립학교라는 특색도 상당히 비슷하기도 했기 때문에 두 학교의 남녀 동문들이 만나서 통합 동문회가 운영될 수 있었던것. 재단은 달랐지만 거의 형제학교 비스무리하게 취급될 정도로 유대감도 긴밀했고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게다가 연산동 시절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브니엘고등학교와 묶기에는 수준 차이나 대학교 진학률 차이가 상당히 크다보니(이때의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앞서말한대로 삼화/조견여상이나 계성여상 야간과 엮이던 시절)... 하지만 이후에 브니엘고등학교가 금정구로 이전하면서 브니엘여자고등학교도 1999년 부터 주간 평준화 일반계고등학교로 전환되어 브니엘고등학교와 동등한 위치로 수준 차이는 사실상 없게 되면서 브니엘고등학교 + 브니엘여자고등학교로 엮이게 되고, 이사벨여자고등학교 또한 연제구 시절 브니엘고등학교가 빵꾸내고 도망간 자리를 메꾸기 위해 2001년 부터 남녀공학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어 두 학교는 영원히 접점이 없어지게 되면서 그 이후로 브니엘고등학교 + 이사벨여자고등학교 통합 동문회들은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고 브니엘학원과 복음학원 계열 학교들의 유대관계도 사실상 끊기면서 남남이 되었다.
  • 장난감 회사(구니카) 재단이던 2004년에 학교 도서관겸 헬스장 용도의 별관 건물이 완공되고 2005년에 도서관에 정보검색실이 만들어지면서 정보검색용 PC가 들어왔는데 당시로써는 꽤나 준수한 사양인 펜티엄4 프레스캇 3.0급의 PC였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명 PC방으로 통하면서 점심식사 끝나면 PC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로 굉장히 호응이 좋았다. 장난감 회사(구니카) 재단 시절에는 학생들 복지 하나는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헬스장의 경우는 학교 홍보 전단지에는 몸짱드립을 치면서 편의시설로 소개되어 있었으나 무슨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항상 잠겨있었고 2~3년 내내 추후에 개방예정 이라는 소리만으로 학생들의 기대감만 증폭시키고 있었다. 당시 몸짱 열풍이 불던 시기다보니 헬스장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을터. 하지만 2006년 5월에 만악의 근원 정선재단이 들어오면서 명백한 브니엘고등학교 소속 시설 이던 별관 건물은 2007년부터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 개교를 위한 임시 교사로 강탈해 가면서 개방 예정인 헬스장은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 임시 교실로 학생들의 허락도 없이 마개조하면서 날아가버렸고, 도서관과 학생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던 정보검색실 역시도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 임시 교무실로 마개조 당해버렸고 그와 동시에 정보검색용 PC들 대다수도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가 가져가버리면서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의 불만을 제대로 자극시켜 버렸다(...)
  • 2016년 3월 25일에 법원 판결로 구재단의 복귀가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었다. 결국 상지대학교나 문현여상의 사례와 비슷하게 되면서 결국은 무얼 해도 배드 엔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이 판결 자체가 상지대학교 구재단 승소 판례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보니... 학교를 부도내버린 구재단도 상당한 문제기는 문제지만 신재단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문제다 보니 결국은 이런 결말이 되어버린듯... 특히 복귀를 자신하는 설립자측의 발언이 여러모로 (...)하다. #[30] 비슷하게 사학비리로 홍역을 앓았던 서울 상문고등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나 안양 신성고등학교가 비리를 일으킨 구재단의 완전 퇴출 및 신재단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로 정상화에 성공하면서 해피 엔딩이 된 것과 정말 대조될 따름. 브니엘 4개교를 인수한 정선재단의 행각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다면, 신성중고등학교를 인수한 원천재단은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한 타타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 2016년 7월 18일에 부산에서 포켓몬 GO가 된다고 SNS상에서 소문이 퍼지고 언론에 보도되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경사(??)가 터진 것이다. 학교 이름은 안나왔지만 금정구에서 저런 화장실 타일을 쓰는 고등학교는 브니엘 계열 고등학교 뿐이니 확인사살. 그리고 다른 기사에서는 학교 이름까지 대놓고 언급해 주었다. 웬일로 브니엘고등학교가 사건 사고가 아닌 일로 신문 기사를 타네 그리고 이 학교에서 포켓몬 GO가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공짜로 학교 홍보 제대로 했지만, 학교에 무단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인파와 이럴 저지하는 경찰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학교측에 전화가 쇄도하는 민폐가 있었다고도 하는듯.
  1. 교사 수급에서도 정통 개신교 세례자만 뽑기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교육청에게 경고를 먹어서 교육청과 대립한 일도 있다.
  2. 대학교 진학에 뜻을 두었던 어느 학생이 주도한 데모로 인하여 상업계열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종합고등학교 → 일반계 고등학교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당시에는 실업계 학교였기에 그 학생은 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배우지 못하여서 서울대학교를 포기하고 제2외국어를 보지 않는 고려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그 학생은 다름아닌 김성호법무부장관/전 국정원장 이다(…) 학교가 마음에 안들면 열심히 공부해서 전교 최상위권에 들자
  3. 고교 평준화 당시 문교부에 의하여 평준화 대상으로 지정된 남녀공학 고등학교들은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예외없이 남고여고로 일괄적으로 전환되었다. # 브니엘고가 남고로 강제로 전환된 이유는 고교평준화 당시 지금의 연제구 지역에 남고가 없는데다가 이웃으로 이사벨여고와 부산동여고(1980년 남천동으로 이전)가 있었다는게 주된 사유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사벨여고는 브니엘고가 연제구를 떠난 이후에 부분적으로 브니엘고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다(...)
  4. 비슷한 경우로 1970년대에 서울 장충고등학교에 2부형태로 설립된 야간제 장충여고, 서울 장훈고등학교에 2부형태로 설립된 야간제 장훈여고(장훈여상)이 있었다. 장충여고는 얼마 못가서 폐지되었고, 장훈여고(장훈여상)은 1983년에 지금의 브니엘여고처럼 정식 고등학교로 분리개교하기는 했지만, 이쪽 역시도 2010년에 장훈고등학교로 다시 흡수되어 사라졌다(…)
  5. 공교롭게도 야간제 브니엘여고의 최대 천적이었던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개교한 시기였다. 결국 이 시기에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야간제 학교 그 자체로써도, 테니스부로써도 심각한 이중고를 겪게 되었던 상황이었고 1989년 부터 6학급에서 5학급으로 감축 당하였다.
  6. 다만 브니엘 여자고등학교 테니스부가 재단 부도 사태 때문에 해체 되기는 했으나 30년 짬밥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고 한때는 그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던 적도 있었기에 그것을 30년간 운영하면서 쌓인 노하우는 브니엘예술고등학교 무용과의 운영에 상당부분 적용되었고, 그 덕택에 브니엘예술고등학교는 초반부터 무용 분야에서는 꽤나 잘 자리잡게 되어 무용과 만큼은 부산예술고등학교 보다 실적이 좋았다고 한다.
  7. 그나마 네이버 디지털 뉴스아카이브, 부산교육 연표에 아주 약간은 남아있으니 잘 찾아보면 된다.
  8. 초코파이몽쉘이 아닌 오예스라고 하냐면, 오 예수! → 오예스라는 이유였다고 한다. 2016년 현재는 오뚜기 스낵면과 초코파이를 준다
  9. 그 덕택인지는 몰라도 브니엘고등학교가 이전한 이후로는 부산시내에서 사립학교 이전에 대해서 지역 주민들이나 교육청, 구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게 되면서 지역 주민들이나 부산시 교육청이 사립학교 이전을 저지한 사례도 발생하고 있고, 브니엘학원의 몰락을 지켜봤던 다른 사립학교 재단들이 학교 이전이나 증설을 백지화하거나 이전을 한다고 해도 계획을 완전히 바꿔서 최대한 안정적인 방향으로 이전하였으며, 도심공동화 같은 문제로 폐교위기에 처하면서 정작 이전이 시급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폐교하면 폐교했지 학교 이전을 꺼리게 된 경우도 많아졌다.
  10. 그도 그럴것이 부산 4학군의 일반계 고교 중에서 브니엘고 만이 유일하게 실업계 고등학로 개교해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된 학교다. 그래서인지 일반계고교 에서 또 예술고로 전환했다고 오인되어도 의심없이 사실인것 처럼 믿을만 했다. 심지어 브니엘예술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브니엘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인것양 보도사례도 종종있다.
  11. 연산동 시절 브니엘고등학교 총 정원은 믿기지 않겠지만 주간반만 쳐도 36학급에 무려 2000명 이상이었고, 현재의 건물은 그보다 더 많은 정원(최소 36학급)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었으니 2000명 이상의 사용을 상정하고 만들었고 건물 규모 자체는 연산동 시절보다 훨씬 커졌다. 하지만 2016년 현재는 27학급으로 감축이 추진되는데다가 총 정원이 653명에 불과하다보니 건물 설계 인원의 3분의 1도 못채워서 시설이 펑펑 남아돌 지경이다. 그래도 콩나물 시루 학교 보다는 훨씬 낫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안습. 653명이 얼마나 감축된 수준이라면 10년전과 비교했을때 3분의 2도 못되는 수준으로 확 줄어들었고, 심지어 과거 라이벌이자 한때는 비등비등한 규모를 자랑하던 사직동의 모 고등학교가 현재 33학급에 1156명인것을 생각하면 그곳의 절반을 약간 넘기는 수준으로 심각하게 감축당한 꼴이다.
  12. 같은 4학군의 이사벨고등학교 건물이 1969~73년경 완공, 동래고등학교 건물이 1968년 완공, 중앙여고 건물이 1973년 완공이고, 계성여상 건물은 1970년 완공인데 세 학교 모두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2016년 현재도 모두 잘 쓰고 있다.
  13. 다만 강당이 있는 건물 상층부나, 舊 브니엘중학교/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있었던 축대(월드컵대로 방면)가 안전성 문제가 있었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공식적인 자료는 없다. 확인바람.
  14. 2007년 2월 졸업생인 43기의 경우는 2004년 입학생으로 2005년 입학생이었던 44기와 더불어 더불어 재학중에 학교 운영주체가 무려 두번(2005년, 2006년)이나 바뀌는 것을 보고 졸업한 세대였으며 이런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매우 희귀하였다. 설상 가상격으로 43기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고3 시기를 2006년에 보냈는데 이 시기의 브니엘고등학교는 학교법인 차량사업부의 체불임금으로 인한 파업 시위에다가 김모 이사장의 비리, 형제학교인 브니엘예술고등학교의 편입학 부정 사태 때문에 풍평피해로 도매금으로 욕은 욕대로 먹던 시기이기도 했고, 이와중에 김모 이사장이 도저히 이사장 못해먹겠다고 정모 이사장에게 1년만에 학교를 팔고 도망가면서 운영주체가 난데없이 바뀌게 되고 심심하면 데모가 일어나서 혼란스러워지는 등 학교 꼴이 정말로 말이 아니었다. 재정난은 당연히 기본인데다가 이렇게 유래가 없을 정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저런 성과를 낸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
  15. 실제로 07년 브니엘국제예술중 광고에서도 브니엘고등학교 07학년도 대입 돌풍의 주역(주로 당시 남고 고3 담임들)을 차출해서 만들었다고 대놓고 홍보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신재단과 총동창회의 관계가 상당히 험악해지고 말았고, 당시에는 브니엘국제예술중이 브니엘고 오른편의 도서관 건물(이것도 사실 브니엘고의 별관으로 만든 건물이었다)에 있다보니 브니엘고 학생들이 브니엘국제예술중 학생들에게 물풍선이나 우유, 분필을 던지는 식으로 브니엘국제예술중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16. 정 반대의 사례로 서울 보인상업고등학교나 안양의 신성고등학교가 있는데, 이쪽의 경우는 신재단이 고등학교 위주로 적극 투자하면서 보인상고는 잘 나가는 자사고보인고등학교가 되었고, 안양 신성고등학교도 브니엘고등학교 처럼 한때는 명문 고등학교로 명성을 누렸으나 학교 이전 과정에서 재단의 병크로 한동안 비리사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며 홍역을 앓다가 신재단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로 현재는 안양에서 제일 잘 나가는 명문 일반계 고등학교로 복귀하였다.
  17. 사실 그 짤방에 나온 얼차려 주는 선생님도 절대로 무시무시한 분은 아니었고 나름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시는 분이었으나, 인터넷에 퍼진 사진 한장 때문에...
  18.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같은 재단인 브니엘예술고등학교는 선후배 관계가 빡세기로 유명하다.
  19. 쌍용자동차의 경우 한때 불안정한 회사 상황으로 많이 까였고, 로디우스, 카이런, 액티언 삼총사는 회사 상황이 불안정한 쌍용자동차라는 점에다가 디자인 가지고 인터넷 상에서는 엄청나게 까이던 차종이다. 하지만 정작 이 3개 차종에 대한 오너들의 만족도는 쌍용자동차라는 점과 디자인 빼면 의외로 높은 편이며, 성능이나 승차감 같은 차량 자체에 대한 불만은 적었다고...
  20. 이 시절에는 브니엘실업고등학교 였으며,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은 관광과였다고 한다.
  21. 이 학교가 워낙 흑역사급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공식적으로 출신학교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 확인.
  22. 러브하우스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 1982년 하나멜 초창기(2기) 멤버중에 하나였으나, 하지만 정작 양진석 자신은 이 학교가 워낙 흑역사급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학교 출신인 것을 상당히 껄끄럽게 생각하는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위키백과에서 출신 고교에 대한 내용을 직접 반달(?) 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안다
  23. 남녀공학 마지막 시절이자 테니스부 최전성기인 1973년에 전일본 주니어 테니스대회에서 단식, 복식 우승(!)으로 당시 신생학교였던 브니엘고의 이름을 크게 알리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24. 1996년 이후 무려 20년(!)만에 처음으로 들어온 배차간격 1시간 이내의 정규 노선이다.
  25. 비정규 노선으로 등하교 시간 한정으로만 브니엘고등학교 까지 운영
  26. 사실 지역내에서 디자인 센스가 매우 특이한 교복이 있다면 지역을 불문하고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교복이라는 루머가 퍼지는 경우가 꽤나 많다.
  27. 브니엘학원의 자회사였던 뉴월드라는 업체가 운영하였으나, 재단이 바뀔무렵인 2007년에 별개의 업체로 독립하여 지금까지도 운행하고 있다.20년째 장기집권 다만 별개의 업체로 독립한 이후에도 역시나 그 후신 아니랄까봐 차량 관리상태가 안습한데다가 기사들의 불친절 문제도 여전한듯(...) 업체가 독립하게된 이유가 이사장이 바뀐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으나, 보다못한 금정구청이 고물차(...)들을 압류한것도 원인이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28. 하지만 정작 브니엘학원 차량사업부는 영업용 전세버스 면허도 없이 불법 대절 영업을 하면서 길ㄸ라, 부ㅅ고속관광같은 금정구 소재 전세버스 업체(특히 불쌍한 부ㅅ고속관광과 브니엘/정선학원의 악연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들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던 적도 있었고, 이로 인하여 안그래도 불편한 관계였던 금정구청이 제대로 빡친 나머지 2006년 말에 차량을 압류해 버렸다고 한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29. 서울의 상문고등학교, 은광여자고등학교 통합 동문회인 상은회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되었다.
  30. 한국기독신문의 인터뷰로 사실 한국기독신문의 기사들은 상당수가 편파적이기 대문에 좀 걸러들어야 할게 많다. 설립자와의 인터뷰 뿐만 아니라 과거 정선재단 정모 이사장에 대한 인터뷰에도 사실이 아닌 내용 까지도 사실인양 싣는등 문제가 많은 매체로 한마디로 뉴데일리의 개신교 버젼. 이러고도 언론중재위원회에게 정의구현 안당하는게 신기하다 이 기사에서는 예전 동문들이 설립자 측을 지지하는 것 처럼 써 놓기는 했으나, 사실 브니엘고 예전 동문 중에서 설립자를 싫어하는 동문도 매우 많으며 특히 학교 이전 가지고 온갖 잡음을 일으킨 1990년대 이후에 입학했던 동문들이라면.... 몇몇 동문들은 설립자의 이름 가지고 여러가지 X드립 을 만들면서 신랄하게 까댈 정도로 감정이 좋지 않기도 하였다. 물론 그 동문들도 신재단인 정선재단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것은 매한가지. 그 외에 지금은 폐교된 브니엘중학교의 동문들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