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학원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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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항목에서는 기존 브니엘학원 비리재단 관련 사건(부도 및 소유권 분쟁)을 위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외의 브니엘학원 개별에 대한 사건은 서술하지 마세요.

1 브니엘학원이란?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위치한 사립학교의 집합체로,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이 개신교 계열 교단에서 설립한 사립학교 들이며, 전국적으로도 보수 개신교 성향이 매우 강한 편에 속하고 있다.
현재는 그 후신인 정선학원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정선학원은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브니엘국제예술고등학교,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로 구성되어 있다. [1]
이중에서 브니엘국제예술고등학교나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는 후술한대로 전국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사례를 꽤 많이 만들어내서 마치 가상의 교육기관을 방불케 할 정도 정도이며, 부산에서 단기간에 재단이 가장 많이 교체된(6회) 학교법인이자, 비리 사학의 대명사나 사학비리 제조공장 같은 불명예 스러운 수식어가 붙어버린 이 학교법인은 어떤 면에서는 그 유명한 상문고등학교를 능가하는 면도 보이고 있는데, 2014년 현재로써는 차라리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상문고등학교가 나아 보일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여담으로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공개한 2013년에 법정전입금을 재단에서 단 한푼도 내지 않는 전국 사립고 28개교 중에 브니엘 계열 학교 3개교가 모두 포함되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게다가 부산지역에서 법정전입금을 내지 않은 사립 고등학교가 고작(?) 3개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 3개가 모두 브니엘 계열 3개교라서 더욱 더 불명예스럽게 되었다.

2 1999년 브니엘학원 부도 사태

2.1 리즈 시절 및 사태의 발단

1958년에 미국 중아선교회에서 전후 복구를 돕기 위해 한국에 파견된 젊은 선교사에 의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빈민 계층을 위한 중학교 과정 고등공민학교인 브니엘 야학으로 부터 시작된 브니엘 학원은 5.16 군사정변 이후 집회에 제한이 되면서 1964년에 정식 학교 법인으로 인가를 받게 되었는데, 1964년 브니엘 고등학교를 개교, 1966년에 고등공민학교 브니엘야학을 전신으로한 브니엘중학교(현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를 정식으로 개교하면서 본격적으로 출범함과 동시에 승승장구했다.

1968년에는 브니엘중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를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학원 스포츠에 진출했으며, 1972년 연말에는 고등학교 본관 건물을 새로 만들었다. 하지만 1974년 부산직할시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로 남녀공학이었던 브니엘고등학교는 주변에 이사벨 여자고등학교[2]가 일반계 여자고등학교로 지정되는 바람에 브니엘고등학교는 일반계 남자고등학교가 되었지만, 일반계 남자고등학교가 되면 브니엘 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와 여자 무용부는 해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 테니스부와 여자 무용부를 계속 존치시키기 위해 동래구의 주경야독 근로청소년들과 고교 여자 테니스 선수들 등을 모아서 1975년부터 야간제 특수지 여자반을 따로 운영하였으며, 일단은 위기를 모면한 브니엘중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는 부산 최고의 테니스 명문으로 떠올랐다.
물론 일반계 고등학교가 된 브니엘고등학교도 1988년에는 서울대에 28명을 보내면서# 수많은 학생들을 명문 대학으로 진학시키는 등 70~80년대에 걸쳐 브니엘 학원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브니엘학원의 구 연산동 부지(현 연산반도보라아파트)는 36번이나 29번 같은 부산시의 인기 버스 노선들이 경유하였고, 1985년에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게 되어 접근성이 워낙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4000평에 불과하여 당시 2개의 학교를 수용하기에는 다소 비좁았고, 교통의 요지라는 점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해서 소음 문제가 있었으며(당연히 방음 대책도 없었다) #, 날림공사로 인하여 1960년대 초반에 만들어서 30년도 되지 않은 중학교 건물이 1980년대 후반부터 기울어져 갔다.[3] 사실은 그 이전인 1978년부터 브니엘학원은 학교 이전 및 확장을 계획하게 되었는데 당초에는 그런대로 접근성이 좋은 동래구 사직2동 부지(현 사직한신아파트)로 이전하기 위해 구 동래여자상업고등학교[4] 주변의 부지 9500평을 매입했다. 하지만 부산시와의 학교 진입로 문제로 인한 여러가지 마찰로 인하여 이전이 무산되고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사직동으로 이전이 성사되었어도 이런 막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명문으로 발전했을텐데 부산시의 횡포가 불씨로 작용해 버린 것.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있는데, 사직동 이전 취소는 부산시나 부산시 교육위원회의 잘못 보다는 구 재단측의 잘못이 더 크다는 말이 있으며, 구 재단은 언제나 항상 자신의 편에 유리하게 서술을 한다는 문제점이 있으니 적당히 걸러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게 구서동 일대 진입로 개설 문제)

2.2 침몰하는 브니엘 학원

브니엘학원은 학교의 이전을 꾀하기 위해 1990년에 6월에 현 위치인 금정구 구서1동의 골프장을 만들고 남은 악성재고 같아보이는 부지를 삼성종합건설로 부터 구입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삼성종합건설이 당국의 허가없이 자연녹지를 불법매각하여 약간의 잡음이 있었는데 이것으로 부터 비극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 [5]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브니엘학원의 이전이 추진되었는데 1993년 국정감사때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이때 브니엘학원은 한번 더 잡음을 일으키고 말았다. 사전승인 없이 학교 이전을 추진한 뒤 사후 동의를 받았고 부산시의 사학 관리감독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 그 이전인 1992년 국정감사에서도 학교 이름을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적을 받았던 것은 매한가지.# 당시 해당 부지가 접근성 문제가 심각한데다가 여러가지 문제로 도시계획상 학교를 위치하기에 부적합했기 때문에 당초에는 부산시에서 이전을 불허하다가 나중에서야 당시 부시장이 겨우 승인해주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우여곡절끝에 이전 승인을 받아서 1994년부터 구서1동 현 부지에 학교 캠퍼스 건설이 착공되었다. 그리고 이전 승인 조건으로 차량통행량이 늘어나게 되니 당시 협소한 험로였던 동래여고-브니엘고간의 600m 가량의 진입로를 학교법인의 비용으로 4~6M 폭에서 15M 폭으로 확장 및 포장해서 기부체납하는 핵심적인 조건과, 통학거리나 교통 같은 문제는 부산시가 해결해줄 수 없고 학교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답이 없는 책임회피식 조건을 달았는데,[6] 덕분에 이후에 시내버스 노선 연장이 계속 불허되는 원인이 되고 만다.(....)[7]

하지만 금정구에는 일반계 중학교가 남아도는데다가, 앞서 말한대로 하필이면 이전 대상 부지가 워낙 교통편이나 접근성이 막장이고 등하교거리가 워낙 길어지게 되는 곳이라 일반계 중학교가 위치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했다. 결국 이전 과정에서 수요 예측이나 교통편의 고려에 실패하고 건물을 과잉 건설한 일반계 브니엘 중학교는 금정구로의 이전이 불허되면서 건물을 완성하기 직전인 1995년에 학생수가 1500명이나 달하는 멀쩡한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폐교의 갈림길에 놓이고 말았다. 그렇다고 브니엘 중학교를 연산동 부지에 계속 남겨두자니 재단의 예산문제 때문에 이미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기로 결정해버린 상황이라, 결국 브니엘 중학교를 폐교 조치하고 그 대신에 중학교 과정의 자립형 각종학교인 브니엘 예술학교를 신설하기로 교육청과 합의하여 교육청으로 부터 더 이상 재정지원과 중학생 배정을 받지 않기로 하였는데 역시나 나중에 수많은 골치아픈 사건들의 원흉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것과 동시에 야간제 고교 여자반이 학교장 전형 일반고인 브니엘여자고등학교로 분리개교 하였다. 돈나갈데가 많아졌다

그리고 당초 우려대로 접근성과 교통편이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워낙 막장이 되어버렸는데, 연산동 시절의 브니엘 학원 통학을 책임지던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라든가 29번 버스, 36번 버스 모두 잃게 되고 그 대신 등하교시에는 좁아터져서 미어터지는데다가 평시에는 배차간격 1시간의(...) 마을버스들과, 그닥 타고 싶지 않은 고물 스쿨버스들이 대신 찾아오게 된다. 이 접근성 문제는 이전 승인 과정에서도 우려되었던 문제였지만, 브니엘 고등학교를 포함한 브니엘 학원 전체 몰락의 가장 큰 원흉이자 지금도 여전히 비선호 학교로 발목을 잡고 있는 크나큰 문제고 히치하이킹을 비롯한 교통사고의 위험도 있고, 외진곳에 있어서 치안 문제로 인하여 금정구민 학부모들에게 지금도 걱정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이전 과정에서 다시 한번 파행을 일으켰는데 앞서 말한대로 부산시에서는 학교 이전 조건으로 진입로 600M의 폭을 늘리고 포장하여 기부채납 하는 핵심 조건을 못박았고 당시에는 학교법인 측에서도 전적으로 그 조건을 동의하였지만, 학교 이전 이후에 브니엘학원은 뒤통수를 치면서 별개사업이라 주장하거나 경영난으로 시행할 수 없다면서 배짱을 부리는 식으로 갑인 부산시와 금정구청, 부산교육청에 어그로를 끌고 말았고 결국 큰 화를 사고 말았다. # 이 파행은 2년 후인 1998년에도 그대로였지만 교통사고가 여러건 발생한 뒤 뒤늦게서야 금정체육공원 개장을 앞두고 체육공원로 라는 명목으로 진입로가 확장되었다고 한다.# 분명 이것은 부산시에서 제시한 이전 조건이었고 구 재단에서도 이전 당초에는 이의없이 승락한 조건이었지만, 지금도 구 재단 측에서는 여전히 부산시의 행정폭거라고 우기면서 관청들에게 어그로를 끌고 있다.

1998년에는 재단이 재정난에 빠져있고 저출산 시대로 학생수가 줄어드는데다가, 나라 전체가 IMF 사태로 신음하고 있는 와중인데도 시대상황을 읽지 못하고, 예술중학교 학생들의 심화교육을 위하여 추가로 미네랄 멀티 브니엘예술고등학교를 특성화 고교도 아닌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 자립형 특목고 형태로 추가 설립을 하면서 학교법인을 확장했는데브니엘학원의 협성교육재단 따라잡기, 안그래도 침몰중인 학교법인의 패망에 제대로 헤드샷을 날려버리게 된다. [8]

더군다나 설립 과정에서 진입로 까지도 공유하는 근처의 부산예술고등학교가 IMF 여파로 학생수가 급감하고 기존의 부산예술고등학교와 너무 가까이에 추가로 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는것은 공멸하게 되는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지만, 결국 브니엘예술고등학교는 어이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설립되었고 부산예술고등학교 재단인 동래학원과의 출혈경쟁이자 치킨게임이 되고 말았다. [9]
그 이전인 1997년에도 1996년에 시행된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이용해서 추가로 신학대학원 대학 설립 인가까지 받아낸것을 보면 재단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버렸는데도 내실을 기하지 않은 학교법인 확장에만 치중했으니, 상당히 경영이 무모하고 방만했으며 최소한의 방어 노력도 없었다고 볼 수 밖에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브니엘 예술고등학교가 학교장 전형 고교 시절의 브니엘 여자고등학교 위상을 대체하게 되면서 브니엘 재단의 비평준화 고등학교 자리를 차지하고, 그 대신에 브니엘 여자고등학교가 강제배정 되는 평준화 일반고가 되었다.

2.3 망했어요

결국 곪았던 것이 크게 터지고 말았는데 1999년 3월에는 지방세 8억원을 장기채납하면서 금정구청에게 국고보조금을 전액 압류 당하더니 4월에는 브니엘학원은 미네랄 멀티 브니엘예술고등학교를 신설하자 마자 무리한 학교 신설 확장으로 인한 재정난 때문에 13억 7천여만원을 결재하지 못하고 중등교육기관 학교법인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최종부도 처리를 당하고 말았다. # 부도처리 당시 학교법인의 부채는 무려 27억원 + 200억대 이상의 부채였는데 부산의 중등교육기관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부채였다.
그 외에 시공사였던 유창건업및 한신공영의 부도 및 학교법인과 시공사와의 복잡한 어음 관계도 학교법인의 부도처리에 한몫을 하고 말았다. #
유창건업 부도의 경우는 학교 이전 과정에서 갑이었던 부산시 도시개발위원회가 앞서 말한 진입로 건설에 대한 문제로 빡친 나머지 구서동 신축건물 준공승인을 해주지 않으면서 이전 연산동 부지의 학교용지 지정 해제를 계속 미루었다. 그리고 유창건업과 한신공영이 당초에 연산동 부지의 학교용지 지정 해제로 연산 한신 아파트를 건립하려던 계획도 미뤄지고 그 와중에 유창건업이 연산 한신아파트 분양으로 돈을 걷을 수 없게 되어 자금 압박을 받고 부도가 나버렸다. 게다가 한신공영도 같은 시기에 부도가 나면서 도미노식으로 부도가 나버렸다. 결국 한신공영 그룹이 부도나서 워크아웃 되는 과정에서 150억~190억#짜리였던 연산동 기존 학교 부지는 1998년 4월에 경매로 반값도 안되는 90억이라는 헐값(감정가 보다 100억 낮은 가격이었다)에 부산지역의 건실한 중견 건설업체인 반도건설[10]이 사가게 되었다.# # 한마디로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어버렸고, 부도 당시에 발생했던 부채의 상당수도 브니엘학원과 한신공영간의 복잡한 어음 관계로 한신공영이 망하면서 고스란히 떠안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반도건설은 이때 경매로 반값도 안되는 가격에 부지를 사가면서 아파트 분양을 했는데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노른자땅에 역세권이라는 이점이 크게 작용하여, 이례적으로 아파트 분양에서 조기 완판이라는 초대박을 치면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부산시 교육청은 부도난 브니엘학원을 특별감사하면서 파행운영으로 감독관청의 허가 없이 197억원의 차입금 발생(앞서 말한 시공사들과의 복잡한 관계로 발생했다), 교비 등 공금 수십억원이 학교법인으로 불법전용, 직원 임금체불 같은 여러가지 문제로 인하여 학교 설립자를 포함한 7명의 이사를 전원 해임시키고 관선이사를 파견하여 2002년까지 3년간 1기, 2기 관선이사 체제로 학교를 운영하였다. # 그리고 이 사태로 인하여 브니엘 학원 계열의 학교들은 그 병크가 언론에 의해서 만천하에 드러나고 한동안 언론에서 계속 떡밥으로 물고 보도하는 바람에, 부산 4학군 내에서 가장 인기없는 중고등학교이자 언론의 떡밥제조공장으로 추락하고 말았고 이는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그래도 부산 4학군에 동래고등학교 같은 걸출한 고등학교가 많은데다가 근처에는 동래학원 계열의 동래여자고등학교, 부산예술중고등학교와 성모학원 계열의 지산고등학교, 부산의 유일한 국립 일반고인 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와 신흥 명문인 공립 남산고등학교 같은 강자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으니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그야말로 브니엘 학원 계열 4개교의 앞날은 사면초가이자 진퇴양난이 되고 말았고, 심지어 이 무렵에 브니엘 여자고등학교 테니스부는 단 하나의 흔적 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해체까지 되고 말았으니 35년 이상 쌓아온 수많은 영예들이 순식간에 포맷 당한 꼴이 되어버렸다.

3 구 재단과 신 재단과의 소유권 분쟁사태

3.1 신 재단의 구성

관선이사가 들어선지 3년이 훌쩍 지난 2002년 12월에 계란을 맞았던 정원식국무총리를 이사장으로 취임시키면서 정식 이사회를 구성했지만 무능한 부실운행으로 인하여 지방세 체납에, 식중독 사태에, 38억대의 빚이 누적되는 파행이 계속되는 등 상황이 곤란하다 보니 그쪽도 오래가지 못했고 오히려 정상화에 큰 걸림돌이 되는 오점을 남기면서 비극이 되고 말았다.

결국 1년도 채 되지 않은 2003년 가을에는 보다못한 동창회 인원들이 모교를 살리기 위해 부도난 브니엘 학원을 인수하면서 동문이 운영하는 중견 완구 제조업체 구니카계열로 편입되었는데, 그동안은 딱히 큰 문제도 없이 잘 돌아갔고 학교 상수도 개통, 운동장 우레탄 코팅, 도서관 완공, 기숙사 착공, 급식실 현대화 사업 착공 등등 여러가지 개량 및 현대화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며 의욕적으로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어서 상황은 한동안은 순조롭게 흘러갔고 학내 민주화가 코앞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그쪽도 직전 재단의 일부 이사진 및 설립자와의 이념적 다툼과 소유권 다툼으로 인한 계속되는 법적 공격으로 인하여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2005년 초에는 건축기사 학원을 경영하던 김모 이사장이 인수 및 취임했으나, 학교법인을 인수하여 운영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여 부적절한 인사라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브니엘고 동창회의 삭발 시위 까지 있었다. 그리고 뭐하러 인수한것인지는 몰라도 우려대로 1년만에 되팔이 당하면서 다시한번 크나큰 오점을 남겨버렸다. # 학교법인을 인수하여 운영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여 부적합하다는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추천하여 학교법인 인수를 성사시켰으니 그 결과는 뻔한것. 결국 사건이 또 터지고 말았는데 2005년 말~2006년 초에 걸쳐서 학교법인 소속의 통학버스 지입차[11] 기사들이 차량관리비 및 유류비를 포함한 체불임금을 요구하며 파업 및 시위를 하였다. 심지어 2006년 입학식날에도 시위를 하면서 학교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해졌다.# 이 체불임금은 1996년부터 2000년 까지의 임금이었는데 대부분 부도 이전 구 재단에 의해 체불된 임금이었지만 여러차례 이사진이 교체되면서 결국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이사진들이 떠맡게 되어버렸다는 것. 같은 시기에 브니엘예술고등학교 편입학 비리 의혹까지 터져나오면서# 문제의 재단은 헤드샷을 맞고 고작 1년만에 브니엘학원을 포기하게 되었고, 결국 2006년 5월 부로 브니엘학원은 우려대로 또 다시 팔려나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3.2 신 재단의 정착

2006년에 5월에 직전 김모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이가 인수하면서 브니엘학원은 본격적으로 신 재단 체제가 되었고, 학교법인 지입차 기사 임금체불 시위 사태는 신 재단에 의해 완전히 해결됨과 동시에 지입기사들이 자가용 면허에서 관광면허로 전환되어 학교법인에서 별개 업체로 완전히 분사시키면서 악명높은 브니엘학원의 고물 통학버스들도 어느정도 정리되었다. 그러나 1라운드였던 부도사태에 이어 2라운드인 소유권 분쟁 사태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신 재단 체제에서도 초반에 문제가 여러건 발생했는데 새 이사장 아들의 위장 편입학으로 학생 생활기록부를 거짓으로 기록한 것이고 결국 관련자들은 부산지검에 고발되면서 집행유예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육군 보충대대의 그것과도 같은 악명높은 브니엘 학원의 급식은 평소에도 학생들의 반발을 일으켰는데 결국 2007년 연말에 학생들이 급식을 거부하는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 당시 재학생의 증언
그 외에도 브니엘 예술중학교를 다시 교명 변경하는 과정에서 당초에는 브니엘 영재 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려고 했다가 영재교육진흥법상 영재라는 용어의 사용이 문제가 되어서 지적을 받고 결국 브니엘 국제 예술중학교로 변경되는 일도 있었는데, 이 때 발생한 사태들에 의해 구재단이 더욱 반발하게 되면서 소유권 분쟁에 제대로 기름을 끼얹어 버렸다.
결국 신재단의 새 이사장에 의해 기름을 제대로 끼얹어버린 소유권 분쟁 사태는 얼마후인 2008년 초반 부터 구 재단 관계자들이 여러차례 소송을 걸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 2008년 5월에는 학교법인이 정선학원으로 개명되면서 브니엘학원이라는 법인명이 44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것을 계기로 소유권 분쟁 사태는 더욱 가속화 되었는데 학교법인 개명에 반발한 구 재단과 구 재단을 지지하는 일부 동창회에서 플랜카드를 걸어두고 천막 농성을 벌였는데, 스피커 소음으로 인한 학습권 방해 및 신재단 지지세력인 예술중학교 학부모들과의 몸싸움이 발생하면서 도리어 구 재단이 신 재단에게 제대로 꼬투리를 잡히면서 제대로 역풍을 맞아버렸고 구재단이나 동창회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구 재단이 학교포기각서를 2002년 및 2004년에 총 2회 제출하는 바람에 소송에서도 번번히 기각당하거나 패소하고 그것을 근거로 신 재단이 계속 승소하면서 소유권 분쟁에서 최종적으로 신 재단이 승리하게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2010년 10월 29일에 판결이 한번 뒤집어지게 되는데 2007년 상지대학교의 판례를 근거하여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2002년 12월 이후에 선임된 정원식 부터의 신재단 정이사들은 무효라는 것이고, 결국 2011년 2월 10일에 구 재단이 승소하여 소유권 분쟁 사태는 사학분쟁위원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법원 판결과는 달리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2011년 5월에 12명의 이사진 중에 신 재단 계통 인사를 과반수 이상인 8명으로 하는 등 신 재단의 손을 들어주면서 다시 일어난 소유권 분쟁은 신 재단의 승리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지만, 2011년 6월에 선임이 유보되어 법적 문제를 재검토하기 위해 2011년 7월에 임시이사진 파견이 결정되었는데 사학분쟁위원회의 일관성 없는 모습이 지적되면서 2011년 9월에는 지역 자치단체를 넘어 전국구급으로 2011년 국정감사라는 도마에도 오르게 되었다. # 이 와중에도 임시이사 파견을 놓고 신재단을 지지하는 예술중학교 학부모들이 임시이사 파견 결정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여 서울시에 위치한 교육부 까지 진격하여 임시이사 파견 반대 농성을 하기도 했다.

결국 2012년 3월에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이사진 12명 중에 과반인 7명이 신 재단의 인사로 구성하되 부산시 교육청이 추천한 인사 3명과 나머지 2명은 구 재단측 인사로 정해지면서 이사진의 과반수를 확보한 신 재단이 학교법인을 사실상 차지하면서 소유권 분쟁 사태는 이대로 종결되는듯 했으며, 구 재단 측에서는 브니엘학원이 사실상 계열분리되면서 지금은 브니엘 교회와 브니엘 유치원, 브니엘 신학이 남게 되어버렸다.

3.3 새로운 분쟁 국면

하지만 2014년 6월 20일에 소유권 분쟁 사태가 제대로 뒤엎어졌는데 상지대학교의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권리가 없다는 판례를 근거한 2011년 2월의 판결에 근거하여, 법원이 다시 한번 설립자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부산교육청을 상대로한 정선학원 현 이사회 전체 12인 이사진에 대한 이사선임취소 소송에서 구 재단이 승소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2014년에 4~5월에 발생한 브니엘 국제예술고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편법 국제반 운영 및 시설 이용 차별에 대한 반발 사태[12]가 터지면서 한동안 여러가지 언론을 장식하여 전국구로 그 병크가 알려지는 바람에, 그전까지는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구한 구세주인 것인양 알려졌으나 알고보니 악질 중의 악질로 드러난 신 재단의 만행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고, 완전히 학교법인을 차지한것으로 여겨졌던 신 재단이 온갖 병크로 인하여 1일 전인 2014년 6월 19일에도 이사장에 대한 이사선임 취소 조치가 내려지는등 사실상 정당성을 잃어버렸기에 판결이 뒤집어 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교육청에서는 갑인 검찰의 지휘로 신 재단 이사진을 대신해 어쩔 수 없이 2014년 7월 9일에 항소를 하면서 신 재단의 효력이 연장될뻔 했으나, 2014년 7월 21일에는 구 재단 설립자측이 법원으로부터 신재단 이사진 직무정지 결정을 받아내서 학교법인의 이사진은 공백 상태가 되었고 한동안 관선이사가 파견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설립자가 승소하여 복귀한다면 정선학원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브니엘 학원으로 16년 만에 다시 환원되지만, 판례가 되었던 상지대학교의 구재단이 승소한 소유권 분쟁이 최근에 격렬하게 역풍을 맞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속단하기 이르다.

결국 2014년 10월 27일에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15년만에 장기 관선이사진 파견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관선이사 파견 과정에서도 알력다툼이 발생하여 4개월 이상의 공백이 생긴 것에 대한 지적이 2014년 국정감사에서 다시 거론되었다.# 국정감사 질의자료 참고 국정감사에 또 나왔다.

2015년에 정선학원 소유의 비교육용 자산들이 경매로 나왔다. #, # 참고로 저 연산동 1644-1 부지의 경우는 브니엘학원 및 지금은 폐교된 브니엘 중학교의 전신이 되는 브니엘 야간중학원이라는 고등공민학교가 위치하고 있었던 곳이다.
  1. 과거에는 브니엘중학교와 브니엘 학원 차량사업부인 (주)월드시스템도 자회사도 산하에 있었으나 브니엘중학교는 연산동 교사 철거 및 교육청의 학생 배정 중단 조치로 인하여 1998년에 최종 폐교, (주)월드시스템은 2007년 경에 청산되었다. 실상은 별개 업체로 분리된거지만
  2. 이사벨고와 브니엘고의 관계는 어찌보면 애증의 관계에 가깝다. 브니엘고가 남녀공학에서 남고가 된 이유도 이사벨고가 당초에는 여고였기 때문에 브니엘고가 남고가 된 것이지만, 이후에 이사벨고가 남녀공학이 된것도 브니엘고가 연제구를 떠나면서 연제구에 남학생이 갈 수 있는 일반고가 없어지게 되어 지속적으로 연제구민들의 민원이 야기되었고 그에 대한 임시 해결책으로 2001년에 이사벨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결국은 2005년에 구 브니엘고등학교 인근에 연제고등학교를 신설해서 구 브니엘고의 자리를 완전히 메꾸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연제구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고가 부족해서 브니엘중고등학교가 꼭 필요했기에 계속 잡아두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나, 금정구는 일반중은 물론이고 일반고 조차도 남아도는데다가, 일반고가 부족하다고 해도 입지조건과 시설이 매우 좋았던 태광여상(무려 강남 8학군의 세화고, 세화여고와 같은재단 이었다.)을 폐교 대신에 설득하여 세화여고 미네랄 멀티일반고로 전환했어도 충분히 일반고 확보가 가능했을 것이다.
  3.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건물 내구연한은 콘크리트 건물이 45년이다.
  4. 현 삼정고등학교. 해당 학교는 북구로 이전.
  5. 2015년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차라리 부산정보고등학교(구 영남상고)가 있는 부산교육청 뒤쪽 부지나 양동여자중학교가 있는 물만골 근처 부지로 이전을 추진하는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 이 부지들은 학교가 들어서기 이전의 임야였던 1990년대에 박영학원(신라대학교, 신라중학교 재단)이 부일여자중학교(현 신라중학교) 이전 부지로 인수하려고 간보다가 재정난으로 무산된 바가 있었기에 그때 브니엘학원이 구서동 부지 대신에 이 부지들을 노렸다면 인수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고, 교통편이나 주변환경도 상당히 준수한 편에 속하며 부산교육청에서 중학교 부지로도 적합한 부지라고 제안할 정도였기에 이 부지로 이전하면 브니엘중학교가 폐교될 일도 절대 없었을것이다. 영남상업고등학교(부산정보고) 이전 추진(1992년)은 브니엘학원 이전 추진(1989년)보다 늦게 이루어졌고, 양동여자중학교의 부지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수 기회가 있었을 정도. 물론 면적당 가격은 브니엘학원이 매입한 구서동 부지보다는 당연히 비싸지만, 이왕 학교 이전을 추진할것이면 어설픈 부지에 이전해서 온갖 병크를 저지르거나 교육청에게 혼쭐이 나는 것보다는 돈 더주고 제대로된 부지를 인수해서 이전하는게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게다가 연산동시절 브니엘고등학교라던가, 현재의 대연고등학교, 지산고등학교, 예문여자고등학교같은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높은 일반고에서 알 수 있듯이 교지면적이 학교의 우열과 무조건 직결된다는 생각은 크나 큰 오산이다.
  6. 학교에서 시내버스를 연장해달라고 계속 부산시에 청원을 했고, 부산시가 계속되는 소리에 옛다하고 준게 회동동~서동방향으로 가는 178번이였다. 이전한 지 11년만에 처음으로 겨우 버스 노선이 들어왔지만, 버스 노선이라고 들어온게 1대운 행에 90분 간격.. 이뭐병... 36번이나 100번등 구서동에서 회차하던 배차가 좋은버스를 원하던 재단은 부산시에게 제대로 엿 먹었다. 이런식으로 운영해놓고는 이용자수가 없다고 폐선해버리고 이후에도 버스 노선을 연장하지 않는 빌미도 제대로 마련해버리고 말았다.
  7. 이는 지금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작년 하반기 개편으로 금정구청까지 노선단축된 148-1번을 브니엘고교로 연장해달라고 브니엘고 교장과 구의원까지 청원하였고, 학원을 방문한 운행업체도 긍정적인 반응. 이 저주?는 풀리는듯 했으나 부산시에서 내린 결론은 브니엘고 앞도로에서의 회차는 교통 안전상 위험하고 반경내 수요의 저조 그리고 배차간격 24분노선이 통학시간대 수요를 제대로 커버가 되지 못한다는 핑계이유로 나가리되었다... 영원히 고통받는 브니엘학원;;;
  8. 하지만 지산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가톨릭계 성모학원 재단은 1989년에 대양중학교를 폐교하고 동시에 지산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이후에도 저출산이나 IMF의 여파로 데레사여중을 폐교하는 등 1990년대에 걸쳐 부산시내의 수많은 사립중학교들은 폐교의 길을 걷게 되었고 부산시내의 사학들은 학교법인의 확장보다는 폐교를 통해 규모를 줄이더라도 IMF와 저출한 직격탄으로 부터 학교법인을 방어하고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어느쪽의 선택이 더 현명한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9. 한국에서 1개의 지역구에 같은 성격의 예술고가 2개나 설립된건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당연히 출혈경쟁이라서 이와 비슷한 사례는 더 이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에 맞대응 하기 위해 부산예술고등학교의 학교법인인 동래학원에서 방어목적으로 부산예술중학교를 추가로 설립하였는데 결국 브니엘예술중학교의 수요의 상당수를 가져가게 되면서 폐교 직전으로 몰아넣었으니 사실상 캐삭빵이 되었고, 브니엘예술고등학교도 같이 발목 잡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10. 당시에 이렇게 좋은 땅을 이정도의 헐값에 사갈 수 있었던 이유가 IMF 사태로 이정도 땅을 사갈 수 있는 재력을 갖춘 건설 업체들이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대부분 보기 좋게 망해버리면서, 그나마 지역에서 탄탄한 중견업체인 반도 건설이 4번의 유찰 끝에 낮은 경쟁률로 말도 안되는 가격에 부지를 득템해 버린 셈이었다.
  11. 직영제가 원칙인 스쿨버스를 지입차로 굴리는것도 모자라 몇몇 차량은 학교 이전 당초인 1996년의 시점에서 봐도 심하게 낡아빠진 교체되어 나온 폐차직전 차량들을 중고로 구입해 도입했고 차량관리도 전적으로 차량 소유주인 지입기사에 떠맡기는 바람에 엉망이었을 정도였으니 학교 재정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제대로 증명하였다.
  12. 이러한 편법운영은 그야말로 초중등교육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인데, 이것을 방치해두었다가는 초중등교육법에 의해 명확하게 구분된 특성화중학교 및 자사고/특수목적고등학교의 구분이 붕괴되면서, 학생 선발권을 학교장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취득이 쉽고 전국단위로 모집지역 제한이 없는 예술중고등학교 인가를 가지고 편법으로 국제중이나 자사고식 운영이 확산되어 헬게이트가 열릴수도 있었다. 아시다시피 국제중이나 자사고 인가는 정부교육부와 협의가 필요한데다가, 입시과열 문제로 국제중은 정부에서 그 수를 엄격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인가 취득이 매우 어려운데다가 현재로써는 추가로 사립국제중 인가를 내줄 리가 없어보이고, 전국단위 자사고는 20% 법정전입금을 부담해야 하는등 인가 기준이 상당히 까다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