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망

司馬望
(205년 ~ 271년)

1 개요

서진의 황족으로 자는 자초(子初). 사마부의 장남이며 아들이 없었던 사마부의 맏형 사마랑의 양자로 입적되었다.[1]

본래는 문관직에 종사했으며, 재능이 남다른 인물로 학식있는 사람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조방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른 조모가 시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와 자주 토론하게 되었는데, 궁내에 빠르게 당도할 수 있도록[2] 특별히 빠른 마차까지 지급받았을 만큼 신임을 얻었다.

사촌동생인 사마소가 점차 권력을 강화하며 찬탈의 기반 구축에 힘쓰는 모습을 보이자, 사마망은 자신이 계속 조모와 가까이 있으면 화를 입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여 자원해 전선으로 종군했다. 255년(혹은 256년) 정서장군 지절 도독으로 임명되어 옹주와 양주 2곳의 군마를 한데 통솔하게 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촉한강유가 옹주자사 왕경을 크게 무찌르는 등 활발한 공세를 보였으나 사마망이 부임해 등애와 연계하여 전선 방비를 강화시키자 이때부터 강유는 촉한 멸망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북벌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이 방어의 공적으로 도독 재임 8년만에 중앙으로 복귀해 265년에 사도의 자리에 올랐으며, 조카 사마염이 선양으로 진무제(晉武帝)에 등극하자 의양왕에 봉해져 1만 호의 영지를 받았다. 268년 동오의 시적(주적)이 강하를 공격하자 가절 대도독이 되어 형주자사 호열을 지원했으며, 낙양에 귀환하여 대사마가 되었다.

271년 손호가 수춘을 공격하려 들자 병력 2만 3천을 동원해 공세에 대비했지만 손호가 공격하지 않고 물러나 회군했으며, 그 해에 68세로 병사했다. 여담으로 친아버지인 안평왕 사마부가 1년 뒤에 93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사마부가 당시 얼마나 장수했는지 알 수 있다.

시호를 성왕(成王)이라 해 〈진서 열전〉에는 의양성왕전으로 나오며, 사후 집안에 엄청난 양의 재산을 쌓아뒀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서 빈축을 샀다. 은근히 이분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강유의 북벌에 대항하는 역할로 몇 번 등장하는데, 최초에는 가상 인물인 수하장수 이붕왕진을 앞세워 싸웠다가 부첨에게 발려서 달아나다 등애에게 구원받는다. 그 보답인지 등애가 강유와 진법으로 겨루다 장사권지진에 갇혀 갈팡질팡할 때 진을 깨뜨려 등애를 구해주는 역할을 맡았으며, 여기서는 석도맹건의 친구였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어깨 너머로 진법 공부를 했다고 나온다.

2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B-급 지휘관형 장수. 짠돌이 성격을 반영한 낮은 매력치 말고는 딱히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능력치를 가졌다. 그나마 12편에서 대격변으로 상향되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66/지력 80/정치력 72로 B급 문관이다. 분전, 제사, 교사, 혼란, 덫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교사가 유용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0/무력 59/지력 81/정치력 64/매력 9에 명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1에서는 지력이 70대로 떨어졌으나 매력이 크게 상향되어 능력치가 통솔력 73/무력 58/지력 78/정치력 65/매력 42다.

삼국지 12에서는 PS3 버전에서 추가되었다. 능력치는 다시 지력 80대로 올라가고 능력치가 통솔력 78/무력 58/지력 83/정치력 71으로 많이 상향되었다. 병종이 기병이고 전법은 도발. 이쯤되면 위가 망할 때까지 쓸 수가 있다. 일러스트을 봐도 도발을 잘 쓰게 나왔다. 근데 칼이 좀 크다?

삼국전투기에선 겁쟁이 페달마키시마 유스케로 패러디되었다.
  1. 원래 사마랑에게 외아들 사마유가 있었으나, 사마유는 자식없이 요절했다.
  2. 당시 사마망이 일하던 곳은 중호군부로 궁궐 밖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