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

1 개요

고사성어
돌아볼 오두막집

삼국지에 관련된 고사의 하나로 다른 말로는 삼고지례(三顧之禮)[1], 삼고지은(三顧之恩)이라고도 한다. 직역하자면 초가집에 세 번을 찾아간다는 뜻. 직역만으로는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에게는 유비제갈량 등용 일화로 익숙한 고사성어다.
비슷하게 영어로는 Third time's the charm 이라는 말이 있다.

고사의 의미는 "유능한 사람을 대할 때는 그만큼의 정성이 필요하다."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과 의미로는 조조순욱을 세 번 찾아갔다고 해서 나온 삼방순욱이 있는데, 이는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민간전설로 나온 것이다. 순욱은 자기가 직접 조조에게 찾아갔다.

유비는 161년생, 제갈량은 181년생으로 둘의 나이는 20살이나 차이가 난다. 적벽대전이 발생한 시기를 생각하면 삼고초려는 제갈량이 26~27세 때 일어난 일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20대 중반에 명성을 날린 학자는 그래도 찾아보면 많지만[2],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사람을 현자라고 극진히 모시며 죽을 때까지 믿고 대우할 수 있는 사람이 동서고금을 통해서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 볼 문제다.

가끔식 삼초고려(...)와 헷갈리는 사람이 있는 듯 하다. 3초 고려 무한도전에서도 이와 관련된 드립이 나온 적 있다.

2 정사

이때 선주(유비)가 신야에 주둔하고 있었다. 서서가 선주를 만나보자 선주가 그를 중히 여겼다. 서서가 선주에게 말했다, “제갈공명은 와룡입니다.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보고자 하십니까?” 선주가 말했다, “군이 데리고 오시오.” 서서가 말했다, “이 사람은 가서 만나볼 수는 있으나 몸을 굽혀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장군께서 의당 몸을 낮추시고 방문하셔야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선주가 제갈량을 방문했고 세 번 만에 만날 수 있었다. - 촉서 제갈량전
신은 본래 하찮은 포의로 남양의 땅에서 논밭이나 갈면서 난세에 목숨을 붙이고자 하였을 뿐, 제후를 찾아 일신의 영달을 구할 생각은 없었사옵니다. 하오나 선 황제께옵서는 황공하옵게도 신을 미천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려 세 번씩이나 몸을 낮추시어 몸소 초려를 찾아오셔서 신에게 당세의 일을 자문하시니, 신은 이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황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그 뜻에 응하였사옵니다. - 출사표

정사에서는 사마휘가 유비에게 제갈량과 방통이 복룡과 봉추라는 말을 했고(양양기), 서서가 유비에게 제갈량은 와룡이니 직접 가서 등용할 것을 권유해 제갈량의 집에 세 번 찾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3 연의

답을 찾아 세 번 정성을 들이니, 마침내 와룡이 깨어나 천하삼분을 논하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서서유비를 떠나기 전에 제갈량을 추천하여, 유비는 곧 제갈량을 찾아간다. 처음 가을에 한 번 찾아갔으나, 그 때는 동자 한 명 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으며 제갈량은 여행을 떠났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말만 듣고 돌아와야 했다. 겨울에 다시 찾아갔으나 역시 제갈량은 못 보고 집에 찾아온 손님들과 장인 황승언, 아우 제갈균만 보고 떠났으며 이듬해 봄에 찾아가자 마침 제갈량이 집에 돌아와서는 낮잠을 자고 있어 기다린 끝에 겨우 제갈량을 설득하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밀당 종결자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슬퍼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후부터 제갈량의 과로 기질이 발동이 될 터라... 공밀레는 덤이다.

정사와의 차이점은

1.서서가 정욱의 계략으로 유비를 떠나기 전에 제갈량을 추천하는 것. 실제로 서서는 제갈량 임관 이후에도 유비 밑에서 일하다가 조조의 남하로 도주 중 어머니가 인질로 잡혀서 어쩔 수 없이 조조의 막하로 들어갔다.
2.제갈량 주변 인물들(황승언, 최주평 등)의 등장과 이들과 유비와의 대화가 추가되었다는 것.
3.관우장비가 같이 가며 장비가 실랑이를 벌일 뻔 한다는 것.
4.제갈량이 제갈균에게 천하가 평정되면 다시 돌아올테니 집과 논밭을 부탁한다고 말하는 것. 실제로 제갈균은 제갈량과 함께 유비에게 출사했다.

4 기타 창작물에서

드라마 삼국에선 33화에서 삼고초려가 나왔다(...). 노렸나? 그리고 여기선 장비가 빡쳐서 진짜 제갈량 집에 불까지 질러버렸지만[3] 정작 제갈량은 불이 꺼진 다음에야 일어났다.

조석마음의 소리에선 이때의 일로 유비에게 평생 갈굼당한다.(...)

이말년에 따르면 취업난 때문이라 카더라.

영웅 삼국지에선 특이하게도 유비가 3번 방문을 할 때마다 제갈량이 있다. 처음엔 관우와 장비까지 데려가서 유비 본인의 철학을 설파하며[4] 설득하지만 공명은 내키지 않는다. 등용은 실패했지만 공명에게 야채죽과 뱀고기등을 얻어먹고[5] 떠난다. 두번째는 유비가 다시 찾아와서 첫번째와는 달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엔 유비가 다른 말 없이 그저 도와만 달라고 부탁을 하고 결국 공명은 받아들인다. 나중에 유비는 이때의 공명을 보고 자신이 젊어서 돗자리나 짜면 인생을 썩히던 시절이 생각났다고 고백한다. 제갈량도 이 당시 자신은 평생 농사나 지어서 먹고 살 것인가 갈등을 하기도 했으니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구원한 셈이다.

정도전에서는 아예 정도전의 학당인 삼봉재를 세 번 때려부수는 짓을 한다. 주인공 정도전도 세 번 찾아온단 말은 들었어도, 세 번 부수는 건 처음 들어본다고 말할 정도. 참고로 실제로 있던 일이다.

파일:Attachment/삼고초려.jpg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이벤트로 등장. 위는 삼국지 10의 융중촌 일러스트.

함대 컬렉션공식 4컷 만화에서 언급되었다. 미묘하게 공감

레전드히어로 삼국전 26화에서 유비가 신선인 제갈량을 설득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1. 삼고초려의 일본식 표현이 바로 이 삼고지례의 변형인 삼고의 예(三顧の礼)이다. 之를 の라고 읽을 수 있으므로 사실상 같은 표현.
  2. 유명한 물리학자나 수학자들이 자신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을 세우는 시기가 딱 이때다. 뉴런의 절대적인 숫자는 20대 중반까지 늘어난다는데, 그와 관련이 있을지도.
  3. 2분 50초 부분.
  4. 나라에 황제가 중심이 돼야되고(굳이 정치를 안 해도 되지만 백성들이 사랑할 만한 구심점이 필요하기에) 이를 통해 백성들을 안심케 한다는 것. 미축 등이 이 이야기를 듣고 유비의 신하가 된다.
  5. 여기서 장비가 뱀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