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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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의 "출사표" 이벤트 CG[1]


84부작 삼국지 드라마에서 나온 출사표. 영상에서 나오는 출사표 본문은 대역이 아니라 제갈량 역 배우이자 서예가이기도 한 당국강이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드라마 신삼국에서 나온 출사표

今天下三分, 益州疲敝, 此誠危急存亡之秋也

이제 천하는 셋으로 정립되어 익주가 피폐하오니, 참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급한 때이옵니다.

1 개요

出師表

중어중문학과 학생들의 원쑤.

신하가 적을 정벌하러 떠나기 전에 황제에게 올리던 표문(表文). 여기서 표란 천자(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말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촉한의 재상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치고자 하여 촉제(蜀帝) 유선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전/후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편은 227년, 후편은 228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삼국지(三國志)》의 <제갈량전(諸葛亮傳)>, 《문선(文選)》 등에 수록되어 있다.

제갈량의 나라에 장래에 대한 걱정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주된 내용을 이루며 진정성이 절절히 담긴 문장으로 후세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출사표를 읽고 제갈량의 절절한 감정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전출사표는 이밀의 진정표와 함께 표문의 바이블같은 존재다. 옛말 중에서는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며, 출사표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 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명문장이다.[2]

그러나, 후출사표는 후대의 위작이라는 논란 중에 있다. 혹자는 제갈각북벌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후출사표를 작성했다고 하지만 아직 확실히 판증이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위작 의혹이 입증이 되지 않았기에 진짜로 여겨지고 있다.

서경의 이훈편에 기록된 이윤의 표문열명편에 나오는 부열의 글 역시 문장이나 내용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출사표이지만 무후의 출사표로 인해 잘 알려지지 못했다.

1.1 후출사표 위작설

후출사표는 이전부터 위작설이 나돌았는데, 특히 제갈각이 그 범인으로 꼽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후출사표는 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고 오의 기록에만 나온다. 배송지도 본전에 없는 이 글을 주석으로 달고 뭔가 석연치 않았는지 '이거 제갈량집에는 없는 얘기인데...'라고 사족을 덧붙였다.
  • 제갈각이 북벌을 준비하면서 반대파들에게 내세운 논지가 후출사표와 비슷하다.
  • 후출사표는 오의 대흥려 장엄이 기록하였다. 그런데 장엄은 제갈각의 일파였다.
  • 황제에 대한 태도가 제갈량의 다른 언행들과는 사뭇 다르다.[3]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유독 질책이 심하다. 유선의 재능이 어쨌든 간에 "한고조만 못하시면서 가만히 계셔선 안 됩니다"라고 황제에게 강하게 질책을 하는 모습은 어색하다.

그 외에도 전출사표보다 떨어지는 문장력(중언부언하거나, 억지 대구)과 지나치게 의기소침한 태도, 전출사표에서는 유선에게 올리는 당부가 있었으나 후출사표에서는 지나치게 예전 일을 들먹인 점, 조운이 졸한 연도는 229년인데 조운을 잃었다고 표현한 이 표는 228년 11월에 올린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 촉과 별 상관도 없는 유요와 왕랑의 강동 행적을 들먹인다는 점, 정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인명의 나열로 위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4]

1.2 전출사표

번역본은 위키문헌 전출사표에서 가져왔으며, CC-BY-SA 라이선스#로 배포된다. 원문은 저작자가 사망한지 100년이 넘어 퍼블릭 도메인으로 배포된다.

은 아뢰옵나이다.[5]

선황제 폐하께옵서는 창업하신 뜻의 반도 이루지 못하신 채 중도에 붕어[6]하시고, 이제 천하는 셋으로 정립되어 익주가 매우 피폐하오니, 참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급한 때이옵니다. 하오나 폐하를 모시는 대소 신료들이 안에서 나태하지 아니하고 충성스런 무사들이 밖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음은 선황제 폐하께옵서 특별히 대우해주시던 황은을 잊지 않고 오로지 폐하께 보답코자 하는 마음 때문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그들의 충언에 귀를 크게 여시어 선황제의 유덕을 빛내시오며, 충의 지사들의 의기를 드넓게 일으켜 주시옵소서. 스스로 덕이 박하고 재주가 부족하다 여기셔서 그릇된 비유를 들어 대의를 잃으셔서는 아니되오며, 충성스레 간하는 길을 막지 마시옵소서.

또한, 궁중과 부중이 일치 단결하여 잘한 일에 상을 주고 잘못된 일에 벌을 줌에 다름이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만일 간악한 짓을 범하여 죄 지은 자와 충량한 자가 있거든 마땅히 각 부서에 맡겨 상벌을 의논하시어 폐하의 공평함과 명명백백한 다스림을 더욱 빛나게 하시고, 사사로움에 치우치셔서 안팎으로 법을 달리하는 일이 없게 하시옵소서.

시중 곽유지비의, 시랑 동윤 등은 모두 선량하고 진실하오며 뜻과 생각이 고르고 순박하여 선황제께서 발탁하시어 폐하께 남기셨사오니, 아둔한 신이 생각하건대 궁중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그들에게 물어보신 이후에 시행하시면 필히 허술한 곳을 보완하는 데 크게 이로울 것이옵니다. 장군 상총은 성품과 행실이 맑고 치우침이 없으며 군사에 밝은지라 지난날 선황제께서 상총을 시험삼아 쓰신 뒤 유능하다 말씀하시었고, 그리하여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그를 도독으로 천거했사오니, 아둔한 신의 생각으로는 군중의 대소사는 상총에게 물어 결정하시면 반드시 군사들 사이에서 화목할 것이오며,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모두 적재적소에서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다할 것이옵니다.

전한 황조가 흥한 것은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하고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멀리했기 때문이오며, 후한 황조가 무너진 것은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가까이하고 현명한 신하를 멀리한 때문이오니, 선황제 폐하께서는 생전에 신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일찍이 환제, 영제 때의 일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하셨사옵니다. 시중과 상서, 장사와 참군 등은 모두 곧고 밝은 자들로 죽기로써 국가에 대한 절개를 지킬 신하들이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들을 가까이 두시고 믿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머지않아 한실은 다시 융성할 것이옵니다.

신은 본래 하찮은 포의로 남양의 땅에서 논밭이나 갈면서 난세에 목숨을 붙이고자 하였을 뿐, 제후를 찾아 일신의 영달을 구할 생각은 없었사옵니다. 하오나 선 황제께옵서는 황공하옵게도 신을 미천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려 세 번씩이나 몸을 낮추시어 몸소 초려를 찾아오셔서 신에게 당세의 일을 자문하시니, 신은 이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황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그 뜻에 응하였사옵니다. 그 후 한실의 국운이 기울어 싸움에 패하는 어려움 가운데 소임을 맡아 동분서주하며 위난한 상황에서 명을 받들어 일을 행해온 지 어언 스무 해 하고도 한 해가 지났사옵니다.

선황제 폐하께옵서는 신이 삼가고 신중한 것을 아시고 붕어하실 때 신에게 탁고의 대사를 맡기셨사옵니다. 신은 선황제의 유지를 받은 이래 조석으로 근심하며 혹시나 그 부탁하신 바를 이루지 못하여 선황제의 밝으신 뜻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끝에, 지난 건흥 3년(225년) 5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으로 깊이 들어갔었사옵니다. 이제 남방은 평정되었고 인마와 병기와 갑옷 역시 넉넉하니, 마땅히 삼군을 거느리고 북으로 나아가 중원을 평정시켜야 할 것이옵니다. 늙고 아둔하나마 있는 힘을 다해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대한 황실을 다시 일으켜 옛 황도로 돌아가는 것만이 바로 선황제 폐하께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드리는 신의 직분이옵니다. 손익을 헤아려 폐하께 충언 드릴 일은 이제 곽유지, 비의, 동윤 등의 몫이옵니다.

원컨대 폐하께옵서는 신에게 흉악무도한 역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부흥시킬 일을 명하시고, 만일 이루지 못하거든 신의 죄를 엄히 다스리시어 선황제 폐하의 영전에 고하시옵소서. 또한 한실을 바로 일으키는 데 충언이 올라오지 아니하거든 곽유지, 비의, 동윤의 허물을 책망하시어 그 태만함을 온 천하에 드러내시옵소서. 폐하께옵서도 마땅히 스스로 헤아리시어 옳고 바른 방도를 취하시고, 신하들의 바른 말을 잘 살펴 들으시어 선황제 폐하께옵서 남기신 뜻을 좇으시옵소서.

신이 받은 은혜에 감격을 이기지 못하옵나이다! 이제 멀리 떠나는 자리에서 표문을 올리여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씀을 아뢰어야 할 지 모르겠나이다.

臣亮言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殂 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피폐 차성위급존망지추야.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연시위지신 불해어내 충지지사 망신어외자 개추선제지수우 욕보지어폐하야.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恢弘志士之氣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성의개장성청 이광선제유덕 회홍지사지기 불의망자비박 인유실의 이색충간지로야.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궁중부중 구위일체 척벌장부 불의이동.
若有作姦犯科及爲忠善者 宜付有司 論其刑賞 以昭陛下平明之理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약유작간범과급위충선자 의부유사 논기형상 이소폐하평명지리 불의편사 사내외이법야.

侍中侍郞 郭攸之費褘董允等 此皆良實 志慮忠純 是以先帝簡拔 以遺陛下.
시중시랑 곽유지비위동윤등 차개량실 지려충순 시이선제간발 이유폐하.
愚以爲宮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然後施行 必能裨補闕漏 有所廣益.
우이위궁중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 연후시행 필능비보궐루 유소광익.
將軍向寵 性行淑均 曉暢軍事 試用於昔日 先帝稱之曰能 是以衆議擧寵爲督.
장군향총 성행숙균 효창군사 시용어석일 선제칭지왈능 시이중의거총위독.
愚以爲營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必能使行陳和睦 優劣得所也.
우이위영중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 필능사행진화목 우열득소야.

親賢臣 遠小人 此先漢所以興隆也.
친현신 원소인 차선한소이흥륭야.
親小人 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친소인 원현신 차후한소이경퇴야.
先帝在時 每與臣論此事 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
선제재시 매여신론차사 미상불탄식통한어환영야.
侍中尙書長史參軍 此悉貞良死節之臣 願陛下親之信之 則漢室之隆 可計日而待也.
시중상서장사참군 차실정량사절지신 원폐하친지신지 칙한실지륭 가계일이대야.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亂世 不求聞達於諸侯.
신본포의 궁경남양 구전성명어난세 불구문달어제후.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由是感激 遂許先帝以驅馳.
선제불이신비비 외자왕굴 삼고신어초려지중 자신이당세지사 유시감격 수허선제이구치.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閒 爾來二十有一年矣.
후치경복 수임어패군지제 봉명어위난지간 이래이십유일년의.

先帝知臣謹愼 故臨崩 寄臣以大事也.
선제지신근신 고임붕 기신이대사야.
受命以來 夙夜憂歎 恐託付不效 以傷先帝之明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수명이래 숙야우려 공부탁불효 이상선제지명 고오월도로 심입불모.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當獎率三軍 北定中原 庶竭駑鈍 攘除姦凶 興復漢室 還于舊都.
금남방이정 병갑이족 당장솔삼군 북정중원 서갈노둔 양제간흉 흥부한실 환우구도.
此臣所以報先帝 而忠陛下之職分也.
차신소이보선제 이충폐하지직분야.
至於斟酌損益 進盡忠言 則攸之褘允之任也.
지어짐작손익 진진충언 칙유지위윤지임야.

願陛下 託臣以討賊興復之效 不效則治臣之罪 以告先帝之靈.
원폐하 탁신이토적흥복지효 불효칙치신지죄 이고선제지령.
若無興德之言 則責攸之褘允等之慢 以彰其咎.
약무흥덕지언 칙책유지위윤등지구 이창기만.
陛下亦宜自謀 以諮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폐하역의자모 이자추선도 찰납아언 심추선제유조.

臣不勝受恩感激.
신불승수은감격.
今當遠離 臨表涕零 不知所言.
금당원리 임표체읍 부지소운.

1.3 후출사표[7]

선황제 폐하께옵서는 한나라역적과는 양립할 수 없으며, 황업은 천하의 한귀통이로만 안주할 수 없다[8] 하시어 신에게 역적의 토벌을 당부하셨나이다. 선황제께서 그 밝으심으로 신의 재주를 헤아리시니 역적을 벌함에 신의 재주가 얕고 역적은 강함을 아셨사옵니다. 그러나 역적을 치지 아니한다면 황업 또한 망할 터이니,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린다면 누구와 더불어 역적을 징벌하오리까. 이 때문에 신에게 탁고하시고 의심하지 않으신 것이옵니다. 신은 선황제 폐하의 명을 받은 이래 잠을 자도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으며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했사옵니다. 북쪽을 칠 생각을 하니 우선 남방부터 평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지난 건흥 3년(225년) 5월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 깊숙이 들어가 하루의 양식으로 이틀을 먹는 고생을 한 것은 신이 몸을 아끼지 않음이 아니라, 황업을 생각하오니 촉 땅에서 편안히 지내서는 천하를 통일할 수 없어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 선황제의 유지를 받든 것이옵니다. 그런데 따지기 좋아하는 무리들은 이것이 올바른 계책이 아니라고 하나이다. 이제 역적은 마침내 서쪽에서 고달파지고, 다시 동쪽에서 오나라의 군사들과 싸워 지쳐 있사옵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적이 피로할 때를 타 공격하라 하였으니, 지금이 바로 과감하게 나아갈 때라 사료되옵니다. 이에 신은 삼가 몇가지를 아뢰옵나이다.

옛날에 고황제 폐하께옵서는 밝으심이 해와 달과 같고 신하들의 재주가 연못처럼 깊었으나 험난한 일을 당하고 상처를 입으며 위태로움을 겪으신 뒤에야 비로소 평안해지셨사옵니다. 이제 폐하께옵서는 고황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신료들 또한 감히 장량진평같은 자가 없는데도, 힘을 들이지 아니하고 좋은 계책으로만 승리하여 가만히 앉아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니 이는 신이 이해할수 없는 첫 번째 일이옵니다.

또한 유요왕랑은 각각 주와 군을 다스리며 안위와 계책을 말하면 입만 열면 성인을 운운하고 벗속에는 의심이 가득하여 여러 어려움 앞에서는 겁내고 두려워 하였사옵니다. 그리하여 올해도 싸우지 않고 다음해에도 싸우지 아니하다가 마침내 손책이 앉아서 강동을 차지하였으니 이는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두 번째 일이옵니다.

조조는 지모와 계책이 남달리 뛰어나 그 용병술은 손자와 오자를 닮았으나 남양에서 어려움에 처하고 오소에서 험한 일을 겪고 기련에서 위태로움에 처했으며 여양에서 핍박을 당하고 북산에서 거의 패배하고 동관에서는 죽을 뻔한 뒤에야 비로소 한때나마 거짓으로 천하를 평정했는데도 재주도 미약한 신하들이 어찌 위태로움을 겪지 아니하고 천하를 평정하려 하니 이는 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 번째 일이옵니다.

조조는 다섯번이나 창패를 치고도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였고 네번이나 소호를 건넜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이복을 등용하였으나 오히려 배반당하고 하후연에게 일을 맡겼으나 하후연이 패망하였사옵니다. 선황제 폐하께서 항상 뛰어난 인물이라고 칭찬하신 조조조차도 이렇게 실패하곤 하였는데 하물며 신같은 아둔한 사람이 어찌 쉽게 이기기만 바라겠나이까. 이는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네 번째 일이옵니다.

신이 한중에 온지 이제 1년 남짓 되었사오나, 그 동안 조운, 양군, 마옥, 염지, 정립, 백수, 유합, 등동 등 70여명의 곡장과 둔장을 잃어 선봉장으로 앞장설 사람이 없사오며 종수, 청강, 산기, 무기 등 1천여 명을 잃었사오니 이는 모두 수십년 동안 사방에서 모아온 정예병이지 익주 한 주에서 나온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만약 또다시 몇해를 보내면 셋 중 둘을 잃게 될 터이니 그때는 무엇으로 역적을 도모하겠사옵니까. 이는 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섯 번째 일이옵니다.

바야흐로 백성은 궁핍하고 군사들은 지쳐 있사오나 대사를 그만둘 수 없사옵니다. 그만둘 수 없다면 지키고 있는 것이나 나아가서 싸우는 것이나 그 노고와 비용은 같은데도 속히 도모하지 아니하고 오직 한 주에만 머물러 역적과 더불어 오랫동안 대치하고 있사오니 이는 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여섯 번째 일이옵니다.

무릇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나 천하의 일인지라, 옛날 선황제 폐하께옵서 초 땅에서 패하셨을 때 조조는 손뼉을 치며 천하는 평정되었다고 좋아했사옵니다. 그러나 나중에 선황제께옵서는 동쪽의 오월과 손을 잡으시고, 서쪽으로는 파촉을 취하고 군사를 일으켜 북쪽을 쳐서 하후연의 목을 베셨사옵니다. 이는 바로 조조의 실수로 한나라의 대업이 이루어지려 하였사오나 동오가 맹약을 어겨 관우를 죽이고 선황제께옵서는 자귀에서 패하시오니 조비가 황제를 참칭했사옵니다. 이렇듯 일은 미리 헤아리기가 어렵사옵니다. 이제 신은 엎드려 몸을 바치고 정성을 다하여 나라를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할 뿐이오니[9], 일의 성패와 이해에 대하여서는 신이 미리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 故託臣以討賊也 以先帝之明 量臣之才 固知臣伐賊 才弱敵强也 然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 孰與伐之 是以託臣而弗疑也 臣受命之日 寢不安席 食不甘味 思惟北征 宜先入南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幷日而食 臣非不自惜也 顧王業不可偏安於蜀都 故冒危難以奉先帝之遺意 而議者謂爲非計 今賊適疲於西 又務於東 兵法乘勞 此進趨之時也 謹陳其事如左

高帝明幷日月 謀臣淵深 然涉險被創 危然後安 今陛下未及高帝 謀臣不如良平 而欲以長策取勝 坐定天下 此臣之未解一也
劉繇 王朗各據州 論安言計 動引聖人 群疑滿腹 衆難塞胸 今歲不戰 明年不征 使孫權坐大 遂幷江東此臣之未解二也

曹操智計 殊絶於人 其用兵也 彷彿孫吳 然困於南陽 險於烏巢 危於祁連 逼於黎陽 幾敗北山 殆死潼關 然後僞定一時耳 況臣才弱 而欲以不危而定之 此臣之未解三也

曹操五攻昌覇不下 四越巢湖不成 任用李服 而李服圖之 委任夏侯 而夏侯敗亡 先帝每稱操爲能 猶有此失 況臣駑下 何能必勝 此臣之未解四也

自臣到漢中 中間期年耳 然喪趙雲 陽群 馬玉 閻芝 丁立 白壽 劉合 鄧銅等 及曲長屯將七十餘人 突將 無前 賓 靑姜 散騎 武騎一千餘人 此皆數十年之內 所糾合四方之精銳 非一州之所有 若復數年 則損三分之二也 當何以圖敵此臣之未解五也

今民窮兵疲 而事不可息 事不可息 則住與行 勞費正等 而不及早圖之 欲以一州之地 與賊持久 此臣之未解六也

難平者 事也 昔先帝敗軍於楚 當此之時 曹操拊手 謂天下已定 然後先帝東連吳越 西取巴蜀 擧兵北征 夏侯授首 此操之失計 而漢事將成也 然後吳更違盟 關羽毁敗 秭歸蹉跌 曹丕稱帝 凡事如是 難可逆見 臣鞠躬盡力 死而後已 至於成敗利鈍 非臣之明所能逆竟睹也

1.4 기타 창작물에서


삼국지 공명전의 출사표 동영상

Fate 시리즈에서는 제갈공명의 보구다.

1.5 기타

개념이 없는 관광객이 전출사표 비문을 반달하는 충격과 공포사건이 2015년에 일어났다. 이 인간은 출사표 비문뿐만 아니라 다른 유물도 많이 반달했다고(...). 중국 내외부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어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다.

2015년 10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한 학생이 출사표의 형식을 빌린 표문을 지어 현 정권 및 행정부를 풍자했다.

2 노래

2.1 리쌍의 노래

2.2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 한국판 ED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 한국판 닫는 노래.

  • 노래 : 유정석 / 작사 : 신동식 / 작곡, 편곡, 프로그래밍 : 박정식
  • 기타 : 서민영 / 베이스 : 박한진 / 오르간 : 신현수 / 코러스 : 김국찬
  • 녹음 엔지니어 : 임승엽 / 믹싱 엔지니어 : 이필호 / 녹음실 : B01 Studio, ARSNOVA Studio

투니버스 애니송에서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유정석씨의 투니버스 데뷔작. 유정석-신동식-박정식 이렇게 3명이 다시 대대적으로 히트시킨 것이 바로 질풍가도.

풀버전은 WE 2집에 수록되어 있다.
  1. 왼쪽에 있는 남자는 장완 오른쪽에 있는 두 남자들은 위연, 조운 그리고 표를 읽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거라 믿는다.
  2. 이 문장은 원래 한구절이 더 있는데, 제십이랑문을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우애가 없는 자이다"라는 문장이다. 제십이랑문은 당나라의 한유가 사촌동생인 한성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문장으로 출사표와 진정표가 표문의 바이블이라면 이 문장은 명문(銘文)의 바이블이다.
  3. 유선이 암군에 가깝다고는 해도, 제갈량은 유선을 언급할 때마다 총명하다, 배우기 좋아한다는 식으로 칭찬 일관이었고 고쳐야 할 점이 있어도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하물며 이런 표문에서야...
  4. 다만 오나라에서 쓰였다기에는 손책을 들먹인 문제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손권의 황제 즉위 후 손책에 대한 대접이 황제 추존이 아니라 장사환왕 추존으로 한단계 낮은 수준이라 비판받기도 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5. 신하는 군주에게 자신의 성을 붙여 표문을 올릴 수 없다.
  6. 한자로 崩殂라고 쓰며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단어다.좀더 자주쓰이던 표현은 崩御(붕어)이며 동아시아권이 대부분 왕정을 폐지해서 두 단어 다 좀처럼 보기 힘든 단어인데, 최근에는 1989년 히로히토 일왕이 죽었을 때, 일본의 언론에서 崩御(붕어) 단어를 사용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신문을 읽는 일본인 독자들은 붕어가 무슨 뜻이냐고 어색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7. 번역본은 위키문헌 후출사표에서 가져왔으며, CC-BY-SA 라이선스#로 배포된다. 원문은 저작자가 사망한지 100년이 넘어 퍼블릭 도메인으로 배포된다.
  8. 이것이 2010년 신삼국에선 촉 소속 사람이라면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입이 닳도록 외치는 슬로건으로 등장하는 "한적불양립, 왕업불편안"이다. 한의 원수인 위를 반드시 쳐 없애야 하며, 촉의 영토가 작기 때문에 촉은 위를 쓰러뜨리지 않고 현상에 안주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아 촉의 이데올로기를 단 한 문장으로 아우르는 명문이라 할 수 있다.
  9. 여기서 나온 말이 제갈량을 상징하는 말 중 하나인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膵 死而後已)'. 뒷날 강희제는 이 말에 엄청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한 신하가 "제갈량의 이 말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자세이지, 임금이 가질 자세는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강희제는 "짐은 하늘을 섬기는 신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