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계

1 개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직계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2 명칭의 유래

김영삼이 살아 생전에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1]에 거주했기 때문에, 1980년대 들어서 언론에서 상도동계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김영삼은 1950년대 정치에 입문해서 1970년대 부터는 민주화를 외치는 야당의 중진의원이자 대통령 후보급으로 성장했지만, 당시에는 김영삼계 혹은 김영삼의 호를 따서 거산(巨山)계라고 했지 상도동계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았다. 경쟁관계인 동교동계 역시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는 김대중계 혹은 김대중의 호를 따라서 후광계라고 했지 동교동계라는 표현은 없었다.

상도동계 혹은 동교동계라는 표현은 신군부(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김영삼, 김대중과 그 직계 정치인들을 모조리 정치활동규제로 묶어서 제도정치권에서 추방하면서 생겼다.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이들은 재야 세력들과 함께 민주화 투쟁에 나섰는데, 독재정권의 언론통제에 묶여서 김영삼, 김대중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쓰기 부담스러워하던 언론사들이 이리저리 돌려서 쓰면서 각자의 거주지에서 따온 상도동계, 동교동계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YS, DJ, JP 등 정치인의 이름이 아니라 이니셜로 보도하는 관행도 역시 정권에 찍혀서 쫒겨난 야당정치인들을 직접적으로 쓰기 힘들어하던 언론사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낸 것이다.

3 활동

이들은 군사독재 정권 시기에 일치단결해서 김영삼의 집권과 민주화를 위해서 뛰었다. 3당합당으로 집권당으로 변신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김영삼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해서, 민주자유당 내에서 소수파의 한계를 딛고 결국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 김영삼이 대통령 퇴임과 함께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 YS 세력도 이미 한나라당에서 이회창이 당권을 장악한 후라 상도동계 정치인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서 흩어졌다. 정치세력으로선 오래전에 사라졌고, 다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2016년 현재 정치권에 현역으로 활동하는 인물도 거의 없다.

참고로 1990년 3당 합당 당시 상도동계의 막내가 바로 부산에서 더민주 깃발로 당선된 김영춘, 박재호 제 20대 국회의원이고 그 윗세대가 바로 새누리당 전 대표 김무성이다. 즉, 김무성 세대는 대부분 민자당 계열로 흡수됐고 다른 동교동계와 오래 지내지 않은 김영춘 세대[2] 는 민자당 계열로 흡수됐다가 민주당 계열로 이적하거나 바로 민주당 계열로 흡수되었다.

4 구성

상도동계의 보스는 당연히 김영삼이고, "좌동영 우형우"라고 김동영최형우(정치인)가 중간보스급이었다. 그외에 서석재, 김덕룡, 강삼재 그리고 비교적 늦게 가담한 서청원 등이 중진급이었다.

상도동계의 대다수는 김영삼과 같은 부산, 경남 지역출신이였다. 당장 위에 언급된 중진급을 보면 김동영-경남 거창, 최형우-울산, 서석재-경남 창원, 강삼재-경남 마산 등으로 군사정권시기부터 부산 경남 지역을 근거로 활발히 활동했고, 1980년 5공화국 시기에 가면 상도동계가 야당내에서 부산, 경남 지역을 사실상 독점하게 된다.[3] 문제는 3당합당으로 이들이 통채로 보수세력에 편입되면서 영남에는 개혁야당 세력이 사실상 사라지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4][5]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서 김영삼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김덕룡이 유일한 호남출신이다.

그 외에, 상도동계로 분류되진 않지만 김영삼이 정계로 끌어들이며 그의 밑으로 들어와 정치인으로 입문한 사람들은 'YS키즈' 라고 불리며, 손학규, 김문수, 이재오, 이회창, 노무현, 이명박, 홍준표 등이 대표적이다.[6] 김영삼의 당에 그대로 남았던 사람이 대부분이라 대다수는 한나라당~새누리당 당적을 가졌고(손학규는 후에 탈당해서 민주당 계열로 갔다.), 노무현은 민주자유당 합류 거부 후, 김대중의 세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5 동교동계와의 관계

군사독재 정권 시절부터 민주화 이후까지 정말 오랜 기간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동교동계와는 그야말로 애증(愛憎)의 관계였다. 두 세력은 독재정권 시기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으나,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양김씨가 야권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영원히 갈라서게 되었다. 이후로는 십수여년간 서로 철천지 원수마냥 처절하게 싸웠다. 그러나 이제는 양쪽다 서로 모시던 보스가 각자 대통령도 한번씩 한 다음에 세상을 떠낫고, 이제는 다들 늙어서 대부분이 정계에서 물러났기 때문인지 그냥저냥 모여서 친목회도 하는 등 무난하게 지내는듯 하다. 정치세력으로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잔존 세력도 김영삼 세력은 한나라당 당권을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가 차례로 장악하며 뺏기고[7]김대중 세력은 노무현, 문재인 에게 뺏기고 이제 흩어졌다.[8][9] 다만 김대중 세력의 일부는 현재 안철수에게 편입되긴 했다.

6 주요인사

7 여담

추가바람

8 함께보기

  • 김영삼
  • 동교동계 - 라이벌로 매우 유명했으나 양쪽이 이제 은퇴한 지금은 서로 화해한 상태로 알려져있다.
  • 친노 - 김영삼이 노무현을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라, 노무현의 정치행적은 동교동계와 관련있지만 뿌리는 이쪽과 매우 연관이 깊다.
  • 친이 - 김영삼이 이명박을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며, 이명박을 밀어준 사람이기도 한데다 김덕룡, 강삼재 등의 친이계 일부 인사들은 김영삼 세력이기도 했다.
  • 친박 - YS 본인이 박근혜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 친이만큼은 아니지만 김무성과 서청원처럼 김영삼 세력 중 박근혜 지지로 들어간 세력이 있기도 했다. 김무성은 현재 친박을 벗어난 상태.
  1. 김대중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에 거주하였다.
  2. 사실 김무성의 바로 밑 세대는 정병국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병국의 세대까지가 민자당으로 간 것이다.
  3. 반대로 호남지역은 동교동계가 완전 독점한다.
  4. 부산, 경남 지역에서 3당합당에 반대하면서 김영삼과 갈라진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1945) 등은 애초에 상도동계가 아니다. 이기택은 1960년대부터 야당에서 활동한 중진급으로 친김영삼이긴 해도 김영삼의 부하는 아니었고, 노무현은 김영삼의 추천과 상도동계의 조직력으로 국회의원이 되긴 했지만 상도동계보다는 재야진보세력에 가까웠다. 김정길도 야당 시절부터 상도동계 주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5.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부산,경남 지역에서 야당 후보들의 득표력은 잘해야 10%수준이었다. 최근 3~40%까지 올라온 것은 바로 부산지역 486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친노 간판을 쓴 것과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운동으로 노동자계급표가 결집하면서부터다.
  6. 다만, 이회창은 이후 한나라당에서 김영삼을 내쫓아서 그런지 사이는 나쁘다.
  7. 일부는 새로운 당권을 가진 세력으로 그대로 들어가서 중책을 맡았다. 친이계로 들어간 정병국, 홍준표나, 친박계로 들어간 김무성, 서청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8. 동교동계가 힘을 잃은 것은 열린우리당 분당, 결정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의 여파로 새천년민주당이 10석도 못 얻는 대패를 당한것이 원인이다.
  9. 민주당에서 구태정치인으로 지목되었던 일부 동교동계 출신의 당내 원로(한화갑, 한광옥, 김경재)들이 그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당으로 이적하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