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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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德龍
1941년 4월 6일 ~

1 생애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관료이다. 종교개신교이다.

1941년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신지리에서 태어났다. 서울특별시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 재학 중 6.3 항쟁을 주도하였고 서울대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김영삼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상도동계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때 여러 차례의 투옥, 정치규제 등을 겪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삼당합당 동참하여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7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인 2008년까지 해당 지역구에서 내리 5선을 하였다.[1] 자신의 비서를 지냈거나 자신의 밑에 있었던 인물로 안희정, 김영춘, 이성헌 등이 있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정무제1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때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고 건의하다가 김영삼의 눈 밖에 났다.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정무제1장관에서 물러난 이후 1994년 민자당 서울시지부장 그리고 1995년 민자당 사무총장에 발탁되어 난산끝에 여야합의로 지방자치제의 완전한 정착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2] 민자당이 지방선거에서 대패하면서 사무총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96년 총선에서 당선된 직후 그해 말까지 정무1장관에 다시 기용되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한국당에서 대권후보 9룡[3] 중 한 명으로 불렸으나 경선에서 민주계의 단합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4위에 그쳤다. 이후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만든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조순이회창 총재체제에서 당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이회창 총재가 개혁이란 명분으로 단행한 공천학살에서 계파보스로는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계파보스를 탈락시키고 계파원들이 대부분 생존했던 다른 계파와는 달리 소위 DR계는 거꾸로 계파원들이 대부분 공천에서 탈락했다. 16대 총선 직후 실시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총재 후보로 나섰으나 이회창의 벽을 넘지 못하고 2위에 그쳤고 이회창 총재가 지명직 부총재를 제안했으나 거절, 평당원으로 돌아갔다. 이후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이후 실시된 임시전당대회에 대표 후보로 나섰으나 4위에 그쳤다. 한편, 2002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2004년 총선에서 탄핵 역풍을 뚫고 5선에 성공, 17대 국회 제1야당 첫 원내대표에 선출되었다. 그가 역임했던 당직 중에서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은 원내대표가 처음이자 마지막. 그러나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판결에 따라 열린우리당이 후속입법으로 추진한 행정도시 특별법이 통과됨에 따라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한·중 의원협의회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명박을 지지하였다.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의 지휘부였던 6인회[4]의 일원으로 대선 승리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약칭 민화협) 상임의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강삼재, 문정수, 김정수, 박희부, 심완구, 이신범, 노병구, 최기선 등 같은 옛 김영삼계 정치인 중 일부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최하려던 민주당 창당 60주년 행사에 대해서는 김대중계 정치인이 아닌 친 노무현계가 주도하는 행사이므로 불참하겠다고 하였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서초구 을)통일민주당-당선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서초구 을)민주자유당-당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서초구 을)신한국당-당선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서초구 을)한나라당-당선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서초구 을)한나라당-당선
  1. 그 뒤를 이은 제18대 서초 을 지역구 국회의원이 바로 고승덕이다.
  2. 당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을 놓고 여야가 팽팽히 맞섰는데 민자당은 정당공천 배제를 민주당은 정당공천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황낙주 국회의장이 한남동 의장 공관에 연금되고 김기배 국회 내무위원장이 민주당 의원들에 이끌려 속초로 강제동행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결국 여야의 합의로 기초단체장만 정당공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3. 나머지 8명은 이회창, 이수성, 이홍구, 박찬종, 최형우, 이인제, 이한동, 김윤환.
  4. 이명박, 이상득, 최시중, 이재오, 박희태, 김덕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