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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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命潤
1924년 5월 3일 ~ 2016년 2월 1일

1 개요

대한민국변호사, 정치인이다. 종교불교다. 위로는 형 김광준 전 국회의원이 있고 아래로는 매제 오준석(김광준, 김명윤의 여동생 김명옥의 남편) 전 국회의원이 있었다. 김영삼 정부 때 공보처 차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이원종의 이모부이다.

1924년 강원도 울진군에서[1] 태어났다.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주오 대학에 진학하였으나 8.15 광복 후 자퇴하고 이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한편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4년 만주국 고등고시에 합격하였다. 1945년에 귀국한 후 조선인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2년 검사로 임용되었다. 1958년 검사에서 사임하고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가가 있는 강원 강릉시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형 김광준도 본가가 있는 강원 울진군 선거구에서 같은 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같은 국회의원 임기 내에 모두 형제 국회의원이 탄생하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 변호사 업무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강원도 강릉시-명주군-삼척군(동해시 북평지구, 태백시 분리 전)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효영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이철승 대표최고위원과 관계가 좋지 않던 차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으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에 신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효영 후보와 친여 무소속 김진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선거 후 신민당에 복당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5년 3월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는데 전두환 정권 동안 변호사 업무에 전념하였다.

1988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김영삼통일민주당 총재직에서 잠시 물러나자 통일민주당 부총재로서 총재권한대행이 되었다. 같은 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 종로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종찬 후보에게 패하였다. 제정구한겨레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야권 성향의 표를 분산하였다는 분석이 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에 속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역진흥공사 이사장에 임명되었다. 1993년 김문기 국회의원의 구속으로 치러진 강원도 명주군-양양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최욱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당시 경향신문 기사 1면 제목이 김명윤 낙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0년 이후 한나라당, 새누리당 상임고문을 지내다 2016년 2월 1일, 향년 93세로 별세하였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60제5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강릉시)민주당-당선
1973제9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도 강릉시-명주군-삼척군(동해시 북평지구, 태백시 분리 전))신민당당선[2]
1978제10대 국회의원 선거무소속낙선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통일민주당낙선
19931993년 재보궐선거 (강원도 명주군-양양군)민주자유당-낙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신한국당-당선
  1. 출생 당시기준으로는 강원도.
  2. 민주공화당 김효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