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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廷禧
1886년 00월 00일 ~ ?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6선 국회의원이자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서범석이 그의 아들이다. 호는 농천(農泉) 또는 묵재(默齋)이다.
1886년 경기도 포천현에서 태어났다. 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1896년 독립협회에서 활동하였다. 1906년 1월 나철 등과 대한신민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의 암살을 계획하였다. 1907년 2월 권중현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진도군에 5년간 유배되는 형을 선고받았다가 1910년 풀려났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사립 광주법학강습소를 창립하여 법학 교수를 지냈다. 1915년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만주에 갔다가 1918년 귀국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광주 소작인연합회 집행위원장, 경성 조선노농총동맹 총무부 집행위원장, 조선교육협회 평의원, 신간회 조직부장 등을 지냈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한국민주당 중앙감찰위원, 신탁통치 반대 전국대회 집행위원장, 반탁독립투쟁위원회 지도위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본부 중앙상무집행위원 등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포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윤성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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