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걸 | ||||||||||
찬후(酇侯) 소하 | 유후(留侯) 장량 | 회음후(淮陰侯) 한신 |
"무릇 군영의 장막 안에서 계책을 마련하여 천리 밖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내가 장량만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위무하며, 군량을 준비하여 그 공급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蕭何)보다 못하고, 백만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항상 이기고, 성을 공격하면 반드시 함락시키는데는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실로 인중호걸(人中豪傑)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세 사람을 능히 부릴 줄 알았기 때문인 것이다. 항우는 그나마 있었던 범증(范曾) 한 사람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記) 中 |
서한삼걸(西漢三杰). 한삼걸(漢三杰), 한초삼걸(漢初三傑), 건한삼걸(建漢三傑)등의 바리에이션이 있다. 어차피 의미는 다 똑같다 언급된 모든 바리에이션으로 위키 내에서 검색해도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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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걸과 유방 |
중국 진말한초(秦未漢初) 시대, 전한(西漢)을 건국할 수 있게 고조 유방(劉邦)을 도운 세 명의 우주대괴수급 먼치킨 신하인 소하, 장량, 한신을 일컫는 말. 한나라 건국에 있어서 최고의 공적을 세운 공신들이자, 기나긴 중국 역사를 통틀어서도 불세출의 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얼마나 먼치킨스럽냐면, 후대에 있어 각각 "중국사를 대표하는 책략가", "중국사를 대표하는 재상", "중국사를 대표하는 명장"의 전형으로 손꼽힐 정도. 이들의 포스가 워낙 대단해서, 훗날 여러 왕조의 건국 공신들의 활약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보통 이 세명이 같이 있었던 전한의 개국공신들을 최고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세명은 단순히 먼치킨 능력자 세명이 모인 부분뿐만 아니라, 각자 '대책략가' '명재상' '천하명장' 같이 역할 분담이 확연하게 나뉘는 부분이 묘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단순히 능력을 떠나 이 세명의 인간이 뿜어내는 개성 역시 대단히 다채로운데, 멸망한 조국의 원한을 갚으려는, 옛 귀족 출신의 미녀 같은 외모의 초천재 참모 라든가, 일개 고을의 아전으로 마을 잔치의 셈이나 보다가 천하를 좌지우지하게 된 대재상 라거나, 남의 가랑이를 기어가고 밥을 빌어먹고 살던 찌질이에서 수십만 대군 위에 서게 되는 대원수 이라든가, 웬만한 소설보다도 강렬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로 그들의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로 인해 수없이 회자되었다.
유방(劉邦) |
당연히 한명만 있어도 치트키 소리가 나오는 인물들을 부리게 된 군주 유방에 대해서 "희대의 운빨"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뛰어난 인재가 있어도 그들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유방 역시 자신이 천하를 쥘 수 있게 된 것은 "그들 세 사람을 능히 부릴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으며, 반면에 유방의 적이었던 항우는 범증 한 사람조차 제대로 부리지 못했다.
이런 점 때문에 진짜 최고의 먼치킨은 이들이 아니라 이들이 제때 활약할 수 있게 조율한 유방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2 간략 소개
2.1 소하
생몰년도 | ? ~ BC 193 |
이름 | 소하(蕭何) |
작위 | 찬후(酇侯) |
시호 | 문종후(文終侯) |
출생지 | 패현(沛縣) 풍읍(豊邑) |
중국사를 대표하는 재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진(秦) 시대에도 관직에 있었으며, 이후 유방(劉邦)의 막료(幕僚)로 그의 천하통일에 공헌했다.
이 과정에서 개국 공신 서열 1위에 인정받은 인물. 즉 공식적으로 한나라에서 한제국의 통일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인정했다는 말이다. 이때 찬후(酇侯)로 봉해지고 식읍 7,000호를 하사받았다. 상국에 임명되고 "구석"을 수여받아 한나라 역사에서도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시호인 문종(文終)과 합칭해 찬문종후(酇文終侯)라고도 한다.
전쟁 중에 자주 얼굴을 내보이는 장량, 한신과는 달리 소하는 전쟁이 벌어지는 내내 후방에 머물러 있어 언급이 적다. 그러나 행정제도를 정비하고 전쟁의 핵심인 보급에 주력한 소하의 공 역시 어마어마하다.
소하는 그런 영웅들의 화려한 전설 뒷편에서 그 영웅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묵묵히 마련해주었다. 삼진을 평정한 한신의 공에는 파와 촉에서 물자를 끌어올린 소하의 공훈이 있었다. 유방은 팽성의 싸움에서 유례없는 대패를 당했으나 소하의 보급에 힘입어 궤멸적인 패배를 극복해 내었다. 유방과 항우 광무 대치 당시, 유방의 군량은 그래도 여유가 있었지만 항우의 초군은 빈곤에 시달렸다. 항우는 그 이전까지 유방을 수차례 격파했지만, 소하의 보급이 이어지면서 결코 유방에게 결정타를 먹이지 못했다.[1] 한번 항우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분명 상대방을 몇번이나 반실신상태로 관광 보내놓는데 그때마다 회복해서 좀비마냥 다시 돌아오니. (...)
또한, 전쟁 중 본거지를 맡고 있는 그 막대한 역할때문에 군주 유방에게 여러 차례 의심받기도 했지만, 뛰어난 처세술로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후손들도 매우 대우받았는데, 사기 소상국세가에서는 소하가 죽고 난 후에도 황실이 소하의 후손을 찾아 작위를 잇게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소하가 이룩한 공훈은 다른 공신들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높고 컸기 때문이었다.
2.2 장량
생몰년도 | ? ∼ BC 186 |
이름 | 장량(張良) |
자 | 자방(子房) |
작위 | 유후(留侯) |
시호 | 문성후(文成侯) |
중국사를 대표하는 책략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본래 한(韓)의 귀족 출신으로, 유방의 막료로 활약하며 그의 천하통일에 공헌했다. 이 공으로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다른 한삼걸 중 소하(蕭何)가 행정업무에 주력하고, 한신(韓信)이 전쟁에 주력할 때, 장량은 유방의 브레인으로 활약했다. 즉 초한전쟁 중에 가장 유방과 오랜시간 같이 있으면서 그의 결정 하나하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장량이라는 것. 때문에 어떤 조직보스의 가장 믿음직한 측근을 "(그 사람의)장자방" 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한삼걸 중 유방에게 가장 신임 받았던 인물 이 바로 장량이다. 한신은 그야말로 당해버렸고 소하는 여러차례 의심도 받았지만 장량은 그런 것도 없었다. 유후세나 사기의 여러 언급에서 장량의 제안을 유방이 거절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거절은 커녕 심지어 장량의 말을 듣고 고민했다는 식의 기록도 거의 없다. 이처럼 장량에 대한 유방의 신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유방은 장량에게 무려 3만 호의 식읍을 주려고 했으나, 장량은 이를 거절했다.
정치가와 군인이라는 비교적 현실감 있는 모양의 다른 두명에 비해 장량은 신선을 만났다거나, 벽곡을 먹으며 생활했다는 등 묘한 구석이 많다.
2.3 한신
생몰년도 | ? ~ BC 196 |
이름 | 한신(韓信) |
작위 | 회음후(淮陰侯) |
출생지 | 강소성 회음(淮陰)[2] |
중국사를 대표하는 명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과하지욕(胯下之辱)의 고사를 만들었고,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는 표현을 받았으며, 전한 건국 이후 최초에 봉해진 7명의 이성왕(異姓王) 중에 한명이었다. 중국의 역사는 기나긴 수천년에 달하며, 무수하게 많은 나라와 수많은 영웅호걸이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신은 그런 중국 역사상 최고 중의 최고로 손꼽히는 명장이다. 모든 지휘관들은 각자 상황이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니 일괄적인 비교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가장 뛰어난 명장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수없이 손꼽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한신은 단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시작하여 여섯개의 나라를[3] 무너뜨렸으며, 두 명의 왕을 사로잡았고, 한명의 왕을 참살했다. 그 기간은 불과 몇년에 불과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기동전, 배수진, 우회공격, 전면전 등 온갖 방식의 전투 방법을 총동원 했고, 다 이겼다.
그러나 장량과 소하와는 달리, 전쟁터에서의 귀신같은 면모에 비해 처세술은 빵점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유방과는 여러차례 대립하는 면모를 보였지만, 결정적일 때마다 머뭇거린다던가 혹은 유방에게 선수를 먼저 빼앗기면서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그 엄청난 공적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고,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가 널리 퍼졌으며[4] '토사구팽' 이라는 고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3 한삼걸이 등장하는 미디어믹스
워낙 역동적인 인물들이었고 일단 초한쟁패기 자체가 매력적인 시대이기에 각종 미디어믹스에서 자주 나왔다. 그러나 보통 항우와 유방이라는 양대주인공의 대립이 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기에, 의외로 한삼걸의 비중이 모두 강하게 묘사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몇몇 작품들 중에서는 거의 진주인공 비중을 가지고 있는 한신은 제외.
3.1 영상 매체(사극, 영화)
- 서초패왕 : 전체적으로 픽션이 중심인 이 영화에서는 소하, 장량, 한신 모두 쩌리나 다름없는 단역 정도로 나온다.
3.2 만화, 게임
- 고우영 초한지 : 소하는 단역 정도의 비중. 장량 같은 경우는 한왕 신과 한신의 일을 고우영 작가가 혼동하는 바람에 한나라의 복수를 위한 장면 대부분이 한신에게 몰려갔으며, 한신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진주인공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본작에서 유방은 거의 인간 쓰레기 로 나오고, 항우의 경우 동정할만은 하지만 결점 많은 인간으로 묘사되는데 비해, 한신은 거의 초인급 인물로 묘사된다.
- 항유기 : 장량은 범증도 씹어먹은 게임 내 최강의 군사. 한신의 경우 빵빵한 능력치를 자랑하지만 시나리오 1을 빼면 아예 독자세력이 되어 고를 수도 없다. 반면에 소하는 상대적으로 안습한 능력치를 보여준다.
- 적룡왕 : 전체적으로 유방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만화라 한신의 비중도 다른 초한지 관련 컨텐츠에 비해 적고, 소하 같은 경우 아무래도 만화다 보니 후반에는 거의 공기 수준의 비중으로 전락한다. 반면 장량은 직접 칼을 들고 항장과 검무를 추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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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 | 장량 | 한신 |
- 삼국지 시리즈 : 이쪽은 고대무장로 등장.[5] 한신은 통솔이 제일 높고, 장량은 지력이 제일 높고, 소하는 정치가 제일 높다.[6] 무력이 제일 높은 장수가 항우인 점과 매력본좌는 이 분인 점을 감안하면 소하를 제외하고 각 분야별 능력치 100을 마크하는 최강자가 모두 초한지에서 나오는 셈.
-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 : 소하가 후반 비중이 약해지긴 하지만 대체로 한초삼걸에게도 상당부분 비중이 배당된다. 또한 작가만의 인물에 대한 해석도 색다른 편이다. 소하의 경우는 행정, 민치가 삶의 도락이고 장량의 전략은 뛰어나지만 너무 현란해 소하의 행정업무가 마비된다던지 한신은 본래 겁쟁이로 겁나는 상황과 긴장감을 즐겨 그것을 토대로 다양한 군략을 전개한다는 신선한 캐릭터성을 선보인다.
-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항우와 유방 : 기존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소하가 오리지널 생김새인데 반해 장량은 전작 삼국지의 제갈량, 한신은 조조, 유방은 유비라는 의미심장한 외형을 띄고 있다.
- ↑ 이렇게 된 것은 소하가 유방의 함양 점령시 과거 진이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모아 놓은, 아방궁의 서고에 있던 천하의 정보를 적어 놓은 책들을 죄 쓸어갔기 때문이다. 소하가 한 일 중에서도 가장 큰 공이라고 할 수 있다.
- ↑ 진말 당시는 동해군(東海郡)에 속했다
- ↑ 대, 위, 조, 연, 제, 초
- ↑ 이 고사의 유래 자체는 범려(范蠡)의 일이다. 다만 워낙 이쪽이 임팩트가 강하여 한신과 유방의 일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 ↑ 삼국지 인터넷에서 처음 나왔다. 단 소하는 삼국지 9콘솔판부터 나왔다. 근데 콘솔판은 별로 한 사람들이 없어서 삼국지 11부터 나왔다고 알려져있다.
- ↑ 다만 정치 100은 진시황, 관중이다. 소하는 최소한 정치가 순욱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