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家典子
1 개요
일본의 前 황족. 결혼 전의 이름은 다카마도노미야 노리코 여왕(高円宮典子女王).
일본 아키히토 덴노의 5촌 당질녀. 아키히토 덴노의 사촌 동생 부부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과 히사코(久子) 비의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과 함께. 노리히토 친왕은 노리코 공주가 중학생이던 2002년 갑작스레 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할아버지는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 증조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이다. 1947년에 개정된 황실전범에 따르면, 덴노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內親王),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라 부른다. 따라서 노리코 공주와 언니 쓰구코(承子) 공주, 여동생 아야코(絢子) 공주는 여왕의 지위를 얻었다.
2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가쿠슈인 초등과,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거쳐,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1] 학창 시절 노리코 공주는 발레와 연극 등에 취미가 있었으며, 대학에서는 임상심리학 및 정신의료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대학 1학년이던 2007년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을 잠시 방문하기도 했다. 성심(聖心)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가톨릭계 여학교인 서울 성심여자중학교ㆍ성심여자고등학교[2][3] 수녀원에 머물렀는데, 특별대우는 없었으며 자원봉사 등도 했다고 한다. 방계 공주라서 별로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만 20세가 되는 2008년 7월 22일부터 성년 황족이 되어 본격적으로 공무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 히사코 비, 언니 쓰구코 공주, 여동생 아야코 공주와 함께 공무를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재해지역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3 결혼
약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예비 신랑과 함께.
파일:Attachment/센게 노리코/senge.jpg
결혼식 날. 노리코 공주의 뒤에 있는 쿠로토메소데 차림의 부인은 어머니 히사코 비, 그 뒤의 후리소데 차림의 두 젊은 여성은 언니 쓰구코 공주와 여동생 아야코 공주.
2014년 5월 27일, 15살 연상인 센게 구니마로(千家國麿)와의 약혼을 발표했다. 구니마로는 이즈모타이샤 신사의 신관(神官)으로, 고쿠가쿠인(國學院)[4] 대학 신도학과를 졸업하고 쭉 신관으로 일해 왔다. 구니마로의 아버지 센게 다카마사(千家尊祐)는 이즈모타이샤의 최고 신관이다.[5] 노리코 공주는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이 사망한 2002년 무렵, 어머니 히사코 비와 함께 이즈모타이샤를 방문했다가 구니마로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2014년 10월 5일, 이즈모타이샤 신사에서 구니마로와 노리코 공주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일본 황실의 결혼식은 2005년 아키히토 덴노의 딸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가 시집간 이래로 9년 만의 일이었다.
평민에게 시집간 노리코 공주는 황실전범에 따라 황족의 지위를 잃고 평민 센게 노리코(千家典子)가 되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약 1억 675만 엔(약 10억 4,000만원)의 지참금을 받았다. 시마네 현에 신접살림을 차린다고 한다.- ↑ 아키히토 덴노의 작은며느리 키코 비도 가쿠슈인 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 ↑ 성심여자대학교도 있었지만, 가톨릭대학교에 흡수되어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이 되었다. 한편 성심 수녀회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성심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일본에도 세이신(聖心) 여학원이 있다. 미치코 황후, 노리코 공주의 어머니 히사코 비, 아베 신조의 부인 아베 아키에(安倍昭惠) 등이 세이신 여학원 출신이다.
- ↑ 전주성심여자중학교ㆍ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는 성심수녀회가 아니라 천주교 전주교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이다.
- ↑ 토모히토 친왕의 큰딸이며 센게 노리코에게는 사촌 언니가 되는 아키코 공주가, 2016년 이 대학 특별초빙교수로 임용되었다.
- ↑ 덴노 가문이 스스로를 아마테라스 여신의 후예라고 칭하는데, 센게 가문은 스스로를 아메노호히(天穂日命) 신의 후손이라고 칭한다.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의하면, 아마테라스 여신은 이즈모 지역을 복속시키라고 아메노호히 신을 파견했으나, 아메노호히 신은 오히려 오오쿠니누시 신에게 붙었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왜 하필 반역한 신의 자손이 이즈모타이샤의 신관직을 맡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센게 가문의 전승에서는 "아메노호히는 반역한 적이 없고, 오히려 오오쿠니누시를 잘 설득하여 이즈모를 복속케 했다."고 주장한다. 센게 가문은 일본의 옛 역사기록에서 이즈모노쿠니노미야츠코(出雲国造)라고 기록된, 이즈모 지방의 오래된 호족 집안의 한 분파다. 실제로 센게 가문이 멸문 같은 해를 입지 않고 지금까지 신관위를 맡으며 내려온 것으로 볼 때, 아메노호히의 반역 기록은 고사기 등을 기록할 당시 야마도 조정의 권문세가였던 나카토미(中臣) 씨가 자기네 조상신인 타케미카즈치가 이즈모 복속 당시 활약했다고 서술하려다 보니 발생한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