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연주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WV1043)[1]

1 정의

Period performance.

고전음악이 작곡되었을 당시의 역사적 근거에 의한 연주. 당대의 악기, 조율 방식과 연주법, 연주 관행과 편성 등을 살려 연주하는 스타일이다.

1.1 유사한 용어

유사한 의미로 '정격 연주(authentic performance)', '원전 연주' 등의 용어가 혼용된다. 처음에는 '정격연주'라는 용어가 쓰였으나 자신들만 옳고 다른 방식은 틀렸다는 식의 표현이 너무 과격하다는 의견에 따라 이후 '원전연주'라는 표현이 한동안 많이 쓰이다가, 최근에는 보다 온건한 용어인 '시대연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이 용어들은 시대 연주와는 의미가 다르다. '원전 연주' 혹은 '정격 연주'는 어떤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에는 획일적인 정답이 있으며 작곡 당시의 방식대로 연주되는 음악만이 진정성을 가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런데 아래의 시대 연주에 대한 오해 항목에서 후술하겠으나 오늘날의 시대 연주가들은 반드시 작곡가가 살던 시대에 연주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만 작곡가의 의도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시대 악기를 사용한 연주라고 해서 그것만이 정격성을 가진다고는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전 연주나 정격 연주보다는 시대 연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마찬가지로 원전 악기가 아니라 시대 악기로 부르는 것이 오늘날의 시대 연주의 경향에 부합한다.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 performance),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줄여서 HIP라고 쓰기도 한다.

2 시대 연주의 역사

악기 제작자이자 음악학자인 아놀드 돌메치(Arnold Dolmetsch)와 그의 가족들은 고음악 및 바로크 음악을 연구하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악기를 소개하고 복원했으며 당대의 연주방식을 알리기도 했다. 이런 노력이 곧장 시대 연주의 흐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이후 시대 연주가들의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바흐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음악을 연주하는 기존의 낭만주의적 방식이 작곡가가 살던 시대에도 동일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1950, 60년대에도 종종 바로크 음악을 중심으로 당시의 악기를 재현하여 연주가 시도되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시대 연주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이다. 대표적인 시대 연주가인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1970년대부터 각각 레온하르트 콘소트와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을 이끌고 바흐의 칸타타를 포함하여 많은 바로크 레퍼토리를 녹음했다. 프란츠 브뤼헨, 존 엘리엇 가디너, 시히스발트 카위컨, 조르디 사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로저 노링턴 등의 연주자, 지휘자도 이 시기에 연주를 시작해 1980년대부터는 왕성하게 활동했다.

1980년대부터는 시대 연주가 대중화되어 시대 연주 음반이 대거 발매되었고 시대 연주가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역사적인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녹음했다. 여기에서는 트럼펫팀파니만 시대 악기를 사용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바로크 음악고전파 음악의 경우 오히려 시대 연주가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고, 존 엘리엇 가디너, 로저 노링턴, 요스 판 이메르세일 등의 연주자들이 고전파 이후의 레퍼토리도 적극적으로 개척해서 슈베르트, 브람스, 드뷔시 등의 음악에도 시대 연주를 적용했다. 너무 간 느낌이 적잖이 없지 않지만 요스 반 이메르세일의 경우에는 1930년대에 작곡된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에 시대연주를 적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반드시 엄격하게 시대 악기를 사용하고 과거의 연주법을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이 시대 연주적인 요소를 받아들여 절충주의적 연주를 택하고 있으며, 요즘은 시대 연주가들도 자신들의 밥줄을 위해서 반드시 시대 악기만을 고집하거나 작곡가가 지시한 편성만을 따르지는 않는다.

가령 네빌 매리너의 경우 1960대부터 현대악기로 연주하면서 빠른 템포와 고전식 건반악기들을 사용했고 아르농쿠르의 경우에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면서 현대악기로 최대한 시대악기 연주를 모방하려고 했다. 헤레베헤 같은 지휘자는 시대악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마치 현대악기 오케스트라와 유사한 음색을 들려준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한편 이반 피셔같은 현대악기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과 베토벤을 지휘할 때 보편적으로 시대 연주에서 선택하는 전통적인 2관 편성을 취하되 곡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는 식으로 시대 연주의 성과를 도입하는 등, 점차 시대 연주와 현대 악기 연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주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전통적인(traditional) 현대 오케스트라에 대한 연주 전통을 중시하는 연주자들도 있다.

3 시대 연주에 대한 비판과 오해

시대연주자들이 과격한 주장을 많이 하는 바람에 이들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 연주는 음악이 작곡될 당시의 악기와 연주법만을 고집하는 연주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음악이 주는 감동 자체보다는 형식에만 집착한다고 여기고 있다. 또 시대 연주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는 음악이 주는 감동을 무시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일부 시대연주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독선적이고 과격하게 주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정격 연주나 원전 연주라는 표현을 쓰면서, 작곡된 당시에 사용된 악기와 편성 그대로 하는 연주 방식만 옳고, 현대적인 악기로 연주하는 연주 관행이 잘못된 것이라 비판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아르농쿠르는 상당히 극단적인 주장을 많이 했는데, 예를 들면 베토벤 교향곡 4번이 초연됐을 때 36명으로 연주되었으니, 그보다 많거나 적은 인원으로 연주되는 것은 다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런 말을 하면서 정작 본인은 절충주의적인 연주나 만년에는 일반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로남불 시대연주자들은 자신들이 정격성이라는 일종의 정당성,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강한 어조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성 음악인들이 그들의 주장에 대해 어떠한 반박을 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수의 기성 음악인들은 음악의 연주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일 뿐, 과거 음악 문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니기 때문에 문헌연구로 무장한 정격연주자들의 주장에 뭐라 반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중에 이들 정격연주, 시대연주자들이 주장했던 내용 중 사실과 맞지 않거나, 그들이 유리한 자료만을 바탕으로 한 것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예를들어 아르농쿠르를 위시한 대다수의 시대연주자들은 현대의 대형 오케스트라에서 관악기 연주자들을 더블링하는 관행을 비판했는데,[2] 이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자금 문제만 해결된다면 더블링하는 것을 매우 선호했다는 사실[3]이 밝혀져 이러한 비판이 반박당했다.

또 베토벤 영웅 교향곡 1악장 코다에서 트럼펫이 상승하다가 하강하는 부분에서 일부 시대연주자들은 '베토벤이 나폴레옹의 그릇된 행보를 풍자하기 위해 일부러 금관을 주저앉힌 것'이라고 주장했다.[4] 그러면서 이 부분에서 다른 악기들의 선율과 달리 트럼펫이 상승하다가 하강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유난히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이런 연주가 나름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억측인 것이 곡이 작곡되고 완성된 시기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 전으로 베토벤이 한창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시기였다. 베토벤은 이 작품이 나폴레옹에 대한 헌사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곡이 완성된 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이 격분해서 나폴레옹에게 바친다는 악보의 겉장을 찢었지만, 곡 자체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시대연주자들이 스스로 고증과 정격성을 중요시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의 기본적인 전후 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은 억지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그들이 내세우는 시대연주의 고증의 정확성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처음에는 자신들의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기성 오케스트라들을 까다가,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유명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섭외가 들어오자 초기 자신들의 극단적인 주장을 슬그머니 철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5]

그래서 요즘은 자신들의 밥줄을 위해서 시대 연주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시대 연주가가 많지 않다(...). 그러므로 요즘은 정격 연주나 원전 연주같은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역사주의 연주 혹은 시대 연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음악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대의 방식으로 연주한다고 해서 그 시대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는 연주 관습과 공연 환경뿐 아니라, 음악을 듣는 관객들의 정서 역시 전혀 다르므로 단지 작곡가가 살아있을 당시의 연주를 그대로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다른 음악인 것이다.

사실 작곡가들은 종종 자기 음악을 연주할 때 연주 장소를 고려하여 편성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헨델의 경우 메시아를 생전에 몇 차례 연주하면서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악보에 없는 악기를 추가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트롬본은 현재 메시아 총보에 없는 악기이지만 기록에 의하면 헨델은 트롬본을 메시아 연주에 사용한 적이 있다. 다른 작곡가들도 이런 경우들이 있다. 따라서 바흐모차르트의 음악을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연주한다고 해서 '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대 연주가는 이제는 자신들의 밥줄을 위해서 이러한 사실에 동의한다. 대표적인 시대 연주 지휘자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만 보더라도 과거에 비판할 때는 언제고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를 포함하여 현대 악기를 사용하는 악단을 자주 지휘했으며, 정격연주의 대표주자였던 존 엘리엇 가디너도 명성을 얻고 나서는 최근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포함해 수많은 현대 악기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하고 있다.[6]

시대 연주의 대상에 대해서도 베토벤 이전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시대 연주를 그저 과거의 연주를 재현하기만 하는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위의 가디너만 하더라도 자신의 시대 악기 오케스트라로 베를리오즈나 브람스를 연주한다. 시대 연주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작곡 당시의 연주를 그대로 고정된 형태로 재현하는 것 자체보다는 당대의 연주 관습과 음악적인 효과를 발굴해내고 이를 통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 현의 재질 변화가 있던 시기에 작곡된 곡의 경우는 과거의 바이올린과 변화된 바이올린을 섞어서 편성한 오케스트라로 연주한다. 또 악보에 대한 연구와 음악 외적인 연구를 통해서 작곡가의 의도에 최대한 가깝게 음악을 표현함과 동시에 바로크 시대의 연주처럼 연주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보여주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이전의 음악과 바로크, 고전파 음악뿐 아니라, 말러슈트라우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고전 음악이 시대 연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작곡가가 직접 일일히 악기 편성을 지시하거나 어떤 방법으로 연주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경우는 예외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말러는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 가디너는 말러 곡을 지휘한 적 있다.[7])

4 대표적인 특징

  • 악보에 등장하는 지시를 대부분 지키고자 한다. 특히 고전파 음악과 그 이전 사조의 음악의 시대 연주를 들으면 빠르게 연주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시대 연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이전의 연주들이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띄어 느리게 연주하거나 연구 결과의 부족으로 연주자가 템포를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략된 도돌이표를 지켜서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 오케스트라가 소편성인 경우가 많다.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과거부터 컸던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커졌기 때문. 각 성부의 소리가 섬세하고 정교하게 들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브라토를 사용하지 않는 특징과 함께 물려 오늘날의 대형 콘서트홀에서는 음량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비브라토를 억제한다. 바로크 시대에 비브라토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대와 같이 빈번하게 사용하지는 않고 특별한 효과를 위해서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 피치(음고)가 현대와 다르다.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표준 피치가 있으나 과거에는 조율법이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현대보다 반음 가량 낮게 조율된다.
  • 특히 바로크 음악에서 장식음을 많이 사용하고 연주의 즉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 이는 보편적인 특징일 뿐 오늘날에는 절충주의적인 해석을 취하는 현대 악단이나 반대로 현대 악기나 현대적인 연주 방식을 택하는 시대 연주가도 많아 모두 철저히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5 기타

5.1 리프킨 가설

시대 연주가이자 음악학자인 조슈아 리프킨이 주장한 가설로 바흐의 칸타타의 합창은 합창단이 아니라 각 성부당 한 명의 가수가 맡아 노래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합창 파트에서 소프라노콘트랄토, 테너, 베이스가 각각 1명씩, 독창 파트도 마찬가지로 4명으로 구성되어 실제로는 8명의 가수가 바흐 칸타타의 합창과 독창을 맡았다는 것.
이는 당시 바흐가 칸타타를 작곡한 상황에 근거한다. 바흐는 토마스 교회 부속 학교의 합창단을 기용해 매주 여러 교회에서 칸타타를 연주하도록 했는데,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인원이 많지 않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극단적인 소규모 연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러므로 바흐는 칸타타를 작곡할 때 이걸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을 거라고 추정 가능하다. 조슈아 리프킨 본인도 이 가설에 따라 바흐를 연주했다.

지휘자 앤드류 패럿의 마태 수난곡이 리프킨 가설에 따라 녹음한 첫 마태 수난곡이다. 이밖에 콘라트 융헤넬, 폴 맥크리쉬, 시히스발트 카위컨, 존 버트 등이 리프킨 가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바흐의 녹음을 내놓고 있다. 칼 리히터의 연주에서의 웅장함은 느낄 수 없으나 대신 분명한 발음을 들을 수 있고 어느 성부 할 것 없이 묻히지 않고 제 소리를 낸다는 장점이 있다. 듣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대규모 합창으로 연주하는 칸타타에 익숙한 사람들은 소리가 너무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5.2 시대 연주가

5.3 시대 연주 단체

5.4 고음악 레이블

대부분의 고음악 전문 레이블들은 시대연주로 연주된 음반들을 취입한다. 르와조뤼르는 바이올리니스트 얍 슈뢰더, 지휘자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등이 몸담았던 레이블, 소니 산하의 비바 아르테와 도이치 아르모니아 문디는 첼리스트 안너 빌스마와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있던 레이블, 다스 알테 베르크는 텔덱 산하로 최초로 시대악기 연주를 취입하였다.

  1. 일반 연주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2. 그 예로 대표적인 시대 연주가인 지휘계의 김성근 아르농쿠르는 너무 극단적인 발언 때문에 논란을 일으킨 적이 몇 번 있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더블링을 금지한다던가, 오케스트라의 인원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 등 상당수는 나중의 연구 결과에 의해 반박당하기도 했다. 다만, 본인도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등 현대악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바 있고, 또 이후 음악의 정격성에 대해 여러 차례 부정하는 견해를 나타낸 걸 보면 입장이 바뀐 듯.
  3. 모차르트는 파리, 프라하, 만하임 등에서 큰 오케스트라를 동원할 수 있는 경우에 목관을 트리플해서 파트당 여섯명씩 기용하기도 했다.
  4. 하지만 꼭 시대악기 악단 지휘자가 아니어도, 게오르그 솔티나 귄터 반트처럼 이 부분을 악보 그대로 연주한 지휘자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이 문서에서 부당할 정도로 혹평을 듣고 있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영웅의 실패'라고 해석했지, '나폴레옹의 실패'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5. 이는 아르농쿠르에 한정한다면 몰라도 다른 시대 악단 지휘자들에게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애초 존 엘리엇 가디너는 시대 악기 악단 연주만 고집하지도 않았고, 조르디 사발이나 프란스 브뤼헨, 윌리엄 크리스티, 필립 헤레베헤 같은 이 뿐만 아니라 현대 악기 연주를 병행한 가디너 역시 자신의 시대 악기 악단과 유명세를 얻었어도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있다. 다시 아르농쿠르로 돌아간다면, 아르농쿠르가 유명 악단과 함께한 연주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주로 낭만주의 시대 곡으로, 이들 곡은 시대 악기 악단으로 연주하기 적합하지 않다. 물론 시대 악기 악단을 확장하여 지휘하는 가디너 같은 예외는 있다. 또한 그는 이들 유명 악단에서도 트럼펫만 과거의 내추럴 트럼펫을 이용하여 시대 악기 연주의 효과를 내는 지휘를 하기도 하였다.
  6. 존 엘리엇 가디너는 1968년에 자신의 시대 악기 악단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낭만과 혁명 오케스트라,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창설하여 지휘하면서, 한 편으로 아주 유명한 악단들은 아니었지만 현대 악기 악단을 지휘하거나 음악 감독직을 역임했다. 가디너가 명성을 얻은 후 달라진 것은 그가 지휘하던 현대 악기 악단의 이름값 정도?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시대 악기 악단 연주 또한 꾸준하게 하고 있다.
  7. 물론, 여러 차례 개정하면서 죽기 전까지 행했던 마지막 개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교향곡 5번이나 2악장과 3악장의 순서 문제와 4악장의 해머 타격 횟수 문제로 논란이 많은 교향곡 6번등과 같은 곡들도 있지만 많은 곡들에 대해 명확한 지시를 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