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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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東寬
1929년 05월 28일 ~
1929년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태어났다. 국민대학교 법학과, 한양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육군종합학교, 미국보병학교를 졸업하거나 수료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자 1960년대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차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인 최치환 대신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아 경상남도 남해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최고득표율이었다. 1972년 한국발명협회 회장이 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엄기표와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아 경상남도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본인과 신민당 문부식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1974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에 임명되었다. 1978년 초 제2무임소장관에 임명되어 국회의원직을 사임한 고재필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건설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가 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최치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이후 충청북도 영동군에 레저업체를 운영하던 중 1984년 해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