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리 2600

2세대 게임기
가정용
페어차일드 채널 F아타리 2600마그나복스 오디세이²인텔리비전
카세트 비전콜레코비전벡트렉스아타리 5200
휴대용
게임 & 워치
width=250
아타리의 게임기
가정용
[[퐁|]][[스턴트 사이클|]][[비디오 핀볼|]]
[[아타리 2600|]][[아타리 5200|]][[아타리 7800|]]
[[아타리 XEGS|]][[아타리 재규어|]][[아타리 플래시백 시리즈|]]
휴대용
[[아타리 링스|]]


Atari-woody.jpg
[1]

1 소개

이 때는 비디오 게임의 목제 시대이죠. - AVGN

무려 14년 동안 지원 된[2] 콘솔 게임기이자 최고의 고전 명작 콘솔.
1977년에 미국의 아타리에서 발매한 세계 가장 처음으로 풀컬러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가정용 게임기.[3]

아타리 2600의 개발은 1971년에 시작되었지만 개발 비용 때문에 개발이 늦어지다가, 1976년에 워너에서 2천8백만$를 빌리면서 완성했다. 1977년 9월 11일에 출시되기까지 이 게임기에 들어간 투자금액은 1억$가 넘는다.

당시 사람들이 오락실에서 볼 수 있던 벽돌깨기(브레이크아웃), 스페이스 인베이더, 팩맨 등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큰 인기를 자랑했다. 판매 가격은 199$, 롬 팩의 가격은 대체로 25$. 당시의 물가를 고려하면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지만, 1980년에만 해도 아타리 2600은 20억$의 순 수익을 올렸다.

1.1 사양

  • CPU는 1.19MHz MOS 6507, 나중에 2Mhz MOS 6502로 업그레이드.[4]
  • 해상도 160x192, 동시 표현가능한 색은 4색
  • 한 화면에는 배경화면, 플레이어 오브젝트 2개, 미사일 오브젝트 2개, 볼 오브젝트 1개 동시 표시 가능(= 스프라이트 5장)
  • 128바이트 메모리 장착.[5]
  • 팩의 용량은 4KB(뱅크스위칭으로 32KB 이상 지원 가능)

플레이필드(배경화면)의 도트 구성은 40x1 로서 가로 40도트는 CPU가 1.19MHZ 세로 1도트는 텔레비전의 주사선 1에 해당한다. 이게 주사선 위치가 바뀔 때 마다(HBlank) 덮어 쓰여지는 방식으로 보통 주사선이 192개이기 때문에 실질적 세로 해상도는 192도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CPU가 엄청 느리기 때문에 실제로는 192 도트를 쓸 수 있을리 없고, 가로 40 도트도 실제로는 20도트 그림을 좌우대칭으로 표시하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한숨 나오는 사양이지만 메모리가 비쌌던 70년대 기술력을 감안하면 이 정도도 대단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색상은 주사선 하나에 2색, 128색 사이(실제로는 16색에 8단계 명암)에서 선택 가능하다. 주사선 째로 색의 밝기를 변경하면 제법 그럴싸한 그라데이션 표시가 가능하고(컬러 지정 레지스터는 1색 1바이트분이기에 도트 변경보다도 간단하다.), 이 부분 한정으로는 패미컴 보다도 우수하다. (패미컴은 52색 중 4색, 4팔레트, 16x16 단위 교체)

플레이어 오브젝트(스프라이트)의 해상도는 가로 8 x 세로 1 도트. 플레이 필드와 같은 이치이다. 2장까지 표시할 수 있지만 도트와 색이 똑같은걸 1장마다 3장씩 복제할 수가 있어서 전부 6장을 주사선에 캐릭터로 표시할 수가 있다. 이것을 응용한 것이 스페이스 인베이더.

미사일/볼 오브젝트는 가로 1, 2, 4, 8 도트에서 선택하여 단색으로 도트는 변경 불가능하다.

컨트롤러는 조이스틱과 버튼 하나라는 심플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사실 조이스틱이라고 해도, 분해샷을 보면 다른 조이스틱처럼 아날로그 방식이 아니라 디지털 4버튼에 막대기 붙여놓은 모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형태이다보니 아타리 2600의 컨트롤러를 조작할 때에 상당히 뻑뻑하고 섬세한 조정이 힘들다. 대신이라고 해야할지 이 9핀 규격은 MSX 게임 포트나 세가메가 드라이브 등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6] 메가 드라이브용으로 나온 컨트롤러로 아무런 문제없이 아타리 2600을 플레이 할 수 있다. 본체에는 전원과 리셋 버튼 말고도 셀렉트 스위치와 난이도 스위치등이 달려 있어 그걸로 난이도나 설정을 조작할 수 있다.

비록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주변기기도 다수 있다. 예를 들어 전화로 1달러에 게임을 받아서 하는 서비스, 카세트 테이프에 들어있는 게임을 할 수 있는 기기, 무선 컨트롤러[7], 발로 조작하는 컨트롤러(Wii Fit과 비슷한 모습) 등.

2 역사

아타리 2600의 원형은 1973년에 제작한 스텔라(Stella[8])로, 이 때부터 게임기를 계속 발전시켜서, 1976년 이름을 비디오 엔터테인먼트 시스템(Video Entertainment System)으로 바꾼 시기에는 아타리 2600에 거의 근접할 정도로 완성됐다. 문제가 있다면, 게임기를 보조할 타이틀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워너 브라더스에서 당시 아타리 CEO 놀런 부시넬로부터 회사를 사들여 막대한 자금력으로 뒷받치면서 해결됐다. 아타리 2600는 곧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급격한 인기를 얻었고, 전성기에는 워너 브라더스에 들어오는 수익의 절반을 차지하기까지 이르렀다.

1980년 즈음 자신들의 이름을 게임에 싣지 못하게 하는 아타리의 정책에 반발해 개발자들이 빠져나가[9] 게임업계 최초의 서드파티를 구성하면서 아타리의 몰락은 시작됐다. 아타리에서는 게임 개발을 독점하기 위해 서드파티들에 소송을 걸었지만 실패했고, 게임기에 관심을 가진 타업체가 나타나 콜레코비전같은 경쟁기기를 발매하자 아타리에서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게임을 개발해온 핵심인력이 빠져나가 더 이상 자력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없어진 데다가 그 동안 게임기를 팔면서 벌어들인 자본도 미완성으로 남게된 프로젝트들에 상당수 낭비한지라 곤란한 상태에 놓인 아타리에서는 상황을 타개하기위해 라이선스 판매를 남용해 개발력이 떨어지는 무명의 서드파티를 무리하게 끌여들였다. 나중에는 급기야 포르노 게임에도 라이선스를 줘 발매를 하면서 스스로 이미지를 깎아먹는 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당장은 아타리 2600에 공급할 게임들을 확보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게임 시장의 질 자체를 낮추는 언발에 오줌누기식 자살행위이다. 결국 아타리판 E.T.팩맨 같은 저질 게임에 질린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버렸고, 이는 1983년에 미국 게임 시장의 규모가 대량 붕괴되는 사태로 직결돼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게임기 시장에 발을 들일 때까지 오랜 세월동안 게임기 시장을 일본 회사들에 넘겨줘야 했다.

3 기타

아타리 2600 게임을 실기나 에뮬레이터 밖의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건 앱스토어구글 플레이에서 구매할 수 있는 Atari's Greatest Hits와 Activision Anthology가 있다. 게임을 하려면 앱 내 결제로 게임을 열어야하지만 무료 게임이 하나씩 들어있으므로 아타리 2600 게임이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있다.[10]

2016년 3월에 스팀을 통해 Atari Vault라는 게임이 발매되었다. Atari's Greatest Hits으로 총 100개의 게임이 내장되어 있다. 다만 아타리에서 직접 만든 게임만 포함시킨 탓에 피트폴같이 정말 유명한 아타리 2600 게임은 실려있지 않다. 전설의 게임인 E.T.와 팩맨은 아타리에서 직접 만든 게임이지만 저작권 문제로 잘렸다. 그래서 100개라고 해도 상당수는 보드 게임과 스포츠 게임으로 차있는 편.

공식적으로 1992년 1월 1일에 지원이 중단되었다. 14년 동안 팔린 것으로, 미국 게임기 가운데 최장이다. 또한 몇몇 게임을 내장하여 일체형 형식으로도 판매되는 기종도 판매되고 있다. 특히 아타리 플래시백 시리즈는 아타리에서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내장형 게임기. 내장형은 국내에서도 가끔 보이는데 아타리 2600 조이스틱 모양의 일체형 게임기를 COEX Mall 애니랜드와 펀샵에서 팔고 있었다. 현재는 품절.

홈브류 개발이 의외로 활발해서 2006년에 나온 게임도 있다. (링크 동영상) 또, 2009년에 나온 게임도 있다.(링크) 2016년 현재까지도 여러 홈브류 게임들이 나오고 있다.

만우절이 되면 이 기종으로 개발 중인 게임의 발표가 나오곤 한다.(예: 듀크 뉴켐 포에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헤일로의 경우는 진짜로 아타리 2600 버전이 존재한다. 헤일로: 리치 발매 기념으로 아타리 버전 헤일로가 제작되었다. 실제로 팩으로도 만들어졌지만 팩은 제작자들만 가진 비매품이고, 여기에서 헤일로 2600을 플레이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ATARI 2800이라는 이름으로 수입.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패드와 본체를 묶고, 패드 모양도 변경. 다만 발매일이 1983년 5월이고, 단 두 달뒤인 7월에 패미컴이 발매된 바람에 참패했다. 가격 조차도 24,800엔으로 비싼데, 설상가상격으로 단 두달 뒤에 나온 패미컴이 그보다 훨씬 저렴한 14,800엔이다보니....

초차원게임 넵튠 시리즈이 캐릭터(스포일러 주의)가 사실 아타리 2600의 의인화 캐릭터이다(...).

3.1 아타리 2700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아타리 2700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2700front.JPG
아타리 2600을 베이스로 두어 만든 '아타리 2700'이 있는데, 1981년에 내놓기로 했으나 개발이 중단 되었다. 무선 조종기 기능을 탑재했는데, 쉽게 설명하면 아타리 2600의 바리에이션 모델. 발매 취소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 가장 유력한 기준으로는 무선 전파 간섭에 따른 조작 미스가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타리 2700의 디자인은 이후 아타리 5200의 토대가 되었다.
  1. 이미지 저작원: "Atari-2600-Wood-4Sw-Set" by User:Evan-Amos, Locke Cole
  2. 이후에 나온 패밀리 컴퓨터는 20년 동안 지원됐다.(북미판 NES는 10년 동안)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 2는 13년 동안.
  3. 1972년에 나온 세계 첫 가정용 게임기인 마그나복스 오디세이가 있지만, TV 스크린에 씌우는 덮개로 그래픽을 대신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그래픽을 가진 게임기로 볼 수 없다. 또한 1년 앞선 1976년에 페어차일드 채널 F가 출시 되었지만, 2비트 RGB의 안습 팔레트를 가지는지라 그저 컬러가 나오는 수준이다.
  4. 6502는 애플 II, 패미컴에도 쓰인 CPU이고, 6507은 6502의 염가판으로, 메모리 접근의 경우, 6502는 64KB까지 가능하지만, 6507은 8KB까지만 가능하다.
  5. 킬로바이트가 아니다! 거기에다가 VRAM이 따로 없어서 TV 주사선 타이밍에 맞춰서 색상값을 일일이 바꿔야 한다. 그래도 나중에 게임 팩에 128바이트의 메모리를 추가로 장착이 가능하게 됐다.
  6. IBM PC 호환기종에서 사용한 DE-9 직렬 포트와 똑같이 생겨서 혼동하기 쉽지만, 이 둘은 호환성이 전혀 없다. 그래서인지 아타리 게임 포트를 사용하는 기기에서는 예외없이 DE-25 직렬 포트를 사용하고 있다.
  7. 일반 컨트롤러보다 두껍고 무겁다.
  8. 아타리에서 일하던 여직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아타리 2600 에뮬레이터 사이에서 이 이름을 가진 것이 있다.
  9. 이 사람들이 모여 세운 게임 회사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에도 활동하고 있는 액티비전이다.
  10. 다만 Atari's Greatest Hits는 아케이드 버전 '미사일 커맨드'가 무료로 풀려있다. 아타리 2600판 미사일 커맨드와 거의 차이가 없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