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ttachment/알버트 벨/벨.jpg
인상 한번 죽인다. 뭐 임마? 싸울래?
절대 이 분을 화나게 해선 안 돼
이분도 자질이 훌륭하시군
이름 | Albert Jojuan Belle |
생년월일 | 1966년 8월 25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루이지애나 주 슈리브포트 |
포지션 | 좌익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7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라운드 지명 |
소속팀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89~1996) 시카고 화이트삭스(1997~1998) 볼티모어 오리올스(1999~2003) |
199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홈런왕 | |||||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 → | 알버트 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 | 마크 맥과이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199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득점왕 | |||||
프랭크 토머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 → | 알버트 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 → | 알렉스 로드리게스 (시애틀 매리너스) |
목차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파이터 겸 야구 선수.
홈런왕 1회, 타점왕 3회, 실버슬러거 수상 5회에 빛나는 최고의 타자 중 하나였지만, 그놈의 성질머리(...)와 더불어 말년의 먹튀 행각 때문에 오늘날에는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메이저리그 최악의 악동이자 파이터 겸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먹튀로 기억되는 선수가 되었다.
2 커리어
1987년 2라운드로 지명되어 1991년 부터 인디언스의 주전 좌익수가 되었다. 이 때부터 불같은 성격에 잦은 폭력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문제아라 구단에서도 골머리를 썩었다. 그럼에도 인디언스는 벨을 중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야말로 장타 머신이었기 때문. 91년 풀타임 첫해 28홈런을 치더니 92년부터는 3년 연속 30-100에 1995년에는 커리어 하이인 50홈런과 52개의 2루타를 달성하고도 정작 MVP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모 본에게 돌아갔다. 모 본의 성적은 타율 .300 39홈런 126타점으로 타점 1위를 먹는 등 매우 좋은 성적을 기록하긴 했지만 벨의 성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 본이 MVP를 탄 것은 기자들이 벨을 진짜 싫어해서였다.
실력만큼은 당시 아메리칸리그에서 넘버원을 다투는 거포라 FA가 되면서 가난한 클리블랜드를 떠나려 했고, 결국 지구 라이벌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5년 5500만 달러라는 당시 타자 최고 연봉을 떡하니 안겨주면서 라이벌 팀에 입단한다. 레알 잭 파크맨. 97,98시즌 두시즌동안 뛰었고, 98년에는 48홈런 49 2루타 OPS 1.011의 어마어마한 빠따질로 돈값을 해냈지만, 라커룸에서 화이트삭스의 간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프랭크 토마스와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사실 화이트삭스와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화이트삭스와 계약하던 시점에서 선수들 연봉이 급상승하던 가운데, 알버트 벨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하면서 자신의 계약기간동안 자기보다 총 연봉이 높은 선수가 나오면 그보다 더 높게 연봉을 인상하고, 만약 구단이 거부하면 자유계약선수가 된다라는 조항을 삽입한다. 당시 최전성기의 타격실력이었던데다 5년 5500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대우로 계약한 화이트삭스 입장에서 설마 벨보다 더 비싼 선수가 나오겠어라고 순순히 조항을 삽입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선수는 바로 페드로 마르티네즈였다.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된 직후 6년 7500만 달러에 계약하자 알버트 벨은 조항에 따라 연봉 인상을 요구했고, 화이트삭스는 이를 거부하여 자유계약선수가 된다. 그 때문에 두 시즌만에 화이트삭스 생활을 마감한 알버트 벨은 거포덕후이자 당시 FA의 큰손이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5년 6500만 달러 계약을 맺어 또다시 MLB 연봉 1위를 차지한다.
문제는 볼티모어로 이적한 후 첫해는 37홈런 117타점 297/.400/.541을 기록하며 돈값을 했지만 다음시즌 23홈런 103타점 .281/.342/.474로 떨어지며 하향세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왔는데, 이때 당한 엉덩이 부상으로 인해 몸이 망가졌고, 한참 먹튀 선수들의 보험처리때문에 문제가 되던 시기에 보험금 지급문제로 오리올스와 틀어져선 3년동안 뛰지도 않는데 40인 로스터에 버티면서 총액 4천만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연봉을 1센트 한푼 안남기고 다 먹고 소리 소문없이 은퇴.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치고는 다소 허망하게 역사상 최악의 먹튀중 1명으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3 기타
주먹실력으로는 역대 MLB선수중 최강. '알버트 벨보다 싸움을 잘하는 선수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담할수 있다. 그보다 덩치가 월등히 큰 선수들조차도 알버트 벨 앞에서는 감히 덤빌 엄두도 못냈다는게 그 증거.
전직 메이저리거 꽃미남마퀴스 그리솜은 벤치 클리어링때 금기사항 1순위로 절대로 알버트 벨 근처에는 가지말라고 신신당부할 정도였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알버트 벨은 고등학교때 전교 3위 안에드는 수재였고 대학 때도 운동이 아닌 공부로 장학금 탈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이 있는데 이 쌍둥이 형은 굉장히 온화한 성격이라고 한다.그런데 알버트 벨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게 문제다.
은퇴 뒤에도 애인을 폭행하고 입건되는 등 그 성질머리를 못이겨서 사고를 여러번 치고 있다고 한다. 머그샷까지 찍었다. 한시대를 풍미한 선수였건만 그 성질머리때문에 야구계에서 코치도 하질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그걸 못고치면 야구계에서 절대로 코치직을 수행 못할것이다. 당장 선수들도 반발할테니 말이다.물론 대놓고 반발하는 용자는 몇 없을것 같지만
2000년대 이전에 활동했던 선수라 난투극관련 사진이나 동영상을 찾기 힘들어서 2000년대 이후 팬들은 그걸 잘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알버트 벨과 난투극에 휘말린 상대선수는 반드시 얼굴이 피떡이 되던가 어디 한군데 부러지던가 둘중 하나였던건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에 카일 판스워스라는 새로운 싸움꾼이 등장한 이후 알버트 벨 VS 카일 판스워스 떡밥도 간혹 나오긴 한다. 요즘은 여기에 루그네드 오도어, 매니 마차도가 끼어들었다.
스테로이드 시대에서도 정상급 강타자였지만 특이하게도 약물 의혹이 거의 없는 선수다. 물론 아주 없는건 아니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시절 약물복용을 했다던가 성격이 나빠진게 약물 부작용때문이라던가(....) 하는게 아주 가끔 나오긴 하지만, 여기에 대한 당사자의 해명으로 일축되었는데 그 말이 아주 진국(...)이다.
내가 약물을 한게 조금이라도 꼬리가 잡혔으면 그 당시 언론이나 메이저리그 윗분들이 그걸 가만히 뒀을까? 아마 껀수잡고 엄청 물어뜯고, 바로 출장정지 처분 내려왔겠지. 그리고 나 싫어하는 기자들, 팬들은 나 엄청 까댔을꺼고
4 사건사고 겸 기행
메이저리그 최고의 악동답게 사건사고와 기행이 많다.
- 콜로라도의 모 클럽하우스에서 세면대를 어지럽혀 출장정지와 함께 알코올 문제 치료권유
- 자기를 야유하던 팬에게 공을 던져서 갈비뼈에 금이 가게 만듦[1] (6경기 출장 정지)
- 당구장에서 자기를 야유하던[2] 팬을 구타해서 얼굴에 상처를 입힘
- 배트에 코르크가 검출되었는데 상대감독이 집어넣었다고 디스함
- 할로윈에 소년들이 자기집에 계란을 던지자[3] 빡쳐서 트럭을 몰고 추적함...
얘들 입장에서는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벌금 1000달러) - 월드 시리즈 도중에 여성리포터에게 폭언을 함
- 자기의 사진을 찍었다고 사진기자에게 공을 던짐 (사무국에서 5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정신과 상담을 받고 사회봉사활동을 할 것을 지시)
- 병살 플레이 도중에 2루수의 발을
너무 티나게 대놓고걷어참 (벌금 2만 5000달러) - 본인이 미식축구와 대학농구에 도박을 한다고 입을 털었음(...)[4]
- 올스타전에 뽑혀놓고 연습을 안해 나오지를 않음
- 감독과 언쟁을 함
- 1995년 보스턴과 클리블랜드의 ALDS당시에 알버트 벨이 홈런을 치자 당시 보스턴 감독이 코르크 배트 쓰는거 아니냐면서 조사를 요구했는데 심판진이 배트를 가져가자 알버트 벨이 보스턴 덕아웃을 향해 자신의 오른쪽 알통을 자랑하면서 이걸로 쳤다고 외치기도...링크
- 경기중에 무안타라도 치는날엔 물건이나 전화기를 던진다는 오마 비즈켈의 증언...
기본적인 벤클 내지 빈볼성 공 때문에 투수한테 달려든 경우 정도를 제외했음에도 저 정도가 나온다.
다만 언론의 피해자라는 의견도 있는편인데, 저 기행에 비해 동료 선수의 증언은 좋은 편이기도 하고[5] 실제로 지역사회에 기부도 곧잘 했었고, 지역 잡지에 칼럼도 썼으며, 어린이 팬들에겐 친절했으며, 팬들을 위해 시까지 쓴 일도 있다. 무엇보다 벤치 클리어링의 정복자였지만, 기본적인 분위기 파악은 할 줄 알았던 선수이기도 했다.
1995년 9월 28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원정경기 1회말 때, 클리블랜드의 선발투수 데니스 마르티네즈가 상대팀 타자인 커비 퍼켓의 턱을 정통으로 강타하는 빈볼을 던지며 퍼켓이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물론 정황상 고의성은 전혀 없었고[6] 마르티네즈는 덕아웃에서 퍼켓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자책감에 눈물을 보였지만, 불문율 상 사구는 사구로 응징하는 것이 인지상정 인지라 미네소타의 선발 투수 프랭크 로드리게스는 단단히 작심하고 2회초 마운드에 올랐는데, 아뿔싸 클리블랜드 선두 타자가 하필 악동 오브 더 악동 알버트 벨이었다(...).그렇다고 벨을 거르고 후속 타자한테 보복구 던지기도 우스꽝스러웠던 지라 로드리게스는 밥숟갈 놓을 각오로 에라 모르겠다 하며 초구를 벨의 등짝에 힘껏 꽂았다. 그리고 로드리게스는 물론 양팀 선수단과 관중들, 기자들 전부 벨이 어떤 후속조치를 취할 지
ㄷㄷㄷ기대했는데,정작 벨은 로드리게스를 한번 째려보고는 쿨하게 1루로 걸어나간 게 전부였다.
그리고 로드리게스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겠지경기 후 기자들이 벨에게 우르르 달려가서 "왜 그때 마운드로 뛰어가지 않았는가?" 라고 묻자 벨은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약간 쑥스럽다는 듯 대꾸하기를,
"싸움 터지면 제일 먼저 나한테 달려들 퍼켓이 실려갔는데, 뭐 하러 올라가?"
여담으로 최훈은 이 사건을 박재홍 vs 김일엽 벤치 클리어링 사건[7]이 터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웹툰으로 그리면서 박재홍을 디스하기도 했다.링크
- ↑ 무려 데뷔시즌의 일
이미 루키때부터 싹수가 보였다 - ↑ 벨의 별명이자 예전 이름인 '조이'라고 계속 불렀다는 이유로...
별명이라며? - ↑ 할로윈에는 일종의 전통 같은 것으로 다른 사람은 그냥 웃고 넘기는 정도의 일이다.
- ↑ 피트 로즈가 어찌 된걸 생각하면... ㄷㄷ
- ↑ 특히 사람 좋기로 소문난 프랭크 토마스와 켄 그리피 주니어는 벨을 좋은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 ↑ 퍼켓 자신도 병상에서 "데니스가 일부러 그런 공을 던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퍼켓은 이듬해인 1996년 시즌 초반 갑작스런 녹내장 발병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해야 했는데, 그 당시의 빈볼이 그의 녹내장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기는 하다.
- ↑ 자세한 내막은 박재홍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