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한 말의 인물
楊弘
생몰년도 미상
정사에서는 원술이 죽자 장훈과 함께 비싼 것들을 들고 손책에게 항복하러 가는데, 중간에 원술의 잔당 중 한 명인 유훈한테 포로로 붙잡히고 그 후의 등장은 없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양대장(楊大將)으로 등장하는데, 이건 삼국지 오서 손파로토역전[1]의 손책 부분을 잘못 읽은 결과이다. 문제의 원문은 '後術死, 長史楊弘、大將張勳等將其衆欲就策(원술이 죽자 장사 양홍, 대장 장훈 등이 자신들의 무리를 이끌고 손책에게 가려고 하였는데)', 장사 양홍 대장 장훈 부분에서 '홍' 부분이 탈락한 판본을 나관중이 참고한 것인지 장사 양 대장 장훈이 되었고 이게 띄어쓰기가 없는 고전한문의 특성상 '장사 양대장, 장훈'으로 이해한 결과로 양대장이 탄생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원술의 브레인으로 활약해 196년에 손책이 독립선언을 하자 유비를 치라고 말했다. 198년에는 수춘으로 조조군과 그 동맹군들이 몰려들자 수춘은 이풍, 악취, 양강, 진기 네 명이 지키기만 하면 조조군은 식량이 떨어져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하면서 원술은 자신과 함께 비싼 것은 챙기고서 회수를 건너 도망치라고 진언하고 자신도 같이 도망치지만 그 후의 등장은 없다.
1.1 미디어 믹스
삼국지 9,10,11 |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원술군의 브레인. 전투쪽에는 에이스 기령이 있다면 문관에는 양홍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양홍 정도가 브레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원술군의 처참한 인재풀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원술군에 워낙 문관이 없고 무장이라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돌대가리이기에 염상, 한윤과 함께 초창기의 원술군의 내정 전반을 맡다가 쓸만한 인재가 나타나면 곧 버려지는 일이 다반사.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5/14/75/59. 혼란과 매도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9/17/76/60/51로 원술군 최고의 지략가이고 유일한 군사 특기 보유자이지만 지력이 76밖에 안되서 조언 성공율도 별로고 통솔은 19로 바닥인지라 좀 안습하다. 내정 특기도 기술은 없고 상업만 있는데 정치는 또 60밖에 안되니...
삼국전투기에서는 대한민국 황대장의 황대장으로 나오며 네 명의 장수 대신 수춘성에 남았다가 하후연에게 죽는다. 윗 부분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연의의 오기(양대장)에 근거하는 개드립.
2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楊洪
(? ~ 228)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자는 계휴(季休).
건위군 무양현 사람으로 유장 때에는 관리로 지내자 이엄과 함께 유비에게 항복. 촉을 평정하자 이엄의 추천으로 공조로 임명되었으며, 이 때 관소를 옮기려는 이엄을 만류했지만 듣지 않자 물러나려고 했다.
이엄이 주에 추천해 촉부종사로 삼으려고 했으며, 유비가 한중에서 싸울 때 가능한 모든 물자를 한중으로 수송할 것을 주장해 거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니 결국 촉군태수가 되었다가 익주치중종사를 옮겨졌다.
이번에는 유비가 이릉전투에서 지고 백제성에 틀어박힐 때 한가태수 황원이라는 자가 모반을 하는데, 황원이 고립된 것을 지적하며 그의 행동을 파악해 그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장예하고 친했지만 제갈량이 장예를 유부장사로 임명해도 괜찮냐고 양홍에게 물어보자 상랑을 유부장사로 임명하고 장예를 그 부하로 두는 것이 좋다고 해 사이가 틀어졌다.
젊었을 때 공부하는 것은 싫어했지만 충성스럽고 청렴하며 성실하고 명석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공적인 일을 자기 집안일처럼 걱정했고 자신의 계모에게도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228년에 죽었으며, 처음에는 이엄의 부하였지만 나중에는 이엄보다 빨리 출세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어쨰선지 제갈량이 죽기전인 234년 쯤에 나온다.
2.1 미디어 믹스
삼국전투기에는 트랭크스로 출현했는데 아마 이엄이 베지터로 출현했기 때문인 듯하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 등장한다.- ↑ 파로장군 손견과 토역장군 손책의 열전이므로 '손씨 파로장군 손견 토역장군 손책 열전'이라고 해서 손파로토역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