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 드라마 | ||||
강남엄마 따라잡기 | → | 왕과 나 | → | 사랑해 |
2007년 8월 27일부터 2008년 4월 1일까지 SBS에서 방영되었던 사극으로 용의 눈물로 유명했던 김재형(1936년~2011년)이 연출한 마지막 드라마로 여인천하에서 김재형 PD와 호흡을 맞추었던 유동윤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일단 그나마 왕의 여자보다는 성공한 편인데 사족으로 작가 유동윤씨는 당초 <왕의 여자> 집필자였으나 KBS 1TV 무인시대와의 겹치기 집필 문제 때문에 고사했다. 애초에 왕의 여자는 방영 전의 작가 교체, 캐스팅 문제 등도 있었으나 상대를 잘못 만났다.
한편, 이 작품은 당초 내 남자의 여자 후속으로 기획되었으나 캐스팅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오자 SBS는 미니시리즈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대체 편성했고 이 때문에 <왕과 나>는 <강남엄마 따라잡기> 후속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이 작품은 세종대왕부터 연산군까지 7명의 왕을 모신 환관 김처선의 일대기를 그렸다[1]. 방영 초기엔 내시를 소재로 한 사극 드라마라는 사실에 호기심을 갖고 보기 시작한 사람이 많았으나 이때부터 선정성 논란이 빚어지는등의 구설수가 있었다[2]. 어쨌거나 아역들이 제 역할을 해주던 초기 시청률은 그럭저럭 좋았으나, 성인 연기자들로 바뀌고 난 이후 삐걱거리기 시작하다가 난데없는 어우동 에피소드[3]를 기점으로 시청률이 바닥을 치기 시작해 결국은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종영되었다. 게다가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사극인 MBC의 이산 덕분에 시청률은 더욱 더 바닥을 기다가[4] 연산군 역의 정태우가 출연한 뒤부터 조금이나마 올랐다. 간지폭풍의 강력한 왕권주의자로 묘사되는 건 나름 실록을 참조한 티는 보이지만 가면 갈수록 수습 안 되고 연산군 옹호론에 더 가깝다는 게 문제.[5] 애초에 드라마가 너무 늦게 만들어 진 것도 완성도 하락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재형 감독으로서는 억울했을 것이다. 이병훈이 연출한 대장금에게 참패하던 왕의 여자 이후로 한동안 침체기에 있다가 마지막으로 연출한 이 드라마까지 이병훈이 연출한 이산에게 밀렸다는 것이... 결국 4년뒤 그는 사망하여 유작이 되었다.
보통 악독하고 투기가 심한 여인으로 그려지던 폐비 윤씨를 여기서는 구혜선이 맡아서 청순하고 처연한 여인으로 그려내었다. 이밖에 폐비 윤씨를 정쟁에 희생된 가련한 여인으로 그리는 작품은 지경사에서 발간된 만화 한국사가 있다.
이 드라마가 드덕후들에게 레전설(?)인 이유는 작가와 배우들의 대립때문이다. 대본에 대해 항의하던 유동근[6]이 스텝을 폭행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고[7] 이 일의 원인으로는 작가와 배우들간의 불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항간에 주연인 오만석이 총대를 메고 작가에게 문제점을 건의했는데 작가는 그에 따른 보복으로 한겨울에 뜬금없는 물고문+곤장씬을 넣어서 보복했다는 이야기가 디시인사이드 드라마 갤러리(드갤)에 전설로 남았다.
초반에 어린애들을 모아서 고자라니환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하체 노출을 시켰다. 방송에는 엉덩이까지 나왔고, 심지어 성인 여성이 남자 아이의 벗겨진 하체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장면까지 나왔다. 뚫고 나오면 어쩌려고...[8] 이는 아역 배우나 시청자들에게 심히 불쾌감을 주는 행위인 만큼 문제가 심각한 장면임에도 노출씬을 촬영한게 여자 아이가 아니라 남자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작진이 무작정 감행한 만큼 한국 방송계의 병폐의 대표적 사례중 하나이다. 한 번 성인 남성이 여자 아이의 벗겨진 하체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장면이 나왔다 생각해보라...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방영된 이산에서도 이랬으니 두 방송사가 한꺼번에 삽질을 한 셈이다.
여담으로 후반부에 등장한 연산군의 배우가 정태우였다. 웬만한 연기 잘한다는 배우들도 빛을 못 본데다가 몇몇 배우들의 발연기도 지적되었던 이 사극에서 극 후반부를 그나마 살린 공신이라는 평을 듣는다. 사극팬들은 왕과 나 후반부를 그냥 '연산군'이라고 해야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주인공 김처선 역을 맡은 오만석도 그럭저럭 좋은 연기[9][10]를 보여주었지만 전반부에서는 내시부 수장 역을 맡은 전광렬의 카리스마 연기에, 후반부에서는 정태우의 후덜덜한 광기 연기에 묻힌 감이 있다.
참고로 해당 드라마는 2번 항목과는 달리 태국에서 방영되었다. (단 제목은 '김처선'으로 바뀌어서 상영)
드라마 제작 당시, 수원시 장안문 동쪽에 부지를 마련하여 촬영하였다.#네이버 항공뷰[11] 드라마 촬영이 끝난 이후인 2009년에 철거된 후 공터로 방치되어 오다가, 현재는 주차장 부지로 활용하고 있는 상태.- ↑ 그러니 이 드라마의 김처선은 성종 때부터 내시가 된 것으로 나오니 이미 고증에서부터 안드로메다로 간 셈이다.
- ↑ 성교육을 시킨답시고 궁녀들에게 소녀경에 나오는 체위를 시키고 실제 왕에게 보여주게 하는 장면 등이 있었다(...).
- ↑ 질질 끄는데다가 설득력이 없어서 안좋아지기 시작.
- ↑ 초반에는 왕과 나 쪽이 시청률이 더 높았지만, 상술한 것처럼 극이 늘어지고 개연성이 없어지면서 이산 쪽으로 갈아탄 시청자가 많았다.
- ↑ 다만 연산군이 폭정을 휘두르는 장면에선 확실히 폭군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무작정 옹호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가해자가 된 피해자로 묘사하면서 피해자로서의 면모가 많이 부각되다 보니 연산군 미화 논란이 일어난 듯.
- ↑ 인수대비역의 전인화의 남편
태종 흥선 대원군 연개소문 - ↑ 사과하고 마무리가 되었다고는 한다
- ↑ 실제로 종이로 막아뒀었다.
- ↑ 이 사극 이후 앞으로의 오만석 사극연기를 기대하지 않을거라는 평도 있는걸 보면 이미지 타격을 받은건 확실한 듯.
- ↑ 사실 오만석 사극 연기는 신돈에서 빛을 더 발했다는 평. 신돈에서 그의 연기는 정말 후덜덜하다.
- ↑ 본래는 주택가가 있던 부지였지만, 드라마 세트장 마련 직전에 모두 밀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