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프리츨 친딸 감금 강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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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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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프리츨(Josef Fritzl).혐짤

2008년 사건 발생 국가인 오스트리아는 물론 전세계를 경악시킨 근친 납치, 감금강간 사건.

2 사건내역

오스트리아 동부 암스테텐에 살던 용의자 요제프 프리츨은 당시 73세로 그는 외부적으로는 유능한 전기 수리공이었으며 당시에는 은퇴한 상태였다. 그는 부인 로즈마리와 2남 5녀를 둔 외면적으로는 친절한 이웃이었지만 실제로는 집안의 독재자어쩐지 누구를 닮았더라이자 근친상간을 즐기는 성도착증 환자였다. 그는 1977년 셋째 딸 엘리자베트를 11세일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왔다. 참고로 아동 성범죄자이긴 해도 페도필리아는 아니다. 피해자가 딸로 한정되어 있었고 게다가 딸이 성인이 된 뒤에도 성폭행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딸이 18세가 되고 곧 사회로 나가게 되자 자신의 범죄가 드러날 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게 된다. 실제로 딸은 17세 때 성폭행을 피해 가출, 수도 빈에서 살아간 적이 있었지만 경찰에 의해 발견된 뒤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물론 진상이 드러난 뒤에 경찰은 미친 듯이 까였다. 당시 두려움을 느낀 프리츨은 딸을 감금하여 지속적으로 성폭행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한편 자신의 범죄를 영구적으로 은폐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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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구조.

그는 1981년1982년에 걸쳐 숨겨진 지하실을 토굴 감옥으로 개조했다. 그 곳은 원래 방공호 용도로 쓰이는 곳이라 의심하기가 힘들었다. 이중문을 설치했는데 첫번째 문은 1m 두께의 책장 뒤에 숨겨져 있었으며 두 개의 문 모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 수 있는 전동식 철문이었다. 더군다나 문 두 개 외에도 비밀문까지 합쳐 총 8개의 문이 있었고 방음처리가 꼼꼼하며 각 문이나 통로는 아주 좁아서 탈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내부는 의외로 사람이 살 만하게 잘 꾸며져 있었는데 모두 본인의 재능과 열정으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이었다. 진정한 재능낭비, 장잉정신

1984년 8월 29일, 학교에서 다녀온 엘리자베트에게 요제프는 지하 토굴 정리를 도와달라고 부탁, 토굴로 끌어들인 후 그대로 구타, 감금해 버렸다고 한다. 그런 후 태연하게 딸의 실종을 신고하고 지하실에 갇힌 딸을 협박해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출하니 찾지 말라는 편지를 쓰게 한다. 그렇게 딸이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간 것처럼 꾸미고는 살아온 것이다.

이후 24년에 걸쳐 프리츨은 태평하게 부인 로즈마리와 살면서 수시로 지하 토굴에 들어가 엘리자베트를 지속적으로 강간했으며, 이 과정에서 7명의 아이를 출산시켰다. 그 중 세 명의 아이는 딸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낳은 뒤 부모 집 앞에 버린 것처럼 위장해 입양했고, 나머지 세 명은 그대로 지하실에 감금했다. 입양한 아이들은 나이가 많거나 울음소리가 컸기 때문에 입양한 것이었다. 나머지 한 아이(셋째 아이의 쌍둥이 형제였다)는 출생한 지 사흘만에 병으로 죽자 밖에서 대충 화장했다.

1986년 11월 임신 10주였던 첫 아이가 유산되었다. 1989년 첫째 커스틴, 1990년 둘째 스테판, 1992년 셋째 리사가 태어났다. 1993년 5월 요제프는 리사가 생후 5개월 때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출했다는 엘리자베트가 상자에 넣고 버리고 간 것으로 위장하여 리사를 양녀로 입양했다. 1994년 2월 넷째 모니카가 태어났고 12월, 리사와 마찬가지로 엘리바제트가 유모차에 버리고 갔다는 것으로 위장하고 입양했다. 1996년 5월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미첼은 3일 후 사망해서 밖에서 화장시켰으며 다른 아이 알렉산더는 1997년 8월 같은 구실을 들어 입양했다. 2002년 12월 일곱째 필릭스가 태어나자 입양하려고 했으나, 부인이 돌보기 힘들다고 하자 지하실에 그대로 감금했다.

감금 직후 9년 동안은 지하실에는 방 한칸 뿐이어서 아이들 앞에서 성폭행이 이루어졌으며, 1994년 엘리자베트의 지속적인 확장 요구로 요제프는 10여년간 은밀하게 지하실을 조금씩 증축해서 방 4개를 더했다. 이 때 엘리자베트와 아이들은 맨손으로 땅을 파서 거들어야 했다. 요제프는 3일에 한번 꼴로 지하실을 찾아 성폭행하고 음식을 줬다.

3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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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의 가계도. 빨간색이 감금당한 아이들이며 연두색이 입양되어 키워진 아이들이다.

24년 동안 있었던 요제프의 근친상간, 감금, 4남 3녀 출산 사실을 부인이나 다른 가족들은 물론 세들어 사는 사람도 전혀 알지 못했다. 권위적인 가장이었던 요제프는 부인이나 다른 사람들을 절대 지하실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검거도 우연히 이루어졌다.

2008년 4월 19일 지하실에 갇힌 3명의 아이 중 하나인 19살 첫째 커스틴이 신장에 문제가 생겨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혼수상태에 빠지자, 엘리자베트의 간곡한 호소로 요제프는 커스틴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이 때 엘리자베트는 24년 만에, 커스틴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는 주민 등록이 안 되어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진료를 받으면 그 즉시 누군지를 알 수 있는데, 한두 살도 아니고 19세나 된 소녀가 등록되지 않은 것이 의심을 샀다. 특히 커스틴의 옷에 엘리자베트가 사랑한다라고 쓴 노트가 있었는데 그렇게 사랑하는 엄마가 왜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수상하게 여긴 의사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엘리자베트 실종사건을 다시 수사하게 된다.

4월 26일,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요제프는 엘리자베트와 지하에 감금했던 세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에게 24년 만에 딸이 돌아왔다고 되도 않는 구라를 쳤으나, 이미 수사에 들어간 경찰이 집에 들어닥쳤다. 경찰은 요제프의 집을 꼼꼼히 수색하여 지하실을 발견했다. 이 공간에 대해 요제프는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으며, 결국 요제프와 아이들의 유전자 감식 결과 요제프와 딸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임이 밝혀졌다. 근친상간 가능성이 거의 확실했고 이에 따라 경찰은 두 사람을 일단 구속한 뒤 각각 격리한 채로 강하게 추궁한 끝에 엘리자베트로부터 '요제프를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줄 것'을 조건으로 요제프가 친딸을 감금하고 무려 31년 간이나 성폭행을 저질러왔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경찰은 다시 요제프에게 이 사실을 근거로 강하게 추궁했으며, 요제프가 모든 걸 자백하여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4 범죄자의 삶

요제프 프리츨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갖은 학대에 시달렸으며 이 과정에서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성욕과 결합된 형태의 성도착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단, 상술했다시피 페도필리아는 아니었다. 성폭행 피해자는 어린 시절의 친딸을 빼면 모두 성인이고 그 친딸은 성인이 된 뒤에도 성폭행을 당했으며 주변 사람들도 프리츨이 여자에게 관심이 많다고는 했지만 아이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증언은 하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성도착증을 내면에 지닌 그는 징역 1년 6월을 복역한 강간 전과가 있었으나, 오스트리아에서는 15년 이하의 징역형 전과는 삭제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프리츨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업을 계속했고 이 과정에서 친딸이 낳은 자식들을 입양할 만큼의 정당성까지도 확보할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성범죄 경력자에게 입양을 허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전과가 삭제되어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PTSD가 결합된 성도착증 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결여가 대참사로 이어진 셈이다. 오스트리아 사회는 제 2의 인생을 생각해서 전과 기록은 삭제하더라도 최소한 프리츨이 성범죄를 저지른 뒤 재범하지 않도록 정신적인 치료 및 관리를 했어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건에 대한 대중의 경계가 심각해지자 세계 각국은 성범죄자의 신상을 장기간 공개하고 거주지 제한, 전자발찌 착용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1]

5 24년 동안이나 범행을 지속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

요제프는 딸을 감금하기 위해 굉장히 치밀한 계획을 짰다. 전기 기술자로서의 지식을 활용하여 토굴을 만들고 출입구를 자신 외에는 드나들 수 없도록 개조했다. 또한 토굴을 일상 생활이 가능할 수준으로 개조하여 지하에서 엘리자베트와 세 자녀가 살아가도록 한 것이었다. 따라서 가족들은 물론 이웃들도 요제프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지를 알 수가 없었다. 또한 그의 연기가 너무나 철저하여 경찰조차도 꼬리를 잡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물론 이들이 의심조차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웃들은 요제프가 평소에도 가족들에게 가혹하다는 걸 잘 알기에 '또 폭행하는구나'라는 식으로 생각해서 무시했고, 요제프의 가족들은 혹독한 구타와 학대, 협박에 사실상 노예화되어 요제프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다. 사실 친딸 엘리자베트와 다른 가족들의 차이는 강간을 당했다와 당하지 않았다의 정도 뿐이었던 셈이다.

또한 엘리자베트 자신도 탈출할 수 없었다. 요제프가 출입구를 철저히 통제한 데다 평소 전기를 끊거나 식료품을 갖다주지 않는 일이 허다했으며 수시로 구타를 일삼았고 더욱이 새로 낳은 자식들의 생명줄을 들고 협박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아버지의 지배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엘리자베트가 출산한 아이들은 모두 근친상간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유전적 질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하실에서 평생을 지낸 세 아이는 육체적으로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매우 미성숙했으며 요제프의 양자 행세를 하며 살아온 나머지 세 아이 역시 상태가 좋지 않다.

6 결과

당연히 오스트리아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범죄가 잊을 만하면 벌어졌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성욕에 눈이 멀어 사람이기를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친딸을 성노예화하고 24년간 사육한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오스트리아인들은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고 요제프는

- 아동 성폭행(엘리자베트가 11세일 때부터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 학대
- 과실치사 - 프리츨은 태어난 직후 죽은 아이에 대해 관리 소홀로 죽었다고 주장했고 이를 반박할 확실한 증거가 없어 과실치사만 적용되었다. 엘리자베트의 증언도 이 부분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등이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정신과 치료 감호소로 보내져 계속 복역 중이다.
요제프의 변호사그래도 크리스마스엔 트리를 함께 만들었다는 변호로 요제프가 감옥에 가선 안된다고 변호했다가 암살 위협을 느끼고 변호를 철회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그 당시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 등 납치, 감금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감금 국가로 찍힌 상황에서 경악할 만한 이 사건으로 국가 이미지가 망가졌다고 오스트리아인들은 하소연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오스트리아인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이 요제프 프리츨이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오스트리아에서 또 일어나기도 했다.

7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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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엘리자베트.

요제프가 엘리자베트에게서 얻은 6명 중 요제프의 양자로 위장되어 밖에서 길러진 리사, 모니카, 알렉산더는 평범하게 자라 학교에도 잘 다니고 있었고, 엘리자베트는 감금당하기 전에 이미 18세라 생활에 대한 기억이 있어 풀려난 후 상황에 적응했다. 그러나 엘리자베트와 감금되었던 커스틴, 스테판, 펠릭스 세 아이는 바깥 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저 지하실에 설치되었던 TV, 비디오 등으로만 세상을 접해왔던 스테판과 펠릭스는 처음 보는 바깥 세상과 햇빛에 감동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언어 능력으로 자신들끼리 신이 나서 대화를 나누었고, 펠릭스는 '바깥에 나와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제프가 재판을 받고 수감된 뒤 엘리자베트와 여섯 명의 아이들은 오스트리아 북부의 알려지지 않은 마을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이 때 프리츨이 기른 아이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이 거짓말이고 자신들의 아버지는 바로 할아버지이기도 한 요제프이며 어머니와 지하에 감금되어 있었던 다른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심각한 점은 모든 아이들이 정신지체 등 근친상간 출생으로 인한 공통적인 유전적 문제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기적인 통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던 치과를 비롯한 병원에는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으며 맏이인 커스틴은 이미 대부분의 치아를 잃었다. 또 지하실의 낮은 천장 때문에 아이들의 자세는 심하게 굽어 있었으며 스테판은 시력과 청력의 손상 가능성도 제기됐다.

거기다 이들은 TV를 통해서만 바깥 세상을 접해왔던 탓에 현실 적응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펠릭스는 바깥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였으며 아이들의 어휘력도 동년배에 비해 현저히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책 한 권 없는 지하실에서 어머니 엘리자베스로부터 읽기와 쓰기를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엘리자베스 자신이 11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데다가 18세 때부터는 아예 지하실에 갇혀 지냈기 때문에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요제프의 부인 로즈마리는 딸이 감금되기 전인 11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고 엘리자베트는 어머니 로즈마리와 멀어졌다고 인정했지만 로즈마리가 기른 3명의 아이들이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는 그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허락했다.

2009년 6월, 오스트리아 신문은 엘리자베트가 '토마스 W'라고만 알려진 보디가드 중 한 명과 사귀면서 현재 함께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제프 프리츨은 과거 수도원이었던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에 있는 가르스텐 교도소의 정신 질환 범죄자를 위한 특별 구역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면회를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55년 간 함께 살았던 아내 로즈마리와 이혼하여 그녀의 연금 수령권을 박탈했다. 동료 수감자들한테 처 맞으며 살기를
  1. 이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존재하며 수치적으로 분명히 효과가 보인다는 주장과, 반면에 별다른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성범죄자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여 자포자기 상태로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