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반티에우

1 실제 인물

베트남어: Nguyễn Văn Thiệu
영어: Nguyen Van Thieu
카타카나 표기: グエン・バン・チュー[1]
쯔놈(한자) 표기: 阮文紹(완문소)
외래어 표기법 한글 표기: 응우옌반티에우

1923년 4월 5일 ~ 2001년 9월 29일
재임기간 : 1965년 ~ 1975년

베트남 공화국정치가, 군인, 독재자응오딘지엠 정권 당시 대통령 군사고문을 맡았다가 1963년 응오딘지엠 암살 이후의 쿠데타 열풍[2]을 견뎌내고 1965년에 역시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다.

쿠데타 당시 연대장(대령)이었다고 하며, 사실 티에우는 프랑스와의 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베트민 소속으로 활동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총리 까오끼는 프랑스 군에서 조종사로 교육받은 조종사 출신 식민지 엘리트(병과는 수송이었다는데, 공식 석상에도 비행복 차림으로 나타나는 등 하는 짓은 전투기 조종사처럼 노는게 특징)

이후 제2차 베트남 전쟁 대부분의 기간 동안 베트남 공화국대통령 직에 있었다.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었으나 67년과 68년을 이은 민정이양을 위한 선거에서는 승리하고(베트콩의 방해와 부정 선거 논란이 있었으나 베트콩은 미군이 막아냈고 부정 선거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1971년에 재선에도 성공하여 쿠데타의 반복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구정 공세 실패 직후의 짧은 평온기를 잘 수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베트남 정부의 고질적 병폐인 부정부패와 무능에 있어서는 결코 나을게 없었고[3] 총리이자 공군 참모총장으로 군부 실세인 응우옌까오끼와의 반목도 극심했다.[4]

미국에서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들어선 뒤 미군 철수가 표면화 되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자구책을 세우지 않아 패망의 단초를 제공한다.

하지만 티에우 탓만 할 수 없는 것이, 당시 남베트남은 소위 군벌들의 집합체,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중국 대륙을 지배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각 군벌들이 자기 지역의 주지사(성장)이자 지역사령관 같은 존재라 티에우의 말빨이 제대로 서지 않을 뿐더러, 강제할 방법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냥 미군이 티에우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에 나머지 군벌들이 마지못해 승복하는 수준, 실제로 중부 다낭 일대의 불교도 군벌은 티에우 정권 수립 이후에도 서구식 기독교 기반 정책에 반발해서 티에우의 정부군과 군벌 휘하군이 다낭 시에서 정면 충돌한 사례도 있었다. 미군은 개입도 못하고 전전긍긍..

1975년 봄 공산군의 대공세로 베트남 공화국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5] '배신자 미국'을 비난한 후 재보를 실은 비행기[6]를 타고 대만으로 탈출하였다.

한동안 영국에서 살다가 소련이 붕괴되자 재기를 노리며 도피, 자유 베트남 정부라는 반공조직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01년 사망한다.

4월 21일에 티에우가 사임 직후에 탈출한 후에도 사이공에서는 누가 권력을 잡느냐를 두고 정쟁과 쿠데타가 잇달았으며, 지엠을 실각시키고 죽게 만들었던 즈엉반민이 4월 29일자로 대통령직에 취임하여 공산군과의 협상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북베트남, 즉 베트남 민주 공화국은 무조건 항복 이외에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결국 즈엉 정부는 다음날인 4월 30일자로 항복 선언을 발표하였다. 즈엉반민이 북베트남 대표에게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하자 "당신의 정권은 우리가 방금 붕괴시켰소. 존재하지 않는 것을 포기할 순 없소."라 일갈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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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한국 방문(1969년 5월 27일, 서울시청).

그와 박정희는 집권 초기 모습에서 닮은 면이 많다. 쿠데타대통령이 되었고, 부정선거 논란이 있으나 여하간 비교적 정상적 과정의 대선을 거쳐 40대의 젊은 나이에 대통령에 선출이 되었으며, 재선에도 성공했다. 각각 2인자인 까오끼와 김종필과의 반목도 부분적으론 비슷하다.

2 가상의 인물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응웬 반 티우. 원래 응우옌반티에우가 맞지만 기존은 카타카나를 그대로 음역한 구엔 반 휴로 알려져 있었다. 이타카판이 나오면서 원 표기랑 거의 유사한 응웬 반 티우가 됐다.
  1. 옛 표기는 グエン・バン・ヒュー였다.
  2. 티에우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무려 두 자릿수의 쿠데타가 있었다.(...)
  3. 재임 기간중 마약 거래를 배후 조종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의혹이 있다.
  4. 응우옌까오끼는 사이공 함락 며칠 전까지 대통령이 되기 위한 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5. 사실 이건 티에우 본인 탓도 있다. 중부고원의 2군단을 재배치-사실상 철수-시켜야 했는데 너무 늦게 결정을 내려서 재배치가 아닌 사실상의 패주가 되어버렸고 2군단은 붕괴, 여기서부터 남베트남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6. 금괴가 든 가방을 들고 간 정도가 아니라 금괴와 미술품을 잔뜩 실은 남베트남 공군 수송기가 티에우가 탄 비행기의 뒤를 따랐다고도 한다. 당연히 수송기 조종사들과 승무원들도 기체와 함께 망명했다. 티에우가 가져간 금괴들은 남베트남 정부의 국고에 있던 것은 아니고, 마약 판매 등 부정축재를 통해 개인적으로 모은 재산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