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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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尙信
1928년 03월 05일 ~ 1983년 03월 16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28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유봉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유봉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고 김영삼, 박준규 등과 청조회라는 서클에 속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산청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변종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삼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권해옥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민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의령군-함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이상철 후보와 무투표 당선되었다. 이후 신상우, 이기택, 김상진 등과 신도환계인 신우회에 속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구자춘 서울특별시장을 향해 특권층에만 특혜를 주는 황야의 무법자라고 비판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상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정치규제 중이던 1983년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