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플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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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랭커스터 플레밍
Ian Lancaster Fleming
1908년 5월 28일 ~ 1964년 8월 12일

제임스 본드의 아버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기자이자 소설가로 1952년 <카지노 로얄>이란 이름의 스파이 소설을 출판하며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007 시리즈를 시작한 원작자이다. 죽기 직전까지 총 14편의 시리즈 장편과 8편의 단편을 썼다. 의외로 아는 사람이 적은데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나오는 어린이 소설 <치티 치티 뱅 뱅,Chitty Chitty Bang Bang>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1968년에 영국에서 이것도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바로 우리나라에서 오래전 많이 쓰이는 자동차 경적 소리이기도 한 노래 <치티 치티 빵빵>이 바로 이 소설 및 영화 제목에서 나온 것이다.

이튼 스쿨을 거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체력이 별로 좋지 않았던데다 딱딱한 분위기에 질려 1년 만에 중퇴, 이후 독일스위스로 유학하여 어학 능력을 길렀다. 1929년, 로이터 통신에 입사.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러시아어를 익히는 한편,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들여다 보면서 "인민의 천국" 공산주의 체제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도 충분히 체험한다. 귀국 후 유럽에 전운이 높아지던 1939년, SIS에 소속되었으며 전쟁이 일어나자 윈스턴 처칠이 영국 본토 이외 지역의 대간첩업무를 전담시키기 위해 위해 미국 정부 협조를 얻어 뉴욕에서 발족한 '영국 보안조정국(British Security Coordination)'의 국장 보좌로 영전, 방첩업무와 함께 SOE, OSS 같은 조직의 작전 입안과 실행에 종사했다. 과거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한 탓에 육군이 껄끄러웠는지, 영국 해군 쪽에서 주로 근무했고, 훗날 제임스 본드를 육군이 아닌 해군 중령으로 설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전후 퇴직하여 신문 칼럼 기고 같은 일을 하며 한동안 한량 노릇을 하지만, 워낙에 미식가, 애주가에 도박꾼으로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래서 오래 못 사신 듯 생활비가 바닥을 드러내자 이를 벌충하기 위해 소설을 쓸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던 미국식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주인공[1]과 전쟁 당시의 경험을 뒤섞어 그 때까지는 없던 참신한 액션 모험물인 007 시리즈를 쓰게 된다.[2]

후일 007 시리즈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질문에 전쟁 중 자신을 혹사시킨 상관[3]이 술만 들어가면 주절대던 무용담에 대해 조롱하는 일종의 복수심리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플레밍 본가에서는 지금까지도 007 시리즈를 가문의 수치로 여긴다고 한다. 도박, 섹스, 술, 미식 등을 즐기고, 수다스런 이안 플레밍과 그의 창조물 제임스 본드가 영국 신사답지 못해서라고.

사실 그도 그럴것이 플레밍이 쓴 007 원작은 펄프 픽션에 가까운 작품이었고, 인종차별적, 호모포비아적, 성차별적인 서술도 흔히 있었기에 지금 관점으로는 저렇게 생각하는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니그로 표현은 기본에 골드핑거를 보면 한국인을 거의 원시인에 가까운 강간범처럼 표현했다. 그 외에도 본드가 푸시 갈로어를 교정강간하는 장면까지 나오며,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경우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원작 후반부는 굉장히 여성차별적인 내용이었다. 시대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문제가 있는 내용들이 매우 많았기에, 영화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모조리 잘려나가거나, 아예 원작과는 정 반대의 내용이 된 경우도 많다.

영국의 유명배우 크리스토퍼 리와는 사촌간.

BBC 아메리카에서 그의 SIS 시절을 바탕으로 한 '플레밍: 본드가 될 남자'가 2015년 1월 29일에 방영했다. 아들아, 나도 이렇게 날렸던 시절이 있었단다

  1. 플레밍은 필립 말로 시리즈의 광팬이었고 작가인 레이먼드 챈들러를 존경하여 몆 번이고 찾아가 인터뷰하기도 했고 영국에 초청하기도 했다.
  2. 플레밍 자신은 결코 007 시리즈를 리얼한 스파이 소설로 쓰지 않았고, 본인도 스파이 소설이라기보단 모험소설(Adventure novel)이나 새로운 형태의 하드보일드 소설로 불러주길 원했다. 뭔 놈의 간첩이 만나자마자 지 본명을 두 번씩이나 말하나!
  3. BSC 국장인 윌리엄 스티븐슨 경(Sir William Samuel Stephenson).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정보업무에 종사한 베테랑이었다. 캐나다인이지만 '경(Sir)'의 칭호를 받은 것도 전쟁 중 공적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