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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九
1950년 9월 22일~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이다. 오봉 이중재의 아들이며 옥암 이경재가 그의 당숙부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22세 종(鍾)자 항렬이다.
6.25 전쟁 중인 1950년 9월 22일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오봉 이중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가족들을 따라 서울로 상경하였고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부산 출생이고 쭉 서울에서 살았지만, 아버지 이중재의 고향인 전라남도 보성군을 고향으로 여기는 듯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국세청, 재무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등에서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간사, 한나라당 제3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에 속하여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하지만 정작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선출되자 친이계가 반발했다. 친이 진영은 이종구 의원은 강재섭 전 대표의 측근이라며 반대했다. 본인들 패거리가 공천심사위원장 되었는데도 반대하는 클라스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에 임명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박상일에게 밀려 탈락하였고 이후 박상일은 역사관 문제로 공천이 취소되어 심윤조 전 주오스트리아 대사가 강남 갑에서 당선 되었다. 이후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역임하고 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심윤조와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당선인 워크숍에서 선거 참패의 주된 원인은 최경환 때문이라며 삭발하라고 하였다.
비박계로 분류되며, 국회 기재위원장을 희망했으나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조경태 의원에게 경선에서 패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