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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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重載
1925년 01월 20일 ~ 2008년 12월 18일

대한민국정치인이다. 호는 오봉(珸峰)이다. 종교개신교이다.

1925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52년 인촌 김성수의 개인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고흥문계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경제통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국회에서 재무위원회 소속으로만 있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 이정래 대신 전라남도 보성군 선거구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양달승 후보에게 낙선하였다. 그러나 양달승 당선자가 부정선거를 저질러서 1969년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그 때는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황성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보성군-고흥군 선거구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신형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신형식 후보와 무소속 김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김대중이 정치활동을 재개하려 하자 김대중계에 속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고 민주한국당에 입당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를 서울특별시 강남구(서초구 분구 전)로 옮겨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김형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다시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낙선하자 1988년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국민당 김동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따라가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역임하였다.

그의 아들 이종구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근무하다가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7대,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제20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후신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다시 국회에 복귀했다. 그리고 사촌 동생 옥암 이경재는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제13대,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