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1 전 야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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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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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고등학교 감독 시절.

이름이희수(李熙洙 / Hee soo Lee)
생년월일1948년 1월 17일
출신지부산광역시
학력성남고
포지션2루수
소속팀농협
지도자북일고등학교 감독 (1977)
북일고등학교 코치 (1977~1981)
북일고등학교 감독 (1982~1983)
롯데 자이언츠 코치 (1984~1986)
빙그레/한화 이글스 1군 수비코치 (1987~1998)
한화 이글스 감독[1] (1998~2000)
성남고등학교 감독 (2003~2006)
1999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김재박(현대 유니콘스)이희수(한화 이글스)김재박(현대 유니콘스)
한화 이글스 역대 감독
강병철
(1994~1998)
이희수
(1999~2000)
이광환
(2001~2002)

1.1 소개

대한민국의 전 야구 감독. 1948년생.

1.2 선수 경력

1948년 당시 미군정기하의 부산부[2] 에서 태어났다. 부산 대동중학교 1학년까지는 배구를 했으나 키가 작아서 중학교 2학년 때 야구선수로 전향했고, 부산공고에 진학하나 이 후 서울 성남고에 전학했다. 졸업 이 후 농협 야구단에 입단해 주전 2루수로 활약했고 국가대표 상비군으로도 뽑혔으나 비교적 젊은 만 28세에 은퇴했다.

1.3 지도자 경력

1977년 북일고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영덕 감독이 부임하면서 코치로 밀려났다. 이 때 4년간 코치로 경험을 쌓으면서 우승도 일궜고, 김영덕 감독이 OB 베어스 창단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자 북일고 감독직에 복귀, 화랑대기 2연패를 달성한다.

1984년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로 부임해 강병철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팀의 첫 우승을 일군다. 그러나 1986년 강병철 감독이 롯데와 재계약에 실패하자[3] 롯데를 떠나 빙그레 이글스 수비코치로 부임했다. 그 시기의 감독이 김영덕, 강병철로 모두 그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에 감독의 변화와 상관없이 계속 코치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1998년 7월, 강병철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한화 감독직에서 중도 해임되자 감독 대행에 부임해 시즌을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에 정식으로 후임 감독에 부임한다. 1999 시즌은 양대리그로 치러진 첫 시즌인데, 단일리그 기준으로는 리그 4위에 불과한 성적이었지만, 양대리그 체제에서 크로스 토너먼트로 치러진 PO의 특성이 팀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바로 정민철, 송진우, 이상목으로 이어지는 막강 선발진과 최강 중무리 구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오프에서 4전 4승으로 두산 베어스를 일축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는데, 시리즈 상대였던 롯데가 삼성과의 치열한 혈전 속에서 진을 다 빼고 올라온 통에 비교적 쉽게 4승 1패로 우승한다. 한화 이글스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이다.(2016년 기준)

하지만, 그 이듬해에는 매직리그 3위로 추락하는데, 꼴찌였던 SK 와이번스는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를 가지고 시즌을 꾸리던 절대 약체였고, 따라서 이는 사실상 꼴찌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전년도 우승에도 불구하고 재계약에 실패, 팀을 떠나게 된다. 여기에는 1999년 당시 일어난 한 사건도 영향을 끼쳤다. 1999년 5월 21일 경기에서 구대성이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를 하다가 퇴장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경기 후에 이희수 감독이 당시 구심이었던 이영재 심판의 얼굴을 때린 것이다. 이 때문에 1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게 된다. 그런데 당시 2위였던 LG와 7경기 차로 뒤지던 한화는 이때부터 치고 나가기 시작 결국 매직리그 2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 당시 감독대행으로 경기를 지휘한 인물이 당시 수석코치였던 유승안이었다. 유승안은 이 때 능력을 인정받고 팀의 감독에까지 오르지만, 그 때의 성적은...

한화 감독에서 물러난 뒤 모교인 성남고 감독을 맡으며 고교야구계에 복귀, 2004년 청룡기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당시 제자였던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고교야구 최초의 4연타석 홈런으로 이름을 날린 박병호이다. 2006년 지도자 은퇴를 선언하고 홍우태 코치에게 성남고등학교 감독직을 넘겼으며, 같은 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타로 나온 바 있다. 구대성의 은퇴식 당시에도 초대받아 참석했으며, 2011년에는 KBS대전에서 한화 이글스 라디오 중계 해설을 맡았으며,한동안 KBO 육성위원장으로 일하다가 물러났다.

여담으로,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이 있는 감독 중 경력이 가장 짧다.우승을 1번이라도 하면 보통은 능력 있는 감독으로 인정받아 커리어가 연장되거나(김영덕,강병철,백인천,이광환,선동렬) 우승은 오랜 기간 못했지만 약팀에서 겪었던 노하우를 통해 우승하게 되거나(김인식,조범현,김성근),처음부터 승승장구 하여(김응용,김재박,류중일) 커리어가 최소 5년을 채우게 되는 게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양대리그 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우승, 출장정지 징계로 인한 평가 불가 등의 이유로 프로야구 감독 경력이 2년 밖에 안 되어 떠나게 된 특이한 케이스다.게다가 상술했다시피 강산이 두 번 변하도록 한화그룹에서 일했던 성골인데

2015년 10월 1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한화 이글스 경기 전에 열린 송지만의 은퇴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2 전 성우

[1]
시계 방향으로 5번째 인물.

대한민국의 성우. 5월 7일생. 2003년 온미디어(현 CJ E&M) 제5기로 입사하였으나, 2005년에 모종의 개인 사정으로 퇴직하여 현재는 성우 활동이 없다.

2.1 출연작

2.1.1 애니메이션

2.1.2 특촬물

3 쵸비츠의 주인공 모토스와 히데키의 한국명

모토스와 히데키 항목 참조.
  1. 대행 시절 포함.
  2.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에서는 충남 출신이라고 되어 있다. 1999년 우승 당시 한겨례 신문에 부산출신이라 나옴.
  3. 당시 롯데 프런트는 강병철과는 재계약할 예정이었으나, 이희수 대신 이광환을 수석코치로 영입하려고 했다가 강병철의 반발로 접었다. 그러나 이희수의 재계약 협상을 앞두고 강병철이 "희수 계약금을 애 과자값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농담삼아 말하자 모기업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강병철과 이희수의 목을 동시에 날렸다(...)
  4. 파이널에선 정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