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사관/학자

일본에서 우익 사관을 주장하는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가 있는 학자라고 자칭을 하는 천하의 개쌍놈들을 정리한 병신열전 페이지.

1 학자/정치인/언론인

1.1 가세 히데아키(加瀬英明)

1936년 12월 22일 ~

1.1.1 약력

부친은 일본 패전전후에 초대 유엔대표부 특명전권대사등을 지낸 외교관 가세 도시카즈이며, 모친은 일본흥업은행총재 오노 에지로의 딸이다. 또한 존 레논의 아내 오노 요코가 사촌이다.

게이오기주쿠 대학교를 졸업 후 미국의 예일 대학, 콜롬비아 대학에서 유학하였고,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초대편집장으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후소샤를 대신하여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의 교과서를 간행하는 지유샤(自由社)의 대표이사이며, 우익잡지 월간 자유의 편집의원대표이다. 또 일본의 전국 우익조직 '일본회의(日本會議)'의 대표위원이며 도쿄본부장이다. 일본에서는 '외교평론가'라는 직업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외무성(한국의 외교통상부)에서 근무한 기록은 전혀 없다.

1.1.2 <추한 한국인> 출판

1993년에 일본에서 박태혁이라는 가명을 써서 <추한 한국인>이라는 책을 썼는데, 30만부나 팔렸다. 책의 내용은 익명의 한국인 저자가 쓴 자기 비판서 형식으로, 일제의 한국통치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국인에게 식인습관이 있다는 등의 비상식적으로 왜곡된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도쿄 특파원이었던 한국인 기자에 의하여 이 책의 실 저자가 가세라는 사실이 밝혀져 큰 파문이 일었으며, 이후 이 파동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입국이 금지되었다. 웃기게도 이 파동으로 인해 입국을 금지당하기 전까지 그는 군사정권 시절 청와대를 넘나들며 대일외교의 파이프라인을 자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국에서 열린 학술회의등에 참석하기도 했다.

<추한 한국인>은 재특회 등 일본 내의 신흥 우익에게는 거의 경전처럼 취급되는 책이다. 특히 혐한초딩들의 재일교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대부분 이 책의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재일교포들의 발생원인에 대한 내용을 들 수 있는데 <추한 한국인>에서는 한국을 완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도로 묘사하며 재일교포들도 자발적으로 그런 한국을 빠져나와 "살기 좋은" 일본으로 몰려온 것으로 설명한다. 물론 개소리이다. 현대 재일교포 상당수는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 전쟁 피해자들의 후손이다. 다만 알려진 거와 달리 대부분 재일교포가 일제 징용만으로 끌려왔다는 소리는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관동지진,3.1운동전에는 제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다수의 노동자가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다.조선농촌의 급속한 지주화로 인한 잉여 노동력의 일본 유입이다. 물론 관동지진이후 치안유지의 명목으로 제주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입국(?)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리고 중일전쟁 시기부터 노동력이 부족한 군수기업에 몰빵을 넣었다. 당연히 대우는 좋지 않고........

김완섭, 오선화(고 젠카), 최기호 등의 일본에서 활동하는 반한 작가들을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뉴스위크 국제판에서 일본의 침략을 옹호, 미군 기록에 위안부는 창녀라고 적힌 점을 들먹여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다만 유의할 점이 있다면 저 뉴스위크 국제판은 미국 본토가 아닌 미국 외의 국가에 세계적으로 나가는 판본이다.

하지만 1996년 추한 한국인 2를 썼다가 전권과 달리 판매가 부진했고 덤으로 이 책을 썼다는 다른 인물과 저작권 수익 분쟁을 벌이면서 이게 일본인이 한국인 가짜 이름으로 쓴 게 더 확실하게 일본에서도 드러났다. 우습게도 이전만 해도 박태혁이란 한국 이름을 들먹이며 혐한우익들이 한국인의 진지한 자기 고백이라고 개드립치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자 일본인의 진지한 한국인 연구라고 역시나 개소리로 싹 태도를 바꾸며 옹호하고 있다. 덤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90년대 초반에 다룬 바 있는데 진짜 박태혁이라는 재일교포가 나와서 이 쓰레기 책자 때문에 내가 억울하게 욕을 먹는다고 분노에 찬 말을 일본어로 쏟아부으며 인터뷰하기도 했다...

1.2 고바야시 요시노리

항목 참조.

1.3 고보리 케이치로(小堀桂一郎)

1933년 ~

1.3.1 약력

도쿄도 출신. 도쿄대학 문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86년부터 1995년까지 도쿄대학 교수를 지낸다. 95년부터는 메세 대학 일본 문화 학부 언어 문화학과 교수로 취임하여 2004년에 정년 퇴직해 지금은 명예 교수로 있다. 극우사상을 주장하는 대표 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역사 갈등이 불거진 1980 년대 초부터 역사 문제에 대한 활발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극동군사재판을 비판하며 소위 '자학사관'에서의 탈피를 주장한다. 극우단체인 '일본회의'의 부회장, '교과서 정상화 국민회의', '천황폐하의 방한(方韓)문제를 생각하는 모임' 등의 다양한 정치활동에 참가했다.

1.4 구로다 가쓰히로

항목 참조.

1.5 나카니시 테루마사(中西輝政)

1947년 ~

1.5.1 약력

교토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한 국제정치학자. '반격하는 보수에 의한 일본의 재생'을 주장하며 왕성한 집필과 강연을 하는 대표적인 우익학자이다. 일본은 '해양국가'이며 따라서 영미식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황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국내에서 출판된 책 중 유명한 것으로는 <대영제국 쇠망사>가 있다.

1.6 니시오 칸지(西尾幹二)

1935년 ~

1.6.1 약력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독문학자이다. 보수계 문화인으로서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 내의 외국인 노동자의 법적 폐해 등에 관하여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우익 논객으로 등장하였다. 1996년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와 함께 새역모 창설을 주도하고 1997년에 새역모 초대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2006년 1월 "젊은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새역모를 탈퇴했다.

1.7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

1945년 ~

1.7.1 약력

여성 평론가. 베트남에서 출생하여 하와이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도쿄 지국에서 근무한 후 1980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 'NNN[1] 오늘의 사건'의 메인 캐스터로 근무했다. 여자 캐스터의 선구자적 존재라고 한다. 현재는 평론가로서 저술 활동을 하는데, 한국과 중국의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다.

SM엔터테인먼트김영민 사장이 니혼TV의 <금요 수퍼 프라임 '도코로, 산마의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누구인가 회의>에 출연했을때[2] 게스트로 나온 할머니가 바로 이 사람이다.해당 방송 그외 안녕 절망선생에 까메오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1.8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1930년 ~

1.8.1 약력

도쿄대학교 법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중 외교관 시험에 합격한 외교관 출신의 외교평론가이다. 새역모 찬동자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대사 등을 역임했다. 친미 우익의 대표 논객으로서 '오카자키 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자민당 기관지에 항상 기고나 대담 기사가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존재이다.

1.9 와타나베 쇼이치(渡部昇一)

1930년 ~

1.9.1 약력

영어학자. 일본 상지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일본 우익 논단의 일각을 점하는 사람으로서 전문 영어학 이외에 엄청난 수의 역사 이론, 정치, 사회 평론을 썼다. 유명한 우익 월간지인 <WiLL>을 포함하여 우익 사상을 전하는 대부분의 매체에 기고했다. 일본 최대 우익조직인 '일본회의'의 기관지에 늘 수필이나 대담을 게제하고 있다.

1.10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1943년~

1.10.1 약력

홋카이도 대학 교육학부를 졸업했으며, 현재 우익 학자들의 총본산지인 다쿠쇼쿠(拓殖)대학 '일본 문화 연구소'의 객원교수로 있다. 소위 '자학사관'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사관 연구회'의 설립자이다. 1996년 니시오 칸지와 함께 새역모를 설립하였다. 2005년도판 새역모 역사교과서의 대표 집필자를 지냈으며, 현재 새역모의 이사이다. 과거를 반성하지 못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계속해서 표현하고 있다.

1.11 무로타니 카츠미(室谷克實)

1949년~

1.11.1 약력

지지통신사 출신의 정치부 기자로서, 기자시절에는 지지통신의 서울특파원을 지내기도 했고 2009년에 정년퇴직했다. 이전의 대표저서로 <한일이 터부시하는 반도의 역사>가 있었으며, 2013년 <악한론(또는 오한론)>을 출판해서 신극우파들에게 흥행했으며, 이는 제2의 혐한류 신드롬에 비견될 정도. 이후 악한론의 후속작인 <매한론>을 출판했고 이것도 꽤 흥했다. 매한론 띠지에 엉뚱하게도 전국노래자랑의 꿀벌아저씨(...) 사진이 나온다.

1.12 미쓰하시 다카아키(三橋貴明)

1969년~

1.12.1 약력

경제평론가, 컨설턴트('중소기업진단사'라는 국가 자격#을 가지고 있다). 본명은 나카무라 다카시(中村貴司). 도쿄도립대학 경제학부 출신. 경제인답게(?) 경제적으로 한국을 많이 깐다. 위의 무로타니와 같이 쓴 책(이라기 보다는 대담집)도 있다.

2 군인

2.1 타모가미 토시오 (田母神俊雄)

군관 출신이지만 그의 주의주장은 일본 극우사관과 꽤 통하기 때문에 일단 이쪽으로도 분류한다. 특정 발언으로 현역에서 경질된 이후 그의 발언수위는 막나가고 있다. 상세는 해당 문서 참조

3 넷 우익계 신보수/혐한론자

이들은 '학자'라고 보기에는 그냥 대중선동이 탁월한 쪽에 가까우나, 일본 우익 주요인물의 기재목적으로써 이 문서의 꼭지중 하나로 임시처리함.

3.1 타카다 마코토

1972년~
항목 참조. 재특회로 인해서 한국인에게 혐한초딩끝판왕격으로 각인된 인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2 쿄모토 카즈야

1988년~

3.2.1 약력

통칭 카즈야라고 불리며, 홋카이도 출신에 생년을 보면 알겠지만 우익사관론자중에서는 꽤 젊은 피에 속하나 학력은 고졸로 높지 않은 편이다. 2012년부터 니코니코동화, 유튜브 등의 <카즈야 채널>에서 신보수주의와 혐한을 설파하고 있다.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넷우익들이 그의 영상들을 주로 상위권에 올려놓도록 공작하는편. 위의 재특회 우두머리인 타카다 마코토에 비하면 한국인에게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일본 넷우익사이에서 그의 인지도는 그와 맞먹거나 버금가는편.
주요 저서로는 <일본에서 제일 알기 쉬운 보수의 책>, <이게 이상해 '반일' 한국 그들이 구라를 칠수록 일본이 득을 보는 법칙> <일본인이 알아야 할 '전쟁'이야기> 등이 있다.

홋카이도 사루후츠의 조선인 강제징용 추도비 설립 저지[3]사건이 미국 NYT에서 보도되었을때 해당 NYT기사에서 언급된 적도 있다.

3.3 토니 마라노

1949년~

3.3.1 약력

이탈리아계 미국인. 일본 외 외국인중에서는 국제적으로 넷 우익의 주의주장을 설파하는 사람이다. 원래는 그냥 공화당 보수주의자였으나, 일본의 포경에 대한 에코파시즘적인 대응을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혐한/넷 우익으로 주화입마한것으로 여겨진다. 와패니즈 항목 참조.

4 한국을 비롯한 일본외국계 일본 우익사관론자

4.1 김완섭

항목 참조

4.2 고 젠카

항목 참조.

4.3 최기호

1923년~

4.3.1 약력

경남 K대학교 사학과에 객원교수로 잠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생년월일로 미루어보아 청년기 초반까지 일제시대를 보낸 적이 있다. 현세대 한국인 출신의 매국노 혐한 작가들중 일제시대를 몸소 겪은 드물은 케이스다. 친일발언을 할때는 일본어로 한다고 한다. 대표 저서로 <한국 타락의 200년사(韓國墮落の2000年史-日本に大差をつけられた理由-)>등이 있다. 위의 두 인간쓰레기 인물에 비하면 덜 알려진편이나, 과거 한겨레신문에서 신친일파를 까는 기사를 냈을때 위의 두 인물과 묶어서 이니셜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관련기사(한겨레신문, Circa 2003)

4.4 김미령(金美齡)

1934년 ~

4.4.1 약력

대만어로는 낌비렝(Kim Bi-leng). 대만출신으로 현재는 일본국적자이다. 타이베이에서 여고를 졸업한 후 와세다대학 영문학과에 유학했다. 1962년에 중국으로부터의 대만 독립을 추진하는 대만청년사(후에 대만독립 건국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에 가입한다. 대만인인 남편 주영명(周英明)은 국민당에 대한 반정부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일본에 근거를 둔 대만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4.5 황문웅(黃文雄)

1938년 ~

4.5.1 약력

대만민남어으로는 응분횽(N̂g Bûn-hiông), 한자 병음으로는 황원슝(Huáng Wénxióng).어째 이름부터 끼가 보인다 이름인 문웅은 일본어로 후미오라고 훈독할수도 있으나 보통 코분유우라고 음독하는듯 하다. 대만인이다. 일본에서 와세다대학, 메이지대학 등에서 수학하고 이후 대만에서 <중국의 몰락>이라는 책을 지하 출판하여 유명해졌다. 주로 반중 활동만 해 왔으나, 한일 역사갈등이 커진 이후에는 반한 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유신정당 신풍이라는 듣보잡 극우정당으로 정치활동도 소량 하고 있는듯 하다.

특히 공자식인설, 중국인 인육 기호설을 현대에 주도적으로 확대재생산했다. [4]

4.6 석평(石平)

1962년 1월 30일 ~

4.6.1 약력

중국계 우익논객으로 위의 대만인들과는 달리 대륙출신이다. 청두에서 태어났고 문화대혁명으로 교사였던 부모가 하방당하면서 의원이었던 할아버지 집에 머물면서 할아버지에게 몰래 논어를 배웠다. 북경대학교 철학부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 뒤에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그대로 극우논객이 되었다.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에서 트윗으로 헛소리싸지른 경력이 있다. 퍼거슨 의문의 1승

4.7 손상문(孫向文)

5 참고자료

이 문서 내용의 많은 부분은 <우경화하는 神의 나라>(노 다니엘 저, 랜덤하우스, 2006)에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6 참조 항목

  1. Nippon News Network의 약자로, 니혼 TV(NTV)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민방 텔레비전 뉴스 네트워크를 말한다.
  2. 참고로 일본어로 말했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아서 일본어가 가능하다고. 본인은 "발음은 그럭저럭이지만, 어휘력은 중학생 수준이다"라고 말했지만, 준비한 내용이 있는 만큼 상당히 고급 회화를 구사했다. K-POP 열풍을 과시하면서도 은근히 일본을 띄워주는 화술도 일품. 게스트들 왈, "전혀 중학생 수준이 아닌데?"
  3. 이 추도비는 마을 토박이었던 미즈구치 코이치 옹이 강제징용 흔적과 유골을 발굴하고 추진하려 했으나 추진 시점에서 다른 마을사람들에게 '마을의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좌초되었다. 이 배후에는 넷 우익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의혹이 있다.
  4. 사실 이것도 원조는 따로있는데 다이쇼시대 교토대학 동양사학파의 시조라 불리는 일본의 중국역사 관련 교수인 쿠와바라 지츠조(桑原隲蔵)라는 자의 논문 <지나인들 사이에서의 식인육 풍습>(circa 1919) 에 기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