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 트윈스 시절
피츠버그 파이리츠 시절
콜로라도 로키스 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No. | |
저스틴 모노(Justin Ernest George Morneau) | |
생년월일 | 1981년 03월 15일 |
국적 | 캐나다 |
출신지 |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뉴 웨스트민스터 |
포지션 | 1루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1999년 드래프트 3라운드 |
소속팀 | 미네소타 트윈스(2003~2013) 피츠버그 파이리츠(2013) 콜로라도 로키스(2014~2015) 시카고 화이트삭스(2016~) |
2006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 |||||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 → | 저스틴 모노 (미네소타 트윈스) | → |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
2008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 | |||||
블라디미르 게레로 (LA 에인절스) | → | 저스틴 모노 (미네소타 트윈스) | → | 프린스 필더 (밀워키 브루어스) |
201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타격왕 | |||||
마이클 커다이어 (콜로라도 로키스) | → | 저스틴 모노 (콜로라도 로키스) | → | 디 고든 (마이애미 말린스) |
1 개요
래리 워커 이후 캐나다를 대표하는 야구 선수. 미네소타 트윈스를 대표하는 1루수 중심타자였으나, 2013년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거쳐 현 콜로라도 로키스의 1루수.
MVP까지 받은 선수였으나, 뇌진탕 부상 이후 커리어가 극명하게 달라진 불운의 선수.
2 초창기
어린 시절 스포츠를 접하면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아마추어 야구 코치이자 스포츠 용품점 사장이었고, 어머니는 소프트볼 선수였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던 팀은 메이저리그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아이스하키 NHL의 보스턴 브루인스. 즉, 야구와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면서 성장했고, 야구와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자랐다. 고교 시절 포수로서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며 많은 대학의 진학을 요청받았지만, 거절하고 미네소타의 지명을 받아 프로 세계로 뛰어들었다.
3 커리어
3.1 미네소타 트윈스
드래프트 당시에는 포수였지만 미네소타에 A.J. 피어진스키와 조 마우어가 있었던 덕분에 마이너에서 포수 대신 1루수로 전향하고 꾸준히 성장했다. 그리고 2002년부터 처음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2003년 19개 홈런을 치면서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잡았다. 미네소타가 1990년대 어려웠던 시절을 딛고 2000년대 들어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의 강호로 자리잡는데, 여기에는 모노의 성장과 활약이 크게 기여했다. 이런 성장세를 꾸준히 이어가며 매년 20홈런 이상 쳐주는 중심타자로 자리잡았고, 2006년에는 34홈런 130타점을 기록하며 데릭 지터를 제치고 캐나다 출신 선수로는 래리 워커에 이어 두번째로 MVP에 올랐다.
다만 이 수상이 논란이 있는 것이, 모노는 당시 트윈스 팀내에서도 요한 산타나, 조 마우어에도 팀 공헌도가 뒤지는 선수였다. 다만, 요한 산타나는 투수라는 것이 페널티, 조 마우어는 타격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전통적으로 중시하던 스탯(2006년까지는 여전히 전통적인 스탯이 사이영상, MVP 수상에 중요한 요소였다. 해가 갈수록 중요성이 줄어드는 추세기는 하지만)이던 홈런, 타점이 적었던지라 2006년 어메이징한 활약을 보여준 트윈스 쪽에 표를 던지는 기자들이 표가 갈릴 거란 우려와 달리 트윈스가 후반기 상승세를 타면서 결정적인 타점을 많이 올린 동시에 타율 .321 31홈런 130타점(타점 2위)로, 전체적으로 어디하나 떨어지지 않고 무난한 성적을 기록한데다 팀 성적도 좋은 모노로 결집한 것. 사실 WAR만 보면 모노는 팀내에서 3위(3.7)에 그치고, MVP 2위를 차지한 데릭 지터보다 떨어졌다. [1] 모노와 데이비드 오티즈, 데릭 지터의 각축전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오티즈는 홈런과 타점을 제일 많이 쳤지만 팀 성적과 3할도 안되는 타율이 발목을 잡았고, 최다 승률팀 유격수인 지터는 막판 마우어에게 타격왕을 빼앗긴게 컸다.
그 뒤로는 조 마우어와 함께 M&M포를 결성[2]하면서 중심 타선으로 맹활약했다. 2008년에는 더스틴 페드로이아에 이어서 MVP 투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8년 올스타전에서 홈런 더비 1위에 오르지만, 정작 스포트라이트는 예선전에서 극적인 재기와 감동적인 스토리를 보여준 조시 해밀턴에게 뺐기며 우승자인지 아무도 모른다. 안습.
2008년 6년간 8000만 달러에 장기 계약을 맺으면서 팀의 중심타자로서 기대를 걸었다. 2010년 초까지 그 기대에 거의 완벽하게 부응했지만, 문제는 부상. 부상으로 2009년 포스트시즌에 결장하더니, 2010년에는 뇌진탕으로 쓰러지면서 시즌을 날렸다. 딱 절반만 뛰고 18홈런을 치고 MVP시즌보다 높은 fWAR(4.9)를 기록헀던걸 보면 정말 기대가 되는 시점에서 당한 아까운 부상.
한편, 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기로 유명했다. 같은 캐나다 출신 릴리버 제시 크레인이 트윈스의 최대 라이벌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FA로 계약했는데, 계약 당일부터 영영 전화 한통 없이 쌩깠다. 배신자와는 친구고 동향이고 없다는 건데, 크레인에게 비난을 퍼붓는 트윈스 팬들에게 좋은 마인드라며 칭찬받았다고 한다. 역시 미네소타 출신으로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1년만에 싸그리 뒤집어놓고 삭스로 가서 MLB 최강의 악당으로 자리잡은 삭스 포수 A.J. 피어진스키와도 영 좋지 않은 사이라고.
그러나 당연히도 삭스 팬들은 모노를 몹시 싫어한다. 특히, 프란시스코 리리아노가 화이트삭스 홈에서 노히터를 던졌는데 그 경기에서 8회 1사 1루 고든 베컴의 3루 땅볼 병살타에서 2루수의 악송구에 모노가 1루 베이스를 포기하고 포구 후 태그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지만 심판의 오심으로 인해 더블 플레이가 인정된 것이 있었다. 딴 때 같았으면 그런가보다 할수도 있었는데, 문제는 이 노히터의 내용이 볼넷 6개 + 팀 스코어 1-0이라서 삭스 입장에선 언제든지 로또 한방이면 역전이 가능했던 것. 이후 인터뷰에서 모노 본인도 태그 미스를 인정하였기 때문에 삭스 팬들은 몹시 분노했다.
그러나 뇌진탕의 영향을 숨길 수는 없는지 2011년 굉장히 부진하여 커리어 로우를 찍었고 6월 초에서 8월 초까지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였다. 더불어 미네소타 트윈스는 조 마우어까지 부상으로 골골대며 당초 예상되던 지구 2연패는 커녕 꼴찌를 걱정할 정도로 성적이 떨어졌다. 8월에 잠시 복귀했지만 다시 부진을 거듭하다 뇌진탕 후유증이 나타나며 다시 결장, 마우어와 모노의 부진과 맞물려 트윈스는 결국 100패에 1패 모자란 99패를 찍으며 지구 최하위를 먹었다.
그러니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은 속만 탄다. 연고지 미네아폴리스가 시장성이 그리 좋지 않아서 빅마켓이라 할 수 없는 지역임에도 조 마우어와 함께 팀의 10년을 책임질 것을 기대하여 팀 재정에 무리가 될 수 있는 장기계약을 안겨줬지만 양측 모두 부상이 길어졌고 둘의 높은 연봉 때문에 선수단 보강에 큰 제약이 생겼기에 마우어와 모노의 이 계약, 더 거슬러올라가 부상은 트윈스 구단이 2010년대 들어 침체기에 빠진 원인이기도 했다. 마우어의 포지션 전환은 옛날부터 키 너무 커서 포수 못한다고 이리저리 말 많았기에 점점 그게 현실화되는거라 쳐도 모노의 경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던 뇌진탕으로 인한 것이라 더욱 충격적.
2012년에는 시즌 극초반 드디어 부활했다는 설레발이 있을 정도로 (비록 타율은 낮지만) 준수한 선구안과 장타력으로 팀의 공격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내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267 .333 .440 19홈런 77타점에 그쳤다. 우완투수를 상대로는 MVP 시절에 버금가는 타격을 선보이지만 좌투수 상대로는 똑딱질도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캐나다 야구선수들을 있는대로 끌어모으는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고(...)[3] 브렛 로리 등과 함께 캐나다 야구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다만 팀의 만류로 인해 유격수로 출전하지 못하겠다며 출전을 포기한 포수 러셀 마틴에게는 분노의 일갈을 날렸다고.
2013년에도 부활하지 못하고 .259 .315 .426 17홈런 74타점이라는 어영부영한 스탯을 찍고 있다가 시즌 얼마 남지 않은 8월 31일, 알렉스 프리스리와 추후지명 혹은 현금으로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웨이버 트레이드 되었다. 피츠버그의 러셀 마틴과 조우하게 되고
3.2 피츠버그 파이리츠
그런데 파이리츠에선 팀에서 기대하던 좌타 빅뱃의 모습과는 다르게 25경기 동안 홈런 하나없이 3타점만 올리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13시즌 최종 성적은 .259 .323 .411 17홈런 77타점.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획득했는데, 콜로라도 로키스와 2년 $13M의 조건으로 계약했다.
3.3 콜로라도 로키스
4월 한달동안에는 산기운과 함께 타격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며 .347 .371 .633 으로 비록 시즌초반이긴 하지만 OPS가 10할대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좋은 기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8월 중순 현재, 팀 동료인 트로이 툴로위츠키가 시즌 아웃되면서 타격왕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는 중이다. 장타가 많지 않은것이 흠이지만 뇌진탕으로 나락까지 떨어졌었던걸 감안하면 이정도 해주는것도 감지덕지다. 결국 마지막경기까지 벌어진 치열한 타격왕 경쟁끝에 조시 해리슨을 이기고 타격왕에 등극했다. 비율스탯도 .319 .364 .496에 17홈런을 때리며 비록 장타력에서 쿠어스 필드를 쓰면서 홈런개수가 20개를 못넘기는것은 아쉬웠지만, 홈과 원정경기의 타격 차이가 크지 않아서 산사나이가 아니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2015년에는 고질병이 돼 버린 뇌진탕과 목뼈부상으로 49경기 출전에 그쳤고 구단은 9M의 뮤추얼 옵션을 거부해 팀을 나오게 됐다.
3.4 시카고 화이트삭스
맷 레이토스가 지명할당 되면서 빈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년 1M 계약이며 아직 목부상이 나은건 아니라 계약직후 15일짜리 DL에 등록되었다.
4 이모저모
- 캐나다에서는 대단한 영웅이라 특히 고향인 뉴웨스트민스터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야구장이 있다고 한다. 아울러 자기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아내와 함께 활동하기도.
- 트윈스 시절 등번호 33번은 NHL 명예의 전당의 헌액자인 캐나다의 전설적인 골리 파트릭 롸(Patrick Roy)[4]의 등번호에서 따온 것이다. 역시 캐나다 사람 아니랄까봐 아이스하키 광빠답다.
- 프로레슬러 존 시나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