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사건 사고 관련 정보, 연쇄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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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두영(鄭斗英) |
출생 | 1968년 12월 31일 |
출생지 | 부산광역시 |
신체 | 163cm, 58kg, B형 |
가족 | 3남 1녀 중 넷째 |
학력 | 검정고시 |
범죄유형 | 연쇄살인 |
1 소개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제 안에 악마가 있어요. 그 악마가 한 짓이에요.ㅡ 체포 후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는 질문에 정두영이 답한 말.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9명[1]의 인명을 해친 강도살인범이다.[2]
유영철이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했던 바로 그 살인마. 정두영도 사용 흉기로 둔기를 사용했고[3] 유영철이 이를 본받아 자신도 둔기를 사용했다.
2 과거
정두영은 부산직할시에서 4남매 중 막내로 출생했다. 그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고, 두영이 2세가 되던 해 끝내 사망한다.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정두영의 어머니는 아기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거나 영양을 공급해주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재혼한다. 하지만 정두영이 다섯 살 되던 해, 삼촌마저 요란스런 조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려는 듯, 일곱 살 때 어머니가 고아원으로 찾아와 정두영을 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간다. 그대로 양친과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부부간 갈등이 커져서 정두영은 도로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차라리 처음부터 계속 고아원에 두었더라면 상처를 덜 입었을 것이다.
고아원 안 남자 아이들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아서, 세면 때리고 약하면 맞는 게 보통이었다. 선천적으로 작은 체구 때문에 놀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하자 결국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폭력’ 뿐 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만다. 무학인 정두영은 고아원의 통제를 물리치고 거리로 나가 범죄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 직업을 얻을만한 기술도 없고, 자길 보살펴줄 사람도 없었으므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어린 시절 2번이나 어머니에게서 버림받는 등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데 대한 강박적 열망이 있었다.[4] 평범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비용을 절도로 차곡차곡 모아놔 검거 당시 통장에 1억 3천만원이 있았다. 최종 목표액은 10억을 버는 거였고 10억을 벌면 결혼도 하고 PC방 차리고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꿈을 가장 최악의 방법을 동원해 이루려 한 케이스. 뭐 이미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인생이 끝장난 시점에서 평범한 가정은 영영 무리였겠지만.
다만, 실제로 10억을 달성했다고 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뭐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다면 모르겠지만 사람 일이란게 어디 그런가? PC방 사업이 안된다든지 잘못된 투자로 돈을 날린다든지 하면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또 언제 본색이 드러날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정두영은 이미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사실 이미 10대때부터 자기를 불심검문하는 방범대원을 냅다 칼로 찔러 죽이고, 강도질하는데 방해가 되면 아줌마든 가리지 않고 무참히 죽인 것만 봐도[5]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존중 따윈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PC방 사업이 순조롭게 풀리고 모든게 다 정두영이 원하는 대로 술술 풀리면야 굳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으나, 만약 사업이 어려워지고 돈에 쪼들리게 되면 막노동 등의 고된 일을 하여 성실히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다시 강도 행각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대도 조세형도 출소 후에도 습관적으로 절도를 하다가 여러번 체포되고 했었는데, 정두영은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여 쉽게 돈을 버는데 익숙해진 인물이므로 한번 이렇게 더럽혀지면, 정상으로 갱생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세형은 출소 후 아예 목사가 되기까지 했으나 결국 제 버릇 남 줄 수 없지 않았던가? 특히 정두영은 검거 당시 고작 1억 3천밖에 없었음에도 그때까지 저지른 범죄만으로도 엄청난 범죄였는데, 하물며 10억 될때까지 저짓을 했다면 그야말로 살인기계나 다름 없는 인물이 되었을텐데, 이런 인간이 태연하게 여자를 만나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오손도손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급전이 필요하게 되면 언제든 다시 숨겨진 본능이 드러날 수 있다.
3 범행 과정과 체포
18살이던 1986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마주친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자기를 불심검문하는 방범대원을 칼로 찔러 살해해 11년 복역하고[6] 수감생활 동안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으며 1998년 6월에 출소를 했지만, 출소 직후 절도로 짧게 6개월 동안 다시 복역한 뒤 1999년 3월 두번째 출소 후 본격적으로 강도 살인을 시작했다. 당시 이미 전과 8범이었다. 주 영역은 부산, 울산, 경남지역.[7]
출소한 뒤에도 불과 2개월만에 가정집을 털다 잡혔다. 그러나 이번엔 불구속처리돼 풀려나자 한달도 채 안돼 부산의 고검장 관사 옆 저택에 침입, 부녀자를 살해했다. 이 때부터 10개월간 정두영이 저지른 범죄행각은 ‘불우한 환경과 사회적 소외감이 범죄를 불러왔다’는 식의 해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혹성을 보여준다.
정두영은 불심검문에 대비해 빈손으로 다니다 낮시간에 부유층 집에 들어가 부녀자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고 살해했다. 부녀자를 안방으로 끌고 들어가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려 죽이는 등 살해 수법도 잔혹했다. “왜 그렇게 잔혹하게 죽였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씨는 “다급해서 그랬는데 어쩌면 내 안에 악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2000년 3월의 부산 서대신동 가정집에 침입하여 두 명의 여성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살해하였으나 또 한 명의 여성이 아기가 있다며 살려달라고 호소하자 중상만을 입히고 '아기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라는 말과 함께 이불을 덮어씌운 후 살려준다. 금고를 열기 위해 이웃집에 다 들릴 정도로 무려 2시간동안 아령으로 금고를 때리는 대담성을 보였다. 사건현장에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발자국을 남겨놓는 교활함도 보였다.
정두영은 2000년 2월부터 동거에 들어간 동거녀의 부모 말에 따르자면 정두영은 술, 담배도 안하고 말 수가 적으며 점잖고 매너있어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살인마의 흉악성을 감추고 살았다.
2000년 4월 12일 천안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4 체포 이후
2001년 1, 2심에서 강도살인죄로 사형을 받고 상고를 포기, 사형이 확정되었다.[8] 1997년 이후로 더 이상의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형수로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리고 장물 처리를 해준 공범인 전당포 주인 김종준과 금은방 주인 형 정부영도 검거되어 둘다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MBC 히스토리 후에서 방영되기도 하였다. 희한하게도 사건 당시와 검거, 판결시에도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했다가 후일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9]
2016년 8월 6일 대전교도소에서 탈옥을 시도하다 성공할뻔 하였으나 다시 붙잡혔다. 기사 8월달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보도는 9월에 이루어졌다.
대전 교도소에는 담이 3중으로 설치되어 있다. 정두영은 이 3개의 담중 2개를 넘는 데 성공했고 마지막 담을 넘으려는 순간 간발의 차이로 교도관들에게 잡혔다. 탈옥 수법이 깨는데 출력[10] 갈때마다 납품용 전선을 만드는 출력을 했는데 그때마다 전선을 조금씩 훔쳐서 그걸 이어붙여서 만든 사다리를 타고 탈옥을 시도했다.
- ↑ 불과 10개월만에 9명이나 죽였는데 실제 목적은 강도고 살인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다.
- ↑ 이전 글에서는 김대두 혹은 정두영을 국내 최초 연쇄살인범으로 분류했지만 김대두나 정두영은 그 목적이 살인 자체가 아니라 강도였고 살인은 단지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벌였다는 점에서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강도살인을 저지른 강도살인범이고 최초의 연쇄살인범은 유영철이다.
- ↑ 실제로는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침입한 집에 있는 둔기를 아무거나 집어서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경찰도 처음에는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 ↑ 이 때문인지 신고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목격자인 아기 어머니를 살려주고 그냥 나간 적도 있었다. 후일 이 신고가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체포. 사형을 받게 되는데 경찰이 생존자가 신고할 게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왜 살려줬느냐고 묻자 아기가 어머니 없이 살 것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려줬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 ↑ 처음에 경찰은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주먹과 발로 너무 무참하게 때려 죽였기 때문에
- ↑ 우발적으로 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 즉 정두영은 살면서 총 10번의 살해행각을 벌인 것이다.
- ↑ 부산경남 연쇄살인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장물 처리를 해준 형 정부영과 공범 김종준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 ↑ 물론 정두영은 비정한 살인마였지만 아기 엄마를 살려주는 등 최소한의 인간성이 있다고 볼 소지가 있었고 본 목적은 엄연히 강도였다는 점에서 살인 행위 자체가 목적이었고 양심 자체가 없었던 유영철과는 조금 다르다.
- ↑ 원래 구치소에 수감된 사형수는 출력을 못했는데 법무부가 2000년대 후반 30명의 사형확정수들의 신청을 받아 교도소로 이감해 작업을 포함한 교정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해 대전교도소(12명), 대구교도소(11명), 광주교도소(7명)의 사형수들이 옷감을 만드는 복지작업이나 수건 생산과 형광등 안전기 제조 등의 작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