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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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鎭東
1910년 3월 25일 ~ 1999년 10월 7일

대한민국의 전 친일반민족행위자, 법조인, 정치인이다. 호는 백암(栢庵)이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장인어른이다.

1910년 경상북도 용궁군(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경성제2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 경성제국대학 법과(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그리하여 경상북도 영양군수, 영주군수 등을 지냈다.

8.15 광복미군정기 때는 임시관재총국 관리국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국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예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현석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 1961년 6월까지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사무차관을 지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에서 중앙상임위원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69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국민당 조재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로는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 고위관료 경력으로 인하여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