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독들의 반란

Revolt of the Admirals.

'반란'이란 자극적인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실제로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니고 대규모 항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당시에 장관이 자살하고 해군은 눈이 뒤집혀지고 제독들은 단체로 들고일어나 파업수준의 항명을 일으키는 등 흉흉한(...) 당시의 상황을 본다면 제독들의 반란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맞는다.

미합중국 해군제독들이 정부의 해군 감축 시도에거의 해군 폐지급 맞서 저항한 대규모 항명사태이다.

1 개요

더 이상 해군해병대를 운영할 이유가 없다. 오마 브래들리 장군이 그러는데 상륙작전은 구식이 되었다더라. 더 이상 상륙작전을 할 일이 없으니 해병대는 필요가 없다. 그리고 오늘날 공군은 해군이 할 일을 다 할 수 있으니까 해군도 마찬가지다(There's no reason for having a Navy and Marine Corps. General Bradley tells me that amphibious operations are a thing of the past. We'll never have any more amphibious operations. That does away with the Marine Corps. And the Air Force can do anything the Navy can do nowadays, so that does away with the Navy.)

1949년 12월 미 국방장관 루이스 존슨(Louis A. Johnson)[1]

이뭐병이란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과격한 발언. 이런 발언이 나올 정도로 당시 미 군부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 육군 소속의 육군 항공대미 공군으로 독립하였고 트루먼을 필두로 한 미 행정부는 국방예산 감축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공군의 위상이 강해지면서 미국 정부는 해군 항공대와 해병대 등 해군청 소속의 군사집단을 감축하기로 결정하였다.

2 배경

조지 C. 마셜 원수는 1943년에 육군성해군성을 통합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1947년에 국방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런 과정 가운데 육군 항공대가 끝끝내 미 공군으로 독립하였고, 행정도 육군과 따로 운영하며 육군에 휘둘리지 않았던 미 해군은 자신들의 존재에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공군핵무기를 바탕으로 전쟁의 패러다임을 개박살낼 기세였다.

이에 대해 해군항공모함을 예로 들며 해군의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해군장관 출신의 초대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포레스탈은 해군의 주장을 반영하다가 물러나고 해리 트루먼의 측근인 루이스 존슨이 국방장관이 되었다.

3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함 건조 취소와 해병대 항공대 폐지 시도

USS_United_States_keel_laid.jpg
그러던 1949년 상반기, 미해군이 핵폭탄 투하가 가능한 크고 아름다운 폭격기 운용을 위해 건조에 돌입했던 초대형 항공모함인 U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USS United States) 함의 건조가 주문한지 하루만에 취소되었다. 1949년 3월 28일 당시 국방장관인 존슨이 의회에 상임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시한 것이었다. 해군청장이었던 존 설리번과 루이스 덴펠드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수많은 제독들이 반발을 일으켰다.

며칠 뒤 존슨은 해병대를 방문해 해병대 항공대의 항공 자산을 공군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발이 심해지자 이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 과정에서 해군청장을 경질하고 제복군인 최선임인 해군참모총장도 잘랐다. 그리고 여기에 적기엔 여백이 너무 적은(...)[2]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그 와중에 전 해군청장이었던 제임스 포레스탈이 우울증으로 입원해 있던 해군병원에서 투신하여 자살하였고 국회에서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4 반전

그러던 1949년, 소련의 핵개발이 성공하여 냉전이 본격화하여 핵으로 싸우다가는 다 죽게 생겼다상호확증파괴의 개념이 대두되어 재래식 무기의 중요성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국회는 항공모함을 건조하겠다는 보증[3]을 해주었다. 게다가 이듬해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해군과 해병대의 맹활약이 이어지며 해군의 중요성이 다시 인정받아서 군축은 없던 일이 되었다. 이후 해군은 자살한 포레스탈 장관의 명복을 빌고자 재개한 초대형 항공모함 프로젝트를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으로 명명하였고, 이후 하이먼 리코버의 주도로 원자력을 함정의 동력원으로 쓴다는 발상을 내놓아 오늘날의 위엄 돋는 원자력 해군화에 성공, 지구상 유일한 세계해군을 이룬다. 깊은 바닷속을 은밀하게 헤집고 다니는 전략원잠에 배치된 삼지창들이 오히려 공군의 ICBM보다도 위협적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는걸 보면 반세기 전에 존립의 위기에 놓였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 때 전략공군사령부를 운영해 핵 투발 수단을 독점하던 공군이 해군의 반격(?)으로 국직부대인 전략사령부(United States Strategic Command; USSTRATCOM)로 통합되어 해군과 공군 대장이 번갈아가며 사령관을 맡는 등 냉전 초기에 비하면 공군의 위세가 많이 죽었다.

여담으로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라는 이름이 다시 니미츠급 항공모함 8번함 CVN-75에 붙을 예정이었지만 항공모함에 붙이는 이름이 역대 대통령 이름으로 바뀌면서 하필이면 해리 S. 트루먼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트루먼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를 두번 죽이는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미 해군은 미군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집단으로, 미국 국방예산의 반이 넘어가는 60% 가량을 받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해군 폐지 얘기가 나오던 과거와는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게다가 미국의 강대한 힘이 바다로부터 투사되는 막대한 군사력에서 나오는 걸 생각하면 해군을 없애자는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들이 세계를 지배했으니...

5 여담

어쨌든 해군 항공대는 이후 미 해군력의 주축으로서 공군을 업신여길 정도로 크나큰 위상을 자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안하무인의 추태로 이어지며 20세기 말에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테일후크 스캔들로, 쉽게 말하면 해군/해병 항공장교들의 집단 성폭력 스캔들인데, 이것으로 모자라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여 해군 개혁을 부르짖던 해군참모총장 제러미 마이클 보더[4]를 생트집잡아서 괴롭히고 기수열외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여 보더 제독이 자살까지 했다. 해군 항공대가 반세기 전 제임스 포레스탈 국방장관의 자살과 제독들의 항명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면, 1990년대에는 그러던 선배들의 명예에 먹칠을 한 항공장교들의 추태로 사실상 해군참모총장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사실상 제독들의 반란과 테일후크/보더 제독 자살 사건은 모두 대통령에게 항명한 것이었는데, 똑같은 항명이었음에도 매우 다른 원인과 성격에서 비롯되어 최고위 간부가 자살하는 동일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섬뜩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합 과정에서 해군의 정체성은 지켜냈지만 1958년에 해군참모총장은 작전권을 박탈당했다. 그 덕분에 Chief of Naval Operation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작전권이 없다.
  1. 미 육군 대위 출신이었다.
  2. 실제로 육/해/공군의 홍보와 정치 알력들을 전부 다 언급하면 책 한권은 나온다. 국내에도 윤영식 제독이 번역한 <제독들의 반란>이라는 서적(아쉽게도 번역의 퀄리티가 그리 좋지는 못하다.)이 나와 있고, 제독들의 항명을 주도했던 알레이 버크 제독의 전기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3. 특히 하원 군사위원회의 칼 빈슨 의원이 가장 적극적이었고 해군은 이 덕을 잊지않고 나중에 니미츠급에 칼 빈슨의 이름을 붙인다.
  4. 그간 미국해군사관학교 출신이 보임되던 참모총장 자리에 16세의 중졸 학력 이등병으로 시작하여 OCS로 장교가 된 인물이 보임된 것은 위업으로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