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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조성옥 |
생몰년도 | 1961년 8월 25일~ 2009년 7월 4일 |
학력 | 대연초 - 부산동성중 - 부산고 - 동아대 |
투타 | 좌투좌타 |
포지션 | 외야수 |
프로입단 | 1984년 1차 11순위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1984~1995) |
지도자경력 | 롯데 자이언츠 코치(1996~1997)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감독(1998~2006) 동의대학교 야구부 감독(2007~2009.7.4) |
1 개요
전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이자 전 부산고, 동의대 감독이었다.
2 선수시절
1984년에 롯데에 입단했다. 입단 동기는 부산고 동기이기도 한 자갈치 김민호.
아마 시절에는 국가 대표 테이블 세터진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결승 스리런으로 유명한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로 데뷔 이후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리지는 못 했다.
타격은 비교적 정교한 편이었으나 한 번도 3할을 친 적이 없었고 주루센스가 나쁘지 않았지만 한 번도 두 자리수 도루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백업으로 썩히기에는 실력이 뛰어나지만 풀타임 주전으로써는 한계를 노출하던 선수였다. 다만 선수로서 롯데 자이언츠의 두 번의 우승을 모두 경험했으며 1992년 우승 당시에는 전준호, 이종운, 김응국에 이은 제 4의 외야수로서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기량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고 조성옥보다 주루 수비 능력이 더 뛰어난 김종헌에게 밀리며 점점 출장 횟수가 줄었고 1995년을 끝으로 은퇴한다.
선수 시절 보인 기량에 비해서 롯데의 올드팬들에게는 지명도가 높은데 아마 시절 재능이 대단했던데다가 매우 성실했던 선수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라는 기대감을 항상 품었기 때문이었다.
3 감독시절
부산고등학교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아마야구 지도자 자격증이 나오지 않아 전국대회 당시 관중석에서 팀을 지휘했던 일화가 있다. 엄청난 양의 흡연은 덤이었다고.. 1999년과 2000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부산고를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7년 4월 동의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이동한 후 여러 차례 전국대회 우승기를 들어올렸지만 2009년 하계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암으로 사망했다. 투수코치인 이상번 감독 대행[1]의 지휘 하에 성균관대학교에 승리를 거두며 우승했지만, 조 감독의 사망으로 선수들은 눈물의 헹가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훈련량으로 팀을 조련했으며, 선수들에게 엄격했으나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감독이다.
2000년 청소년대표팀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2]
그의 많은 제자들이 프로야구에 진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