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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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사진은 이사만루2015 KBO에서 15 이동현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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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No.18
이동현(李東炫 / Dong-hyeon Lee)
생년월일1983년 1월 12일
출신지울산광역시[1]
학력서울영일초 - 서울영남중 - 경기고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1년 LG 트윈스 1차지명
소속팀LG 트윈스(2001~)
등장곡Taio Cruz - Higher
2014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퍼펙트 피쳐 우승자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이동현(LG 트윈스)안지만(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등번호 18번
이정길(1998~2000)이동현(2001~)현역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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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5일, LG 트윈스가 PO 직행을 확정지은 날의 최훈 카툰 中[2]

암흑기를 견뎌낸 산 증인이자 LG의 혼.

이병규, 박용택과 함께 2000년대 이후 LG 트윈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선수 중 하나.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영남중학교 때까지 외야수였지만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투수로 전향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경기고등학교의 야심찬 야구명문 부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학하게 됐는데, 언더핸드에서 정통파 오버핸드로 투구 폼까지 교정하면서 곧 전국 레벨의 투수로 성장하게 된다. 경기고 2학년 때인 1999년박찬호 야구 장학금도 받았다. 이동현의 원 맨 팀이나 다름없던 경기고등학교는 그가 3학년이던 2000년,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100년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의 숙원을 풀었다. 이동현은 이 대회에서 MVP와 우수 투수상을 차지했다. 같은 해 대통령배는 준우승을 차지했고 여기서는 뜬금없이 타격상(..)을 받았다. 12타수 6안타로 타율이 5할이다(..) 대통령배가 먼저 열렸는데, 여기서 우승했다면 혹사를 피할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배에서 추신수가 이끌던 부산고등학교에 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그런데 당시 이동현은 5일 동안 4경기에 등판해 4경기 동안 460구를 던졌다. 이는 경기고 야구부의 전체 투구수인 606구 중 80%에 가까운 수치다. 추신수도 진통제를 맞아 가면서 버텼다고 한다. 그래도 기어이 신일고등학교를 누르고 황금사자기를 우승했다. 참고로 이 때 신일고등학교의 멤버가 채병용이다. 이 때 채병용은 타자였지만.

이런 맹활약으로 2000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김태균, 이대호, 추신수, 정근우등과 차출되어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IBAF 청소년야구대회의 우승을 이끌어내며 제2의 황금세대, 또는 에드먼턴 키즈의 일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경기고등학교는 메이저 대회 우승을 위해 유망주들을 대거 수집했는데, 이동현과 함께 대표적인 선수가 본래 한서고등학교의 간판 투수였던 오승환이다.(오승환은 이동현보다 1년 늦게 경기고로 전학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한 이동현과 달리 동창인 오승환은 2학년 때의 부상으로 점차 퇴보하게 되었고, 결국 프로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채 2001년 단국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오승환단국대학교에서 팔꿈치 수술 후 재기에 성공,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면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2005년은, 이동현에게는 흑역사였다. 그리고 오승환이 2008년 이후 몇 년 동안 부상으로 알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진 사이, 이동현은 성공적으로 재기하여 LG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잡는다. 결과적으로 얘들은 2010년경까지 같이 잘 나간 적이 없다. 시소놀이 그나마 2011년 이후로는 둘 모두 준수하게 활약했다. 하지만 2013 시즌 후 오승환일본으로 건너갔다.

2.2 프로 입단

당시 서울 연고 야구단이 둘인 탓에 LG와 두산이 경쟁했지만 지명 직전에 LG 트윈스가 이동현과 3억 계약을 따냈고, 두산 베어스에서 이를 수용함으로써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잠실벌 돈지랄의 역사가 그리고 이 때부터 양 팀이 주사위로 1차 지명 우선권을 획득하던 관례가 사라지고, 먼저 돈질로 선수를 확보하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 되었다. 같은 해 두산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은 휘문고등학교 투수 황규택은 1군에서 단 1개의 공도 못 던진 채 은퇴하고 만다.

여담으로 이동현과 황규택2000년 3월 13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렸던 대통령배 고교야구 서울특별시 예선 첫날의 2번째 경기인 경기고 : 휘문고 경기에서 완투 대결을 벌였다. 이동현은 151구, 황규택은 147구를 던졌다. 3월 중순 서울의 날씨를 감안하자면 이는 혹사를 넘어 정말 지나친 수준.[3] 전술하였듯이 경기고 마운드를 이동현이 크게 지탱했다 보니, 혹사 문제가 이미 경기고 시절부터 불거져 나왔던 상태였다.[4] 이 경기에서도 이동현이 승리했다.

2.2.1 200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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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신인 시절

아무튼 2001년 LG 소속으로 프로 무대를 밟게 되었다. 2001년 당시 LG 트윈스양준혁, 이병규, 김재현의 막강 클린업 트리오FA홍현우를 데려오고 한화의 검증된 외국인 선수 로마이어까지 영입하면서 막강 타선을 구성하였다. 반면 투수력은 김용수가 2000년을 끝으로 은퇴했고[5] 장문석, 최향남, 최원호가 모두 전력에서 이탈하면서[6] 선발진이 극히 약화된 상태였다. 2010년은 데자뷰였다 아니 사실 그 이후로 쭉 그러고 있다 이동현으로서는 고졸 신인이지만 강하게 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2001 시즌 개막전 선발 출장을 포함하여 총 33경기에 출장했고 그 중 19경기에 선발로 출장했다. 최종 기록은 4승 6패 평균자책점 5.37 이었다.[7]

2.2.2 2002 시즌

한편 2001 시즌 초반, 2할대의 승률을 기록하자 이광은 감독이 해임되고 감독 대행을 거쳐 후임으로 2군 감독[8]이자 수석코치, 감독 대행을 맡았던 김성근이 2001 시즌 후 정식 임명된다. 개판 5분 전인 팀을 중도에 맡았으나 닥치고 신윤호만 패서 팀을 추스려 6위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의 지도 하에 이동현은 2002년, 2년차 징크스같은 것은 없다는 듯이 대활약한다. 2002 시즌 초반에는 신윤호가 부진하자 마무리로, 이상훈미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중간계투로 활약하는 등 전천후 불펜으로 뛰면서 8승 3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67을 기록했다. 특히 78경기는 2002 시즌 팀 내 최다 출장 기록이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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ㅗㅜㅑ
위의 투구 내용으로 알 수 있듯이 불펜 투수가 124이닝을 던졌다라는 것. 이중 선발 투수로 등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10]이런 이동현의 눈부신 혹사활약에 힘입어서 2002년 LG에는 리그 방어율 10위권 내의 투수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팀 평균자책점은 리그 3위를 기록했고, 4위로 턱걸이한 포스트시즌에서는 한국시리즈까지 내달렸다. 그리고 2002년 한국시리즈야신으로 대표되는 명 승부였다. 특히 이 포스트 시즌에서 이동현의 활약은 눈부셨는데, 진통제를 맞아 가며 위기상황마다 등판하면서도 10경기 3승 평균자책점 1.99로 역투했다. 그리고 이동현은 이 때의 활약으로 LG 팬들로부터 영구까방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버텼던 LG는 6차전에서 이승엽마해영에게 백투백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았고, 그거로 이동현의 데뷔 첫 한국시리즈는 끝났다.

이후 KBS N 스포츠의 다큐멘터리인 더 레전드 이상훈편 인터뷰에서 이동현은 2002 KS 6차전 때 불펜 임무를 마친 후 탈진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다가 큰 소리를 듣고 깼는데, 그 때 판이 엎어져 있었다고.....

2.2.3 병역비리와 부상

2003년에는 새 감독 이광환에 의해서 선발로 전환하였으나, 33경기 4승 10패 평균자책점 4.05의 그다지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이상훈이 새 감독 이순철과의 마찰로 인해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고, FA로 영입한 진필중의 부진으로진필패는 나의 원쑤 다시 마무리를 맡아 48경기 1승 3패 12세이브 평균자책점 2.87로 합격점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2004년 9월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이동현도 연루되어 불구속으로 입건되었다. 그리고 이진영, 이호준 등이 그랬듯이 역시 입영 연기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그리하여 2005년 말부터 2006년 5월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다.

다시 시계를 돌려서 2004년, 마무리로 던지다가 8월쯤 해서 팔꿈치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는데, 이 때부터 장장 5년의 끔찍한 수술 재활 사이클이 시작된다. 물론 입단 직후부터 약 3년 반을 무자비하게 굴러다녔던 것이 사실이지만, 누가 봐도 가장 영향이 컸던 건 2002년의 다소 무리했던 투구였다. 때문에 아직도 김성근 감독의 혹사 논란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고, 또 그 혹사가 무의미한 혹사가 아니라 LG 팬들에게 가장 최근으로 남아 있는 한국시리즈의 기억(...)에 대한 공헌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대다수의 LG 팬들이 이동현을 절대로 까지 못한다. 심지어 블론을 저질러도 이동현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무튼 2004년 12월에 첫 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았는데 새로 오신 감독8개월 만에 그를 실전력으로 써먹기 위해 무리한 재활을 지시, 결국 정작 써먹지도 못했는데 또 팔꿈치가 아작난[11] 이동현은 겨우 1년 만에 2번째 팔꿈치 인대 수술[12]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 감독이 남긴 말이 압권이었다. 재활은 마운드 위에서 하면 된다.

앞에서 언급한 공익근무 복무는 이 수술을 받은 직후 시작했고, 결국 6개월 만에 소집 해제되었다. 그 뒤 2007년 1월 LG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여 훈련을 시작했는데 인대가 또 늘어났다. 이 때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지만[13] 주위의 도움과 그 자신의 굳은 의지로 결국 2007년 11월에 2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는다.

약 2년간의 재활을 거쳐 마침내 마운드에 복귀한 것은 2009년 5월 20일 무등 KIA전. 최고 구속은 138km/h, 기나긴 시련이었다.

2.2.4 복귀

2009 시즌에는 34경기에 나와 1승과 평균자책점 5.23을 기록했지만, 성적 같은 건 중요하지 않고 일단은 성공적으로 복귀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다. 아니, 그냥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로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리고 2010 시즌, 셋업맨으로 활약하며 오상민, 김광수 등과 함께 LG 불펜의 필승조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LG로서는 꿈 같은 이야기인 막강한 불펜을 형성하며 팀 내 핵심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봉중근을 제외한 선발진이 이닝을 먹어주지 못하고 부진하자 곧 불펜의 부담이 심해졌고, 노장인 오상민, 이상열 등이 먼저 컨디션을 잃어가면서 이동현의 부담은 더 커졌다. 결국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여름 들어 마무리인 오카모토가 맞아 나가자 점차 마무리로 등판하는 일이 잦았고 시즌 후반 그 자신도 구위가 떨어져 김광수에게 바통을 넘기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마무리 역할도 했었다. 마치 2002년과 같은 시즌이었고 성적은 2002년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68경기 7승 3패 4세이브 15홀드 평균자책점 3.53. 무엇보다 이게 5년 간 재활하고 인대 수술을 세 번 한 투수의 성적이라는 거다. 흠좀무.

성공적으로 복귀한 뒤에는 '내 마지막 남은 인대는 LG에 바치겠다'는 명언을 남겨 LG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대활약과 함께 이동현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

오카모토가 퇴출된 2011 시즌, 김광수와 함께 가장 유력한 클로저 후보군에 속해 있었다.

2.2.5 2011 시즌

처음에 실점을 제법 한 것에 비해서 갈수록 나아지는 피칭을 보였다. 4월 10일 한화전에서도 등판해 1이닝을 깔끔히 막고 2탈삼진을 기록했다. 부상 복귀의 여파인지 연투를 하면 팔꿈치가 안 좋아지지만 그래도 2경기당 1이닝씩은 막고 들어가 줄 순 있었다.

다만 못할 때는 문자 그대로 훅 가 버린다는 것이 단점.

그러면서 5월초반까지 김광수와 더불어서 주자쌓는 나뭇꾼 노릇하면서 방어율이 7점대를 넘기기까지 하는 등 2010년의 많은 이닝 소화가 문제가 된게 아니냐는 말이 많았는데 그걸 감안해도 너무 긴장을 많이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5월 중순부터 구위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얻어 맞아서 문제이지만...그 사이에 평균자책점도 6.48까지 어찌어찌 낮췄다. 그리고 5월 2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⅓이닝을 깔끔하게 막고 마지막타자는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얼마만이냐 롸켓 이 경기에서 연신 150Km/h 이상을 뻥뻥꽃고 제구도 웬일로 잘되더니만 154Km/h까지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2011년 자신의 최고구속을 경신했고 더군다나 제구까지 잘됐다. 구위를 되찾은 이동현의 향후모습이 기대될 했다.

그후 좋은 모습을 보이며 6월 7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도 ⅔이닝을 삼진 두개로 끝내버리며 평균자책점도 4점대 중후반까지 끌어내렸다. 그러나 6월 15일 대구 삼성전에서 아웃카운트 겨우 한개 잡고 5실점하면서 무너져 버렸다.

2011 시즌 들쑥날쑥한 피칭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러 지적이 있지만 대체로 2010 시즌 무리한 투구가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있었다. 팔꿈치가 좋지 않은 투수가 68경기나 나와서 74이닝이나 던지게 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평. 당시 LG가 일찌감치 DTD를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종훈 감독은 너무나 자주 그를 기용했다. 여기에 시즌 초반 구속이 전혀 살아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동현에게 2군행 등을 통해 휴식을 주지 않은 박종훈 감독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2011년 6월 28일 현재 LG가 치른 66경기 중 자그마치 30경기에 출장했으며 이닝도 26⅔이닝이나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19살 고졸신인 임찬규까지 보직도 없이 노예로 구르다가 부진에 빠지고, 김선규가 출근도장 찍으면서 혹사당하고 있는 판국과 맞물려 박종훈의 투수진 운영에 대한 많은 비판이 일었다.

다만 선수 본인 역시 예전과 달리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큰 점수 차에선 부담 없이 잘 던짐에도 불구하고[14] 박빙의 상황에선 지나친 변화구 구사로 볼카운트를 불리하게 가져가다가 얻어맞는 패턴을 보였다.

전반기 막판 2군으로 떨어졌다가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양승진과 함께 1군에 올랐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8월 8일 쌍마 청문회(라고는 해도 그냥 열명 남짓이 LG팀 버스 내리는데서 항의시위)에서 넘버 원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야구 빠따를 들고 나왔다...고 후기에 나와있는데 나중에 나온 현장영상의 분위기와 후기가 워낙 달라서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15]. 할 말 있으면 내 앞에서 해

시즌 최종 성적은 38경기 출전 33이닝 1승 2패 2세이브 7홀드 30탈삼진, 평균자책점 6.27로 작년에 비해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2.6 2012 시즌

초반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지만, 복귀 후에 유원상과 더불어 승리조로 활약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2경기 출전 56⅔이닝 2승 2패 6홀드 56탈삼진, 평균자책점 3.02를 기록하였다.

2.2.7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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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5일 정규시즌 2위가 확정된 뒤.벤클하는줄

유원상이 부상으로 빠져 있는 가운데 팀의 중간계투로 만점 활약을 했다. 특히 5월 26일 잠실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서 스코어 0:0, 5회초 2사 만루 상황에 등판해 이재원에게 3구 연속 볼을 던져 위기를 맞았지만, 풀 카운트를 만든 뒤 6구째 슬라이더로 이재원을 루킹 삼진 처리했다. 풀카운트에 몰린 상황에서 변화구를 뿌리는 배짱투로 실점 하지 않고 위기를 넘긴 것이었다.
여전히 스코어 0:0인 7회초에는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 세우는 등, 이동현은 이날 3이닝 46투구수 1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팀은 팀은 9회말에 정의윤이 끝내기 안타를 쳐서 스코어 0:1로 승리했다.

5월 30일 한화전에서는 3:0으로 지고 있던 8회초에 등판하여 김태균추승우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무사 1,2루의 위기를 자초했지만 김경언한상훈을 각각 병살타와 땅볼로 처리한 뒤 8회 팀이 놀랍게도 5득점하면서 시즌 2승째를 기록했다.

7월 5일 넥센과의 대결에서 주자 1, 3루 상황에 박병호와 승부를 펼치지만, 박병호에게 3점 홈런을 내주며 팀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다.

8월 16일까지 성적은 48경기 출전 55.1이닝 6승 무패 1세이브 19홀드 평균자책점 2.44로 LG의 필승조로서 좋은 성적을 냈다. 다만 시즌 후반 들어 타이트한 경기가 많아지면서 너무 자주 나왔다는 게 문제. 정현욱유원상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 혼자서 필승조 역할을 도맡아야 했다. 그 여파로 페이스가 떨어졌고, 그 결과 8월 28일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8회초 1아웃에서 이택근에게 2루타를 맞은 뒤 7월 5일 자신을 상대로 홈런을 쳤던 박병호에게 또 홈런을 허용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다만 이번 시즌에 이동현은 넥센에 몹시 약했다. 다름 팀 상대로는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 넥센 상대로는 16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거기에 넥센의 4번타자 박병호 상대로는 5타수 5안타에 피홈런 두 개.

9월 들어 유원상이 가을전어 모드 자기 폼을 되찾으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64경기 72이닝 6승 3패 1세이브 25홀드(2위) 53탈삼진에 ERA 3.00 FIP 3.81로 2013시즌에서 리그 정상급 우완 중계투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이 기대되었다.

2.2.7.1 포스트시즌

10월 16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스코어 2:2인 6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류제국에 이어 등판하여 9번타자 김재호를 더블플레이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여전히 스코어 2:2인 7회초에 선두 타자 이종욱에게 안타, 정수빈에게 희생번트를 허용하고 이상열로 교체되었는데, 이상열이 3번타자 김현수를 2루땅볼 진루타로 잘 잡아내고 바뀐 투수 유원상이 4번타자 최준석을 상대로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3-유 간에 크게 원바운드된 타구를 유도했지만, 이를 3루수 정성훈이 잡지 못하는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3루주자 이종욱이 홈으로 들어와 이동현이 실점했다.
결국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어 팀이 스코어 4:2로 패하는 바람에, 이동현은 이날 1이닝 8투구수 1피안타 1실점 비자책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10월 17일 잠실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레다메스 리즈가 8이닝 무실점 호투하고 봉중근이 1이닝을 삼자범퇴로 처리하여 팀이 스코어 0:2로 이겼기 때문에 이동현은 이 날 등판하지 않았다.

10월 1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3:5으로 지던 7회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유원상에 이어 5번째 투수로 나와 승계주자를 포함하여 한 점도 내주지 않고 2이닝 20투구수 무피안타 무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팀은 스코어 4:5인 9회초 1사 2루에서 안타 2개를 치고도 외야수 홈 보살을 두 차례 당하며 패하였다.

10월 2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1:4로 지던 8회말 1사 3루에서 봉중근에 이어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민병헌에게 초구만에 1타점 적시타를 맞았으나 다음 타자인 최재훈을 상대로 6-4-3 병살을 유도해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날 이동현은 0⅔이닝 3투구수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5로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동현도 2013 시즌을 마감했다.

이동현은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3⅔이닝 2피안타 1탈삼진 1실점 비자책점,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시즌 전체를 평하자면 2009년 이후 최고의 시즌으로 평할 만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혹사를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2014년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2010년에도 2013년과 비슷한 경기수와 이닝을 소화했지만 다음 해에 드러누웠었다. 이 팀은 뭔 구원투수들이 죄다 격년제인 겨

정국노였던 어떤 투수의 삼성 시절, 안지만이 그의 응아를 치우다 2013년 롸켓 역할을 하다 드러누운 게 떠오를 정도로 2013년에 이동현은 심할 정도로 굴렀다.

2.2.8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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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2015 시즌

5월 9일 기준으로 16.2이닝을 투구하여 14K 4BB 3실점 3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 1.62, FIP 2.57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좋은 투구내용을 보여주며 활약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5월 10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원정 경기 중 7회 말 스코어 1:1 주자 2사 1,3루 상황에서 루카스 하렐의 뒤를 이어 등판, 1점을 분식회계하여 1-2 역전을 허용했다. 이후 8회 말까지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팀은 8회 초에 박지규의 3타점 3루타에 힘입어 역전, 6:2로 경기가 끝나 승리 투수가 되었다. 시즌 전적은 4승 3홀드 2세이브가 되며 1선발 헨리 소사를 제치고 팀 내 다승 1위가 되었다(...)

5월 14일 NC 다이노스와의 홈 경기에서 9회 말에 등판, 만루까지 허용하며 위기를 맞이했으나 실점하지 않고 막아냈다. 그러나 투구 도중 다리에 이상이 생겼는지 부축을 받으며 퇴장해 LG 팬들의 우려와 걱정을 샀다. 병원 검진 결과 이상이 없다고 했으나 양상문은 SK와의 주말 3연전에는 기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16]

6월 27일 NC 다이노스와의 홈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어서 시즌 5승을 거두었다. 이날까지 이동현은 올 시즌 한 번도 패전을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7월 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3점차 리드 상황에서 구원등판하여 아웃을 하나도 못잡고 연속 5안타를 맞고 5실점을 하고 첫 패전을 기록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7월 10일 한화전에서는 5-5 동점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준후 후속타자의 번트타구에 악송구를 저지르며 무사 2,3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다음 타자가 4번 타자인 김태균이라 고의사구로 거르며 무사 만루 상황에서 어이없는 폭투로 1점을 헌납한 후 봉중근으로 교체되었다. 결국 역전하지 못하고 2패를 기록했다.

7월 부진에 대해 걱정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까는것도 자진해서 2군 갔다오라는 것 말고는 없으며, 대부분의 팬들은 가뜩이나 팔꿈치도 엉망인데 무릎 부상의 여파가 지금도 있지 않냐는 평. 일단 잠실 한화전 이후로 올스타 브레이크 휴식일로 인한 재정비 목적과 성적 등에 의한 문책성으로 2군에 내려갔다.

7월 26일 1군 복귀하여 9회초 1아웃 상황에서 진해수와 교체, 공 4개로 윤요섭박경수를 모두 3루 땅볼로 처리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7월 29일 롯데전에 8회 2사 부터 등판해 9회까지 잘 막았고 10회 다시 마운드에 올랐으나 10회말 아두치의 안타와 1사 후 안중열의 안타로 1-3루 위기에 몰리며 봉중근에게 마운드를 넘겼지만 봉중근이 박종윤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자신의 책임주자가 득점하는 바람에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8월 11일에는 8회 1사 유원상 다음으로 등판,유원상의 승리를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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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경기에서는 부러진 배트가 몸에 맞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단순 타박상만 입었다.[17]

그러나 이후에도 썩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평균자책점이 4점대 중반까지 폭등했다. 초반에 신나게 불 지르던 봉중근(4.61)하고 동급일 지경으로, 9월 3일 기준 이동현의 성적은 아래와 같다.

경기이닝삼진피홈런피안타실점자책점4사구폭투보크ERAFIP
5353.249356292724704.533.36

보다시피 FIP에 비해 ERA가 1점 이상 높다. 세부적으로 보면 BABIP이 .346에 이를 정도로 높게 형성되고 있으며, 잔루율(LOB%)이 65.5%로 리그 평균에 비해 5~10%정도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편 K/9는 8.22, BB/9는 3.02, HR/9는 0.5로, 평년에 비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좋은 기록으로, 전형적인 불운에 시달리고 있는 투수의 유형이다. 피OPS는 .710대로, 평년에 비하면 3푼 가량 올라간 편이지만 이는 BABIP 때문에 피안타율이 자연적으로 높아진 영향으로 봐야 한다. 빗맞은 타구들은 안타가 되고, 주로 득점권에 안타를 맞는데다 뒤에 자주 나오는 투수가 툭하면 분식회계를 시전하니 자연적으로 평균자책점이 올라가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러다 엘지에서 대우를 안해줘서 팀을 떠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롸켓 제발 팀에 남아줘요!

9월 9일에는 7번째 투수로 등판해 1.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5승 5패 4세이브 11홀드 ERA 4.40으로 시즌을 마쳤으나, 이는 못 했다고 볼 수 없다. 왜냐 하면 수비무관평균자책점(FIP)는 2014년(4.12)보다 좋은 3.43, WAR은 심지어 지난 3시즌 동안 가장 높은 1.19를 기록. 즉 본인이 못한 게 아닌 봉중근 등 뒷투수들의 분식 희생양이 되었고,거기에 BABIP가 비정상적으로 높다.(0.359) 이쯤 되면 그냥 운이 엿인 거지, 절대 본인이 못한 게 아니다.

시즌 후 이상훈의 LG 코치 복귀 소식이 들리자, 바로 이상훈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이동현의 프로 2년차 때 메이저에서 돌아온 이상훈은 이동현의 야구관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2.2.10 FA

2015 시즌 후 FA를 신청했다. 구단과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우선협상 마지막 날까지도 관련 기사가 거의 없는 걸로 봐서, 협상 결과가 박용택처럼 낮에 나올듯 싶었다.부디 결과도 같았으면

마감일에 3년 총액 30억 원의 조건으로 LG와 재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났다. 남아줘서 고마워요 롸켓니뮤ㅠㅠㅠㅠ[18]

2.2.11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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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FA 먹튀[19]
그놈의 부상이 결국...

이동현/2016년 문서로.

3 플레이 스타일

우완 정통파 오버핸드 투수로, 큰 키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강속구와 낙차 큰 포크볼이 주무기였다. 그러나 부상과 수차례의 수술 이후로는 팔꿈치를 많이 소모시키는 포크볼은 거의 봉인하고 슬라이더나 너클커브 등을 섞어서 던지는 쪽으로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LG 트윈스에 없다시피한 강속구 투수이기도 하다. 상대를 힘으로 눌러버리는 돌직구는 전성기 시절 150km/h에 육박했고, 세 번의 수술을 거친 2010년 이후 그 구속을 거의 회복했다. 더욱이 2010시즌 불펜 투수들이 하나 둘 나자빠지면서 혼자 장판파의 장비마냥 막아내야 했던 기간이 길었던터라 연투 능력도 좋아졌다. 고난이 사람을 키운다

한편, 큰 키와 빠른 구속, 묵직한 구위에서 주는 이미지와 다르게 제구력도 준수한 편이다. 다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귀한 몸이라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젠 갖다붙일 인대도 없다

넥센을 상대로는 재앙에 가까운 성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넥센 팬들에게 생긴 별명 중 하나가 넥동현(......)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1LG 트윈스33105⅔46000.4005.3713015585171631.760
200278
(1위)
124⅔83760.7272.67110134810639371.227
20033395⅔410000.2864.0510514455747431.516
20044853⅓131250.2502.87461274818171.350
2005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06
20071군 기록 없음
2008
20093441⅓10011.0005.23397283024241.621
201068
(5위)
74734150.7003.53655375838291.338
2011383311270.5006.27393253029231.848
20125256⅔22060.5003.02431185620191.076
201364
(5위)
7263125
(2위)
0.6673.00704285329241.319
20146159⅓51223
(3위)
0.8332.73542293818181.264
20156059⅓554110.5004.40654205533291.433
20164643⅓43250.5715.4054517382626
KBO 통산(14시즌)615818⅓4840341040.5453.87820743826203923521.430

5 기타

  • 별명은 롸켓으로 통일. 직구의 구위가 로저 클레멘스급인 유망주라는 의미에서 로켓보이였는데[20], 나이가 들더니 로켓청년, 로켓아저씨, 혹은 롸켓 혹은 롸켓맨. 그러나 불을 지를 때는 롸로호가 된다고 한다.
  • 인터뷰 1편 2편 여기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대호와 어릴 때부터 야구를 같이 한 친구인데 2010 시즌 중 벤치클리어링 때 말다툼하고 그 이후로 서먹하다고(…) 했다.
코디 테러예요, 그 아저씨는... 존경하는 분이지만 옷 입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양상문 아저씨, 전화 좀 받으세요. 그리고 자꾸 바람만 넣어놓고 피하시는데, 조만간에 잡으러 갑니다, 제가.
전화 드릴게요. 문자 씹지 마세요, 아저씨.
- <베이스볼 투나잇 야!> 동영상 보기

  • 2014년 12월 6일 결혼했다. 한편 이날 결혼식 주례와 관련한 특이한 일화가 있다. 그가 막 입단한 신인이었던 어느 날, 평소 잘 따르던 어느 투수코치에게 대뜸 "저 나중에 결혼할 때 코치님이 주례를 해 주세요" 라고 장난을했고, 당시 그 코치도 어차피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는지어우 야~~ 별 생각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코치는 다름아닌 양상문으로 세월이 흘러 진짜 결혼 때는 감독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감독이 된 양상문도 주례를 맡기로 하면서 무려 13년 간의 약속이 이루어지나 싶었지만...결혼식 당일 아침, 양상문 감독이 갑작스럽게 부친상을 당하여 급히 부산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주례는 LG스포츠 남상건 사장이 대신하게 되었다.
  1. 유년기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보냈고, 국민학교 2학년때 서울로 상경했다.
  2. 두 캐릭터는 LG에 입단해 2002년 마지막 가을야구를 보고 11년 동안 한 팀에 있으면서 암흑기를 보낸 인간문화재 박용택과 이동현이다.
  3. 정영일242구를 던진 적이 있었다. 결과는 다 알다시피.....
  4. 출처 : 관련 블로그
  5. 김용수이광은 감독과의 불화로 사실상 반 강제적으로 은퇴했는데, 방어율이 5점대였지만, 127이닝을 소화했었다. 당시 그의 나이가 41세라는 점에서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후임 감독이 노장 선수를 선호하는 김성근이라는 점에서 잘 하면 김용수는 2002~2003년까지도 현역으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6. LG 사상 최고의 용병 투수 중 하나로 꼽히는 데니 해리거가 남아 있었으나 결과론적으로 해리거도 2001년에 8승 11패 ERA 4.62로 부진했다. 2000년 기록은 17승 10패 평균자책점 3.12.
  7. 한편 2001 시즌의 신데렐라는 신윤호였다. 15승 6패 18세이브 32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3.12로 3관왕(다승, 승률, 구원)을 차지했다. 거기에 골든 글러브까지 받았다. 참고로 신윤호의 선수 생활 13년 통산 승수는 28승이다(…).
  8. 2001년에 2군 감독으로 영입되었으나 2001년 팀이 부진에 접어들즈음에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9. 류택현이 70경기 남짓 나왔지만 원포인트 릴리프였기에 긴 이닝을 먹지는 않았다.
  10. 똑같이 김성근에게 혹사당했던 2010년의 정우람이 102이닝, 2015년의 권혁이 112이닝을 소화한 것을 보면 이게 얼마나 심한 혹사인지 알 수 있다. 한국시리즈만 뛴 정우람이나 그것도 4대빵으로 시시하게 끝 정규시즌 끝나고 푹 쉰 권혁과 달리 준플부터 코시까지 풀로 구른 건 써비스. 게다가 정우람은 시즌 133경기 체제에서 102이닝을, 권혁은 시즌 144경기 체제에서 112이닝을 소화하였다. 이동현은 133경기 체제에서 무려 불펜으로 124이닝을 던졌다.
  11. 첫 번째 수술 때 수습되지 못한 뼛조각들이 인대 사이를 돌아다니는 바람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2. 토미 존 수술은 아니다. 뼛조각 제거와 인대를 다시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이었다.
  13. 인대 수술을 세 번 하고 복귀한 선수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14. 다만, 공 자체의 위력이 떨어진 건지 7월 30일 삼성전에선 7점 차의 큰 리드 속에서 나왔음에도 상대한 2명의 타자에게 연속 2루타를 허용하면서 바로 교체되었다.
  15. 영상 자체엔 이동현 관련 내용은 없다.
  16. 결국 마지막 경기에 나와 1과2/3이닝 을 던지고 홀드를 챙겼다,사실 세이브도 가능해 보였으나 경기 종료를 한 차례 남겨 두고 봉포극장과 교체되어 세이브를 양보했다.
  17. 결국 이 때문에 몸이 제대로 풀리지도 않은 봉중근이 올라와 4실점을 하고 말았다. 엘지 지못미.
  18. 구단은 2+1년에다가 20억대 중반을, 본인은 4년 35억을 제안했다는 말이 있다.
  19. 8월 15일 기준 3승 2패 2세이브 4홀드로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나 ERA 5.70, WHIP1.53으로 전혀 괜찮다고 할수 없다. 그나마 그동안 해준것들이 있고, 동갑내기인 역대급 개먹튀에게 묻힌 감이 없지 않아서 덜 까이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동현이 잘하고 있는건 아니다.
  20. LG에서 얼마 없는 우완 강속구 투수라서라는 점도 있다.
  21. 여담으로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아무리 이동현 머리가 커도 헬멧을 주문제작(...)하는 분과 비교하면 쓰냐는 소리까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