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前 삼성, 현대, 히어로즈 소속의 야구 선수, 한화 이글스의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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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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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동기 박한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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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즌
2015시즌 한화 이글스 3군 투수코치
한화 이글스 No.79 | |
이정호(李正鎬) | |
생년월일 | 1982년 4월 27일 |
출신지 | 대구광역시 |
학력 | 내당초-경상중-대구상고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1년 삼성 라이온즈 1차지명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2001~2004) 현대 유니콘스(2005~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10) 고양 원더스(2011~2012)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3번 | |||||
찰스 스미스(1999~2000) | → | 이정호(2001) | → | 박한이(2002~)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 |||||
김기태(2000~2001) | → | 이정호(2002~2004) | → | 김대익(2005) |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3번 | |||||
팀 창단 | → | 이정호(2008) | → | 신철인(2009~2010) |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1번 | |||||
이상열(2008) | → | 이정호(2009~2010) | → | 이정훈(2011~2012.6) |
1.1 개요
역대 최고액 계약금을 받았지만 잔부상에 시달렸던 먹튀 비운의 투수. 현재는 한화 이글스 3군 투수코치.
1.2 고교 시절
대구상업고등학교 1학년 때 팀의 청룡기 준결승을 이끌었고, 2학년 때는 청룡기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3학년 때인 2000년에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에 대표로 뽑혔다. 또한 이미 이 때에 시속 153km의 속구를 던지며 미국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1.3 프로 입단
계약금 5억 3천만원[1]에 연봉 2천만원, 총 5억 5천만원에 계약하며 입단했다. 당시에는 역대 신인 중 최고액 계약금이었으며[2], 지금까지도 삼성 신인 중에는 최고액이다.[3] 1987년 류중일의 입단 이후 최초로 공개적인 계약식도 했다. 그만큼 이정호에 대한 기대감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1.3.1 삼성 라이온즈
2001 시즌 전, 하와이 전지훈련 때 157km/h의 속구를 던진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헌데 사실은 계형철 당시 투수코치가 일부러 기를 살려준다고 공을 던질 때마다 원래 구속보다 빠른 구속을 외쳤고,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그걸 그대로 받아적은 것이다.(…)
2001년 4월 6일, 프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 이 때 150km/h 초중반을 던지며 관중, 기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팔부상을 당해 결국 4월 말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도 팔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결국 검진을 받아, 어깨에 이상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재활 스케줄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이 직후에 이정호의 재활을 담당한 트레이너를 포함해 다른 트레이너들마저 팀을 떠났다. 결국 재활스케줄을 소화하지 못하며 팔이 아픈 상태에서 2군 경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일방적인 지시에 투구 폼도 바꾸며, 투구 밸런스와 감각을 잃어버려 성적은 더 나빠졌다. 급기야 새가슴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2004년 새로 부임한 선동열 투수코치의 지시로 미국 전지훈련에서 3,000투구 훈련을 하다가, 다시 어깨 부상으로 결국 그 해 7월 어깨 수술을 받았다. 체계적인 재활과 웨이트 트레이닝 없이 무작정 공만 던지게 했다가 이런 사단이 난 듯하다. 선동열의 3,000투구 훈련의 첫 희생자인 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역비리 사건까지 연루되어 결국 2004 시즌 후 군대 확정.
1.3.2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
2004년 말, 삼성에선 FA 자격을 얻은 현대의 심정수와 박진만을 영입했다. 그리고 이때 보호선수 명단에서 이정호를 제외했다. 어깨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데다 군 문제까지 걸린 선수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인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정호에 대해 잘 알던 현대 프런트에서 구단 상층부를 설득한 것.
팬들은 왜 삼성 구단이 타율이 2할 초반대인 김재걸이나 김종훈같은 퇴물 대신 이정호를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하냐고 아우성이었지만, 이것이 옳은 선택임이 나중에 드러난다.
현대에 이적한 후 2005년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했다. 2007년 제대하지만, 다시 팔꿈치에 통증이 생겨 그 해 5월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히어로즈로 팀이 바뀐 2008년에 복귀하지만, 여전한 이런저런 잔부상 때문에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성적을 기록했다.
1.3.3 해외진출 및 그 후
2010년 11월 26일, 갑작스레 해외진출을 선언한다.#
잔부상으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폐만 끼치느니, 차라리 마지막으로 꿈을 향해 도전하겠다는 것. 결국 임의탈퇴로 공시되었다. 만약 해외진출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팀으로 돌아오라는 김시진 감독과 넥센 구단의 배려였다. 그리고 2011년 7월 1일 현재 이렇다 할 소식은 없는 상태...였는데,
1.4 지도자, 프런트 경력
2011년 8월 11일 상원고가 청룡기고교야구를 우승하면서 상원고에서 코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99년 상원고의 마지막 우승 때 같이 팀을 이끌었던 원투펀치 장준관과 코치 신분으로 우승하여서 기분이 묘했을 듯. 원투코치 기사
이후로는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팀이 해체될때까지 프런트로 재직했다.
2014년에 근황 인터뷰가 실렸다. 삼성 ‘5억 팔’ 이정호① “사실 저 먹튀 맞습니다” 삼성 ‘5억 팔’ 이정호② “나 같은 실패 안 하게 도움 주겠다”
2014년 11월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손승락의 공을 받아주며 연습을 도왔다는 얘기가 황규인 기자의 트윗에 실렸다. 트윗
2014년 12월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부임했다. # 3군 투수코치 보직을 맡았으나 언론에 가끔 사진이 나오는 것과는 달리 한화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에 이름이 올라와있거나 프로필사진이 포털사이트나 KBO 홈페이지에 등록되어있지 않다.[4]
1.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
2001 | 삼성 라이온즈 | 8 | 9⅔ | 0 | 0 | 1 | 0 | 4.66 | 8 | 11 | 2 | |||
2002 | 5 | 10⅓ | 0 | 0 | 0 | 0 | 6.10 | 12 | 7 | 12 | ||||
2003 | 6 | 4⅓ | 1 | 0 | 0 | 0 | 6.23 | 8 | 4 | 3 | ||||
2004 | 1군 기록 없음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
2005 | 현대 유니콘스 | 군복무(공익근무) | ||||||||||||
2006 | ||||||||||||||
2007 | 1군 기록 없음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
2008 | 우리 히어로즈 | 9 | 9⅓ | 0 | 0 | 0 | 0 | 5.79 | 10 | 10 | 8 | |||
2009 | 서울 히어로즈 | 3 | 2⅔ | 0 | 0 | 0 | 0 | 13.50 | 3 | 5 | 3 | |||
2010 | 넥센 히어로즈 | 4 | 9⅔ | 0 | 0 | 0 | 1 | 5.59 | 9 | 9 | 7 | |||
통산 | 35 | 46 | 1 | 0 | 1 | 1 | 6.07 | 50 | 46 | 35 |
2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 선수
이정호(1992) 항목으로.
3 KEI(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센터장
이 센터장은 2016년 세종시에서 KEI 주최로 열린 환경문제 관련 워크숍에 참석해 ‘천황폐하 만세’라며 삼창을 하고 참석자들에게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고위 임원이었다’는 발언을 했다 티파니보다 더 위험한거 같은데....
- ↑ 실제 계약금은 5억원이었지만, SK에 입단한 정상호가 4억 5천만원을 받자 삼성측에서 좀 더 부풀려 발표했다.
- ↑ 이후 기아의 김진우가 계약금 7억원, 역시 기아의 한기주가 10억을 받으며 기록이 갱신되었다.
- ↑ 참고로 삼성 신인 계약금 역대 2위는 같은 년도에 입단한 박한이이며, 삼성 라이온즈는 이정호의 실패 이후 2009년 우동균과 최원제가 입단하기 전까지 2억원 이상의 신인 계약금을 준 적이 없다. 사실 이 당시 대구, 경북팜이 특출한 선수를 배출하지 않았던 터라
즉 시망이라거액을 주려고 해도 줄 선수가 없었다.(...) - ↑ KBO에서 개강하는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지도자과정을 수료하지 못한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KBA와는 달리 KBO는 지도자 자격증과 관련된 내용이 규약에 명시되어있지는 않고 언론을 통해서 KBO에 지도자로 등록하려면 지도자과정을 수료해야 한다고만 KBO에서 밝힌 바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