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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번트를 대는거냐 거기다가 다른곳을 보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No.16 | |
손용석(孫龍錫 / Yong-Seok Son) | |
생년월일 | 1987년 3월 16일 |
출신지 | 부산광역시 |
학력 | 사직초-부산중-부산고-영남사이버대 |
가족 | 1남 3녀 중 막내 |
포지션 | 내야수[1],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6년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2006 ~ ) |
종교 | 불교(법명 : 용타(龍陀) |
목차
1 개요
부산고를 졸업하고 한국 프로야구 06년 1차 1지명, 계약금 1억원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내야수.철밥통.
1차지명자에게 계약금이 고작 1억이라 역시 짠돌이 구단 롯데라고 까기도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꼴데의 자선사업 하지만 롯데는 연고지에 마땅히 1차지명할 자원이 없자 손용석을 지명하였고, 타격은 합격점을 받았지만뭐? 내야수로서는 그다지 좋지 못한 수비 능력과 뚱뚱한 몸에서 기인하는 느린 발로 많은 계약금을 주기 힘들었을 뿐이다. 실제로 이 드래프트에서 손용석을 제외하면 지명받았던 부산,경남권 유망주는 김유신, 박상흠, 김동진뿐이며 대학선수까지 포함하면 황동채까지 포함된다. 김유신이 2차 5라운드에 지명될때까지 아무런 부산, 경남권 선수들의 이름이 불러지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또한 이때 지명받지 못했던 부산,경남권 고등학교 유망주들 중 대학교에 진학 후 201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은 선수는 이상백, 이창섭, 홍재호뿐이다. [4] 5툴 플레이어였던 신명철이 계약금으로 3억원을 받았던것을 감안하면 손용석의 재능에 1억이 짜게 줬다고 평가하는거는 문제가 있다. 2004년 장원준, 2005년 이왕기. 2007년 이상화, 이재곤이 받은 계약금을 생각하면 특출한 장점이 없는 야수 손용석의 계약금 1억은 짜지 않다는걸 알 수가 있다.
초기에는 2루수로만 뛰다가 느린 발을 감안해서 3루도 겸하게 되었다. 장성우와 함께 공포의 쌍나팔이라 불릴 정도로 멘탈적인 측면이 좋고 타수는 적지만 3할을 쳐본 타격 센스등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선수였다.
이 선수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 2007시즌에 부친인 손경구씨가 롯데 자이언츠 1군 선수단 버스 운전기사였던 것이 언론에 나왔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3일에도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참고로 손용석의 부친은 2010시즌 이후로는 은퇴하고 부산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고 있다.[5]
2011시즌까지 롯데의 2루를 지키던 조성환의 하락세가 두드러지자 본격화된 2루경쟁에서 정훈이 승리를 거두면서 주전경쟁에서는 탈락했다.
클러치상황에 대타로 적시타를 때려내는 경우가 많아 클러치히터 이미지가 강하다. ...였지만 2016년 5월 현재 모든 꼴빠들의 혈압을 올리는 민폐 덩어리이자, 클러치 이미지빨로 야구하는 0툴 플레이어.
1.1 커리어
요약하면 커리어에서 400타석의 기회를 받고도 커리어 홈런 1개도 못 친 전형적인 1.7군 맴버 -샌프란시스코의 투수 매디슨 범가너가 비슷한 타석에서 13개 쳤다 이 놈아 ...-
1.1.1 2010시즌 이전
입단 이후 팀내의 내야수 경쟁이 치열한 탓에 1군 경기 자체에는 크게 많이 뛰지 못했다. 2006~2007 시즌 합쳐서 1군 출장 경기수는 48경기로 아무래도 팀내의 경쟁자들이 쟁쟁하다보니 밀린 감도 있다. 거기다 2007시즌 말미에 어깨 수술을 하면서 경기에 출장하기 힘들게 된 것도 있다. 하지만 두 시즌 모두 3할 3푼 3리를 넘어서는 타율에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본인의 존재감을 처음 알린 것은 대 한화전. 롯데는 2007년 6월 16일 당시까지 한화전 7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날도 9회초까지 3-6으로 뒤지고 있었는데 이대호의 홈런으로 4-6, 연속안타 후 상대의 폭투로 5-6까지 따라잡은 상황에서 이승화의 대타로 혜성같이 등장해서... 좌중간을 꿰뚫는 2타점 2루타를 쳐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상대투수가 당시 대성불패로 불렸던 구대성이었기에 더욱 깜짝 등장이었다. 지금도 포탈사이트에 구대성 손용석을 검색하면 둘을 연관지은 기사가 뜰 정도.
2007년 말 수술 이후 2008년 ~ 2010년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병역문제를 해결하였다.
1.1.2 2011시즌
시즌 중반 조성환과 황재균, 문규현의 공백으로 인해 내야 유틸이 필요해짐에 따라 6월 17일 1군에 올라온다. 이후 황재균, 조성환등의 복귀 이후에도 내야 백업을 필요로 하는 팀 상황에 따라 계속 백업 멤버로 1군에 출장하였다.
정훈과 2루수 백업으로 포지션 경쟁을 했으나, 정훈보다 수비가 안정적이고 1차 지명 출신이라 신고선수 출신인 정훈보다 기회를 많이 받았다. 손용석은 3루수도 가능했기에 더 이점이 있기도 했다.
7월 19일 롯데 vs 두산전에서 3-3으로 맞서던 연장 10회초 2사 2, 3루에서 대타로 나서 두산의 투수 노경은의 4구를 쳐서 중견수 앞에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결국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어 팀 승리에 공헌했다.
8월 26일 롯데 vs. 넥센전에서 롯데가 스코어 0:1로 뒤지던 7회초 2사 1, 3루에서 대타로 나선 손용석이 넥센의 바뀐 투수 윤지웅의 초구를 쳐서 좌익 펜스를 맞히는 2타점 2루타를 만들어 역전에 성공했다. 2007년부터 필요한 시점에 강한 모습이 공익근무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은 듯했다.
2011년 페넌트레이스에서 타율 0.263, 홈런 0, 타점 12, OPS 0.728을 기록했고 2군에서는 타율 0.270, 홈런 1, 타점 17, OPS 0.733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에서는 대타로 출장하였고 5차전에서는 대수비로 나왔다가 타석에 들어섰다. 플레이오프에서의 성적은 2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이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1.1.3 2012시즌
1, 2군을 오르내리며 대타 요원으로 활약했고 수비는 2, 3루를 맡았다.
8월 3일 삼성 라이온스전에서 12회말 2사 1, 3루에서 대타로 출장하여 우익수 키를 넘는 끝내기 안타를 터뜨려 팀의 스코어 4:3 승리에 공헌했다.
10월 6일 토요일 SK 와이번스와의 시즌 마지막 원정 경기에서 4회초 박정배가 던진 3번의 투구에 의해 3개의 배트가 연속해서 부러지는 대참사를 겪었다(…). 파울 2개와 뜬공 1개(유격수 뜬공)였는데, 방송 중계진과 양승호 감독, 심지어 박정태 코치도 헛웃음을 지었다. 물론 배트 3개를 다시 골라야 하는 본인의 심정은… 이 경기를 중계한 이병훈 해설은 중계도중에 "지금 양승호 감독이 아마 이런 생각을 할거에요 '얘가 방망이를 썩은걸쓰냐?'"라는 말을 하기도...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4차전은 대수비로 나왔고 3차전에서는 대타로 출장하여 1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제외되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1.1.4 2013시즌
8월말까지 2군에서 0.223 타율을 기록하면서 1군 콜업 기회가 없었다. 이후 9월 확대 엔트리가 되어서야 올라와 3경기 출장하여 타율 0할(…).무려 333일 만에 1군 선발 출장을 하였다. 그리고 3일 뒤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1.1.5 2014시즌
5월 17일 1군에 첫 등록되었으며, 17일 경기에서 수비에서 삽질을 한 황재균 대신 4회초부터 3루수로 들어가서 호수비를 하고 안타도 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1.1.6 2015시즌
컨택,파워는 그렇다치고 나머지는 야구 안하는 고등학생 이하
롯데 1루수 막장 3대장 중 한 명
김상호만세
6월 16일 넥센과의 경기를 앞두고 1군에 처음으로 등록되었으며, 당일 최준석 대신 1루수로 출장, 안타를 때려냈다.
6월 17일 1루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3안타를 때려내며 맹활약했다.
박종윤의 타격감이 바닥을 기는 상황이라 1루수로 출전하고 있다.
6월 19일에도 선발 1루수로 출장하여 3타수 2안타를 기록, 4경기 연속 안타를 때려내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이고 있다. 이제 홈런 하나만...
그러나 아름다운 2주일을 보낸후엔 타격감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다시 벤치 자리로 밀려났고 이젠 경기 출장하는 일도 뜸해졌다.
경기에 나오지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1군 로스터의 한 자리를 잡아먹고 있으며 팬들간에서도 이럴바엔 선수 육성 차원에서 오윤석을 콜업해 기용하는게 더 낫지 않겠냐는 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후 시즌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1군에서 말소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최종 성적은 38경기 69타수 15안타 타율 0.217 2타점 1볼넷 11삼진.
사실상 콜업 직후 반짝한 후엔 1군 엔트리 한자리만 잡아먹었으며 유격수를 제외하고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는 있으나 애초에 수비가 뛰어나지 않아 대수비로서의 활약은 물론이거니와 대타로서의 성적도 낙제점이다.
더군다나 손용석과 같은 내야 유틸리티 자원인 오윤석이 시즌 말미에 콜업되어 준수한 수비력과 손용석이 데뷔 후 약 10년간 하나도 치지못한 홈런도 기록하는 등 가능성을 보여줘 큰 발전이 없는한 내년에는 대타, 대수비 자리도 위태로워 보인다.
애초에 손용석이 비주전에 관대한 극성 롯데팬들에게 넷상에서 과대평가되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툴은 컨택 하나다. 모두가 아는 원툴 플레이어. 이를 극대화한 적절한 대타 클러치히팅으로 까방권을 쌓아 그나마 1군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런데 타율이 2할 초반이고 타점이 2타점이면 1군에서의 존재가치 자체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
1.1.7 2016 시즌
격동의 양아들이며 타격,주루,수비,송구 어떤 것도 못하는 최악의 0툴 플레이어
해당 문서로.
2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장타율 | 출루율 | ||
2006 | 롯데 자이언츠 | 4 | 3 | .333 | 1 | 0 | 0 | 0 | 1 | 1 | 0 | .333 | .333 | ||
2007 | 44 | 70 | .343 | 24 | 4 | 0 | 0 | 12 | 4 | 0 | .400 | .382 | |||
2008 | 공익근무요원 군 복무 | ||||||||||||||
2009 | |||||||||||||||
2010 | |||||||||||||||
2011 | 49 | 57 | .263 | 15 | 3 | 1 | 0 | 12 | 11 | 1 | .351 | .377 | |||
2012 | 43 | 64 | .266 | 17 | 2 | 0 | 0 | 5 | 3 | 0 | .297 | .329 | |||
2013 | 3 | 6 | .00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
2014 | 3 | 4 | .250 | 1 | 0 | 0 | 0 | 0 | 0 | 0 | .250 | .250 | |||
2015 | 38 | 69 | .217 | 15 | 2 | 0 | 0 | 2 | 4 | 0 | .246 | .229 | |||
KBO 통산 (10시즌) | 184 | 273 | .267 | 73 | 11 | 1 | 0 | 32 | 24 | 1 | .315 | .322 |
홈런이 하나도 없다
3 기타
- 박정태 전 코치의 타격폼을 기가 막히게 흉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인 시절 우천 세레모니를 하러 나왔는데 박정태의 타격폼을 선보인 뒤 내야를 돌아 홈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왔다. 2011년에 KBS N 스포츠가 제작했던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기념 다큐멘터리 박정태 편 도입부분에서 바로 그 장면이 나온다.
- 아버지가 롯데 구단 버스기사로 일한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사직 야구장에서 롯데 선수들을 자주 만났다고 한다. 그 당시 롯데 선수들이 초딩이던 손용석을 매우 귀여워했다고 한다.
저 얼굴에 초딩이면 당연히 그럴 수 밖에손민한과 손인호가 롯데에서 뛰던 시절 특히 손용석을 예뻐했다고 한다. 이유는 같은 손씨 집안이라고(...). 손용석은 롯데에 입단하기 전 가까운 선수들을 삼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에 온 뒤 '삼촌'은 선배님이 됐다.
- 2011시즌 중 아버지께 개인 택시를 선물해드렸다고 한다. 물론, 아무래도 연봉이 적다보니 누나와 합쳐서 냈다고 한다.
- 김신영과 닮았다고 '신영이'로 불리기도 한다.
- 꼴갤의 아이돌이다. 꼴갤에서 유동닉들이 손용석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써서 어그로를 끌다가 어느 순간부터 꼴갤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이런거나 이런걸(...) 거기다 박종윤이 부진으로 빠지고 손용석이 그자리를 훌륭히 메워서 조롱, 농담이 아닌 진짜 꼴갤 스타로 등극. 헌정시까지 나왔다.
슥슥디시콘도 있다2016년 현재 밑천이 다 드러난 상황에서는 스타는 커녕 박종윤과 동급으로 까이고 있다. 아니 박종윤은 반짝이라도 했지 손용석은 반짝도 안 해서 박종윤보다도 까이고 있다.
- 엄청난 개인기를 선보이며 야심차게 2015시즌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