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스 앤 메리 체인


The Jesus and Mary Chain

스코틀랜드 이스트킬브라이드 [1] 출신 록밴드. 1983년에 결성했다. 형 윌리엄 라이드와 동생 짐 라이드 두 형제로 이뤄져 있는 밴드다. 저 둘 빼면 워낙 멤버 변동이 심해서 [2] 멤버들의 협업이 이뤄지는 밴드라기 보다는 라이드 형제의 음악 프로젝트 같은 성격이 강하다.

음악을 들으면 알 수 있지만 어린 시절 섹스 피스톨즈펑크 록를 듣고 충격을 받아 뮤지션이 되기로 한 케이스다. 당연히 그룹을 만들었을 때, 아무도 기타를 제대로 치거나 노래를 잘 하거나하지 못했다. 윌리엄은 이에 '우리는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는 위대한 뮤지션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상상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섹스 피스톨즈 말고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기 팝, 샹그리라[3], 비치 보이스, 비틀즈, 필 스펙터, 라몬즈[4] 같은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한동안 형제는 그 당시 영국 청춘들이 그랬듯이 실업자로 지내면서 포피 시드, 데스 오브 조이 같은 이름으로 음악 만들고 빈둥빈둥 지내다가 지금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윌리엄 라이드가 밝히길 "그땐 다들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고 있던때라 기타 밴드 데뷔하기 좋았다"라고.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이라는 이름은 한떄 빙 크로스비 영화 대사에서 따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본인들이 부정했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아침 시리얼 포장에 있던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있다.

정작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시작한 뒤로도 스코틀랜드에서는 딱히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음악 성격도 음악 성격이고 후술하겠지만 라이드 형제 무대 매너도 불친절하기 그지 없는데다 공연도 평균 20분 정도로 매우 짧아서 (...) 여러모로 악명높은 공연중 하나였다. 그래서 런던 풀럼으로 넘어갔다가 크리에이션 레코드앨런 맥기와 맥기와 친했던 프라이멀 스크림의 바비 길레스피가 그들의 데모를 받으면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앨런 맥기는 이들을 주목해 매니저를 자청하면서 자기 레이블과 1회성 계약을 했고 그들은 "Upside Down"이라는 데뷔 싱글을 내놓게 된다. 이 데뷔 싱글이 인디 히트를 기록하고 NME가 주목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동시에 바비 길레스피도 드러머로 합류하게 되고 워너 브라더스 산하의 블랑코 이 니그로가 계약을 제안하면서 그들은 첫 앨범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싱글이 엄청 잘 팔렸던 것은 아니였지만 특유의 공연이 논란을 일으켰고 그렇게 나온 첫 앨범 Psychocandy는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섹스 피스톨즈 노이즈 피드백으로 쏘아대며 울려대는 기타와 그와 대비되는 낮고 게으른 목소리와 달콤한 멜로디가 결합된 이 앨범은 새로운 음악적 방법론과 동시에 슈게이징의 단초를 제시했다는 격찬을 받으며 슈게이징 씬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앨범으로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1980년대 영국 인디 록을 평정하게 된다. 대서양 건너 소닉 유스 [5]랑 더불어 노이즈 록의 총아로 떠오르게 되고 지금도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판매량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골드 레코드를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Some Candy Talking EP 발매 후 바비 길레스피가 프라이멀 스크림 집중하러 밴드를 떠나게 되고 본인들도 노이즈 록/슈게이징의 총아로 불리는걸 피곤해하더니 두번째 앨범 Darklands는 드럼 머신의 도입과 팝 멜로디 성향의 강화로 이어졌다. 전작 Psychocandy와 반대되는 경향이였지만 반대로 강렬한 노이즈 피드백 뒤에 숨어있던 이들의 작곡 실력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격찬과 동시에 그들 커리어 사상 대박을 치게 된다.

그 다음 앨범인 Automatic은 노이즈 록/팝의 기조는 여전했지만 전작보다 신시사이저랑 드럼 머신이 강화된 나머지 영국에서 판매량과 달리 다소 애매한 평가를 받았으나 수록곡 'Head On'이 미국 차트에서 먹혔고 이는 이들의 이후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마침 얼터너티브 록인더스트리얼, 매드체스터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이들은 다음작 Honey's Dead에서 그 열풍에 동참하게 된다. 스매싱 펌킨스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나인 인치 네일스와 같이 작업했던 플러드앨런 모울더를 기용해 음악 스타일을 완전히 일신하고 동료였던 프라이멀 스크림Screamadelica처럼 매드체스터의 댄서블한 리듬도 받아들인 이 앨범을 통해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미국 진출에 신경쓰게 된다. [6] 이 시절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블러, 다이노서 주니어를 백업삼아 순회공연을 도는 대형밴드였다. 이런 변화는 아예 노이즈를 벗어버리고 포크 록으로 극대화된 Stoned & Dethroned에서 극대화된다.

하지만 대형 투어가 가져다 주던 피로와 미국 상업주의에 실망해가던 형제 사이에선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때마침 블랑코 이 니그로가 문을 닫는 악재가 이어지면서 4년동안 침묵을 가지게 된다. 앨런 맥기가 크리에이션 레코드로 그들을 데려오고 미국에서는 서브 팝과 계약하면서 어찌 구제받긴 했으나 형제 간의 불화는 어쩔수 없었다. 1998년 마지막 앨범 Munki를 녹음할때쯤 서로 얼굴도 안 보고 따로 녹음할 정도로 불화는 극대화되었고 결국 Munki 투어 도중 윌리엄 라이드가 탈퇴해버리고 공연도 제대로 펑크내버리는 사고를 터트리고 만다. 결국 예정된 월드 투어 종료후 해체했다. 짐 말로는 서로 죽이고 싶어했을 정도였다고.

해체 이후 다들 솔로 활동으로 들어갔지만 그다지 주목은 못받았다. 2007년 형제간의 불화가 완전히 청산되었는지 재결합을 선언했고 지금도 잘 다니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도 노이즈 록을 추구하는 밴드들은 많았지만,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그 노이즈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면서 특유의 게으르고 지저분한 무드를 만들어냈고, 거기다 라이드 형제의 곡 쓰기 능력이 출중했던지라 파급력도 커서, 록 음악사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다. 떄문에 이들의 음악은 슈게이징 창시자라 불리고 나아가 얼터너티브 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상기한대로 라이드 형제 성격이 지랄 맞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무대 매너나 잡지 인터뷰 때도 시큰둥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가사에서도 독기를 내뿜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래서 초기 이들의 무대는 폭력 사태나 난동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Automatic 이후로는 그럭저럭 평범한 무대로 변했지만 그 외에는 여전히 냉소적인 태도는 유지하면서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나중엔 서로에게 독설을 내뿜게 된다

더 스미스로 대표되던 1980년대 당시 영국 밴드들의 미국 거부증과 달리 유별나게 미국 친화적인 [7] 밴드였다. 이들이 결성된 곳이 당시 영국 밴드들의 주류적 흐름과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삭막한 공업 도시이다 보니 어린 시절 이들이 듣던 음악 중엔 이기 팝이나 벨벳 언더그라운드 같은 노이즈/펑크 록 뿐만 아니라 상기한 샹그리라, 비치 보이스 같은 달달한 미국식 버블검/선샤인 팝도 있었고 이는 그들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8]가사 면에서도 문학적이고 종종 현실비판적이였던 더 스미스랑 달리 내향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한때 자신과 지향점이 반대였던 더 스미스모리세이를 신랄하게 까기도 했다. 단 라이드 형제는 이후 더 스미스 까 발언을 철회하면서 그들의 송라이팅을 높게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 심지어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다만 가사는 여전히 마음에 안들었는지 모리세이의 가사는 아침에 일어나 하루종일 TV를 보는거나 다름없다라고 재차 까기도.

미국 인디밴드 마그네틱 필즈는 지저스 앤 메리체인을 컨셉화한 앨범 <Distortion>(2008)을 발표하면서 "지저스 앤 메리 체인보다 더 지저스 앤 메리 체인 같은 앨범" 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음반목록

  1. 글래스고 남동부에 있는 교외지역
  2. 특히 드럼 주자가 엄청 많이 갈려나갔다. 지금까지 이 밴드를 거쳐간 드럼주자는 11명 (!)
  3. 1960년대 활동했던 버블검 그룹. 빠심이 장난 아니여서 윌리엄은 우리는 샹그리라 같은 밴드가 될 것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4. 특히 초기 데모는 라몬즈 영향이 짙었는데, 본인들이 노이즈를 추구하게 계기도 그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비교대상으로 언급되는 소닉 유스현대예술의 무조/노이즈 흐름에 영감을 받아 의식적으로 실험을 추구했다가 일반적인 로큰롤로 다가가는 쪽이였던것과 대조된다.
  5. 실제로 소닉 유스랑 합동 공연도 한 적이 있다.
  6. 실제로 롤리팔루자에도 참여하고 미국 맥주 광고에 음악이 나오는 등 성과가 있었다. 말기에 가면 미국에서도 매진이 될 정도로 인지도를 얻게 된다.
  7.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상업주의에 부회뇌동할 정도는 아니였다. 후기에 발표한 I Hate Rock'n'Roll 같은 곡은 미국 로큰롤에 대한 애정과 미국 진출 당시 겪었던 피곤함과 분노가 그대로 담겨있던 곡.
  8. 비단 지저스 앤 메리 체인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는 문화적으로는 유달리 미국 친화적인 곳으로 유명하며 그 영향 아래 틴에이지 팬클럽이나 파스텔즈, 바셀린즈, 벨 앤 세바스찬 같은 트위팝이 융성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