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4월 24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문서
세분화
항목
세월호 제원 관련 정보청해진해운 선사 관련 정보
선박 개조 논란침몰 사고 관련 논란
침몰 원인인양 관련 논란
구조 및 수습의 어려움사고 전 메시지들
정부의 대응 및 배보상 방안각계의 반응
관련
사건·사고
각종 사건·사고 및 유족 관련 논란언론에 의한 사건·사고
사기 및 범죄정치인 및 공무원 관련 사건·사고
사건 현장 관련 사건청해진해운의 횡령과 비리 논란
구조 및 수습 과정 관련 논란인터넷 커뮤니티 관련 사건·사고
특별법 제정 및 유족 보상 관련 논란유병언의 도피와 최후
세월호 관련 의혹7시간 의혹
사고 일자

시간대별
상황
2014년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2015년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2016년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2017년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틀: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월별기록}}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각 일자별 기록
2014년 4월15161718192021222324252627282930

1 타임라인

4월 24일
3시 17분
정조 시각(만조)
10시 17분
정조 시각(간조)
11시 경
시신 4구를 수습하였다.#
12시 53분경
시신 5구를 수습하였다.#
13시 경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 관계자에게 수색 작업에 대해 항의했다.
14시 19분경
시신 3구를 수습했다.#
16시 35분경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 관계자와 몸싸움을 벌였다.
16시 38분
정조 시각(만조)
17시 경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실종자 가족 간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18시 45분경
4층 선미 중앙객실에서 여학생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수습하였다. #
19시 경
시신 3구를 수습했다. #
21시 50분경
탈출 승무원 11명을 구속했다. #
21시 52분
정조 시각(간조)

2 상세

오전 10시 브리핑에서 자원봉사자의 구조작업참가를 제한하겠단 발표를 하였다. 이유는 봉사자들이 잠수를 해도 별로 버티질 못했거나 참가는 하지 않고 사진이나 찍는 둥 구조에 도움을 준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편, 민간 잠수사 측에서도 해경과 소통에 문제가 있어 상당수가 철수했다고 한다.#

사고 당일, 사고 사실을 신고한 학생이 24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그를 의사자로 지정할 것인지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 당시 구출된 6세 여아의 어머니가 사망자 중에 있음이 확인되었다.(#).

발견된 사망자 중에서 구명조끼를 서로 묶어 같이 발견된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두 시신을 발견한 잠수사는 일단 하나를 먼저 수습하려고 했는데 되지 않아 결국 동료들을 불러 둘을 같이 수습했다고 한다.인터뷰 내용

4월 21일부터 시작된 소조기의 마지막 날로, 오후부터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하기에 수색 작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해군은 24일 여명 이후 조명탄 900발을 동원한 총력전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은 이 소조기 동안 기대한 것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분노해서 정부 관계자와 몸싸움을 벌였고, 오후 5시부터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17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자세한 건 이쪽의 내용을 참고.

비상 상황이라 투입된 크랩스터가 세월호 진입은 실패했으나, 초음파 촬영에 성공해 세월호가 어떤 형태로 침몰한 상태인지 자료를 보내왔다.

논외이긴 하지만 모신문사의 사진기자가 사고당일부터 23일까지 1주일간 취재를 했는데, 본사로 복귀 후 돌연사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