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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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의 국장.[1]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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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공화국
Рэспубліка Беларусь
국기300px-Flag_of_Belarus.svg.png[2]
면적207,595㎢
인구9,570,376명(2016)
수도민스크
공용어벨라루스어(공용어), 러시아어(국가어)
민족구성벨라루스인 83.7%, 러시아인 8.3%, 폴란드인 3.1%
정치형태대통령제
대통령알략산드르 루카셴카
임기1994년 7월 20일 ~ 2001년 9월 9일
2001년 9월 9일 ~ 2006년 5월 19일
2006년 5월 19일 ~ 2010년 10월 19일
2010년 10월 19일 ~ 2015년 10월 11일
2015년 10월 11일 ~ 2020년 7월 20일 (예정)
통화벨라루스 루블
1인당 GDP7,413$, PPP 1,504억$(2013 IMF 기준)
국가우리는 벨라루스인 (벨라루스어 : Мы, беларусы)

동유럽에 위치한 내륙국. 수도는 민스크(Мінск). 한때는 백러시아, 벨로루시 등으로 불렸으나 벨라루스 정부의 요청에 의해 2008년부터 벨라루스로 한국어 공식 표기가 바뀌었다.

이는 하얗다는 뜻의 벨(Бел) + 민족명칭 루스(русь)의 합성어다. 예전에 쓰였던 백(白)러시아는 이를 직역한 것이다. 벨라루스인들은 이름답게 흰색을 민족색으로 여긴다. 백의민족? 독일어로는 이렇게 직역을 하여 Weißrussland라고 부른다. 참고로, 벨로루시백러시아 등으로 검색해도 모두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벨로루시야(Белоруссия)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이는 러시아어로 공식적으로 정한 표기법이라서 러시아어로 쓰인 공식 문서나 뉴스나 신문 등에서는 이 표기를 공식 표기로 사용한다. 다만 벨라루스에서는 러시아어로 말하거나 쓸 때에도 국명만큼은 벨라루스(Беларусь)라고 적는다. 나름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로 보이지만, 우크라이나의 전치사 논쟁만큼 심한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대부분의 벨라루스인들이 쓰는 언어부터가 러시아어다

2 역사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주인이 자주 바뀌던 땅이었다. 서방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 폴란드/리투아니아 중심의 친서방주의자들과 민족적, 종교적 유사성과 공통 조상을 강조하는 친러주의자들이 역사적으로 맞대어 왔으며, 히틀러스탈린 치하 20세기의 피바람나는 광풍이 불기 전에는 동슬라브인(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유대인, 독일인, 스웨덴인, 발트인들 같은 다양한 민족들이 공존하던 문화와 종교의 접경지였다는 점에서는 아랫동네 우크라이나와 통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경우 16~17세기 자포로제 카자크를 기원으로 두는 독자적 민족주의자들의 정치 세력화가 늦어도 19세기 말부터 비교적 일찍 부흥한 반면 벨라루스는 딱히 대중적인 반러 의식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소한 6세기부터 슬라브족의 영토였으며, 그 이전에는 서부지역에 발트어족에 속한 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여하튼 벨라루스 지역에 슬라브족이 들어선 이후에 소수의 부족국가들이 형성되어 나갔다가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키예프 공국의 영토가 되었다. 키예프 공국은 정치적으로 권력의 중심이 한 곳에 단단히 자리잡은 중앙 집권제 국가가 아니라 문화적, 종교적, 상업적 중심지였던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동슬라브계 언어와 문화[3], 정교회라는 종교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영주들과 자치 도시들의 연합체에 더 가까웠는데, 이 중에서 키예프 자체 다음으로 가장 번영하고 중요했던 도시들 중 하나였던 폴라츠크 공국을 흔히 역사학자들과 대중적으로는 최초의 벨라루스인들의 국체로 본다. 허나 유럽 내에서도 유난히 민족, 문화, 종교의 이동과 침략, 상호 영향과 교차 발전이 심했던 중~동부 유럽 전반이 그렇다시피 근대 이전에는 현대에서 통용되는 뚜렷한 민족적 구분과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만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동슬라브계 언어와 정교회라는 장기적 정체성을 가지고 현대 벨라루스 영토에 처음으로 뚜렷한 기록을 남긴 정치적 국체가 폴라츠크 공국이어서 이렇게 평가할 뿐이다. 키예프 공국이 몽골 제국에게 갈려나가고, 아직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이었던 리투아니아의 세력이 지속적으로 이 공백을 메꾸어 가면서 이곳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역이 되었다.

중/동부 유럽의 역사에서 서방 라틴 교회의 세계 속으로 편입된 폴란드가 가장 오랫동안 깊은 관계와 역사를 공유했던 정교회권의 이웃이 우크라이나였다면, 벨라루스는 역시 (상당히 뒤늦게 편입되었지만) 서방 교회의 동유럽 깊숙한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리투아니아와 비슷한 관계를 맺어왔다. 발트해를 넘어 십자군이란 이름 아래 지속적으로 현대 발트3국의 땅을 침략했던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 튜튼 기사단, 덴마크, 스웨덴의 공격을 피해 이교도 신앙을 간직했던 리투아니아인들은 13~14세기를 걸쳐 더 안정적이고 비옥한 땅을 찾아 키예프 루스가 사라진 동슬라브 정교회 공국들의 권역으로 남하했고, 이 와중에 많은 정교회 루스인들을 자국의 핵심 관료, 문화적 엘리트 계층으로 흡수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법적, 사무적 언어는 현대 리투아니아어가 아닌 벨라루스어의 모태가 되는 중세 루스어였고, 대공국의 경제적, 인구적 기반 또한 현대 리투아니아 땅인 발트해 인근보다는 민스크, 폴라츠크, 마힐료우, 흐로드나 일대의 대농지들이었다. 아무리 서로 같은 땅을 공유하며 서로 깊게 관계를 맺어도 종교적인 차이를 중심으로 도시민, 귀족층을 형성한 기득권층과 농민들이 다수였던 피지배 계급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던 폴란드인이나 우크라이나인들과는 달리 자국의 왕실 자체도 기독교로 개종한지 얼마 안 됐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경우 기존의 정교회 소속 귀족, 도시민들이라고 딱히 배제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현대 벨라루스 지방은 정교회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가톨릭 국가였던 리투아니아 대공국, 나아가 폴란드-리투아니아에 깊게 동화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통치 기관인 귀족 의회의 법률은 종교의 자유를 명시했고, 의회 내 무시 못할 영향력의 정교회나 신흥 개신교 귀족 세력 또한 존재했기 때문에 나머지 유럽이 종교 문재로 피비린내나게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벨라루스는 비교적 평화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종교를 포함한 국정 문제의 거의 대부분을 귀족들의 자유에 맡겨 놓은 폴란드-리투아니아식의 관용 정책은 반대로 대지주 귀족들 자신들이 원하면 다스리는 영지의 종교적 다양성을 억압하고 강요하는 것 또한 막을 수단이 없다는 양날의 칼이었다. 루블린 연맹 이후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폴란드 왕국 쪽으로 아예 떼주어 버린 키예프 중심의 우크라이나 일대는 중세 정교회의 중심지였다는 역사적 의식이 어딜 안 가고 예수회를 중심으로 기존의 정교회 귀족들을 개종시키거나 아예 소외시키려는 가톨릭계 귀족들의 문화, 종교적 침입에 반발, 흐멜니츠키 대봉기대홍수라는 엄청난 판을 벌리며 아예 연맹의 뿌리 자체를 흔들었고, 형식적으로 아직 리투아니아 대공국 관할이었던 벨라루스에서도 리투아니아 귀족들이 예수회 교육을 중심으로 폴란드어를 일상언어로 차용하고, 공격적인 바로크 가톨릭 신앙을 추구하면서 17세기 중반 부터 종교적, 민족적, 문화적 분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이후 18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 자체가 주변 열강들에게 분할되면서 이 지역은 러시아 제국에게 본격적으로 넘어갔고, 중세 키예프 공국의 후계자를 자처한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제들은 벨라루스 지방을 외세인 서방 가톨릭 세력에게서 재탈환해야 할 땅으로 인식하여 정교회 문화와 동슬라브 언어의 부흥을 부추겼으며,[4] 인구적으로 많은 러시아 본토인들을 이주시켰다. 러시아 혁명 이후 어부지리로 독립하였지만 1년만인 1919년에 붉은 군대가 들어오면서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정권이 바뀌었고 붉은 군대와 폴란드군이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분할되어 동부지방은 러시아에게, 서부지역 영토가 폴란드에 편입되었다. 이후 동벨라루스에서 성립된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1922년에 소련이 공식적으로 설립되면서 소련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그 이후에는 급속한 산업화와 농업집산화가 이루워졌지만 독소불가침 조약의 결과로 벌어진 폴란드 침공으로 폴란드 동부지역을 상당수 차지하면서 서벨라루스까지 합쳐서 영역이 넓어졌다.

그러나 1940년대 나치가 소련에 침공하면서 벨라루스 공화국이라는 나치의 괴뢰국이 설립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독일군이 벨라루스인과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들을 학살하여 무려 225만명 가량(당시 벨라루스 인구의 1/4)이 죽음을 당하고 전체 산업시설의 80%가량이 파괴된 슬픈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여하튼 다시 소련의 관할로 들어오면서 산업시절을 재건한 뒤로는 그런대로 발전된 지역이 되었다가 1986년 체르노빌 사건이 터지면서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1990년 벨라루스 자유선거에서 독립파는 전체의석의 10%를 차지하는데 그쳤지만 대세를 타면서 1991년에 소련이 해체의 길로 접어들며 독립하였다.

그러나 벨라루스 자체는 체르노빌 사건을 제외하면 언어적, 문화적으로 러시아의 한 지방으로 인식되어 반러감정이 옅었으며 소련의 붕괴가 매우 빠르고 극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졸지에 독립해버렸으나, 실제로는 마지막까지 독립 반대에 표를 던지기도 했다. 결국 1999년 러시아와 통합조약을 서명, 러시아-벨라루스 연합을 조직했지만 이는 이후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실상 무산되었다. 이후 좀 더 높은 단계의 연합체인 유라시아 연합에 참여하고 있다.

3 자연

벨라루스에는 많은 녹지대와 국립공원이 있으며, 특히 동유럽의 폐라고 불리는 유럽 최대 혼합 원시림 벨로베즈스카야 숲이 유명하다.

또한 체르노빌과 가까운 고멜주에는 2162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5] 폴레시아 국립 방사능-생태 보호구역이 있다. 이는 벨라루스에서 가장 큰 보호구역이다. 물론 이곳은 방사능 낙진이 떨어진 곳으로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는 구역이다. 이를 보호구역으로 부르는것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공식명칭이 그러하며 사람의 손길이 닫지 않다보니 각종 동물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국제 레드북에 등제된 멸종위기종도 18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3.1 체르노빌 사고

벨라루스는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나라다. 체르노빌의 위치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이며,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바람의 방향 때문에 낙진 대부분이 이 나라에 떨어졌다. 낙진의 80%가 여기에 떨어졌고 국토의 33%는 방사능에 노출되면서 대부분이 출입금지 지역이다. 벨라루스에서는 농작물의 원산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절대 원산지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농작물을 사면 안된다. 가령 호몔(Гомел) 주 같은 경우 타 지역의 것보다 20%이상 저렴한 야채나 과일 등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일본의 여행경보사이트에 의하면 벨라루스 동남부 지역만 여행주의(한국으로 치면 여행유의)로 지정되어 있으며, 벨라루스 남동부를 여행할 사람일 경우 개인에 의한 판매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식품의 구입 · 음식은 피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201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30주년을 맞아 검사해본 결과 고멜 주에서 아직도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방사성 스트론튬이 들어있는 우유가 생산되고 있는 목장이 있다는 기사가 났다. AP통신이 검사의뢰한 우유는 체르노빌 원전에서 45㎞, 거주 금지 구역에서 2㎞ 떨어저 있는 목장에서 생산된 우유로, 이 농장의 우유는 벨라루스 밀카비타(Милкавита) 공장에서 전량 치즈로 가공되어 러시아로 수출되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에 의하면 이 공장에서 나온 치즈의 96~97%가량은 러시아의 모스크바, 보로네슈,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수출되었다고 하며[6], 회사 관계자는 우리 소비자는 체르노빌 사고지역 근처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7]

물론 이에 대해 러시아 소비자보호권리감독청은 관련 기사를 통해 그런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

4 정치

KGB가 해체되거나 이름을 바꾸지 않고 활동 중인 유일한 국가다. 사실 트란스니스트리아도 있지만 미승인국이다.


현 대통령인 알략산드르 루카셴카(Аляксандр Лукашэнка)는 1994년 7월 20일 대통령에 집권한 이래로 22년 3개월째 정권을 이어가고 있다. 독재와 장기집권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다. 원래 이 사람은 소련 해체 이후에 독재자가 된 영웅으로 유명해지면서 1994년 6월 23일 & 7월 10일 대선에선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가 그러다가 1996년에 대선이 연장을 하자 2001년 9월 9일에 재선이 되더니 2004년 대선이 되더니 초대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폐지를 하고 2006년 5월 19일 대선과 2010년 10월 19일 대선과 2015년 10월 11일 대선에서도 다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으며, 2020년 7월 20일에 대통령에 물러날 예정에 있다.


후덕한 아저씨 같아 보이지만 절대 아니다

진짜다
구글에서 저걸 벨라루스 국장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못믿을 사람을 위한 갑갤 링크

유럽의 독재자 중 하나다. 그런데 푸틴은 헌법을 형식적이나마 지키기 위해 중간에 바지사장을 세우고 잠시 총리로 물러나면서 교묘하게 장기집권을 하고 있지만, 이 사람은 꼼수 그런 거 없이 대놓고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물론 벨라루스 사람들은 대부분 불만은 있지만 그놈이 그놈이라며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편인데, 이런 암묵적 지지는 경제성장 등의 업적도 있지만 KGB를 동원한 야당탄압과 심리전 등도 무시할수 없다. 사실 벨라루스에는 잦은 탄압으로 인해 반정부 운동가들의 점조직 형태로 겨우 명맥을 이어나갈 뿐 원내에는 야당이 없다시피 하다. 2015년 11월 중에 치뤄질 대선에서 4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큰 이변이 없지 않는 한 2020년 7월 20일까지(...)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이 대통령은 벨라루스 경찰과 공동수상으로 2013년 이그노벨상 평화상을 수상했다. 정부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박수치는 행위를 불법화한 뒤, 한 팔이 없는 남자를 해당 죄목으로 체포했단다(...). [8]이그노벨상 수상자 리스트 관련 기사

다만 독재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나면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금이 아닌 미래로서는... 당장은 루카셴코의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강력한 야권 운동이 보이지 않고, 유로마이단으로 본진 앞마당이 위험해졌다고 느끼는 푸틴 정권과 친러 세력의 시퍼런 경각심 때문에 체제가 크게 불안정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벨라루스에도 국내와 다른 유럽 국가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는 친서방 성향의 야권 저항 세력이 존재한다. 만약 벨라루스에서 유로마이단 같은 친러 세력과 친서방 세력의 격돌이 터진다면, 여태까지 벨라루스를 우크라이나보다도 훨씬 더 역사적, 정치적으로 믿을 수 있는 '동지'이자 불가분의 한몸으로 인식했던 러시아 크렘린 측에서는 지금의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제 2의 유로마이단 시나리오가 근미래에 벨라루스에서 터진다면 유럽의 정국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두운 노답의 안드로메다로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만약일 뿐, 대규모 혁명의 가능성은 매우 낮고, 벨라루스 국민들도 독재자를 싫어하지만 혁명보다는 혁신, 개혁을 더 원한다. 실제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독재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개혁 요구 등도 적지 않았다.

그 와중에 2016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20년만에 알략산드르 루카셴카을 지지하지 않은 2명의 야권후보가 당선되었다. #

4.1 친러-반서방

2009년 상하이 협력 기구의 협력 파트너 자격을 얻었고 2015년 7월 준회원국 또는 참관국(옵서버 국가)지위를 얻었다. 이 기구의 주축이 되는 러시아와 중국은 대표적인 반서방 국가, 즉 미국과 유럽 연합, 북대서양 조약기구 등과 대립관계인 국가이며, 벨라루스도 러시아의 벨라루스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친러시아로 서방과의 사이가 좋지 않고 반서방 성향을 띠는 편이다.

물론 벨라루스가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가 나쁜 데는 러시아, 중국 등과 사이가 좋아서이기 때문도 있지만 독재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인해 서방세계에서 이를 비판하고 제재조치를 취하다 보니 나빠진 측면이 있다. 아니, 독재정치로 인해 서방세계로부터 비판 및 제재조치를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 중국 등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

러시아와 사이가 나빴던 적도 있었는데, 러시아가 에너지 패권주의를 동원해 자기네들이 공급하는 천연가스의 가격을 2배올렸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벨라루스는 자국 영토 내에 있는 송유관을 통해 타국으로 공급되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통과세를 부과하려 했다. 이때 벨라루스가 자국을 거쳐 폴란드, 독일로 연결되는 송유관을 차단해 버리자, 러시아측도 벨라루스를 지나 독일로 수출되는 원유 수송을 중단시키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자 독일과 폴란드는 이를 비난하며 미국과 친미국가들의 석유로 대체했다. 지금도 러시아와의 갈등이 진행 중이다. #

최근에는 서방의 계속된 경제제재로 벨라루스의 경제가 나빠진터라 더는 적대할수가 없어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그래서 미국과 EU가 제재를 잠정해제하는 수순이라 서방과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 때 루카셴카 대통령이 민스크 회담 등에서 마냥 러시아편만 들지 않고 중재협상에 중심적인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낸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2016년 2월 27일부터 EU는 벨라루스에 대한 재제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재자인 루카셴코가 친러-반미노선을 포기하지 않다다보니 미국은 EU와 달리 벨라루스에 대한 경제제재를 그대로 유지한다. 이때문에 벨라루스는 경제 성장이 힘든 상황.

5 사회

5.1 인권탄압

벨라루스의 인권탄압은 세계에서 굉장히 악명높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체포를 서슴지 않는다. 독재자 루카셴코가 2010년 12월 치른 대선에서 80%에 달하는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는데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9] 벨라루스 안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벨라루스 정부는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야당 대선 후보를 비롯한 600명이나 체포됐다. 야권 대선 후보였던 안드레이 산니코프도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대선 당일 저녁 체포되어 국가보안위원회(KGB)에 수감되었다. 산니코프는 2011년 5월 재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석방됐다. 그러나 야당 정치인 15명은 여전히 정치범 신세로 감옥에 갇혀 있다.

특히 벨라루스는 사형이 법률에 명시된 국가이며, 2016년 현재 유럽에서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한국에서 강력범죄가 등장하면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죽여버리자는 주장이 자주 나오지만, 사형집행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거나 폐지된 것이 현실이다. 일본, 미국은 빼고 유럽연합의 가입조건 중 하나가 사형제 폐지이며, 여기서 사형이 법률에 명시되고 있고, 실제로 집행되고 있는 국가들이 어떤 나라들인지 잘 살펴보자. 때문에 유럽 국가들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법정 최고형이다. 유럽에서 일반 형법에 사형을 명시한 국가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2군데뿐이었지만, 러시아는 2010년 사형제를 폐지함으로서 유럽의 미승인국을 제외한 유일한 사형제 존치 국가다.과연 그럴까??

90년대 초중반에는 사형집행 건수가 두 자릿수에 이르렀으나 21세기 들어서는 한 자리 수로 감소하였다. 현재 사형을 집행하는 규모는 연간 2~3명 정도로 미국 등 사형을 활발하게 집행하는 국가보다는 훨씬 적은 편이긴 하지만 인구 자체가 1000만명 미만으로 적은 편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유럽에서 러시아, 영국과 더불어 심각한 인터넷 검열 국가로 분류되는 국가다. 참고로 한국은 바로 아래 등급에 해당된다(...).
벨라루스에서는 온라인 서비스, 이메일 교환 등 인터넷을 쓸 때 벨라루스 국내 네트워크를 이용해야 하며, 벨라루스 정보부에 등록되지 않은 (=벨라루스 정부가 허가하지 않은) 외국 사이트에는 접속할 수 없다. 실제로 벨라루스 경찰과 비밀경찰, 세무당국은 인터넷 감시에 혈안이 되어 있다.
2007년부터 인터넷 카페 주인들은 가게 손님들과 그들이 접속한 사이트를 기록으로 남겨 유사시 국가보안위원회 등 정보기관이 참고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2009년 2월부터 발효된 새 법에 따르면 국내 및 해외 사이트들은 반드시 벨라루스 정보부 (국가보안위원회와는 다른 정보통신 관련 부서)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차단된다.[10]
2012년 1월 6일부로 벨라루스 국민에게 서비스나 상품을 판매하는 포털 사이트는 무조건 .by 도메인을 써야하며, 사이트 사업자가 벨라루스 내에 소재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또한 인터넷 카페 등 인터넷 접속이나 무선인터넷(Wi-fi)을 제공하는 사업자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이용자를 등록해야 하며, 포르노 같은 정부에서 지정한 극단주의적 사이트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검열해야 한다.[11]

벨라루스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심하게 억압받고 있다. 당연히 방송과 신문은 거의 루카셴코의 입 노릇만 해야 한다. 이 나라의 언론 탄압을 잘 알려주는 사례가 나왔는데 2010년 부정선거 항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스웨덴 인권 운동가인 토마스 마제티와 한나 프레이가 소형 비행기를 이용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의 50m 상공에서 곰인형 879개를 떨어뜨렸는데 이를 국경침범죄로 체포했다. 이 사람들이 합법적인 관광비자로 왔는데도!
설령 그렇더라도 경범죄로 끝나야 할 죄를 7년형이나 되는 중형을 먹이려 해서 스웨덴 정부가 항의한 끝에 자국에서 조사 받으라며 추방으로 감형되었다.
게다가 루카셴코는 국경수비위원회 위원장과 공군사령관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했고, 이들이 살포한 곰인형이 낙하하는 사진을 개인 웹사이트에 올린 대학생 안톤 슈레핀도 체포해 7년형을 먹였다.

그 다음엔 심지어 스웨덴과의 단교를 선언하여 자국에 있던 스웨덴 대사관을 폐쇄하고 자국 거주하는 스웨덴 대사와 외교관, 민간인들을 전부 추방시켜버렸다.(...) 스웨덴 정부 역시 이를 크게 비난하며 벨라루스와의 단교를 선언하고 자국의 벨라루스 외교관들을 추방했다. 이 사건은 루카센코가의외교적 무능과 벨라루스의 인권탄압 실태를 제대로 보여주어 벨라루스 국가 이미지를 제대로 실추시켰다. 결국 벨라루스는 유럽에서 제대로 찍혀 가뜩이나 심하게 받고 있던 경제제재가 연장되고 새로운 경제재재를 받게되어 국민들이 고통받게 된다.

6 경제

월드 오브 탱크로 유명한 워게이밍넷이 벨라루스에 있다. 벨라루스/경제를 참고.

7 문화

7.1 언어

벨라루스어러시아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러시아어는 1995년에 벨라루스어와 함께 공용어로 포함되었다. 이 두 언어는 우크라이나어와 함께 동슬라브어군에 속하여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대충은 이해가 가능할 정도. 하지만 우크라이나어에 비해 벨라루스어는 러시아어와 거리가 좀 더 멀다. 우크라이나어, 폴란드어를 사용하는 사용자도 일부 존재한다. 민족어 이디시어를 유지하고 있는 유대인들도 있다.

문제는 벨라루스어는 러시아인은 물론이고 벨라루스인들 중에서도 벨라루스어를 쓰는 사람보다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이 더 많다. 물론 학교에서 벨라루스어를 필수 과목으로 배우지만, 일부 젊은이들은 벨라루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벨라루스어로 된 국가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정말 안습이다

물론 당연한 얘기겠지만 공적 언어로는 오직 벨라루스어만을 쓴다. 여행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것으로는 공문서(물론 비자/입국수속에는 벨라루스어와 영어를 병기한다.), 지하철,버스 따위의 안내방송, 도로의 표지판 등에는 오직 벨라루스어만을 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7.2 예술

화가 마르크 샤갈이 평생을 그리워해 작품들 속에 담았던 고향 비텝스크가 현재 이 나라에 위치해있다. 샤갈 생전에는 비텝스크가 러시아 영토였고, 샤갈 본인은 프랑스로 귀화하긴 했지만. 샤갈을 기리는 의미로 비텝스크에는 샤갈의 생가와 샤갈 아트센터가 있고 벨라루스 국립미술관에는 샤갈이 자신의 그림 스승인 예후다 펜(Yehuda Pen)을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2015년에 소련시절부터 르포집, 체르노빌 관련 증언소설 집필로 명성을 날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루카셴카의 독재에 대해 비판하여 망명생활을 했던 대표적인 반정부 인사이기에 루카셴카 입장에서는 굉장히 찝찝할듯. 옛 소련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비슷한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

7.3 종교

헌법에 종교와 교파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정교회만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교파(80-85%)이고 가톨릭루터교는 간신히 용납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에게서 합법적인 종교 단체로 미리 승인을 받지 않고 행해지는 어떠한 종교 활동도 금지되어 있다. 양심과 종교 조직의 자유에 관한 법률은 등록되지 않은 종교 활동을 형사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2년의 징역 또는 무거운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특별히 가톨릭과 개신교 교파들은 활동에 제한을 받으며 비밀 경찰에게 감시를 당한다는 말이 있다. 벨라루스 종교관련 법안에는 '한 지역 단위에서 성인 20명이 안되는 단체는 당국의 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되어 있어 개신교 등의 반발을 사고 있다.

7.4 스포츠

축구에 있어서는 아스날 FC에서 활약했던 알략산드르 흘렙으로 유명하다. 드록국과 더불어 흘렙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차이점은 드록국과 달리 여긴 진짜 흘렙밖에 없다. 참고로 흘렙의 동생인 뱌차슬라우 흘레프도 국대에서 뛰고 있다. 현 소속팀은 중국 슈퍼 리그의 선전 루비다. 얘도 형닮아서 국대에서나 클럽에서나 나름대로 잘한다. 하지만 유럽에선 국대 축구는 중하위권을 유지하는 수준. 그래도 A매치 친선경기에서 대한민국일본 국가대표팀을 한번씩 잡아본 경력이 있다.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벨라루스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종합격투기에서는 안드레이 알롭스키가 활약하고 있다.

테니스에서는 빅토리야 아자란카가 유명한데 US오픈 준우승에 올해 1월, 호주오픈 2연패를 달성한 여자 테니스계의 스타 중 한명이다.

탁구에서는 블라디미르 삼소노프가 유명하다. 유러피언 챔피언중 한명이며 보통은 은퇴했어야 하는 나이(1976년생)임에도 아직까지 국가대표로 활약중이다. 2016 독일 오픈 결승무대에서는 결승까지 무실점 세트로 차원이 다른 탁구를 보여준 세계1위 마롱에게 유일하게 1세트를 따내며 불혹을 뛰어넘는 천재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리듬체조, 발레, 피겨 스케이팅 등의 종목에도 전통적 강국이다.

8 상징물

국가 모양이 유럽 들소(Зубр еўрапейскі)와 닮았다 하여 사랑받고 있는 동물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상징동물은 아니다. 우리가 한반도가 호랑이 모양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유럽 들소는 1996년 국제자연보호연맹에 의해 지정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상태이다. 때문에 벨라루스는 국가적으로도 유럽 들소의 복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동유럽의 폐라고 불리는 유럽 최대 혼합 원시림 벨로베즈스카야 푸샤가 벨라루스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유럽 들소의 야생서식지이다.

8.1 국가


제목은 우리는 벨라루스인(Мы, беларусы) 이며 소련시절 국가에서 가사를 바꿔서 사용하고 있다.

원어한국어
1절
Мы, беларусы - мірныя людзі,우리는 벨라루스인, 평화로운 사람들
Сэрцам адданыя роднай зямлі,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고향으로 향하리.
Шчыра сябруем, сілы гартуем우리는 깊은 우정을 간직하고 우리의 힘을 얻으리.
Мы ў працавітай, вольнай сям'і.근면 속의 자유로운 가족이여.
후렴
Слаўся, зямлі нашай светлае імя,우리 조국의 빛나는 이름에 영광을,
Слаўся, народаў братэрскі саюз!우리 인민의 형제로운 화합에 영광을!
Наша любімая маці-Радзіма,우리가 사랑하는 모국,
Вечна жыві і квітней, Беларусь!그대는 영원히 번창하리, 벨라루스여!
2절
Разам з братамі мужна вякамі우리의 형제들과 함께, 수백년 동안 우리는
Мы баранілі родны парог,용감하게 우리의 보금자리의 경계를 지켰네
У бітвах за волю, бітвах за долю자유를 위한 전투들에서, 운명을 위한 전투들에서
Свой здабывалі сцяг перамог!우리는 승리의 깃발을 쟁취했네!
3절
Дружба народаў - сіла народаў -사람들의 우애는 그들의 힘이며
Наш запаветны, сонечны шлях.그것은 우리의 성스러운 빛나는 길이지.
Горда ж узвіся ў ясныя высі,맑고 푸른 하늘을 자랑스럽게 날아라,
Сцяг пераможны - радасці сцяг!승리의 깃발이여, 태양의 깃발이여!

9 여행 정보

한국과 무비자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유일한 유럽 국가이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또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거처 아시아로 육로여행을 하는 관광객들은 벨라루스를 경유하려면 비자 발급이 까다롭고 비싼 관계로 벨라루스를 경유하기보단 우크라이나를 경유하곤 한다. 아니면 핀란드를 경유하기도 한다. 한국과의 관계가 특별히 나빠서는 아니고 비자를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외국인에게 우호적이지 못하다. CIS 국가들이나 유럽권 국가들을 빼곤 모두 비자를 요구하는 편.

파일:Russia-train-map.jpg
대처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위의 지도를 참고할 것

  • 러시아에서 북유럽이나 발트3국 등을 통해서 가는 방법 - 스톡홀롬, 빌리누스(민스크-빌리누스 경로 제외)를 경유하는 하늘색과 검정색 경로
  • 우크라이나를 통해서 가는 방법 - 키예프를 경유하는 하늘색 경로
  • 기어코 벨라루스 비자를 받아내는 방법 - 파랑색 경로(주의 : 이 경우 벨라루스 비자 뿐 아니라 훨씬 비싼 러시아 비자도 받아야 한다. 러시아는 무비자로 방문이 가능하지만 벨라루스 국경을 통해서는 무비자 입국이 불가능하다. 무비자 입국할 경우 출국시 공항에서 제지를 받고 비행기를 못 타게 된다.)

첫번째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두번째가 괜찮은 선택지로 꼽힌다. 2014년에 우크라이나가 유로마이단으로 한동안 혼란을 겪었지만 현재 수도 키예프나 서부 우크라이나는 안정된 상태이다. 다만 동부는 조금은 혼란스러우므로 국경통과를 기차로 하기를 권한다. 자동차나 바이크 등의 수단으로 국경을 통과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 아래에는 기어코 벨라루스 비자를 받아내는 방법에 대해 서술한다.

여행자들이 받을 수 있는 비자는 다음과 같다.

  • B (통과비자) : 유효기간 2일
48시간 이내의 통과 목적일 때도 통과비자를 받아야 한다.
  • C (단기비자) : 유효기간 90일 이하
단순 관광의 경우 개인 방문, 관광 정도가 가능하다

초청자가 있는 경우 개인 방문의 경우 30일 이하일 경우 초청장 없이도 발급하지만, 초청자의 성, 이름, 부칭, 주소, 연락처를 정확하게 기재하고, 방문 목적을 기재해야 한다. 초청자에게 연락해 일일이 확인하므로 대충 적으면 안 된다.

관광의 경우 벨라루스 Bellntourist여행사의 초청장 사본을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10일 이하일 경우 호텔 예약 사실을 확인받기만 하면 된다. 즉 호텔을 미리 예약해야 하고, 예약 시에 요청하면 확인서류를 메일로 보내준다. 이를 첨부하면 된다. 이때 하루이틀만 호텔에서 묵고 나머지를 호스텔 등 싼 숙소에서 묵는다면 출국 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권하지 않는다. 후술할 외국인 거주등록 제도 때문에 그렇다.

벨라루스 입국 3일 이내(업무일 기준) 외국인 등록 전담기관에 거주지를 등록해야 한다. 호텔 투숙 시 호텔측에서 대행한다. 러시아도 같은 시스템이 있는 것으로 보아 소련 시대의 유물인 듯 하다.

  • D (장기비자) : 유효기간 1년 이하, 체류기간 90일 이하

장기비자는 사업 등의 목적이 있어야 하고 방문하는 업체의 초청장을 필요로 한다. 받아본 위키러가 있다면 추가바람. 1년간 체류일수 90일 이상은 취업이나 학업이 아니면 불가능.

비자 발급 소요기간은 보통 1주일이나, 급행료로 요금의 2배를 내면 2일 내에 발급한다. 비자 요금이 비싼 편인데 단기 비자의 경우 최소 7만 5천원, 장기 비자의 경우 최소 15만원 정도이다.

카자흐스탄[12]과 함께 독립국가연합에서 여행경보가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다만 러시아는 체첸 전쟁 이후 북카프카스 지방에 한정해 철수 권고를 지정하였지만 실제로는 체첸 역시 안정된 지 오래이고, 카프카스 3국들도 같은 이유로 여행유의 지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안정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유로마이단 이후 여행자제국가가 되었지만 수도 키예프나 서부 우크라이나는 안정된 지 오래이다.

중앙아시아의 경우도 일부 국경지역에 철수권고나 여행유의지역 있으며, 몰도바는 국경 지방인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여행경보가 올라가 있다. 이는 1992년에 있었던 몰도바-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뒤로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사실상 독립하면서 치안공백을 비롯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벨라루스 동남부에 여행경보 1단계를 지정하였다. 치안불안의 원인은 아니고, 고멜주를 비롯한 동남부에 방사능 오염구역이 있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사태의 낙진이 가장 많이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벨라루스 전체에 여행경보를 지정하지 않았지만, 일본은 자국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방사능 오염에 예민해진 탓인 듯 하다.

러시아-벨라루스 국경을 넘을 때에는 출입국 심사가 없으므로 여권에 반드시 비자가 붙여져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심검문 시 벨라루스 경찰에 의해 추방당할 수도 있다.기사

9.1 항공편

직항노선이 없으므로 예전에는 주로 모스크바 경유편을 이용했으나 현재 대사관에서 이 경로를 이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실 말이 권고이지 별 탈없이 여행을 마치려면 이 노선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출입국 수속과 관련된 문제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러시아는 한국과 무비자 협정을 맺었지만, 경유해서 벨라루스로 가는 경우에는 통과비자를 받아야 하고, 벨라루스 국경에서 러시아에서 출국했다는 기록이 없어 문제가 된다. 러시아에서 벨라루스로 가는건 국내선 취급을 하기 때문에, 국내선에는 출입국 심사도 없고 출국도장도 못 받기 때문이다. 멋도 모르고 출입국 심사대로 갔다가 다시 쫓겨났다는 경험담도 있다.여행자님께서 주신 소중한 경험담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러시아를 통해 벨라루스에 입국하다가 문제가 발생되는 일이 발생되자 대한민국 대사관은 주의를 당부했다.#

러시아를 통해 벨라루스로 입국할 때 뿐만 아니라, 벨라루스를 통해 러시아에 입국하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벨라루스를 통해 러시아에 입국한 경우 러시아에서 출국할 때 입국도장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국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러시아 통과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한국에서는 받을 수 없고 벨라루스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가야 된다. 물론 거기서 문제없이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즉, 여러모로 선택하지 않을 것을 강권한다. 사실 요금도 타 경로와 비슷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이미 이 항공편을 구입하였다면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베이징, 프랑크푸르트, 프라하, 비엔나, 이스탄불 등에서 무비자 경유가 가능하다. 일부 코스는 경유지에서 하루 숙박이 필요하므로 잘 따저볼 것.

2015년 10월 25일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항공 운항이 중단되면서 민스크에서 환승하는 승객이 늘어났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승객은 기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별 상관 없는 듯.
  1. 1995년에 지정된 국장이고 1991년-1995년까지 쓰였던 국장은 하얀 기사가 새겨진 붉은 방패 모양의 문장이었다.#
  2. 참고로 독립한 직후 초기에는 하양-빨강-하양의 삼색기를 쓰다가 1995년 소련 시절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에서 낫과 망치만 뗀 지금의 국기로 바꾸었다. 국기 모양이 마다가스카르와 비슷하기도 하다.
  3. 영어권을 비롯한 서방 학계에서는 현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로 분화되기 이전의 정교회권 동슬라브계 민족 전반을 루스를 라틴어화한 루테니아(Ruthenia)인들이라고 지칭한다. 동슬라브계 민족들의 자세한 역사적 기원과 분화는 루스 항목에 설명되어 있다.
  4. 사실 이때만 해도 벨라루스어는 러시아어의 지역 방언으로 인식되었지 독립적인 언어란 의견이 형성된 건 일러도 20세기의 일이다.
  5. 제주도 면적과 비슷하다.
  6. 공장의 홈페이지를 보면 유통망이 나오는데, 회사에서 직접 판매하는 고멜주의 키오스크(가판대)들과 식당들을 빼면 모든 유통망을 러시아에 갖고 있다.
  7. 이는 아마도 벨라루스 사람들은 고멜 주에서 생산된 식료품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으나, 러시아 소비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보인다. 확실히 명확한 근거 없이 편견 수준으로 특정 지역을 취급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이곳이 이런 이야기를 할만한 상황인지는...
  8. 벨라루스의 반정부 운동가들은 박수치기, 아이스크림 먹기, 풍선 날리기등의 재미있는 방법으로 저항중이다.
  9. 루카셴코 성격상 부정선거일 확률이 100%다.
  10. 참고 (프리덤 하우스, 2010년 언론의 자유 보고서)
  11. 관련기사
  12. 다만 2016년에 일부 지역에 여행유의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