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중해에 있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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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시카 섬 지도. 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남쪽 해협(보니파시오 해협) 건너 사르데냐 섬이 있다.[1]
코르시카어: Corsica
프랑스어: Corse
지중해에서는 4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8,681㎢, 인구는 약 322,100명(2013)이다. 현재는 프랑스령이지만 이전부터 동로마 제국, 롬바르드인, 로마 교황청, 제노바, 심지어 영국까지 이 섬을 영토로 삼은 바 있는 이른바 파란의 땅.
지리적으로는 프랑스보다 이탈리아에 더 가까워 이탈리아 쪽의 영향을 더 받았다. 산악지대가 많고 척박한 편이라 이 동네사람들은 예로부터 유럽 본토에서는 가난한 촌뜨기 취급을 당했다. 지금도 농업과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더 거리가 멀리 떨어진 사르데냐 섬이 이탈리아령인데 반해 코르시카 섬은 프랑스령이다.
사실, 1767년까지 제노바의 영토였다가 지속적인 반란 때문에 학을 떼고 프랑스에 팔아버린 게 코르시카 섬이 프랑스령이 된 이유이다. 단순한 반란도 아니고 아예 코르시카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건설하려 하였다. 당연하게도 프랑스 지배하에서도 반란이 빈발하였고,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도 많았다.[2] 하지만 얼마 안 가 아주 성공적인 영토 중에 하나가 되었으며, 얼마 안되는 기간 동안에 프랑스에 완벽하게 귀속되었다.
그 원인은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고, 프랑스에서 인기 높은 사람의 고향이며, 지리적으로 가깝기도하고, 코르시카 섬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자기네 출신이 프랑스의 황제까지 되었으니 프랑스에 동화되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급속도로 프랑스에 귀속되어 버렸다.우리가 남이가 하지만 이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서 2002년 12월 7일에는 코르시카 민족당이라는 정당이 있으며 코르시카 민족해방전선(Fronte di Liberazione Naziunale di a Corsica)이라는 무장단체까지 존재한다. 그런데 주력 화기중에 프랑스제 소총 FAMAS를 쓴다는 것이 함정[3][4]
그리고 이 지방 마피아는 특유의 단결력과 끈질김으로 악명이 높다. '유니온 코르스'라고 불리며, 2차 대전 때는 나치에 대항해 드골파와 손잡고 싸웠기 때문에 드골 정권 하에서 정치깡패 역할을 하며 비호를 받아 세력이 커졌다.
원래 이탈리아어를 썼던 제노바의 영토였기 때문에 이름은 프랑스식이지만, 성은 주민 대부분이 이탈리아식 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의 사촌[5]인 필리프 앙투안 도르나노(Philippe Antoine d'Ornano)는 코르시카의 아작시오 출신이며 곧 나폴레옹과 고향이 같다. 그의 이름을 보면 주석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아버지가 오르나노(Ornano)라는 이탈리아식 성을 가져서 이탈리아 사람이고, 이름도 마찬가지로 영어 루이스 앤소니(Louis Anthony)의 이탈리아식 변형인 로도비코 안토니오(Lodovico Antonio)이어서 완전한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그의 아들 필리포 안토니오 오르나노(Filippo Antonio Ornano, 도르나노의 원래 이름인 이탈리아식 이름이다)가 자라면서 코르시카가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고 결국 이름을 프랑스식인 필리프 앙투안으로 바꾸게 된다. 그러나 성은 단지 오르나노Ornano에 영어의 전치사 'of'에 해당하는 'd'(de)를 붙여 귀족풍을 띠는 성 '도르나노(d'Ornano)'로, 성은 유지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외에도 같은 코르시카 출신이자 나폴레옹의 충직한 수하 장군이었던 오라이스 프랑수아 바스티앵 세바스티아니 드 라 포르타(Horace Francois Bastien Sebastiani[6] de La Porta)의 이름은 원래 이탈리아식 이름인 오라치오 프란체스코 바스티아노(Orazio Francesco Bastiano)이었고 성도 이탈리아식인 세바스티아니였다. 그러나 코르시카가 프랑스 영토가 되고 오라치오가 프랑스 군대에 입대함으로써 그도 그의 이탈리아식 이름은 프랑스식으로 고치고 성은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렇게 당시 코르시카의 주민들은 이름은 프랑스식으로 고친 채 성은 그대로 유지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들인 현재 코르시카에 살고 있는 토착민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식 성을 가지는 것이다.물론 예외도 꽤 있다 프랑스 성을 가진 채 프랑스 본토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나 아예 쌩까고 이탈리아 이름으로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해적을 뜻하는 단어 corsair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 섬의 스포츠 클럽으로는 축구 클럽들인 SC 바스티아(바스티아 연고), AC 아작시오, 가젤렉 아작시오(아작시오 연고) 등이 있다.
남쪽에 사르데냐 섬이 있다. 원래 동일문화권이었고, 지금도 좁은 해협 건너에 있어서 교류가 많은 편이다. 다만 두 섬 사이의 해협은 항해가 어려울 정도로 암초가 많다.
2 프린세스(만화)에 등장하는 가상국가
프린세스 내에 존재하는 소국으로 스가르드와 아나토리아에게 매일 털리는 라미라보다 더한 가난한 약소국.
라미라 왕 표르도바 2세에게 자국의 왕녀 파라 표르도바가 시집가 비욘 카칸 표르도바를 낳음으로 비욘의 딸 프레이야 표르도바에게 얼마 안되는 혈연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현 코르시카 왕은 파라 왕비의 아버지! 프린세스 내 최고령자의 반열에 들어가지 싶다.[7]
라미라가 아나토리아의 침공을 받을 시에도 워낙 힘이 없는 터라 변변한 지원도 못해줬으나 에스힐드 바르데르가 왕비와 공주의 생존을 알리자 비욘에게 전달하는 등 은밀하게 라미라 표르도바 왕실을 지원하고 있다.
비욘 카칸 표르도바와 비앙카스타 로디트가 죽고 행방불명 됐던 프리의 생존이 확인된 것을 계기로 이젠 보다 적극적으로 프리 일행을 지원하려고 마음먹는다. 코르시카 왕은 그동안 라미라의 몰락 때 비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아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모양. 이젠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그들을 지원하겠다 한다.자기 딸 병아리 눈물만큼도 생각 안하고 내연녀 사랑 지켜주고 싶다고 독백한 외손자가 뭐가 이쁠까..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자(...)
아들(파라 왕비의 남동생)에게도 말하기를 만약 왕 자신이 라미라 몰락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스가르드나 아나토리아에 탄로가 나면 자신을 미친 늙은이 취급하여 화형대에 세우고 왕위에 오르는 것을 주저해선 안된다고 했다.
1번 항목이 모티브가 된 듯하며 라미라와 비슷한 복식을 하고 있다. 언어 역시 소소한 억양만 차이날뿐 동일하다.- ↑ 위쪽 사진 5시 방향에 조금 툭 튀어나온 바위 같은 부분이 사르데냐섬의 북부이다. 다만, 주위 섬들과 착각할 수 있으니 혹시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사르데냐 섬의 지도도 한번 같이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 ↑ 이 독립 세력에 속해 있던 인물 중 하나가 샤를 보나파르트로 나폴레옹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다. 코르시카 독립투사였던 파울리의 부관 자격으로 독립투쟁을 하며 프랑스군을 상대로 보르고에서 승리를 하기도 하지만 프랑스 본국에서 파견된 지원군에게 격파당했다. 다행히 프랑스인들이 독립투쟁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 무사히 나폴레옹이 태어날 수 있었다. 패배를 겪고 나서 독립 투쟁에 대해 희망이 없다는 걸 알아버린건지 코르시카 총독이였던 마르뵈프에게 바로 붙어버렸는데, 마르뵈프도 코르시카의 주요 귀족이었던 보나파르트 가문이 자신을 위해 일해준다는 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둘의 우호적 관계는 향후 나폴레옹의 군사학교 진학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 ↑ 실제로 독립군 중에서 자체 무기 생산력을 가지지 않는 이상 지배국의 무기를 쓰는 경우가 흔하게 있다.
- ↑ 여담으로 코르시카가 독립한다고 해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기 스스로 프랑스 국적을 가졌으므로 여전히 프랑스 국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 ↑ 나폴레옹의 할아버지 주세페 부오나파르테(Giuseppe Buonaparte)의 동생의 딸 이사벨라 부오나파르테(Isabella Buonaparte)가 도르나노의 아버지인 로도비코 안토니오 오르나노(Lodovico Antonio Ornano)와 결혼해 낳은 자식이 도르나노이다. 곧 나폴레옹의 당고모(堂姑母)가 도르나노의 어머니인 셈이다. 덧붙여서 도르나노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주세페의 동생의 이름은 나폴레옹의 원래 이름인 나폴레오네(이름이 Napoleone Buonaparte)와 같아서 나폴레옹과 그의 작은 할아버지는 동명이인이 된다. 필리프는 아들 한 명을 두었는데 그의 이름은 로돌프(Rodolphe)였고, 그는 여러 명의 자식을 두어 지금 그의 후손들이 프랑스에 많이 살고 있다. 그 후손들 중 한 사람인 기욤 도르나노(Guillaume d'Ornano)씨는 프랑스의 유명한 미용 회사 랑콤(Lancome)을 세우는 데 기여하였고, 그의 아들인 위베르 도르나노(Hubert d'Ornano)씨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미용용품, 화장품 등을 개발 및 생산하는 시슬리(Sisley)라는 회사를 세웠는데,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 돈을 꽤 잘 번다고 한다. 식물에서 채취한 천연 물질로 친환경적 화장품을 만드는 다량의 기술을 보유 중인 회사. 랑콤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명품으로 인식되며,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화장품 뿐만 아니라 핸드백 등 각종 패션 용품도 제조하여 판매한다. 최근 이 위베르 도르나노씨가 89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 ↑ 보통 이탈리아의 성 중 '이탈리아식 이름의 뒤에 '-i'가 붙은 형태'는 해당 이탈리아식 이름을 가진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이 세바스티아니라는 사람은 이 성을 가지게 된 최초의 조상의 아버지의 이름이 바로 세바스티아노(Sebastiano)라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이탈리아 이름 거의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안토니오(Antonio)의 아들의 후손들은 '안토니(Antoni)', '안토니니(Antonini)'라는 성을 쓰는 것이고, 파올로(Paolo)의 아들의 후손들은 '파올리(Paoli)'라는 성을, 레오나르도(Leonardo)의 아들의 후손들은 '레오나르디(Leonardi)'라는 성을 쓰는 것이다.
- ↑ 전체적으로는 마메르 아르고 3세 국왕과 같은 입장이었지만 성격이 능구렁이와도 같은 흑심을 가진 마메르 왕과는 달리 순박하고 선량한 성격이 짙은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