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네루즈

1 개요

일본 개그의 역사를 새로 쓴 남자들
칸토(관동) 게닌들의 상징적 존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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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시바시 타카아키, 키나시 노리타케)

とんねるず. 콤비명의 유래는 터널즈(Tunnels)의 일본식 발음인 トンネルズ.

2 상세

결성 초기에는 각자의 이름을 줄인 타카 & 노리 등으로 활동 하고 있었지만, 프로 데뷔 초 니혼TV (日本テレビ)의 프로듀서 였던 이하라 다카타다(井原高忠)의 제안으로 지금의 콤비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하라는 멤버 둘의 영문 이니셜 T와 N이 들어가는 콤비명 두 가지를 생각해 놓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톤마 와 노로마 (とんまとのろま 멍청이와 바보정도의 의미), 나머지가 지금의 톤네루즈 였다고 한다. 장기간 차세대 스타로써 인기를 끌라는 의미와 둘을 처음 만났을때 '조금 어두운 녀석들이구나'라고 느꼇던 이미지를 담아 톤네루즈라는 콤비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시바시와 키나시 멤버 양쪽 모두 도쿄 토박이로 도쿄의 명문 고등학교인 테이쿄 고등학교 (帝京高等学校)에 재학 중이었다. 재학 당시 이시바시는 야구부, 키나시는 축구부에서 클럽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2] 양쪽 다 자신의 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위기 메이커로 유명했다고 한다. (주로 선배나 선생님의 흉내나 성대모사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같은 반은 아니였지만 당시 테이쿄 고교의 야구부와 축구부가 운동장을 공유하는 탓에 교류가 빈번했기에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이시바시의 경우 고교생 신분으로 아마추어 개그맨 대회에 빈번하게 출전하고 있었고 키나시도 와다 아키코(和田アキ子)의 성대모사 등으로 틈틈히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하는 등 개그맨을 꿈꾸긴 했지만 둘이 같이 콤비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테이쿄 고교 졸업 후 이시바시는 호텔 센츄리 하야트에 취직, 호텔리어가 되었고 키나시는 대기업 다이하츠 공업에 입사해 셀러리맨이 되었다. 사회인이 된지 몇 달 되지 않았을때 이시바시는 <개그 스타 탄생>에 참가하고자 평소 가장 재미있던 동창생이라고 생각했던 키나시에게 콤비 결성을 제의했고 키나시가 동의하여 톤네루즈가 결성되었다. 상기 언급했던 것처럼 <개그 스타 탄생> 참가 시절에는 '타카 & 노리'의 콤비명으로 활동했는데 주로 안토니오 이노키의 성대모사,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당시 인기 아이돌의 흉내 등 전형적인 일발 개그나 일본식 만담을 선보였다. 이것이 좋은 반응을 얻자 프로 개그맨이 될 것을 결심한 둘은 각기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1980년 정식으로 콤비를 결성, 프로 개그맨이 되었다.[3]

톤네루즈는 프로 데뷔 후 2년만인 1982년 <개그 스타 탄생>이라는 개그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일본 코미디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당시 다른 심사위원들은 이들의 개그에 악평을 했지만 아카츠카 후지오타모리가 이들을 적극 지지하여 그랑프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타모리를 '동경'하고 있었던 톤네루즈는 이 때부터는 아예 타모리를 '숭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톤네루즈는 1980년대 중반 '올 나잇 후지 ', ' 유야케 냥냥' 등의 방송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이다가 1988년부터 후지TV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입니다'가 사회 현상에 가까운 인기를 얻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전성기 시절에는 갑자기 세트에 매달리거나 카메라맨을 밀치는 등 막가파식 개그 스타일과 오냥코클럽 등의 여자 아이돌에게 성희롱 수준인 시모네타로 인기를 끌었다.[4] 또한 이들은 만담 개그에서만 통용되던 콤비 형식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도입하고 일본 예능 방송 역사상 최초로 스테프들을 방송에 직접 노출시키는가 하면, 개그맨으로서는 최초로 개인 코디네이터를 고용하고 예능 외에 가수 활동, 광고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여 광대처럼 인식되던 일본 내 개그맨의 이미지를 멋있는, 동경하는 연예인으로 바꾸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5] 특히 톤네루즈로서 홍백가합전에도 출장한 것은 물론, 멤버인 키나시 노리타케는 엔카가수와 협업하여 오리콘 엔카 차트에서 1위하는 등 성공적인 가수 활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톤네루즈는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친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파트너와 사이가 좋으면 못 웃긴다' 라는 불문율을 깨뜨렸다.[6]

톤네루즈는 전성기 시절, 요시모토 흥업 출신의 게닌들과 묘한 라이벌 구도를 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는 일본 특유의 동서 지역간 대립구도를 시사하기도 한다..# 실제로 톤네루즈 데뷔 초기, 당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요시모토 출신들이 톤네루즈를 의식하는 통에 서로 방송국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긴장감이 감돌았고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입니다로 대표되는 톤네루즈의 전성기 시절에는 톤네루즈 측에서 요시모토 소속의 게닌들과 같이 방송하는 것을 거부하여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톤네루즈와 오와라이 2세대는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의견이 정설로 통했을 정도였다고.

이런 대립관계는 80년대 말, 프라이데이 습격 사건 후 복귀한 비트 타케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슈퍼 자키>에 요시모토 출신의 게닌들이 게스트로 출연한 회차에서 톤네루즈가 깜짝 게스트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옅어지다가 1995년부터 방영을 시작한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이었습니다부터는 요시모토 흥업 소속의 게닌들이 레귤러로 빈번하게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두 세력간의 대립은 없다는 걸 시사했다. 와랏테 이이토모! 마지막 회에서 톤네루즈의 최대 라이벌이라고 꼽히던 다운타운과 톤네루즈가 같이 나오면서 확인 사살. 그리고 깨알같은 마츠모토의 "이런 구도면 인터넷 폭발하는거 아님?!" 보케와 하마다의 츳코미는 덤. 톤네루즈의 저서에서는 사실 예전부터 요시모토 출신들과 친했고 특히 비트 타케시는 원조 멀티 엔터테이너 선배로서 존경한다고 기재되어있다. 비트 타케시 또한 <개그 스타 탄생>에 출연한 톤네루즈를 일찍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고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톤네루즈에게 "도쿄 연예인, 힘내라!"고 격려한 바있다.[7] 이후 오기야하기의 야하기 켄이 술자리에서 톤네루즈에게 정말로 요시모토 계열과 안친하냐는 질문에 여론이 그렇게 몰아간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 톤네루즈는 소속사 オフィスAtoZ에서 나와서 '어라이벌' 사무소를 차렸다. 따라서 수익의 100%를 자기들이 먹기 때문에 비록 현재 활동은 적어도 버는 돈은 꽤 많다. [8] 사실 이 사람들은 전성기 시절 쌓아둔 재산이 워낙 많고 놀기 심심해서 일하는 부류여서 별 상관은 없다. 또한 요시모토 소속의 게닌들은 '짜여진 개그'를 추종하는지라 많이 보다 보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되는데, 톤네루즈는 소속사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자유분방한 방송이 가능한 것도 장점 중 하나. 또한 멤버의 일본어 발음이 명확한 편이라서 톤네루즈의 방송은 일본어 학습자들에게도 추천받는 편이다.

3 멤버

3.1 이시바시 타카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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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시바시 타카아키(石橋貴明)
생년월일: 1961년 10월 22일생
출생지 : 도쿄 이타바시 구(板橋区)
신장 : 182cm
데뷔년도 : 1980년
대표 프로그램 : 우타방,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입니다
혼인 여부 : 기혼(배우자 : 스즈키 호나미)[9]
자녀 : 3녀[10]
링크 : 톤네루즈 공식 사이트

톤네루즈하면 떠오르는 '폭주'를 이끄는 사람. 과거의 여러 사건사고들을 보면 완전히 폭주기관차다(...) 결혼하고 딸 3명을 키우면서 성격이 굉장히 부드러워졌다. 전성기 시절의 팬들이 아쉬워할 정도로. 일본 국외의 미디어물이라면 메이저 리그(영화) 2편에 출연한 바 있다. 해당 항목의 포스터 맨 오른쪽 아래에 이 사람을 찾아볼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과격하고 다혈질이었던 사람으로, 주로 여성 아이돌(대표적으로 오냥코클럽)이나 탤런트에게 높은 수위의 시모네타와 인신공격(못생겼다고 윽박지르는 일이 많았다.)을 던지는 역할이었다. 시모네타를 던져 여성 출연자의 반응(부끄러워한다던가, 당황한다던가)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출연자의 매력을 알리는 방식. 이게 신인 배우 알리기에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해서, 한창 인기가 있던 시절에는 "가수는 뮤직 스테이션, 배우는 톤네루즈에게"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였다.[11] 다만 여자 연예인들에게 성희롱 수준으로 추근대는 컨셉 떄문에 해당 연예인들의 팬들은 톤네루즈가 나오면 분노하기도 했다.

우타방에서는 SMAP나카이 마사히로와 함께 방송을 오랫동안 했었다. 우타방은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음악방송' 이었지만, 음악방송보다도 중간에 이 둘의 MC와 토크가 주된 방송 이었다. 탑게닌과 탑아이돌이 MC로 있었던 이 방송은 상당한 히트를 치게된다.

초창기 나카이는 이시바시에 비하면 사회경험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초반에 이시바시가 이끌어주었으나, 이 후 나카이의 MC로써의 재능이 개화하기 시작한 나카이와 함께 정말 재밌는 방송을 만들었다. 전성기 동안 우타방은 게닌과 아이돌이 콜라보한 방송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성공한 방송이 되었다.

그 우타방에서 이시바시의 캐릭터 잡아주기로 모닝구무스메가 대히트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개그기믹의 여자아이돌, 야스다 케이를 만든것은 이시바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재밌는것은 우타방은 점점 몰락해서 방송이 폐지되는 수순에 이르렀는데, 이 몰락할 때가 딱 AKB48가 뜨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서 이 방송에 AKB48는 한 번도 나오지 못했다. (2005년 스타트한 AKB였으나 초반 4년간 비인기 아이돌이었다. 당연히 골든타임 우타방에 그녀들이 나올 수는 없었다.)

야구 매니아이다. 매년 연말에 방송되는 테레비 아사히의 예능프로그램 「夢対決201Xとんねるずのスポーツ王は俺だ!!5時間スペシャル」에 매년 출연한다. 방송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5시간짜리 방송이며 각종 스포츠 대결을 하긴 하는데 제대로 하는게 아니라 개그같은 게임으로 변형시켜서 대결한다. 2016년 야구에서는 프리미어 12에 출전한 선수들과 예능인들이 각각 팀을 이뤄 야구 비슷한 게임을 하는 기획[12]을 하였는데, 이시바시가 대활약 하였다.

자신의 타법은 이대호 선수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드립을 날리자, 나카타 쇼 왈, "아 싫은 이름이 등장했다"라고 쓴웃음. 원래 싫어하는 것인지, 라이벌 팀의 주포라서 싫은 건지, 아니면 프리미어에서 당해서 그런건지는 불명. 나카타의 드립을 들은 야쿠르트의 야마다 테츠토 역시 쓴웃음.

이 방송에서 뒤지고 있던 선수 팀이[13] 게닌팀에게 웃으면서 "괜찮습니다 우리는 프리미어에서 대역전극을 해보았기 때문에.."라고 하자 이시바시가 눈을 부라리면서 "대역전극을 해봤다고? 대역전극을 당한거지 임마!"라고 하는 장면이 해당 방송의 백미. 한국인은 그냥 깔깔 웃습니다

이시바시는 이날 이 방송 역사상 100안타를 기록(...)하여 이치로가 미일통산 3000안타 기록했을 때를 모노마네(성대모사)한 100안타 기념식까지 열었다. 드립에 기록까지 빵빵터진 날.

3.2 키나시 노리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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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키나시 노리타케(木梨憲武)
생년월일: 1962년 3월 9일생
출생지 : 도쿄도 세타가야 구(世田谷区)
신장 : 178cm
데뷔년도 : 1980년
대표 프로그램 :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입니다
혼인 여부 : 기혼(배우자 : 야스다 나루미[14])
링크 : 톤네루즈 공식 사이트

트레이드 마크인 빵모자에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까지, 여러모로 이시바시보다 훨씬 부드럽고 젠틀한 이미지여서, 10대부터 70대 어르신들까지 호감도가 높은 인물이다. 현재는 편안한 아저씨같은 느낌의 호감형 이미지 덕에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에 많이 출연하는 편.

콤비 내에서는 눈치없거나 답답한 행동을 해서 이시바시의 폭주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맡는다. 보통 콤비는 보케가 폭주하기 시작하면 츳코미가 적절하게 제동을 거는데, 상술했다시피 톤네루즈는 둘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시바시가 화를 내면 동시에 화를 내면서 나란히 폭주한다(...)

데뷔 초기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걸로 유명했는데 1994년에 TV방송의 기획코너로 프랑스 세느강변에서 매직펜 하나로 세느강 그리기에 도전한 것을 계기로 창작의욕에 불이 붙으면서 본격적으로 화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일본내에서도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2015년에는 뉴욕에서까지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여담으로 마블 슈퍼 히어로즈 VS 스트리트 파이터의 내수용 기판 전용 캐릭터인 노리마로의 모델이다. 노리마로의 기묘한 동작들은 실제로 하나하나 직접 촬영한 후에 그래픽으로 옮긴 것으로 전부 키나시가 즉석에서 생각해난 동작들이라고 한다.
  1. 톤네루즈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관동(쉽게 말해 도쿄) 게닌들의 대선배격인 위치로 이시바시의 한국 로케에서는 다른 게닌들이 그를 상당히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실질적으로 칸토 오와라이의 대사조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이쇼~쇼와 히토케타 태생(1912(大正元年)~1934(昭和9年) 시기 출생자)의 인물들이 모여서 만든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이다. 쇼와 30년에 결성하여 흑백 TV시절부터 활동해오던 이분들은 현재 이누즈카 히로시씨를 제외하면 모두 고인이다. 그리고 그 스타일을 이어받아서 토쿄발 버라이어티 방송의 황금기를 주도해 국민 코미디언이 된 게 더 드리프터즈이지만 이분들도 한 분이 고인에 시무라 켄을 제외하면 은퇴해서 현역이 아니니까 현역 중에서는 대선배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 대표방송인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이었습니다의 주요 레귤러들만 봐도 아리요시 히로이키, 바나나맨, 오기야하기등 그들의 방송에서 주로 레귤러로 활약하는 게닌들은 칸토게닌들이 많다.
  2. 테이쿄 고교는 스포츠 명문 학교로도 유명해서 테이쿄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 축구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3. 프로 개그맨으로의 전향에 대해 의견을 나눌때 당시 이사비시가 키나시와 찻집에서 만나서 심각한 표정으로 '키나시군, 나 프로가 되고 싶은데 같이 할 생각 없어? 어때?' 라고 물었는데 키나시가 곧바로 무뚝뚝하게 "좋아"라고 한마디로 승락 했다고 한다.
  4. 나이를 먹은 지금은 유순해진 편. 다만 후배 게닌들을 괴롭히는 캐릭터는 여전하다.
  5. 이시바시는 182, 키나시는 178의 평균 일본남성의 신장보다 장신인지라, 다른 남자 연예인들과 함께 있으면 상당한 거구로 보이는 특징도 있다. 이 때문에 몇몇 남자 배우들은 톤네루즈와 서서하는 방송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6. 일본에서는 '파트너와 사이가 좋으면 못웃긴다' 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게닌들이 방송에서 사이 나쁜 모습을 보여주거나 서로를 험담하는 개그가 상당히 많다. (베테랑이 될수록 파트너와 함께 다니는 일도 없어질 정도.) 특히 다운타운, 웃짱닌짱 등의 요시모토, 칸사이 계열이 그런 경향이 크다.
  7. 도쿄 출신이지만 관서 출신의 요시모토 소속 게닌들과 함께 일하며 스타덤에 이른 비트 타케시가 보낸 이러한 응원 매세지는 당시 오와라이 업계를 장악한 관서 출신의 게닌들에게 "톤네루즈같은 도쿄 연예인의 불을 끄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해석된다. 실제로 훗날 비트 타케시와 톤네루즈는 같은 연예인 야구팀에 소속되어 교류를 하기 시작한다.
  8. 요시모토 흥업은 소속 게닌들이 활동에 비해 소득이 너무 적다고 한탄하는 내용이 네타로 많이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회사의 이익분배율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9.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라고 불리는 '도쿄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
  10. 장녀가 영화배우 호노카. (동명의 AV배우가 아니다.)
  11. 하지만 그게 꼭 신인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여성 출연자에게도 똑같이 대하다보니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경우는 이시바시의 방송에 출연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여자 아나운서의 경우에는 오히려 마이너스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소속사 자체에서 공식적으로 출연 NG를 거는 경우도 많다.
  12. 야구장 필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눠놓고 구역별로 공이 떨어지면 1루타, 2루타, 홈런, 병살 등등이 되는 것인데, 그래서 잘맞아도 아웃이고 빗맞아도 2루타고 여러가지 상황이 펼쳐진다.
  13. 야구실력과는 무관한 게임인데다 선수들에게 각종 패널티를 잔뜩 준다. 그래놓고 지면 재대결을 위해 도게자까지 시킴.
  14.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이미지걸로 데뷔한 재일교포 출신의 배우. 2010년 영화 '시간을 달리는소녀'에서 주인공의 이모役으로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