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트 아머

Plate armour / Plate armor
판금갑옷

플레이트 아머트랜지셔널 아머

1 개요

천하제일갑(天下第一甲).

고대의 갑옷은 서양 갑옷 항목 참조.

유럽갑옷14세기 전후를 시작으로 과도기(transition period)를 거치면서 사슬갑옷이 축소되고 판금 방어구가 확대된 끝에 주객이 전도되어 사슬갑옷이 판금 갑옷의 틈새를 매꾸는 부속품으로 전락하면서 15세기에 탄생한 모든 부위가 판금으로 이루어진 갑옷이다. 기록상으로는 1410년에 처음으로 독립적인 한 벌의 판금 갑옷이 등장한다. 14세기말의 트랜지셔널 아머와 15세기의 플레이트 아머는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독립된 한 벌의 갑옷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트랜지셔널 아머는 사슬갑옷을 먼저 입고 판금 방어구를 덧대지만 플레이트 아머는 철판으로 덮기 애매한 관절 부위 정도만 사슬갑옷으로 만들어진 거셋(gusset)으로 보완하고 갑옷을 입는다. 이로써 착용이 더 간편해지고 무게도 가벼워졌으며 각 부위의 방어구가 더 잘 맞물리게 되어서 갑옷을 두겹입는 과도기보다 오히려 가볍고 튼튼해졌다.

패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트랜지셔널 아머는 시클러스(cyclas)나 주폰(jupon)과 같은 외투를 입었고 투구와 흉갑의 틈새를 보호하는 아븐테일(aventail)을 갑옷 위로 드러냈다. 특히 아븐테일은 14세기말의 트랜지셔널 아머와 플레이트 아머를 구분하는 가장 쉽고 확고한 요소이다

유럽의 판금갑옷은 15세기에 완성되어 중세 말기부터 쓰인 갑옷이지만 철판으로 온몸을 빈틈없이 두른 기사의 위압감과 다른 문화권과의 완전히 차별화 되는 형태 때문에 현대에는 중세 천년을 책임진 사슬갑옷보다 오히려 더 유명한 갑옷이 되었다. 이 위압적이고 방호력도 뛰어난데다 멋까지 갖춘 그 특징은 중세 기사도 판타지의 대표가 되도록 이끌었고, 현재는 SF의 강화복에 대한 관심으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2 양식

2.1 공통 양식(International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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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드 위틀베리(John de Wittlebury) 1410. 영국 마르홈(Marholm) 성모 마리아 성당

1420년 이후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독자적인 양식이 나오기 이전의 판금갑옷으로 방어력만큼은 후대의 양식에 비해 뒤지지 않지만 트랜지셔널 아머의 빈틈을 모조리 철판으로 막아놓은 모양새라서 관절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그레이트 배서닛(Great bascinet)의 목을 보호하는 고짓(gorget)을 착용하면 목이 거의 안돌아갔는데 아븐테일(Aventail)을 쓰던 시절에는 배서닛 투구와 흉갑 사이의 틈새가 치명적인 약점중 하나였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2.2 카스튼 브르스트 갑옷(Kasten-brust armour)


신성로마제국에서 쓰였던 초기 고딕 양식 갑옷으로 영어로 번역하면 box-shaped breast인데 이름 그대로 각진 흉갑이 특징이다. 폴드(Fauld)가 대형화 된 듯한 톤렛(Tonlet)이라고 하는 강철치마도 특징적이지만 15세기에는 유행하지 못하고 16세기초에 반짝 유행하게 된다. 현대에 남은 유물이 단 한 벌 밖에 없어서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다.

2.3 고딕 양식(Gothic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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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튼 브르스트 이후의 독일 갑옷으로 고딕답게 뾰족뾰족하며 신체 곡선에 딱 맞는 날씬한 형상과 플루팅(fluting) 기법으로 넣은 방사선으로 한 껏 멋을 낸 갑옷이다. 갑옷 표면에 튀어나와 있는 방사선은 미적인 요소뿐 아니라 적의 공격을 미끄러트려서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역할도 겸했다. 단품 제작이므로 값이 밀라노 양식보다 비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있고 좌우 대칭에 몸에 꼭 맞아서 움직임이 편했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사진의 뾰족하게 튀어나온 사바톤(sabaton)은 뿔렌느(poulaine) 신발을 흉내낸 것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인 토캡(toe cap)은 떼어낼 수 있다.

2.4 밀라노 양식(Milanese style)

고딕 양식과 달리 대량생산하는 양산품이다. 전반적으로 둥글둥글한 인상을 주며 표면도 장식을 배제하여 밋밋하기 때문에 멋은 안나지만 생산성, 가동성, 방어력 삼박자를 갖춘 선진적인 설계였다. 고딕 양식과 달리 좌우가 비대칭으로 랜스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왼팔의 폴드런(어깨)와 쿠터(팔꿈치)를 대형화하고 리벳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폴드런에는 가드 브레이스(gard brace)라는 증가장갑도 추가할 수 있었는데 이 경우 폴드런 전면의 두께가 4mm에 달해서 랜스로도 뚫는 것이 불가능했다.[1] 훗날 영국에서 이탈리아 장인들을 데려가 갑옷을 만들지만 투구만 고딕 양식인 셀릿으로 교체되고 나머지는 차이가 없다.

2.5 주스팅 갑옷(Jousting armour)

2.6 맥시밀리언 갑옷(Maximilian armour)

2.7 그리니치 갑옷(Greenwich armour)

1511년 헨리 8세가 영국 그리니치에 세운 왕립 알메인 갑주 공방(Royal Almain Armoury)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장인들을 고용해 만들었기에 독일식과 이탈리아식의 절충형이다. 16세기 말부터는 갑옷의 주 용도가 실제 전투보다는 토너먼트 쪽으로 무게가 많이 기울었고, 17세기에는 총기와의 경쟁으로 중기병 외에는 고전적 전신 갑주(풀 하네스)를 잘 만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 생산하는 그리니치 갑옷들은 토너먼트용 아니면 장식성이 강한 제품이 주로 생산되었고[2], 그 장식성에서 독일식과 이탈리아식과 퍽 차별되게 되었다.

동영상 자료는 영국 Glasgow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Tobias Capwell 박사가 진행하는 Metal Works : The Knight's Tale 을 시청해보자.

헨리 8세의 하마 전투용 갑옷, 헨리 8세의 강철치마 갑옷 항목도 참조하라.

2.8 군수용 갑옷(Munition armour)


16세기 철판을 리벳으로 이어서 유연하게 만드는 알메인 리벳(almain rivet)으로 만들어진 갑옷이다. 단순히 리벳으로 박아서 수직방향으로만 가동되는 기존 제조법과 달리 수평으로도 철판이 미끄러지도록 만들기 때문에 특히 제작이 어려웠던 암 하네스(arm harness)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 이름대로 군수품이기 때문에 품질보다 생산성과 가격에 중점을 둔 양산품으로 열처리는 고사하고 연철이나 연강으로 만들었고 풀 슈트가 아닌 쓰리 쿼터(3/4), 하프(1/2) 아머와 같은 형태였다. 소량의 인이 첨가된 합금을 쓰기도 했으나 이는 단순히 인 함량이 높은 철광석을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격은 기존에 전신 판금 갑옷 대비 1/5에서 1/10 정도로 저렴해졌고 판매 또한 개인 단위가 아니라 국왕이나 용병대장이 대량 주문해서 병사들에게 판매하거나 나눠주는 방식이 되었다.
이런 싸구려 갑옷이라도 중앙집권화로 인해 기사와 같은 소수의 엘리트 군인 계층은 도태되었고, 16~17세기 갑옷 최대의 과제인 방탄은 총알의 재질인 납이 너무 물러서 강철이나 연철이나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총알을 막아낼 정도로 두꺼운 연철 갑옷이면 냉병기에도 충분한 방어력을 가졌으므로 싸구려라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수 있었다.

3 구성 요소

파일:Attachment/플레이트 아머/armordia.jpg
위의 그림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3.1 머리

3.1.1 바르부타(Barbuta)


그림에도 나와있는 면갑이 없는 개방형 투구로 셀릿의 한 형태로 볼 수도 있으며, 고대 그리스식 투구를 재창조한 모양새다. 얼굴에는 T 또는 Y형으로 구멍이 나있어서 눈, 코, 입을 드러냈으며 구멍 주변은 끝단을 접어 올려서 투구에 맞고 미끄러진 날붙이가 얼굴을 긁지 않도록 배려했다. 표면에 리벳을 박아 놓은 것도 흔한데 역할은 그저 장식이고 이는 셀릿도 동일하다. 바르부타는 이 투구가 가장 흔히 쓰였던 이탈리아에서 불리는 말이고, 영어로는 바버트(Barbute)라고 부른다.

3.1.2 셀릿(Sallet)


독일에서 특히 유행한 투구로 배서닛을 대체하는 가벼운 개방형 투구였으나 15세기 중반들어서 뒷부분이 꼬리처럼 길게 빠져서 뒷통수를 보호하고 면갑이 달린 것들이 나온다. 면갑(visor)은 인중 정도까지 내려와서 얼굴 전체를 덮지 않았고 가동식과 일체형 둘 다 존재했다. 또한 개방형 투구이지만 사진과 같이 입을 보호하는 비버(bevor)와 조합하면 폐쇄형 투구와 같이 얼굴 전체를 보호할 수 있다는 융통성 때문에 15세기 후반에 널리 유행한다.

3.1.3 아흐메(Armet)


15세기의 폐쇄형 투구로 그레이트 배서닛보다 가볍고 목을 보호하는 고짓(gorget)이 신체 곡선에 맞춰서 만들어진 덕에 목의 움직임도 훨씬 자유로웠다. 폐쇄형 투구의 장점은 단연 높은 방어력으로 아흐메는 투구 전체가 한덩어리로 단단히 결합될 뿐아니라 어깨가 투구를 받치고 있으므로 충격에도 강하다. 그러나 15세기의 아흐메는 옆을 열어서 벗어야 하는데다 입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는 형태였고 개방형 투구보다 무겁기 때문에 중장병(Men-at-arms) 이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16세기에는 앞뒤로 열어서 벗고 입도 완전히 드러낼 수 있게 개량되고 면갑 고정에 경첩을 쓰지 않게된다.

3.2 몸통

3.2.1 흉갑(cuirass)


그림의 흉갑은 가슴을 보호하는 흉판(breastplate)와 배를 보호하는 플라카트(plackart)로 나눠서 만들고 이 둘을 벨트로 연결했고 리벳으로 연결하는 경우도 흔하다. 흉갑을 상하를 분리해서 만들었던 15세기에는 흉판을 빼고 플라카트만 갖추는 경우가 종종있었는데 갈비뼈와 복장뼈가 있는 가슴과 달리 뼈가 없는 배가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를 수록 플라카트가 위로 계속 확장되서 가슴까지 덮기 시작하고 16세기 들어서는 분리하지 않는 통짜 흉갑이 일반화된다.
뒷판(back plate)은 그림에서는 따로 분류하지 않았으나 흉갑의 뒷판으로 앞판과 연결하는 경첩의 핀을 뽑아버리면 분리할 수 있고 분할 구입도 가능해서 지갑이 가벼운 병사는 뒷판을 구입하지 않았다. 앞판과 마찬가지로 15세기에는 상하를 분리해서 만들었다.

3.2.2 랜스 걸이(lance rest)


유럽 갑옷사에서 14세기 후반이 되서야 뒤늦게 도입된 장치로 14세기에 등장한 헤비 랜스는 길이 4~5m 무게도 5kg에서 많게는 10kg까지 나가기 때문에 이를 보조하기 위해 흉갑에 붙어있다. 또한 몸통에 랜스를 보다 튼튼하게 고정해서 상대에게 온전히 충격을 전달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반발력으로 인한 부상도 예방했다.

3.2.3 폴드(fauld)

흉갑 아래에 달려서 허리~골반까지 보호하는 부분으로 여러장의 철판을 관절식으로 연결해서 허리를 숙일때 접히도록 만들어져있다. 안장에 앉기 편하도록 앞보다 뒷쪽이 짧은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엉덩이 방어가 불안해서 하마 전투시 약점이 되었다.

3.2.4 태싯(tasset)


폴드 아래 달아서 허벅지를 보호하는 철판. 가죽벨트로 느슨하게 달기도 하고 리벳으로 박아버리기도 했다. 16세기 들어가면 폴드와 비슷하게 관절식으로 만들어서 폴드의 일부처럼 된다. 일부 기병용 갑옷은 상술했다시피 불안한 엉덩이를 고려해서 태싯을 뒷편에도 달 수 있도록 배려했다.

3.3

3.3.1 폴드런(pauldron)


15세기 들어서 나온 어깨 방어구로 14세기의 스파울러보다 대형화되어서 더 넓은 영역을 막아주며 판금갑옷의 주요 약점중 하나인 겨드랑이를 잘 보호해준다. 그러나 그만큼 무겁고 어깨 움직임을 방해하므로 15세기에도 여전히 스파울러에 베사규로 겨드랑이만 가려서 사용하는 경우가 흔히있었다.

3.3.2 쿠터(couter)


팔꿈치를 보호하는 방어구로 14세기보다 더 커져서 팔꿈치 주변과 팔 오금에 대한 방어력이 향상되었다. 밀라노 양식은 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철판이 안쪽까지 뻗어있는데다 관절 틈새까지 꼼꼼하게 막아서 방어력은 높아도 불편했고 고딕 양식은 좀 더 간소하게 만들고 끈으로 묶어서 느슨하게 고정했기 때문에 움직임을 덜 방해했다.

3.3.3 뱀브레이스의 상박, 하박 원통(upper, lower cannon of vambrace)

상박 원통을 레어브레이스(rerebrace), 하박 원통을 뱀브레이스(vambrace)라고 각각 따로 분류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뱀브레이스라는 말은 14세기 후반부터 팔 방어구 전체를 통틀어 부르는 용어이기도 하다. 반원 형태로 가공한 두 장의 철판을 경첩으로 맞붙여서 만들었으나 상박의 경우 폴드런과 거셋에 의해 겨드랑이 주변이 보호되고 어깨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박에 비해 길이가 짧았고 바깥쪽만 가리는 경우도 많았다.

3.3.4 건틀렛(gauntlet)


14세기의 모래시계형 건틀렛과 달리 손가락 보호도 해주는 일체형이며 밀라노 양식은 벙어리 장갑인 반면 고딕 양식은 다섯 손가락 다 움직인다. 15세기 기사들의 주무기는 창, 검, 둔기와 같은 냉병기라서 엄지손가락만 움직여도 지장이 없었으며 권총으로 무장한 16세기 이후부터 손가락을 다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가죽이나 리넨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덧씌우는 장비이기 때문에 손바닥은 평범한 장갑이다. 물론 가죽으로만 만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기에 사슬을 덧대어 방호력을 증가시킨 유물도 꽤 많다.

3.4 다리

3.4.1 퀴스(cuisse)


14세기와 별로 다를 것은 없으며 허벅지를 보호한다. 허벅지는 대동맥이 있는 중요한 부위이지만 아래에서 찔러올리지 않는 이상 공격 당할 일도 별로 없고 태싯이 있으므로 갑옷에서 가장 얇은 부위이다. 안쪽은 역시 안장에 앉을때 방해되므로 완전히 덮지 않아서 하마 전투시 약점중 하나였다.

3.4.2 폴린(poleyn)


무릎을 보호하는 부위로 무릎을 굽혔을때 틈이 드러나지 않도록 관절식으로 연결된 철판으로 무릎 주변을 폭넓게 덮었고 바깥쪽은 날개와 같이 철판을 연장시켜서 상하기 쉬운 무릎을 안전하게 보호했다. 그러나 안쪽은 말을 다리 조임으로 몰기 위해서 덮지 않았다.

3.4.3 그리브(greave)

정강이와 종아리를 방어하는 방어구. 팔과 같이 경첩으로 두 장의 철판을 연결해서 열고 닫을 수 있으며, 앞쪽만 떼어낸 데미 그리브(demi greave)도 있으나 주요 고객인 기병은 다리 방어가 중요하고 보병은 돈이 부족한데다 행군시 방해되는 다리 방어구를 선호하지 않아서 14세기 이후로는 매우 드문 형태이다. 사슬로 만들어진 사바톤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사바톤이 그리브와 일체형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세 초기의 막시밀리안이나 이를 모방하는 양식의 경우, 그리브와 사바톤이 일체형이었다.

3.4.4 사바톤(sabaton)


건틀렛과 마찬가지로 신발 위에 덧씌우기 때문에 발바닥은 평범한 신발이다. 밀라노 양식에는 사슬로 만들어진 것도 흔했고 사바톤에 박차를 고정하는 구멍의 유무가 기병/보병 갑옷을 구분하는 하나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겸용으로 만들어서 박차를 고정하는 구멍이 있다. 마상전투에서는 다리의 높이가 보병이 때리기 딱 좋은 위치에 있어서 중요한 방어구인 반면 도보전투에서는 마르고 단단한 땅이 아니면 진흙이 달라붙어서 불편한데다 어차피 발등은 거의 공격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뿔렌느 신발을 흉내 낸 뾰족한 사바톤은 공격용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지만 카타프락토이와 달리 15세기 기병은 등자에 발을 걸치고 있으므로 순전히 장식이며, 16세기 들어 뿔렌느 유행이 끝나자 자연히 뾰족한 사바톤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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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시대, 튜더 양식의 유행에 따라 철 구두는 둥글거나 납작한 형태로 변화하였다.

3.5 기타

3.5.1 사슬 거셋(mail gus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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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사슬갑옷을 아래 껴입지 않게 되면서 겨드랑이, 오금, 엉덩이등 철판으로 덮기 애매한 부분에만 사진처럼 사슬로 만들어진 거셋을 달아서 틈새를 방어했다. 그러나 15세기의 극단적으로 뾰족한 롱소드에스터크, 런들 대거등은 가차없이 거셋 표면의 구멍을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에 거셋이 덮는 부위는 판금 갑옷의 약점이 된다.

3.5.2 아밍 더블렛(arming doublet)

판금갑옷과 같이 입는 내갑의(內甲衣)로 위의 사진속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다. 기존 사슬갑옷과 달리 판금갑옷은 충격에 잘 견디므로 갬비슨(gambeson)이나 주폰(jupon)등에 비해 얇아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대로 말해, 갬버슨은 굳이 사슬 갑옷을 위에 입지 않더라도 그것 자체로 천 갑옷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두껍지만, 아밍 더블릿은 단독으로 갑옷 노릇을 할 정도는 아니다.

쿠터와 폴드런 등의 갑옷 파츠를 몸에 고정하기 위한 끈(arming point)이 달려있는 것도 있다. 아밍 포인트의 부착 여부는 해당 갑옷이 어느 부위에 아밍 포인트가 필요한가, 얼마나 아밍 포인트가 많이 필요한가의 갑옷 형식에 따른다. 그리고 몸에 밀착할 필요가 있는 판금 갑옷의 내의이기 때문에, 아밍 더블릿은 각자의 몸에 맞게 만들어야 했다. 대체로 이탈리아식 아밍 더블릿은 허벅지 길이까지 긴 편이었다.

더블릿은 중세 후기의 평범한 남성 상의지만, 재밌게도 아밍 더블릿 패션도 잠깐 존재한 적 있다. 아밍 더블릿을 입는다는 것은 판금 갑옷을 입는 계층(=기사)이라는 의미이고, 그래서 이 계층들은 갑옷을 입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밍 더블릿을 패션처럼 입고 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다. 원래는 언제든지 무장하러 달려갈 수 있는 대기 상태, 내지 잠깐 갑옷 벗고 쉬고 있다는 의미지만, 이게 기사와 귀족 사이에 일종의 패션처럼 유행하자 갑옷 입을 일이 없는 건달들조차도 거셋이나 아밍 포인트가 달린 아밍 더블릿을 입고 거들먹거린 적도 있다.

3.5.3 방지턱(stob rib)


주로 폴드런이나 흉갑에 붙여서 머리나 목을 향해 타고 올라오는 공격을 비껴낸다.

3.5.4 방패(sh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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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금 갑옷은 방패 없이도 충분한 방어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15세기 방패의 입지는 좁다. 사진에 나와있는 타지(targe)는 토너먼트 방패로 유명한 형태로 방어구가 아닌 어깨나 가슴에 매달아서 표적판 역할을 담당했다. 무장 수준이 떨어지는 병사들도 폴암의 복합적인 기능과 타격력을 살리기 위해 방패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배경속에 잭체인과 같은 간이적인 암 하네스도 등장한다.
정리하자면 이전시대까지는 필수였으나 플레이트 아머시대에는 선택지가 되었고,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게 된 셈.

4 오해와 진실

4.1 너무 비싸서 귀족들의 전유물이다?

사슬 갑옷과 판금 갑옷이 같은 시대의 갑옷이 아니라는 점과, 기술의 발전과 생산력 증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물론, 당시의 최신기술이 적용된 갑옷인 만큼 값이 싼 것은 절대 아니라서 맨 앳 암즈(men-at-arms)나 기사 정도만이 구입할 수 있었지만, 가격은 과거의 사슬갑옷에 비해 크게 오르지 않았다. 사슬갑옷은 인건비[3]가 원가보다 높은 데 비해서 플레이트 아머는 모양이 날 때까지 두드리고 열처리만 하면 금방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12세기 사슬갑옷(mail)이 100s(£5), 1441년 밀라노(이탈리아식) 갑옷 £8 6s 8d, 같은 시기 종자(squire) 갑옷이 £5~£6 16s 8d이다.참고 중세 중후기 철 제련 기술의 발달로 철의 공급이 원활해지고, 흑사병의 창궐로 인건비가 높아지게 되면서, 인건비가 높은 사슬갑옷보다 판금갑옷 쪽이 더 경제적이게 돼서 대세를 넘겨준 점도 판금의 보급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전신갑옷은 비싸도, 수요가 많고 가공이 비교적 간단한 투구와 흉갑은 저렴한 편이었고 플레이트 아머 착용에 계급제한은 없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갖출 수가 있었다. 당시 병사의 대다수를 차지한 용병들은 비용 문제도 있고 살기 위해 투구와 흉갑만 갖추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따라서 귀족들의 전유물이나 돈지랄이라는 것은 오해다. 성이나 저택 수준의 가격을 자랑하는 갑옷은 보통 16세기 이후의 장식용 갑옷으로, 당시의 주름옷을 흉내내서 세로줄을 빼곡하게 잡은 독일의 맥시밀리언 아머나 화려한 자수를 도금으로 흉내낸 영국의 그리니치 아머(Greenwich armour)가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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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장인 혼자서 만들어 내는 갑옷으로 알려져 있으나 플레이트 아머는 현대 무기와 같이 공장제로 제작됐으며 그 제작 공정 또한 철사를 끊는 사람, 철판을 다듬는 사람, 쇠사슬을 엮는 사람 등등이 모두 따로 있을 만큼 세분화 됐었다. 가장 대표적인 제작사는 독일의 헬름슈미트(Helmschmied)[4] 가문과 이탈리아의 미살리아(missaglia) 가문 등으로 전 유럽에 체인점이 있을 정도.[5]

4.2 두껍고 무거운 갑옷이다?

각종 판타지 작품에서 밸런스 패치(?) 한답시고 판금 갑옷은 두껍고 튼튼한 대신 무겁다고 설정하는 것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낭설에 불과하다. 판금갑옷의 두께는 기존 갑옷과 비슷한 1.2~2mm사이로 얇다[6]. 방어력의 비결은 두께가 아닌 구조강도를 높이는 설계와 열처리의 산물이다.

물론 100kg 단위의 상식밖의 무게가 아닐뿐 어워트 오크셧의 a knight and His armor에 의하면 필드 아머(field armour)[7]의 무게는 평균 26 kg[8] 으로 당연히 훈련도 안 받은 이고깽이 입고 다닐 물건은 못된다. 헌데 판타지에서 경갑으로 분류하는 찰갑, 사슬갑옷도 전신을 무장하면 20 kg 은 기본이니 무거운 무게는 판금 갑옷만이 아니라 금속 갑옷의 공통적인 단점이다.[9] 판금 흉갑의 무게는 2.5~8 kg 내외로 면적당 무게는 현대 세라믹 방탄판이 들어간 방탄조끼와 비슷하며, 갑옷과 무기 이외의 짐을 시종이 들어주므로 전투에 심각한 지장을 줄 정도의 하중을 지탱할 필요도 없었다. 또한 어깨에 거의 대부분의 하중이 걸리는 사슬 갑옷과 달리 각 부위에 고정하는 판금 갑옷은 하중이 전신으로 분산되어 마치 20~30 kg 의 살이 찐 것과 같은 효과이므로 충분한 지구력과 근력이 있다면 오히려 기존의 갑옷보다 편했다. 각종 RPG 게임에 나오는 것처럼 일부는 플레이트 아머, 일부는 메일 등등을 섞어 입으면 두껍고 무거우며 방어력도 떨어지는 변태적인 조합이 나오겠지만, 그런 변태적인 차림으로 전투에 나갈만큼 멍청한 기사나 중장보병은 없었다(...). 돈이 없더라도 양산형 플레이트 아머를 입으면 입었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소장중인 사슬셔츠. 9.75kg 나간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소장중인 15세기 고딕 양식 갑옷. 투구를 제외한 무게 20.53kg에 거셋 3.629kg이다.#

심지어 기중기로 들어서 말에 올린다는 말도 있지만 근거가 없다. 이런 루머의 근원은 19세기의 소설 등에서 이런 묘사가 나온 것을 사람들이 실제로 믿었기 때문. 안전 문제 때문에 목과 왼팔을 고정해 버린데다 전투용 갑옷의 2배에 달하는 무게를 자랑한 기사주스트[10]용 갑옷마저도 종자의 도움을 받거나 계단 밟고 혼자서 말에 올랐다. 뭐 비슷한 예가 딱 하나 있긴 하다.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사고로 다리를 못 쓰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자 도구를 써서 말에 올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헨리 8세가 상당한 거구였던데다, 늙어서는 살까지 쪘다는 걸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낙마하면 무게 때문에 죽는다는 말도 있으나, 달리는 말에서 맨몸이나 경무장하고 떨어져도 잘못 떨어지면 중상인 건 똑같고, 기사들끼리의 격렬한 충돌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거나 예상치 못하고 목이나 팔다리가 꺾이면서 떨어지면 모를까 그냥 떨어지는 정도로는 멀쩡할수도 있다는 것을 아래의 영상에서 확인 가능하다. 애초에 말에서 떨어지는 것 자체로 죽거나 치명상을 입었다면 토너먼트 개최할 때마다 시체로 탑을 쌓았을 것이다.물론 낙마 사고로 죽은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플레이트 아머 입고 떨어져서 중상 입을 상황이면, 뭘 입으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40초에 나온다.


에 빠지면 X된다는 상식과 달리 충분한 힘이 있다면 수영도 가능하다.위에서 20-30kg 정도 살 찐 것에 비유했듯이, 살 찐 사람도 수영 잘만 한다는 걸 상기하면 된다. 그리고 이미 설명했듯이 판금 갑옷만 무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에 빠지면 위험한 것은 피차일반이다. 충분한 체력과 수영실력과 담력이 없으면 갑자기 물에 빠졌을 때 X되는 건 맨몸이라도 마찬가지다. 굳이 옷의 위험성을 생각하자면, 물을 잔뜩 흡수할 수 있는 두꺼운 천옷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4.3 입으면 둔해져서 넘어지면 끝이다?

위의 항목과 비슷하게 나름 판타지에서 밸런스 패치 한다고 휘갈겨놓은 낭설과 철판을 두르면 둔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만들어낸 오해이다. 그러나 둔해지기는 커녕 전력질주에 에어로빅, 구르기까지 가능하다. 물론 관절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지지만 두꺼운 점퍼나 코트 입으면 어색해지는 수준에 불과하다. 애초에 갑주를 입을만한 사람들은 신체 단련과 무술 수련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간들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못 믿겠으면 아래의 영상들을 보기 바란다. 밥 먹고 검술 훈련만 하는 진짜 기사도 아닌, 현대의 연구자 겸 리인액터들도 충분한 훈련만 하면 잘만 움직일 수 있다.

The armored combat, Daniel Jaquet

Half Swording

움직임이 느리다거나 가속되는데 시간이 많이들고 방향을 전환하는데에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는 헛소리이거나 일부 게임 상의 설정이며, 전신을 무장하더라도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해주는 동영상이다. 맨몸으로 움직이더라도 속도가 붙으면 멈추는데에 시간이 더 들거나 방향을 바꾸기 어려운 것은 똑같고, 무장을 하지 않는다면 무장을 한 것보다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심지어 15세기의 한 기사의 기록에 의하면, 자기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 말에 올라타기, 장거리 달리기, 장작패기, 벽타기 등등의 운동을 약 26kg 짜리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채로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위의 영상에서 그걸 재현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옷 입고도 하기 힘든 것들이 몇 있다.


마지막 예시로는 근세 초기, 1565년경의 기병용이자 마상창시합에서 사용되었던 갑옷을 들어볼 수 있다. 무게는 27.7kg 이며, 관절 안쪽까지 금속판이 보호를 하고있지만, 기동성에는 큰 지장이 없다.

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 박물관의 영상에서도 증명해준다. 23:33부터 시청해보자.

4.4 혼자 입고 벗을 수 없으며, 너무 더워서 탈진하기 십상이다?

혼자 입고 벗지도 못하며, 넘어지면 못 일어나고, 혼자 벗을 수 없어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낭설도 있는데, 판금 갑옷을 혼자 입고 벗기 힘든 것만큼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전신 판금 갑옷을 소유할 정도의 재력을 갖췄다면 시종이나 종자도 갖추고 있으며, 동영상과 같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금세 입고 벗을 수 있으며 포로로 잡힐 경우 장비 값과 몸값은 따로 계산하므로 갑옷을 벗겨먹을 사람이 알아서 벗겨준다. 또한 플레이트 아머는 벨트와 버클, 끈과 매듭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방법으로 고정하기 때문에 시간을 들이면 혼자서 입고 벗을 수 있다.

햇빛에 불판처럼 달아올라서 쪄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사슬 갑옷을 장비한 프리드리히 1세가 더위에 실신했다는 기록[11]도 있다. 구조적으로 판금 갑옷은 통풍이 힘들고 무게도 꽤 나가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갑옷이든 통풍 안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사슬 갑옷이 표면의 천공으로 통풍이 잘 될 것 같아보여도 충격을 분산하기 위해서 아밍더블렛보다 훨씬 두꺼운 갬버슨등의 내갑의(內甲衣)를 입기 때문에 통풍성은 무용지물이다. 청재킷, 청바지 입고 20kg 철판 두르기 vs 스키복 입고 20kg 사슬 걸치기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햇빛에 갑옷이 달아오르는 문제는 실제로 갑옷 착용자를 지치게 만들었는데 이는 외투를 둘러서 해결했다. 십자군 전쟁을 치르면서 유행한 서코트(surcoat)는 문장을 그리는 외투가 아니라 사막의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현지 기사들이 입기 시작했고, 14세기에는 주폰(jupon)과 단축형 서코트인 시클러스(cyclas)가 서코트를 대신했다. 판금 갑옷이 쓰인 15세기에는 외투를 입지 않는 surcoatless period(1420~1485)가 끼어있고 갑옷 자체를 장식해서 표면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으나 15세기 후반~16세기 초반에 다시 헐렁한 외투인 타바드(tabard)나 베이시스(bases)라는 치마를 입었는데 베이시스는 더블렛(doublet)이나 저킨(jerkin)의 밑자락으로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외투를 입는 유행이 사라졌다해도 햇빛에 달아오르는 문제가 부각될 경우, 다시 아무 외투나 두르면 해결될 문제였으므로 햇빛에 쪄죽는 일도 없었다. 더운 건 똑같지만

4.5 쇠뇌에 쉽게 뚫린다?

판금 갑옷의 오해라고 하기보다는 갑옷 얘기에 항상 따라다니는 물타기에 가깝다. 무기에 쉽게 뚫리면 그것을 갑(甲)옷이라고 부를 이유가 있는가? 실제 판금갑옷은 투사무기에 약하기는 커녕 모든 갑옷중에서 가장 강해서 방탄을 고려하지 않은 15세기 갑옷조차 핸드캐논(handgonne)을 막아내고 후기의 두꺼워진 플레이트 흉갑은 쇠뇌 따위는 물론이고 화승총의 총알까지 막아낼수 있었을 정도다.

흉갑의 찌그러진 부분이 총알을 막아낸 흔적이다. 16~17세기 방탄 갑옷은 bulletproof라는 홈이 반드시 있었는데, 이 시대에는 품질 인증 기관도 기준도 없었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을 직접 증명할 필요가 있었고 방탄 갑옷은 직접 총알(bullet)을 쏴서 방탄을 증명(proof)해서 '총알 자국=방탄'이라는 의미가 된다.



Vernile에서 실제 이탈리아제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기사들이 장궁병 화살에도 아랑곳 않고 쓸어버린 적도 있고, 채널4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국을 만들어낸 무기들"(Weapons that made Britain) 시리즈 중의 실험 동영상(위)에서는 20m 앞에서도 직사로 쐈는데도 내부 찰흙에는 흔적도 없다.

파일:Attachment/Weapons That Made Britain - E05 - Armour 1.gif
또한 직사로 근거리에서 맞았을 때나 이 정도지, 거리가 벌어지거나 입사각이 둔할 경우 제대로 박히지조차 못하고 매끈하고 경사진 표면에 미끄러져버린다.



열처리도 하지 않은 갑옷에 100파운드급 장궁[12]으로 사격하는 모습이다. 나중에 가면 뚫리긴 뚫리는데, 관통이라기 보다는 뚫린 구멍에 밀려들어간 경우다. 더군다나 뚫리기 전까지 사격한 횟수를 생각하면 그 때 쯤이면 이미 기사가 장궁병들 앞에 나타나 랜스로 찍어버리거나 말로 치어버렸을 타이밍이다. 갑옷이 활에 무력하다는 증거로써 제시되는 백년전쟁의 전투들은 기수가 아니라 경무장한 말을 노려서 프랑스 기사를 무력화했고, 지리적 우위와 더불어 영국의 기사들이 말에서 내려서 보병진을 강화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전과였다. 실제로 백년전쟁 후기 잔 다르크에 의해 사기를 회복한 프랑스는 대포를 동원하여, 대량의 장궁병을 앞세워서 언덕에 자리 잡고 수세로 일관하던 영국에게 공세를 강요했고, 이를 기사로 맞받아쳐서 백년전쟁은 프랑스의 역전승으로 끝난다.

물론 당시에도 장력이 최대 2000파운드에 달하는 공성 쇠뇌에 정통으로 맞거나 보병 십수명이 달라 붙어서 할버드워해머등으로 사정없이 두들겨패면 버틸 수가 없었지만, 굳이 판금이 아니어도 이런 공격을 당하고도 착용자가 멀쩡한 갑옷은 없다. 뒤집어 말하면 이 정도 수단을 동원해야 판금 갑옷을 파괴하고 착용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고, 기사는 말타고 다니는데다 살기위해 저항하기 때문에 쉽게 맞아주지도 않는다. 이쯤되면 "아무리 튼튼한 전차도 핵무기를 맞으면 박살난다." 수준의 일반론적인 서술이라...

정확히 말하면, 무기(특히 장거리 투사무기)의 발전으로 관통력이 높아지면서 판금 갑옷이 도태된 것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갑옷의 도태이지, 딱히 판금갑옷만 활과 쇠뇌에 잘 뚫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활과 쇠뇌의 발전 이후 먼저 도태된 다른 갑옷에 비해 판금갑옷은 갑옷의 최종형으로써 가장 오랫동안 버틴 갑옷임을 잊지 말자. 이 녀석을 본격적으로 도태시킨 건 보병들 대다수가 머스킷 수준의 화기를 들게 된 패러다임 변화였다. 아무리 두꺼워도 대포를 정통으로 맞거나, 한두발쯤이면 튕겨낼 총알을 일제사격으로 얻어맞으면 착용자가 죽는 건 뻔하기 때문에.

4.6 둔기에 약하다?

둔기에 맞으면 찌그러져서 압박으로 죽는다든가 유연한 갑옷은 충격을 흡수하지만 단단한 판금 갑옷은 멀쩡해도 충격파가 어찌어찌 작용해서 죽는다는 설이 있으나 근거가 없다. 일단 둔기에 맞아도 판금갑옷은 쉽게 찌그러지지 않고 충격파에 관한 얘기는 종 효과 혹은 대전차오함마술 항목 참고. 이것도 RPG 게임 등에서 밸런스 조절을 위해서 넣은 설정에 가깝다. 공격 종류를 베기, 찌르기, 타격 등으로 세분했는데, 갑옷 떡칠 캐릭터를 공략할 방법으로는 타격을 권장하는 식으로.



온전히 운동에너지를 흡수할 수는 없으니 충격에 의해 다칠 수는 있지만 양철 냄비도 아니고 둔기에 맞았다고 폭삭 찌그러져서 죽을 일은 없다.

파일:Attachment/Weapons That Made Britain - E05 - Armour 4 1.gif

파일:Attachment/Weapons That Made Britain - E05 - Armour 5 1.gif
사슬갑옷과 코트 오브 플레이트(coat of plates)[13]가 각각 랜스에 들이받혔을 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다.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유연한 갑옷은 충격을 흡수하기는커녕 그대로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갑옷이 뚫리지 않더라도 사슬갑옷은 움푹들어가면서 고리 몇개의 면적에 모든 충격이 집중되고 코트 오브 플레이트는 랜스에 찔린 철판 면적에 따라 분산될 것인데 어느쪽이 덜 다칠 것인가는 자명하다. 괜히 사슬갑옷 아래에 솜을 두툼하게 채운 갑옷 입는 것 아니고 경번갑과 같은 양식이 등장한 것이 아니다.

둔기는 날붙이가 안 통하는 판금 갑옷에 그나마 통하는 무기일 뿐이고 갑옷이 유연할수록 갑옷 표면이 무기의 형상대로 변형되면서 충격 분산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둔기에 더 취약해진다. 판금 갑옷을 잡기 위해 등장한 둔기들에는 뾰족한 부분들이 섞여있는 경우도 많았다는 걸 감안하면 좋다. 다시 말해, 둔기가 판금에 통하는 만능 열쇠 노릇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적에게 그나마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운동 에너지를 내기 위해서 묵직한 둔기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이다. 물론, 둔기가 아니더라도 뾰족한 칼날로 취약 부위를 찌르는 파훼법도 나온 바 있다. 롱소드를 양손으로 잡고 하프소딩을 한다던가, 단검이나 에스토크로 쑤신다던가.


플레이트의 방어력으로 둔기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 그렇지만 플레이트를 양측이 모두 입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밍소드보다 메이스 등의 둔기를 가진 자가 더 유리하게 싸움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F0JpDiW33c

5 쇠퇴

냉병기를 상대로 가공할만한 방어력을 보여준 판금 갑옷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냉병기의 종말을 앞당기고 열병기의 시대가 오는 단초를 제공했다. 갑옷의 방호력이 극에 달한 르네상스 시대는 온갖 백병전 무기가 난립하는 백병전의 황금기라고 불리지만 현실은 표현처럼 로맨틱하지 않아서 견고한 갑주가 치명상을 막아주는 탓에 백병전은 체력과 정신력 승부로 번지기 일수였다. 그래서 유럽은 14세기경에나 화약이 보급됐음에도 불구하고 화기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핸드 캐논과 같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조악한 화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탄을 고려하지 않은 판금 갑옷도 핸드 캐논을 막을 수 있었고 화기를 이용한 전술도 미흡해서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유럽 전장에 화기가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은 1525년 파비아 전투 이후로 스페인 아르퀘버시어의 활약으로 프랑스가 완패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파이크와 총을 조합한 테르시오 방진은 중세식 기병 전술의 완벽한 카운터였고 스페인에서 개발된 최초의 총인 아퀘부스(arquebus)는 핸드 캐논과 달리 판금 갑옷을 관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파비아 전투는 중세식 풀 슈트(full suit)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지 갑옷 자체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는 아니었기 때문에 범위를 줄이고 두께를 늘린 방탄 갑옷이 개발되면서 갑옷 수요는 여전했으며 16세기에는 총병보다 창병의 비중이 높고 기병 또한 권총과 같이 랜스를 여전히 사용했기 때문에 냉병기에 대한 방어를 위해서라도 갑옷은 필요했다. 방탄 갑옷에 대응하여 아퀘부스보다 두배 강력한 머스킷(musket)도 개발되었다곤 하지만 비싼 가격과 7kg을 넘는 무거운 무게 때문에 16세기에는 전체 화기의 1/10가량만을 차지했고 화승총은 번거로운 화승 관리 때문에 분당 1발 사격이 고작이었으므로 갑옷은 충분히 제몫을 했다.

17세기에 들어서면 위그노 전쟁에서 창기병이 권총기병에게 완패당한 여파로 기병은 더이상 랜스를 사용하지 않았고 보병끼리도 파이크 밀치기(push of pike)라는 병림픽을 벌이기 보다는 사격으로 끝장을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창병은 줄어들고 총병의 비율이 계속 올라서 파비아 전투 당시 20%에 불과했던 것이 17세기초 50%를 넘어간다. 이 시기 네덜란드에서 선형진도 선보였지만 네덜란드의 역량 부족과 미성숙한 전술인 탓에 테르시오에게 오히려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선형진이 테르시오 방진을 마침내 꺾은 로크루아 전투(1643년)에도 수석식총의 보급은 미진했고 머스킷 비율도 1/3가량이었으므로 갑옷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러나 선형진이 대세가 되면서 유럽의 전장은 더더욱 화력전으로 치닫고 17세기 후반 총병의 비율은 80%에 육박하게 된다. 여기에 박차를 가하듯이 수석식총과 17세기 중반 시험적으로 채용한 경량 머스킷도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아퀘부스를 도태시키고 발사속도 또한 기존 화승총 대비 2배 이상 향상된다. 갑옷도 꾸준히 두께를 늘리며 대응했지만 더이상 화력 증가에 따라갈 수 없게되자[14] 17세기 후반 갑옷은 공성전에 참호 파는 병사나 기병이 종종 입는 경우에 그친다.

18세기 마침내 창병마저 완전히 폐지되어 선형진이 완성되면서 갑옷은 주력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퀴레시어에게는 18세기 이후로도 흉갑이 지급되었으나 냉병기 방어[15]를 위함이라 도로 두깨가 얇아져서 방탄은 기껏해야 권총 정도가 한계였다. 게다가 몸통을 가려도 대동맥이 지나가는 허벅지는 무방비라서 관리하기만 귀찮은 흉갑을 챙기는 경우는 드물어서 명목상 지급에 불과했다.
이 후 나폴레옹 전쟁에서 갑옷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퀴레시어들이 전과를 올리자 명목상 지급인 흉갑을 실제로 지급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러나 흉갑이 기병의 생존율에 도움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반짝 유행으로 끝났고, 프랑스만이 나폴레옹 시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까지 입었을 뿐이다.

6 창작물 속의 플레이트 아머

  • 대부분의 서양 중세 풍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단골로 등장한다. 방어력은 가장 좋지만 피로도나 무게, 착용 제한 등이 심한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플레이트 아머가 아직 개발되기 전인 시기에도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캐릭터를 내보내는 고증오류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 사실 이런 고증오류는 엄청나게 유서가 깊다(...) 일례로 아서 왕 전설은 그 시대적 배경이 고대 시대에도 불구하고, 중세 시대 전설로 착각당하는 바람에[16] 등장인물들이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나오는 창작물이 태반이다. 서양 기사 계열 인물은 시대 안 가리고 전부 판금갑옷으로 통일하는 경향도 있다.
  • 사실 플레이트 아머류는 그 모습 자체가 다른 갑옷들 보다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라 옛부터 갑옷의 마스코트로 대중의 인식에 박힌지 오래되었다. 따라서 대중 문화의 한 갈래인 서브컬쳐에서도 주로 나오는게 당연하다. 그리고 용이성으로 봐도 판타지 갑옷을 디자인 할때 작은 사슬들이 잘게 이어진 사슬 갑옷과는 달리 넓적넓적한 판떼기들로 구성된 이미지다 보니 개성적인 디자인을 쉽게 표현할 수 있어서 중세풍 세계관에 걸맞는 디자인을 구성할때 그 바탕으로 애용되는 것이다.
그 예 중 하나가 위에 언급되었던 Fate 시리즈아르토리아 펜드래건[17] 그래서 수많은 게임이나 애니,영화등지에서 등장하는 갑옷은 모두 판금 갑옷을 바탕으로 창작하고 있다.
  • 몬스터 신사론등을 따르는 작품 등에서는 왠지 여캐의 갑옷은 분명 판금 갑옷 비스무리한데 비정상적으로 노출이 심한 디자인으로 나오는 등 원래의 판금 갑옷과 완전 딴판인 물건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런 작품에선 남캐가 입고나오면 노출이 없는 정상적인 형태로 나온다(...). 때문에 양성평등 등 정치적 올바름이 이슈가 되는 나라나 커뮤니티 등에서는 "노출이 공평하지 않다"고 문제제기가 되기도 한다. 좀 멀쩡해보이는 갑옷을 입히더라도 가슴과 허리 등 인체의 몸매를 강조하는 디자인[18]을 갖추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이런 갑옷을 입는다면 움직이기가 상당히 불편해진다. 전장에서 격한 움직임으로 가슴이 흔들리는 것을 잡아주기 위해서란 설정을 붙이기도 하지만 굳이 유방 모양을 안 만들어도 가슴을 고정할 방법은 많은데다가 흉갑 한가운데에 커다란 홈을 만들어놓는단 건 그냥 평범하게 흉곽이 부풀어 있는 갑옷이었으면 안전하게 튕겨냈을 화살이나 창을 오히려 가슴으로 흘려넣어주는 디자인이 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도 매우 위험하다.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성은 꽁꽁 숨길 것 취급해도 남성성은 당당히 자랑할 것 취급한[19] 당대의 문화와 맞물려서(...) 남성의 섹스심벌을 강조한 디자인은 진짜 도입되었다는 건 아이러니이다. 실질적으로는 낭심 보호대의 역할을 하는 코드피스(Codpiece)[20]를 강조해서 만든 게 그것. 위의 헨리 8세 갑옷에도 코드피스가 유독 크고 아름답게 달려있다. 굳이 미적으로 강조 안 해도 보호대가 작으면 원래 큰 사람들은 꽉 껴서 아플테니 어쩔 수 없다. 일단 한 대 맞으면 아플테니 잘 만들 수 밖에 없다 이 코드피스는 근세에 갑옷뿐만 아니라 평복에 다는 것도 유행이었다. 헨리 8세의 초상화만 찾아도 평복에도 코드피스를 달고 고간 자랑을 하는(...) 게 나온다.모 커뮤니티컬트는 서구 중세말~근세의 전통을 잇는 뿌리있는 행위라 카더라
  • 게임 마운트 앤 블레이드의 판금 갑옷은 무겁다는 걸 빼면 흠을 잡을 곳이 없다. 어지간한 공격은 다 씹어버린다! 물론 공성용 쇠뇌같은 무시무시한 게 등장하면 그냥 버로우해야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14세기 물건이라 그런지 멋이 없다는 거지
  • 게임 겟앰프드에선 방어력 14에 원거리공격을 무시하는 그야말로 최강방어 악세서리다. 하지만 느려지는 단점이...
  • 바이오하자드 4의 우리의 짐순이의 최강 갑옷. 특전 갑옷이며, 각종 공격에 전혀 먹히지를 않고. 항상 들쳐 문까지 끌고가는 적도 못 들정도로 무겁다.(...)
  • 다크 소울 시리즈는 리얼한 느낌의 중세풍 rpg를 표방하는만큼 판금 갑옷의 존재감도 크다. 2편 이전까지는 강인도라는 수치가 있어서[21], 갑옷의 튼튼함에 비례해 준 슈퍼아머 상태로 맞싸움 칼질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방패와 함께하면 툭하면 죽는 게임에서 생존률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그리고 1편에서는 낙사로, 후속작에서는 스태미나 고갈이나 다굴로 You Died를 볼 수 있다 성능뿐만 아니라 룩 상으로도 아스토라 상급 기사같은 녀석의 갑옷 룩[22]도 고풍스럽고 멋지다. 몹을 잡으나 pvp를 하나 너도나도 갑옷 입고 구르고 튕겨내고 막고 찌르고 하는 게 일상인 게임이라서, 서양식 플레이트 아머 입고 데굴데굴 구르는 게 다크 소울을 상징하는 밈이 되어버렸다. 당장 위에 링크된 유튜브 영상들을 봐도, 다크 소울 언급하는 댓글이 꼭 달린다(...).
  1. 이정도 두께면 총알도 막는다.
  2. 총기가 보편화돼서 일반병들이 방탄 흉갑 정도만 쓸 때도 지휘관들은 약간이나마 호신 효과를 내고 또한 지휘관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섬세한 장식을 가한 풀 하네스를 입는 일이 많았다.
  3. 호버크(hauberk) 한 벌에 고리를 4만개나 조립해야 한다.
  4. '투구(Helm) 대장장이(Schmidt)'이라는 뜻. 직업을 성씨로 삼는 독일 평민들의 성명법에 충실하였다.
  5. 이 두 가문의 갑옷이 어쌔신 크리드 2의 장비 아이템으로 등장하였다.
  6. 볼록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중간중간 좀 더 두꺼운 철판을 덧대거나, 충격을 흡수해야 하는 부분은 특별히 2mm 이상의 철판으로 만들긴 하지만, 현대의 승용차를 제작하는 철판도 두께는 0.7~1.2mm 정도에 불과하다. ~~1mm 이하의 철판으로도 수 톤에 달하는 자체를 지탱하고, 다른 차와 충돌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방호력과 내구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전체적인 구조 설계나 철강의 질이지, 견고하게 만드려고 무조건 철판을 두껍게 만드는 게 아니다.
  7. 판금 갑옷의 하부 개념으로 기병용 갑옷은 필드 아머(field armour)와 보병용 갑옷은 풋 컴뱃 아머(foot combat armour)다. 이 두 가지 분류는 그저 사타구니 부분의 갑옷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로 기병용인 필드 아머는 안장에 걸리지 않도록 없거나 사슬로 덮고 보병용인 풋 컴뱃 아머는 있다.
  8. 전신을 같은 두께로 제작하기 보다는 투구와 흉갑이 1.2~2.0 mm 가량으로 가장 두껍고, 팔과 다리를 보호하는 부품을 0.8~1.2 mm 정도로 비교적으로 얇게 제작하는 식으로 무게를 조절했다. 정면이냐 후면이냐에 따라서도 두께를 다르게 했고, 주로 정면이 두꺼운 편이었다. 그러니 1.5 mm 의 두께로 제작해도 30 kg 이 넘는다는 것은 이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실전용 갑주보다 더 두꺼운 마상창 시합용 갑주도 30 kg 미만이다. 14세기 말~15세기 초의 것을 기준으로 투구는 4 kg, 흉갑은 골반의 일부를 포함해 정면을 보호하는 것이 2.54 kg, 팔은 각각 1.7 kg, 손은 각각 0.68 kg, 다리는 대퇴부와 정강이 부분을 포함해서 한짝에 5.56 kg, 발이 각각 0.397 kg 가량이다. 같은 시기에서도 무게는 제각기마다 다양하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의 양식은 어깨에 증가장갑판을 장착하여 두께가 더 두껍기도 한데, 이를 모두 포함해도 23 kg 의 중량을 지니는 것도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Knyght Errant 의 영상을 참조.
  9. KBS 사극 정도전 촬영시 사용한 ABS 플라스틱제 경번갑도 10 kg 이나 나갔으며, 과거 사극 용의 눈물 촬영당시 만든 경번갑무려 80 kg 이나 나갔다. 당시 이성계 역을 맡은 고 김무생 선생은 노인네 죽일 일 있냐고 화를 내셨다고.(...)
  10. 기병이 랜스를 들고 돌격하는 대회. 모의전투이자 유희였다.
  11. 단, 이 경우는 나이가 많이든 황제가 강을 건너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다.
  12. 한국 국궁이 70~90파운드 가량
  13. 코트 오브 플레이트는 두정갑과 같이 조끼에 리벳으로 여러장의 큼직한 철판을 고정해서 만든 갑옷으로 14세기에 가장 보편적인 흉갑이었다.
  14. 머스킷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선형진의 총알세례에는 버틸 수가 없었다.
  15. 권총 짤짤이로는 선형진에 상대가 안되기 때문에 18세기의 기병은 냉병기를 이용한 기동전으로 교리가 바뀌었고, 이런 환경에는 조금만 흔들려도 빗나가는 총이 무용지물이라 방탄은 별로 필요없었다.
  16. 사실 본격적으로 이 전설이 유행한 게 중세 시대인 이유가 크다.
  17. 아르토리아의 원래 정체인 아서 왕은 분명 '중세 시대 이전의 인물' 인데도 불구하고 플레이트 아머를 차고 나온다. 애초에 고증은 개나 줘버리는 시리즈이기도 하지만, 사실 위에 언급했듯 아서 왕 전설 원전부터가 이미 시대적 고증 따위는 씹어먹은 전설인지라 어찌보면 원전에 충실한 복장이라는 묘한 결과가 됐다(...)
  18. 대표적인 게 흉갑에 유방 모양대로 둥근 것 두 짝(...)이 붙는 등 판타지스러운 모양새. 다만 갑옷은 외형적인 것도 중요하게 여겨졌으므로 창작물에서마냥 여전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 그런 디자인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여전사들이 있던건 매우 특수한 경우였고, 그렇게 신체를 갑옷에 표현하는 게 그리스때나 통하던 유행이라서...
  19. 이 점에서 판금 갑옷이 중세 말부터 상당히 오랫동안 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중세 문화였다면 아무리 남성의 성이라도 당당히 의복을 통해 드러내는 건 터부였을 것이다. 갑옷 평복 가리지 않는 코드피스 유행 자체가 16세기에 있었다.
  20. 옛 영어로 "cod'가 문자 그대로 음낭을 뜻한다. 이 명칭도 직역하면 불알 가리개(...)
  21. 3편에도 없는건 아닌데 공격모션중 일정구간에만 적용된다.
  22. 풀 플레이트는 아니고 메일과 섞여있다. 풀 플레이트도 템을 잘 찾으면(...)나오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