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슈마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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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그 자체였던 현역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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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2-1로 꺾고 난 뒤 얻은 빅 이어. 자세한 건 여기를 참고하시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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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1992 우승 직후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슈마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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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앰배서더
페테르 볼레스와프[2] 슈마이헬 (Peter Bolesław Schmeichel)
생년월일1963년 11월 18일
국적덴마크 (Denmark)
출신지글라드삭스
신체 조건193cm
선수 시절 포지션골키퍼
유소년 클럽회제-글라드삭스 (1972~1975)
글라드삭스 히어로 (1975~1981)
소속 클럽글라드삭스 히어로 (1981~1984)
회비도브레 IF (1984~1987)
브뢴드비 IF (1987-199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1~1999)
스포르팅 CP (1999~2001)
아스톤 빌라 FC (2001~2002)
맨체스터 시티 FC (2002~2003)
국가대표129경기 1골[3]

1 개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덴마크, EPL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이자, 9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골키퍼 중 하나.

피터 슈마이켈은 덴마크 출신의 前 축구 선수다. 그는 선수 시절 디노 조프, 올리버 칸 같은 기라성 같은 골키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골키퍼였다. 엄청난 존재감으로 맨유와 덴마크 국대를 이끌었다. 맨유는 피터 슈마이켈의 은퇴 이후 에드윈 반 데 사르를 데려올 때까지 뒷문불안에 시달려야 했다.[4]

2 선수 경력

2.1 초창기

슈마이켈은 1963년 11월 18일 덴마크의 글라드삭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덴마크 사람이었다. 슈마이켈은 아버지를 따라 1970년까지 폴란드 국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1970년 가족이 덴마크 국적을 획득하면서 그 또한 덴마크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는 1972년 8살의 나이로 지역 아마추어 축구 클럽인 회제-글라드삭스의 서브 골키퍼로 입단했다. 이후 회제-글라드삭스에서 2년 반동안 뛴 슈마이켈은 1975년 글라드삭스 히어로로 이적해 그곳에서 기량을 갈고 닦았다.

당시 글라드삭스 히어로에는 스벤 예지 한센 이라는 이름의 1군 코치가 있었다. 이 사람은 유스팀에서 활동하는 슈마이켈의 잠재력을 꿰뚫어보고 수시로 수뇌부에게 슈마이켈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훗날 그는 슈마이켈의 대부가 되어 그를 물신양면으로 지원해준다. 그러던 1981년 글라드삭스 히어로가 3부리그로 강등되자, 슈마이켈은 1군 멤버로 승격되어 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의 첫번째 1군 경기는 IF Skjold Birkerød와의 매치였다. 이 경기에서 글라드삭스 히어로는 1:0으로 패배했다. 하지만 지역 신문지는 슈마이켈의 활약상을 높게 평가하는 논평을 남겼다.

그후 슈마이켈은 팀의 핵심 멤버가 되어 골문을 지켰고 덴마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연령별 축구 대표팀의 스쿼드에 소속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그의 최고의 활약은 1983-84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펼쳐졌다. 당시 글라드삭스 히어로는 Stubbekøbing 와의 경기에서 패배하지 않아야만 강등을 면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슈마이켈은 이 경기에서 환상적인 선방을 연거푸 펼쳤고 글라드삭스 히어로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Stubbekøbing를 격파하고 잔류를 확정지었다. 경기가 종료된 후 슈마이켈의 대부인 한센의 딸 베티가 달려가 그를 껴안으며 함께 승리를 기뻐했다. 그후 두 사람은 커플이 되었다가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고 현재까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2.2 브뢴드비 IF 시절

1984년, 피터 슈마이켈은 회비도브레 IF로 이적했다. 그는 첫 시즌에 30경기에 출장해 40실점을 허용했는데 이는 리그에서 5번째로 적은 실점 기록이었다. 하지만 회비도브레의 공격이 영 좋지 않아 14위에 그쳐 강등되고 말았다. 다행히 회비도브레는 한 시즌만에 우승을 차지해 1부리그에 복귀했고 슈마이켈은 이후 멋진 활약을 선보였으며 1986-87 시즌에 리그 우승까지 노려봤지만 아쉽게도 브륀드비에게 밀려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브륀드비는 그의 활약상에 감탄해 1987년 그를 전격 영입해 주전 골키퍼로 삼았다.

슈마이켈은 브륀드비에서 훌륭한 경력을 쌓았다. 그가 브륀드비에서 뛴 다섯 시즌 동안, 팀은 리그를 4번 우승했다. 또한 1991 유로파 컵에서는 준결승전까지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준결승전에서 AS 로마에게 패해 결승전 진출은 좌절되었다. 그래도 슈마이켈은 이 유로파 컵에서 멋진 활약을 선보였기에 IFFHS(International Federation of Football History & Statistics)가 주관한 "1991 세계 최고의 골키퍼" 투표에서 10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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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Dane

슈마이켈이 1991 유로파 컵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는 걸 눈여겨 본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었다. 1991년 8월 6일, 슈마이켈은 50만 5천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유에 입단했다. 훗날 퍼거슨은 그를 영입할 때 사용한 이적료에 대해 "한 세기에서 가장 저렴한 거래"라고 묘사했다. 그를 데려오는데 이토록 적은 이적료가 사용된 것은 당시 축구 변방이었던 덴마크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서브 골키퍼 역할을 수행했지만 윔블던 FC와의 데뷔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퍼거슨의 눈에 들었다. 당시 윔블던 FC는 지저분하고 거친 플레이로 크레이지 갱이란 별명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날도 역시나 그런 모습을 마음껏 보여줬고 슈마이켈은 윔블던 공격수들의 팔꿈치로 찍기, 머리에 고의로 축구공 맞히기(...) 등 온갖 별의별 희한한 반칙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대의 무자비한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주심을 부르며 묵묵히 골대를 지키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줬다. 퍼거슨은 그야말로 맨유를 이끌 수문장으로 제격이라고 확신하고 이후 그를 주전 골키퍼로 중용한다.

1992-93 시즌, 슈마이켈은 22번의 클린시트를 달성하며 맨유가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리그 우승은 맨유 역사상 26만에 달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맨유에서의 생활이 마냥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1994년 1월, 맨유는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3:0으로 이기고 있다가 그만 3:3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후 퍼거슨은 슈마이켈에게 엄청난 비판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에 격분한 슈마이켈은 퍼거슨이 "자신에게 끔찍한 소리를 해댔다"며 퍼거슨을 정면 비난했다. 이후 그는 몇 경기에서 선발 제외되다가 퍼거슨에게 사과하고 나서야 간신히 경기에 출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슈마이켈은 꾸준히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며 맨유가 1993-94 시즌과 1995-96 시즌에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 FA컵에서도 1994년과 1996년에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런데 1996년 11월, 슈마이켈은 아스날과의 경기 도중 아스날의 스트라이커 이안 라이트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흑인을 모욕했다는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급기야 두 사람은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 바깥에서 몸싸움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후 슈마이켈은 인종차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언론은 FA에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FA의 조사결과 슈마이켈이 인종차별성 발언을 했다는 증거는 없었고 결국 슈마이켈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렇듯 잡음이 있기는 했지만, 슈마이켈은 맨유의 레전드 골키퍼로 남았다. 그는 맨유에서 5번의 리그 우승(1992–93, 1993–94, 1995–96, 1996–97, 1998–99)과 3번의 리그컵 우승(1993–94, 1995–96, 1998–99), 한번의 리그 컵 우승(1991-92)을 달성했다. 특히 1999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캄프 누의 기적의 당사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며 빅이어를 획득했다. 그는 맨유에서 1991년부터 1999년까지 8년간 활약하며 393경기에 출장했다.

2.4 스포르팅 CP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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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슈마이켈은 36세가 되자 새로운 도전을 위해 포르투갈의 스포르팅으로 이적했다. 그는 이 팀에서도 역시나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고 스포르팅은 그의 활약에 힘입어 1999-00 시즌 리그 우승을 달성헀다. 이는 스포르팅 역사상 18년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그는 다음 시즌에도 활약하며 스포르팅이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것에 기여했다. 이후 2001년 6월, 슈마이켈은 스포르팅을 떠나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

2.5 아스톤 빌라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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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 아스톤 빌라로 이적한 슈마이켈은 2001년 10월 20일 에버튼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EPL 역사상 최초로 필드골을 기록한 골키퍼로 기록되었다. 이후 슈마이켈은 한 시즌 동안 아스톤 빌라에서 활동하다가 2002년 계약이 만료되자 팀을 떠났다. 그런데...

2.6 맨체스터 시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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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슈마이켈은 맨체스터 시티로 자유계약 선수로서 이적했다. 이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맨체스터 시티는 슈마이켈이 전성기를 보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역 라이벌 구단이었기 때문이다. 맨시티 이적 이후 맨유와의 경기에 출전했을 때 극성 맨유빠 게리 네빌은 슈마이켈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시로 일관했다. 그런데 얄궃게도 슈마이켈이 활약한 2002-03 시즌에서 맨시티는 맨유를 상대로 홈에서 승리를 거두고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1승 1무로 우위를 가져갔다. 이후 슈마이켈은 2003년 은퇴를 선언했다.

2.7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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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마이켈은 1987년부터 2001년까지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29경기에 출장햇다. 그의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상 중 진국은 유로 1992이다. 그는 이 유로 대회에서 대단한 활약을 선보이며 덴마크의 승승장구를 이끌었다. 특히 준결승전에서 전 대회 우승팀이었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상황에서,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으로서 밀란 제너레이션을 이끈 반 바스텐의 킥을 막아내면서 팀을 승부차기로 올렸으며, 90 월드컵의 우승국인 독일을 상대로 무수한 선방을 보여준 끝에 고국에게 기어코 국제대회 첫 우승을 안겨준다. 그는 이러한 대활약을 통해 UEFA Euro 1992 Team of the Tournament의 골키퍼로 선정되는 등 1992년을 자신의 해로 장식했다.

이후 슈마이켈은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꽤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아쉽게 8강전에서 당시 끝판왕 포스를 뿜내던 브라질한테 3-2로 패배했다. 또한 자신의 마지막 메이저대회 유로 2000에서는 주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별다른 활약도 없었고(...) 예선전에서 0승 0무 3패 8실점이라는 대 굴욕을 맛봤다. 이후 그는 2001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3 은퇴 이후의 삶

슈마이켈은 선수 생활을 정리한 뒤 방송인으로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영국의 공영방송 BBC의 축구 전문가로서 2005년까지 Match of the Day 프로그램에서 활동했다. 이후 그는 덴마크 TV 채널인 TV3+에서 브라이언 라우드럽과 함께 챔피언스리그 경기 중계를 맡았으며 종종 BBC 축구 전문가로 출연해 축구에 관한 전문 지식을 시청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2007년, 슈마이켈은 그의 전 소속 클럽인 브륀즈비에 3350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하려는 사업가 그룹에 포함되었고 뒤이어 브륀즈비의 축구 디렉터로 부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브륀즈비 수뇌부와의 협상에서 타결에 실패함에 따라 슈마이켈의 브륀즈비 축구 디렉터 부임은 실패로 돌아갔다.

4 여담

당시의 맨유 최고의 센터백이었던 스티브 브루스, 개리 팔리스터와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관계였다고 한다. 이 둘이 수비 못한다고 슈마이켈이 직접 뛰어나오면 둘이서 '골키퍼는 골대나 지키라며 투닥거리는 식(...) 근데 퍼거슨 감독의 의하면 이건 그라운드 위에서만 그런거고 사적으론 좋은 친구들이라고 카더라.

부자가 모두 축구선수인데, 아들인 카스퍼 슈마이켈도 골키퍼로서 레스터 시티에서 활약 중. 14-15 시즌 준수한 활약으로 레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하는 데 공헌했다.15-16시즌 돌풍중인 레스터 시티의 1등 수성에 힘을 보태고있다.레스터시티가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부자 모두가 EPL우승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인 자신이 29살의 나이에 5월2일날에 맨유의 우승을 확정 지었고 아들도 29살의 나이에 5월2일 우승을 확정지었다고 언급하였다.슈마이켈 가문의 날로 지정해야 할 듯..
  1. 빅 이어를 들어올린 1998-99 시즌에는 FA컵과 리그까지 우승하여 트레블을 이루었다. 한마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창단 이래 최고의 시즌.
  2. 이 가운데 이름은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한다.
  3. 친선경기에서 페널티 킥으로 넣었다. 영상 3:02부터.
  4. 그리고 반 데 사르가 은퇴한 뒤 데 헤아가 각성하기 전까지 맨유는 또 뒷문 불안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