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공국

독일의 역사
Die Geschichte Deutsch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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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공국
Herzogtum Preußen
Prusy Książęce
Prūsijos Kunigaikštystė
국기국장
1525년 ~ 1618년
위치중동부 유럽
수도쾨니히스베르크
정치체제봉건적 군주제
국가원수공작
언어독일어
주요사건1525년 건국
1618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으로 통합
통화(추가바람)
성립 이전독일 기사단국
멸망 이후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

1 개요

1525년 튜튼 기사단의 단장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이 개신교로 개종하고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절연하고 세속화되면서 형성된 국가.[1] 튜튼 기사단장은 1466년 포메렐리아와 단치히를 뺏긴 이래로 폴란드의 신하로 전락하였으므로 새로이 탄생한 프로이센 공국도 폴란드의 봉신국으로서 인정받았는데, 이때 프로이센 공국의 상속은 알브레히트의 후손만이 계승할 수 있도록 조약되었었다.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은 남독일 안스바흐 제후의 차남으로 역시 본가 안스바흐도 나란히 신교국가가 되었다.

2 역사

이후 1618년 이전부터 같은 호엔촐레른 가문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과 근친혼을 수대에 걸쳐 맺으며 더불어 상호 계승 조약을 맺었는데, 상호 남계가 끊길경우 결혼으로 맺어진 상대편 가문이 모든 영지를 물려받기로 합의했다.
폴란드의 형식적인 종주권은 무시할만한게 애초에 반독립적 상황에다가 폴란드는 국내 귀족들의 난립에도 정신 못 차렸기 때문에 개입할 능력도 없었다. 그후 40여년 뒤 스웨덴을 놓고 구교도 폴란드 왕 지그문트 3세와 신교도 쇠데르만란트공 칼 (이후 칼 9세) 사이의 계승 전쟁인 북방전쟁이 터지고, 이 와중에 러시아의 차르 자리를 놓고 발발한 내전에도 폴란드가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등 깊게 간섭하게 되면서 힘에 부치게 되자 초대 프로이센 공작의 외증손에 전임 공작의 맏사위 였던 브란덴부르크계 호엔촐레른 선제후(選諸侯)가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는 대신 프로이센 공작으로서 폴란드의 형식적인 봉신으로 남는다는 조건으로 허용해주었다.[2] 이 때부터는 완전한 독립국이 된것.

서로 호엔촐레른 가문인 프로이센과 브란덴부르크는 결국 프로이센 공작의 맏사위이자 같은 가문 친척인[3]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장인의 영지를 승계하여 호엔촐레른가의 통치 하에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동군연합이 되었다. 1619년 호엔촐레른 가문의 게오르크 빌헬름(Georg Wilhelm) 선제후는 개신교 칼뱅파로 개종하여 영지 내의 다른 귀족들이 루터파가 우세한 가운데 통치가문은 칼뱅파 개신교도였기에 종교에 대해선 관용적인면을 취하게 되었고, 대(大)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재위시 영지내의 신분제 의회를 강압적으로 통합하여 프로이센 공작령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과 통합된다.

브란덴부르크와 프로이센은 사실상 브란덴부르크 위주로의 통합이었으나 18세기 초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왕위를 칭할때엔 브란덴부르크는 독일 지역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신하였으므로 독립 공작령인 프로이센을 왕국 명으로 쓰게 된다.

1701년 프리드리히 1세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프로이센 왕국이 되었다. 이후 역사는 프로이센 왕국 문서 참조.
  1. 마르틴 루터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이 때문에 프로이센은 독일 외부에서 처음 신교국가가 된다. (최초의 신교제후는 작센 선제후).
  2. 형식적 종주권은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시절인 1656년 스웨덴 칼 10세와 동맹을 맺고 바르샤바 전투에서 폴란드를 캐바르고 쾨니히스부르크 조약(1656년)으로 완전히 청산한다.
  3. 초대 프로이센 공작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의 외증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