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저

위서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藏文呂許典二龐閻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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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褚
(? ~ ?)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중강(仲康). 호국 초현 사람.

2 정사

2.1 초기 생애

신장이 8척(약 189.6cm) 남짓하고, 허리 크기가 10위(약 115cm)이고, 용모는 위엄있고 강인하며, 용맹함과 힘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다.[1]

동한 말, 청년과 종족 수천 명을 모아 함께 단단한 벽을 쌓아 도적들을 막았다. 당시 여남군 갈피(葛陂)의 적 1만여 명이 허저의 성벽을 공격했는데 허저의 무리가 적어 대적할 수 없었지만 목숨을 다해 싸워 피로가 극도에 달했다. 그들은 화살을 모두 사용했으므로, 성안에 있는 남녀에게 돌을 모아 간두(杆斗)처럼 만들어 성의 사방에 놓도록 명령했다. 허저가 돌을 날려 적을 맞추면, 맞는 것은 모두 부서졌으므로 적은 감히 진격하지 못했다. 성벽 안에 양식이 다 떨어지자 허저는 거짓으로 적과 장화를 맺어, 적에게 소를 주고 식량과 바꾸었다. 적이 와서 소를 가지려 하자, 소는 놀라 도망쳐 돌아왔다. 그래서 허저는 진영 앞으로 나가 한 손으로 소꼬리를 거꾸로 하여 끌어당겨 적군이 있는 쪽으로 백 보 남짓 걷도록 했다. 적군은 그의 용맹스럼움에 매우 놀랐으며, 결국에는 소조차도 감히 달아나지 못했다. 때문에 회(淮), 여(汝), 진(陳), 양(梁) 일대에서는 이 사실을 듣고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

조조가 회수와 여수를 함락시키자, 허저는 병사를 이끌고 조조에게 귀순했다. 조조는 허저를 보고 용맹함을 느껴 말했다.

이는 나의 번쾌로다!

그 날로 도위로 임명하여 조조를 호위하도록 하고, 허저를 따르는 협객들을 모두 호사(근위병)로 임명했다.[2]

2.2 양 전투

허저는 조조를 따라 장수를 정벌하러 가서 앞 진영에 섰으며, 만여 명의 머리를 베었으므로 교위로 승진했다.[3]

처음, 허저가 호사로 임명된 사람들을 인솔하여 조조를 따라 정벌하러 갔는데, 조조는 그들이 모두 장사(壯士)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장수로 임명했다. 이후 공에 따라 장군이 된 열후가 몇 사람 있었고, 도위. 교위가 된 사람이 백여 명 있었는데 모두 검객이었다.

2.3 관도대전

조조를 따라 관도에서 원소를 토벌하였다. 그 당시 항상 조조를 호위하던 병사 서타 등이 음모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허저가 항상 좌우에서 호위했으므로 그를 두려워하여 감히 행동 하지 못했다. 허저가 항상 쉬러 갈 때를 기다렸다가 서타 등은 칼을 품고 조조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허저는 아래 진영에 있었는데 마음이 불안하여 즉시 돌아와 모셨다. 서타 등은 허저가 돌아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장막 속으로 들어와 허저를 보고 매우 놀랐다. 서타는 아연실색을 했고, 허저는 그들의 음모를 발각하고는 즉시 그들을 죽였다. 조조는 이 때문에 허저를 더욱 아끼고 신임했으며 나가고 들어올 때 그와 동행하고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2.4 하북 평정

조조를 따라 업성을 포위하여 공격 할 때, 용맹을 떨쳐 적을 죽이고 공을 세웠으므로 관내후라는 작위를 받았다.

2.5 관중 평정

조조를 따라 동관에서 한수마초를 토벌했다. 조조는 북쪽으로 가기 위해 황하를 건너기 전에 먼저 군대를 건너가게 하고, 허저와 호사 백여 명을 남쪽 해안에 주둔시켜 뒤를 끊도록 했다. 마초는 보병과 기병 만여 명을 이끌고 조조군을 추격하여 왔는데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허저는 조조에게 적군이 너무 많이 오고, 지금 병사들은 이미 다 건넜으니 떠나야만 한다고 말하고는 조조를 부축하여 배에 태웠다. 적군은 더욱 빨리 추격하였고 군사들은 배에 오르려는 자들을 죽이고 왼손으로 말 안장을 들어 조조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다. 사공이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자, 허저는 오른손으로 배를 저어 나아가게 하여 가까스로 황하를 건넜다. 이 날, 허저가 없었다면 조조는 위험에 빠졌을 것이다.

이후 조조는 한수, 마초 등과 단독으로 회담하였는데 좌우에 아무도 따르지 못하게 하고, 오직 허저 한 사람만을 데리고 있었다. 마초는 그의 힘에 의지하여 사사로이 앞으로 나가 조조를 죽이려고 했으나, 평소 허저의 용맹함을 듣고 조조를 수행하는 기병이 바로 허저라고 의심하며 조조에게 물었다.

조공에게는 호후(虎侯)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조조는 고개를 돌려 허저를 가리켰고, 허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초 등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각자 진영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쌍방이 교전을 하였다. 허저는 마초 등을 크게 무찌르고 무위중랑장으로 승진했다. '무위(武衛)'라는 호칭은 이로부터 나타났다. 군중에서는 허저의 힘이 호랑이 같고 용모가 백치 같았기 때문에 호치(虎癡)라고 불렀다. 때문에 마초가 허저를 호후라고 지칭하였으며, 천하가 모두 이와 같이 그를 일컫고 그의 성명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2.6 장로 정벌

장로전 주석 위명신주에 따르면 양평산 위의 둔영들을 공격하는데 있어 제대로 이기지도 못하고 상처 입은 병사들이 많았다. 조조는 뜻을 이루지 못하자 군대를 데리고 후방을 막으면서 돌아가고자 하후돈과 허저를 보내 산 위의 병사들에게 소리쳐 돌아오도록 하였다. 전군이 다 돌아오지도 못했는데 밤중이라 길을 잃어 적의 군영으로 잘못 들어갔고 적들은 기습이 있는 줄 알고 모두 퇴산하였다.

시중 신비유엽 등이 군대의 후방에 있으면서 하후돈과 허저에게 말했다.

관병이 이미 적군의 둔영을 점거했고 적들은 퇴주했습니다.

그 둘은 믿지 않았다. 하후돈이 나아가 친히 이를 보고 마침내 돌아와 조조에게 아뢰니 병사를 진군시켜 평정했으므로 운이 좋게 이긴 것이다.

2.7 조조 휘하

허저는 성품이 신중하고 법령을 엄수했고, 질박하고 무겁고 말이 적었다. 조인이 형주에서 조조를 보러 왔는데, 조조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므로 조인은 들어간 후 허저와 궁전 밖에서 만났다. 조인이 허저를 불러들여 곧 말을 하려는데, 허저가 말했다.

왕(조조)께서 곧 나오십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돌아와 어전으로 들어갔으므로, 조인은 마음속으로 그를 원망했다. 어떤 사람이 허저를 질책하며 말했다.

정남장군(조인)은 조공(조조)의 종족이고 조정의 중신인데, 낮추어 존경하며 그대를 불렀거늘 당신은 무엇 때문에 거부했소?

허저가 말했다.

그는 비록 친족의 중신이지만, 결국은 외번(제후)입니다. 저는 조정 신하의 일원이므로 일이 있으면 여러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반드시 방으로 들어가 속삭이겠습니까?

조조는 듣고 더욱 그를 좋아하였으며 중견장군으로 승진시켰다.

2.8 죽음

조조가 세상을 떠나자 허저는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고 선혈을 토했다. 조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허저를 만세정후로 봉하였으며 무위장군으로 승진시켜 중군의 숙위(宿衛)를 담당하는 근위병을 지휘하게 하고, 측근들과 매우 친하게 지내도록 했다.

조예가 즉위한 후, 허저를 모향후로 봉하고 식읍 7백 호를 주었으며, 그의 아들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주었다. 허저가 죽자, 시호를 장후(壯侯)라고 했다. 아들 허의가 작위를 계승했고, 허저의 형 허정은 군공으로 인해 진위장군의 관직을 받아 행차하는 길을 순시하는 호분(虎賁)을 지휘하였다.

태화 연간(227년 ~ 232년)에 황제는 허저의 충효를 생각하고 조서를 내려 칭찬했고, 또 허저의 자손 두 명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했다. 허의종회에게 살해되었다. 태시 초(265년), 아들 허종이 작위를 이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주군에게 충성하는 모습이 인정을 받아서인지 조조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일기토 장면이 여럿 추가되는 등 상당한 푸쉬를 받는다. 물론 연의에서 허저가 벌이는 일기토는 죄다 구라다.

조조군이 황건족의 잔당과 싸웠을 때, 하의라고 하는 황건족의 총대장이 나와, 조조에게 단판 승부를 도전해오는 장면이 있다. 조조는 전위에게 명령하여, 하의를 붙잡는 것을 행하도록 하였다. 그때 허저가 나타나 하의를 붙잡아 데리고 가려고 했다. 전위는 허저를 뒤쫓아 하의를 내놓으라면서 맞대결을 벌였지만 박빙으로 싸우게 되었다. 이 허저의 용맹을 들은 조조는 "그 정도의 사내를 죽이는 것은 아깝다."라고 생각하여, 부하들에게 올가미를 놓게 하고 붙들어 데려오도록 명하였다. 그 뒤 전위가 허저와 싸우고 있는 곳에서 신호를 받아 전위는 일부러 달아났다. 허저는 전위를 쫓아갔지만, 도중에 허저는 덫에 걸려 조조의 아래로 끌려갔다. 조조는 다른 적장과 같은 취급을 받는 허저를 보면서 "누가 이런 대접을 하라고 했나."라고 말하며 곧 줄을 풀어주어 허저에게 사과를 하고, 부하가 되는 것을 권유하였다. 허저는 자신을 부하로 삼아준다면 기꺼이 맡아 모신다고 하였다. 연의에서의 케미 때문인지 흔히 전위와 허저가 같이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사에서 그들이 서로 만난 적은 없다.

조조군이 여포와 싸울 때 여포와 일기토를 벌여 50여 합인가를 버티기도 하였다.

여남에서는 조운과 100여 합을 싸운다.

마초와 조조의 회담 중 조조를 호위하던 허저는 마초를 노려보는 것도 모자라 "내가 바로 초군의 허저다! 무슨 일로 날 찾느냐!"라고 외쳤다. 거기에 눌린 마초가 진영으로 돌아갔으며, 양군 모두 "마초도 허저만은 두려워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허저가 갑옷이 땀에 젖어서 웃통을 벗고 마초랑 3라운드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연의니까 당연히 거짓말.

연의 한정으로 한중 공방전에서 수송 임무를 맡았다가 부하들이 건네준 술에 취해서 장비에게 부상당하고 후퇴한 적이 있다(...).

4 기타

근본도 없는 무식쟁이 취급하는 사람도 있는데, 처음 등장했을 때 독립 세력으로 종족 수천을 거느리고 이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데다 조조에게 항복할 때도 부하들을 거느렸던 것을 본다면 어느정도 집안이 되는 호족에 해당되지 않나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보통 근본이 없는 사람은 전위처럼 자도 없다.

여러 전장에서 종군하였지만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조조의 보디가드 역할, 또는 근위병을 지휘하여 군사적인 재능을 요하는 직책을 맡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용력과 무예가 뛰어났다는 사실만은 명백한데, 정사에서도 일신의 무예는 최강급임을 밝히고 있다.

허저의 시호인 장후(壯侯)는 일반적으로 군공이 많지 않으면 내려지지 않는 칭호다. 서황, 장합, 문빙, 방덕, 조휴 등 삼국지 시대의 이름 높은 명장들이 받은 칭호이며 군의 요직이나 군공을 세우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시호다.[4] 시호로 미루어 봤을 때 허저의 역할은 친위대를 이끌며 조조의 호위하는 역할만이 아닌, 때로는 군을 이끌고 직접 전투에 투입되었을 확률이 높다.

다만 전위와는 달리 조방 시대에 듣보잡 문관들도 배향되는데도 불구하고 조조의 묘당에 배향되지 못했다. 배송지는 이를 비판하며 동관의 위기는 허저가 아니면 구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전위보다도 그 공이 뛰어나다고 하였다.

5 미디어 믹스

  1. 허리 둘레와 신장이 이 정도이니 체중은 적어도 100kg 이상으로 추정된다. 요즘 말로 하면 '근돼'
  2. 번쾌는 한나라를 건국한 한고조의 개국공신이기도 하다. 허저를 번쾌에 비유한 건 조조의 야심을 은연중에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3. 허저가 혼자서 1만명을 죽인게 아니라 허저가 앞장서고, 조조군이 적병을 1만명을 죽였다는 의미로 보인다.
  4. 환가처럼 군공이 없는데도 시호로 받은 예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