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우두/국가대표

1 개요

호나우두의 국가대표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

호나우두가 월드컵에서 넣은 15골 모음. 게르트 뮐러의 월드컵 통산 14골 기록을 갱신한 것이며 2014 월드컵에서 클로제가 16골로 갱신했다.

사실, 4번 연속으로 FIFA 월드컵에 출전하는 축구선수는 절대로 흔하지 않다. 특히, 천재적인 재능이 마르지 않는 인재들이 넘쳐나는 축구 제국 브라질 출신의 축구선수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1번의 월드컵은 한 경기도 출장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요즘 브라질은 안그런듯

실제로, 브라질의 축구선수는 국가대표 선발 경쟁이 로또 1등 당첨되는 것보다 뽑히기 힘들 정도니, 그야말로 경쟁이 헬게이트급으로 치열하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무려 FIFA 월드컵에 4번이나 출전했으며 브라질에서도 펠레 다음가는 강력한 포스를 발휘했다.

심지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못해서 다른 국가로 귀화를 한 뒤 국가대표로 뽑히는 브라질 출신 축구선수들이 많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포르투갈페페, 데쿠. 그리고, 스페인디에구 코스타가 있다. 그러므로, 이 문서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잘 보여주는 문서라고 할 수 있다.

2 1994 미국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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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카나리아 군단의 엔트리에 들었으나 베베토, 호마리우, 둥가같은 기라성같은 선배들에게 밀려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 시기의 그는 호나우지뉴, 즉 '작은 호나우두'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이미 국가대표 14경기를 뛴 수비수 호나우두가 대표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10년 후 공격수 호나우지뉴도 똑같은 이유로 평생 호나우지뉴라고 불리게 된다.

그러나, 카나리아 군단호마리우의 경이적인 활약으로 4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호나우두는 생애 첫 FIFA 월드컵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더불어, 당시 국내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영어 발음인 로날도라고 불렀다.

3 1996 애틀랜타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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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까지 호나우두는 호나우지뉴로 불렸다.

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주전 스트라이커로 출전, 브라질, 헝가리, 나이지리아, 일본으로 구성된 D조에 소속되어 꿀조라는 평가를 받는다. 나카타 히데토시가 이끌던 황금세대 일본과의 첫 경기, 브라질은 파상공세를 퍼붓고 이에 경기 내내 브라질 아나운서가 매우 찰진 음성으로 골키퍼 까와~구치를 연호할 정도로 일본은 힘든 경기를 펼치나 실점만은 기어코 막아낸다. 끝내 포백에 더블 볼란치로 단단하게 정비한 일본의 골문은 열리지 않고 오히려 브라질의 골문이 열리며 1:0 패배. 이후 경기에서 월드컵 수비수 호나우두와는 또다른 두 살 형 수비수 호나우두와 함께 출전해서 호나우딩요였던 호나우두(...)는[1] 헝가리 상대로 선취골을, 나이지리아 상대로도 선취골이자 결승골을 넣는다. D조는 승점셔틀이었던 헝가리를 제외한 일본, 나이지리아, 브라질은 서로 6점을 기록하게 되고 브라질은 똥줄을 태우다 득실차로 간신히 올라간다.[2]

가나와의 8강전에서 호나우두는 2골을 넣으며 승리를 이끌었고, 검은 돌풍 나이지리아와 4강에서 다시 한 번 맞붙으며 희대의 명경기를 연출한다. 브라질은 시작하자마자 콘세이상의 수비벽 맞은 뽀록 프리킥이 터지며 경기를 리드한다. 허나 나이지리아의 공세 앞에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자책골이 터지며 원점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호나우두의 슈팅을 골키퍼가 펀칭한 걸 베테랑 베베토가 주워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닝요의 환상적인 슴가 어시를 콘세이상이 받아먹으며 승부는 기운 듯 보였다. 허나 경기 내내 '브라질? ㅋㅋ 그거 먹는 거임?' 하며 공격적이고 소울 넘치는 아프리카 축구로 일관한 나이지리아는 역습의 역습으로 멋진 추격골을 터트리고, 점점 쫄린 브라질이 움츠러드는 것을 몰아붙이며 90분에 롱 드로인에 이은 문전 혼전 상황에서 은완코 카누가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는 연장까지 간다. 이후 길게 갈 것도 없이 연장전 4분 만에 환상적인 뽀록성등짝 패스를 받아 카누가 역전 골든 골을 터트린다.[3]

3, 4위전에서 브라질은 포르투갈을 맞아 5:0으로 분풀이를 한다. 호나우두는 선취골을 기록하며 동메달을 차지한다.

4 1997 코파 아메리카

주요 성인 대회에서 그의 국가 대표 커리어가 시작된 것은 97년도 볼리비아 코파 아메리카였다. 준결승에서 만난 페루를 7:0으로 짓밟는 위엄 넘치던 팀이던 브라질은 6경기에 3골만 먹히고 22골을 처넣으며 가볍게 전승우승, 호나우두는 볼리비아와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고 파라과이와의 준결승에서 희대의 또라이골키퍼 칠라베르트에게 페널티킥을 막히며 아쉽게 해트트릭을 실패하는 등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5골을 기록하며 활약했다.[4]

5 1997 Tournoi d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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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돈신 막으려먼 칸나바로말디니가 필요하다.

98 프랑스 월드컵의 전초전 형식으로 치뤄진 4개국 초청대회에 호나우도도 브라질 대표팀으로 참가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컨페드컵의 성격을 띄었으나 당시 컨페드컵이 대륙간컵이라는 이름으로 사우디에서 열렸던 관계로 친선경기로 분류된다. 참가팀은 브라질,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였는데 원래는 이탈리아 대신 독일이 출전하기로 되었으나 갑작스런 불참의사 통보로 이태리가 대신 참가한다. 4개국 모두 우승후보로 분류되는 팀들이라 매경기 매경기가 흥미진진의 연속이었다. 그 어떤팀보다 주목받는 팀이 바로 브라질... 대뷔 후 A매치 전승 (97년 4월 노르웨이전 패배 제외)을 이끌고있던 호나우도와 그의 영혼의 콤비였던 호마리우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사람들은 기대했었지만 정작 이 대회의 최고 브라질 스타는 데닐손이었다는... 대회는 잉글랜드가 2승 1패로 우승. 저 1패를 안긴팀이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첫경기와 두번째 경기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잉글랜드를 잡아내면서 유일한 무패팀으로 대회를 마감한다. 호나우도는 이 대회에서 이태리전에서만 1득점을 올렸다. 그 유명한 카를로스의 UFO슛이 나왔던 대회.

6 1997 컨페더레이션스 컵

12월에 열린 사우디 아라비아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도 브라질은 5경기 4승 1무, 12골을 넣고 난적 멕시코에게만 2점을 내주며 당연한 듯 우승한다. 특히 호주와의 결승전은 결승전인지 양학의 현장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브라질이 시종일관 호주를 썰어대며 6:0의 참극을 만들어냈다. 23분경 비두카가 카푸에게 장절한 로우 킥을 날리며 퇴장당한 이후 호주는 아무것도 못했고, 이 경기에서 호나우두는 호마리우와 사이 좋게 3골씩 해트트릭을 기록한다...호나우두는 대회 총 4골을 넣었지만 동료 스트라이커였던 호마리우가 득점왕과 실버볼을 차지한 것에 비해 4골로 브론즈 슈를 차지하며 살짝 후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5]

7 1998 프랑스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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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프랑스 월드컵은 그가 브라질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다. 98 월드컵에서 4골 3 어시를 기록했다. 그는 조별 예선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고, 칠레에게 4:1로 승리한 16강 경기에서 2, 3번째 골을 넣었다. 그리고 1:1로 비겨 승부차기로 브라질이 진출한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황금 같은 선제골을 터뜨렸고 승부차기에서도 첫 번째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시켰다만, 결승전에선 별 활약을 못 보여주고 지단의 프랑스에게 3:0으로 떡실신하며 우승 컵을 넘겨준다. 호나우두는 결승전 내내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패배의 주범 혹은 2인자로 지목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결승전이 시작하기 전 MVP를 선정하였고 또 결승전을 감안하더라도 대회 내내 좋은 활약이었기에 호나우두는 골든 볼을 수상한다.[6]

여담이지만 결승전 경기 종료 이후 호나우두의 몸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몸상태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몸 상태의 악화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옐롭의 저서인 '누가 월드컵을 훔쳤나'를 읽어보면, 그 당시의 심정을 결승전이 끝난 며칠 후 호나우두는 이렇게 토로한다. "브라질 국민 전체가 나에게 기대 오는 것만 같았다." 사실 호나우두는 98년 월드컵 내내 여러 번에 걸쳐 진통제 주사를 맞은 상태였고, 이러한 진통제로 쓰이는 약물들이 혼합해서 사용되어 온 결과 결승전을 앞두고 발작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웃기는 것은 이러한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수 보호보다는 브라질 축구 협회의 이익을 위해서 호나우두가 뛸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있었다. 나이키는 호나우두의 선발출장시 90분을 다 뛰어야 한다는 조건을 계약에 넣었고, 당시 브라질 축구협회장 텍세이라는[7] 불과 결승 시작 40분 전 담당 의사의 번복을 듣고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호나우두를 투입하라는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결국 우리가 아는 대로 브라질은 결승에서 패배하고 만다. 한 마디로 불세출의 스타가 어떻게 상업적인 욕망에 의해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사례였다.

호나우두에게는 이 결승전이 두고두고 안타까울 것이다. 축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브라질이 결승전에서 승리하고 이어지는 2002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로 우승했다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전무후무한 월드컵 3연패(1994-1998-2002)를 이루었을 것이고 호나우두는 이 세 번의 우승에 모두 개근한 주역으로(비록 1994 월드컵은 벤치 멤버였지만) 두고두고 회자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월드컵에서 3번 우승한 축구선수는 오직 축구황제 펠레 뿐이다.

Castrol Index에서 1998년 전 포지션 통틀어 11위, 포워드론 1위를 했다. 점수는 9.20

8 1999 코파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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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대회에 이어 99년에 열린 파라과이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브라질은 6경기 전승, 17골 2실점을 기록하며 최종 보스로 군림했다. 첫 경기부터 베네수엘라에게 7:0으로 악몽을 선사했고 결승전도 3:0 스코어로 우루과이를 발라먹으며 손쉽게 우승했다.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호나우두와 히바우두는 사이 좋게 5골씩을 넣고 득점왕도 나눠 먹었다. 국가 대표 호나우두의 절정기였다.

9 2002 한일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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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상승세였지만, 상술했듯 호나우두는 99년 말부터 시작해 2년이 넘는 기간을 부상으로 신음하지만 정말 불사조처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딱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점에서 부상에서 회복해 버린다. 호나우두에게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전설을 쓰기 시작했다. 브라질이 월드컵 역사상 최악으로 꼽혔던 남미예선을 힘겹게 통과하고 맞이한 월드컵에서 호나우두는 기자들 앞에서 호기롭게 '전 경기 득점'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조별 예선 첫 경기 터키 전부터 시작하여, 중국, 코스타리카, 16강전 벨기에, 4강전 (다시) 터키, 결승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8강전 잉글랜드전에서만 골을 못 넣었다), 총 8골로 득점왕과 함께 실버볼, 그리고 이 활약에 힘입어 발롱도르를 차지했다.[8]

10 2006 독일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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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3골 1어시, 일본과 가나와의 경기에서 3골을 터뜨리며 월드컵 통산 15호골을 기록하여 쥐스트 퐁텐느와 게르트 뮐러 기록을 차례로 넘기며 월드컵 통산 최다 골을 기록했다. 19경기 15득점, 경기당 0.78골. 그렇지만 그후 8강전에서 지네딘 지단의 크로스를 받은 티에리 앙리의 골로 프랑스에게 1:0으로 패배하며 기록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에는 실패했다.끝까지 지단의 프랑스가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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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브라질 국민들 반응도 웃겼는데 월드컵 통산 최다 골을 기록했을 때 찬양 일색이던 사람들이 8강에서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탈락하자 귀국하던 대표팀에게 한 아줌마가 '호나우두 당신은 살부터 좀 빼라'(...)고 독설을 날렸던 것.전세계 어느 누가 봐도 축구선수가 아니라 야구 강타자급 뚱땡이였기 때문에 여담으로 호나우두의 월드컵 통산 최다 골 기록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경신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록이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깨져버린 데다가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7-1이라는 치욕적인 점수로 대패를 하고 말았는데, 심지어 그 경기장에서 호나우두는 해설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최다 골 타이틀도 빼앗기고 브라질도 대패한 상황에서 호나우두는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였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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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11 국가대표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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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8일에 열린 브라질과 루마니아의 친선 경기에서, 호나우두는 전반 30분 프레드와 교체되며 세인의 경악을 자아낼 정도로 뚱뚱보가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솔직히 행복해 보였다. 먹을 거 맘대로 먹고 사는 거 같아서 35세의 위대한 스트라이커는 후배들의 아낌없는 패스를 몰아받으며 은퇴 경기를 골로 장식할 절호의 기회를 잡지만 결국 골을 넣진 못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호나우두는 네이마르와 교체되며 마지막 국대 경기를 끝냈고 그에겐 국가 대표 98경기 62골이라는 기록이 남겨졌다. 그리고 이 경기를 끝으로 그는 클럽과 국가 대표팀에서 모두 은퇴하게 된다.

이처럼 호나우두는 클럽에서도 잘해왔었지만 국가대표로서는 자신이 출전한 거의 모든 메이저급 국가대표간 대회에서 득점왕을 하거나 mvp로 임명되는등 매우 빼어난 활약을 해왔다. 짧은 전성기라서 아쉬운 클럽 커리어에 비해 국대에서의 그는 커리어로 따지면 마라도나를 능가하는 대활약을 하며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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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브라질도 장유유서 정신이 출중한 거 같다. 또다른 호나우두는 벤피카와 베식타쉬에서 물경 10년을 뛰지만 국제대회 기록은 올림픽이 유일.
  2. 반대로 일본은 2승 1패를 거두고도 탈락했다. 그리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허정무가 이끌던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모로코와 칠레를 1:0으로 이겼으나 스페인에게 패한 0:3 실점으로 골득실로 밀려 일본과 똑같이 탈락했다.
  3. 나이지리아는 아르헨과의 결승전에서도 극적인 90분 역전 골로 우승하며 검은 돌풍을 과시한다. 참고로 이 때 감독이 조봉래(본프레레)...한국 국민들에게 익숙한 모습보다 조금 더 젊고 조금 더 잘생겼다.
  4. 그리고 본명도 되찾은 대회였다.
  5. 이때의 브라질 공격진은 몹시 화려했는데, 그 면면이 호나우두, 호마리우, 히바우두, 베베토, 데니우손 등이었다. 누굴 없애려고...
  6. 이 때문인지 2002년 월드컵부터는 MVP 선정을 결승전 하프타임에 실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때는 올리버 칸이 골든볼 수상자로 뽑힌 후에 후반전에 실책성 플레이로 실점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바람에 2006년 월드컵부터는 아예 결승전 후반전 경기 종료 후 MVP를 뽑는 현행 규칙으로 자리잡았다.
  7. 아벨란제의 사위였다.
  8. '월드컵 득점왕은 6골을 넘기지 못한다'라는 징크스가 생긴 이후 이 징크스를 깬 유일한 사례이다. 그걸 해낸 호나우두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006년과 2010년에는 5골, 2014년에는 6골 득점자가 득점왕을 하였다.
  9. 공교롭게도 호나우두는 3번의 독일 경기서 3골을 넣었다. 98년의 평가전에서 1골, 200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2골. 총 전적 2승 1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