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인명
Juninho. 전인호가 아니다.
포르투갈어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인명으로, "작은 주니오르(Junior)"라는 의미이다. "비슷한 예로 작은 호나우두"라는 의미를 가진 "호나우지뉴"가 있다.
"작은 주니오르"란 의미처럼 주니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의 풀 네임에 "주니오르(Junior)"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주닝요라고도 하는데,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법에 의하면 정확한 표기는 주니뉴가 맞다.
2 브라질의 축구 선수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3 브라질의 축구 선수 주니뉴 파울리스타
4 Anselmo Vendrechovski Júnior
파일:Attachment/Anselmo Vendrechovski Júnior.jpg
주닝요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
티그레스 데 라 UANL No.3 | |
안셀무 벤드레초프스키 주니오르 (Anselmo Vendrechovski Júnior) | |
생년월일 | 1982년 9월 16일 |
국적 | 브라질 |
출생지 | 웬체슬라우 브라즈 |
포지션 | 중앙 수비수 |
키 | 181 cm |
프로입단 | 2002년, 코리치바 FC |
소속팀 | 코리치바 FC (2002~2004) 보타포구 FR (2005~2007) 상파울루 FC (2008) 보타포구 FR (2009~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임대) (2010) 티그레스 데 라 UANL (2010~) |
4.1 개요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로, 일명 주닝요(Juninho)라고 한다.[1] 멕시코 리그의 티그레스 데 라 UANL에서 중앙 수비수로 뛰고 있다. 무게를 잔뜩 실어 오른발로 차는 프리킥이 워낙 빠르고 강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평을 받는데, 어느 정도냐면 프리 킥 상황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프리 키커 중 한 명인 김두현을 제치고 프리 킥을 전담할 정도.
덧붙여서 할아버지는 폴란드인이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에 브라질로 건너와 살았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레흐 벤드리호프스키(Lech Wędrychowski)'였으며, 아버지대에 이르러 조금 변형된 '벤드레초프스키(Vendrechovski)'가 성씨로 정해졌다.
4.2 선수 경력
1997년 브라질 리그의 코리치바 FC에서 데뷔했으며, 2005년 보타포구 FR으로 팀을 옮겼다. 입단 첫 해에는 많은 기회를 얻지는 못했으나, 2006년 주전 수비수인 하파엘 셰이트가 부상을 입어 경기에 나오지 못하자 출전 기회를 늘렸다. 2007년부터는 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리그에서 32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넣어 팀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리며 '2007 시즌 브라질 리그 최고의 중앙 수비수' 3위에 올랐다.[2]
그 해 12월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브레누의 대체자를 찾던 상 파울루 FC에 3년 계약으로 이적해 2008년 리그 우승을 맛보았으나, 정작 본인은 SE 파우메이라스와의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려 리그에서 불과 8경기만을 뛴 채 2009년 1월 전 소속팀인 보타포구 FR로 돌아왔다. 복귀 이후 다시 팀의 주장을 맡아 리그에서 34경기에 출전해 7골을 득점하며 원래 폼을 되찾았지만, 팀은 힘겨운 강등권 경쟁 끝에 15위로 가까스로 잔류에 성공했다.
2010년 1월 임대 형식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했으며,[3] 축빠들에게 친숙한 주니뉴 페르남부카누처럼 프리킥을 잘 찬다며 열심히 언플을 해댔다. 그 말처럼 프리 킥만큼은 실제로 위력적이었는데, 시즌 초반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2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를 견인할 당시 기록한 역전골이 프리 킥 골이었다. 또한 동국대학교와의 FA컵 32강전에서 프리 킥과 중거리 슛으로 두 골을 넣어 팀의 2:0 승리를 이끌기도 했으며, 싱가포르 암드 포스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기록한 30 m 프리 킥 골이 'ACL 퀘스트넷 이 달의 골'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활약으로 그랑블루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반전이 있었으니 바로 수비수가 그것만 잘한다는 점(...). 수비수로서는 다소 평범한 체격을 가져 몸 싸움과 볼 경합 등 수비 능력이 그다지 좋지 못했으며, 스피드에서도 문제를 노출해 본래 목적인 수비 강화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겨 조원희와 함께 1차 저지선을 담당했으며, 정확도와 파워를 모두 갖춘 킥으로 역습 상황시 예리한 패스가 전방과 좌우 측면으로 정확하게 공급하는데다가 세트 피스에서 득점을 만들기까지하며 수원의 상승세를 주도했다. 하지만 몇 경기 이후 상대 팀들이 프리 킥과 슛 기회를 내주지 않는 전술을 펼쳐 그것 또한 한계를 드러냈고, 부진한 경기를 보여주며 벤치로 밀려난 뒤 자신을 영입한 차범근이 시즌 도중 팀을 떠나자 결국 원 소속 팀인 보타포구로 복귀해 수원의 먹튀로 남게 되었다.
원 소속 팀 복귀 이후 멕시코 리그의 티그레스 데 라 UANL로 이적했으며, 자신의 장기인 프리 킥을 앞세워 주전 자리를 차지해 2011년 아페르투라 우승에 공헌하였다.
5 Junio César Arcanjo
파일:Attachment/Junio César Arcanjo.jpg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신영록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직후 | |
풀 네임 | 주니우 세자르 아르칸주 (Junio César Arcanjo) |
생년월일 | 1983년 1월 11일 |
국적 | 브라질(Brazil)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 Midfielder) |
키 | 176 cm |
프로 입단 | 2002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클럽 경력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2002~2007) 플루미넨시(임대, 2005~2006) CD 나시오날(2007~2012) EC 바이아(임대, 2009~2010) 대구 FC(임대, 2011) 히우 브랑쿠(2013) 구아라칭게타(2013) 아나폴리스(2014~ ) |
5.1 개요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로, 일명 주닝요(Juninho)라고 한다.[4][5] 아나폴리스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K리그에서 뛸 당시에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홍길동'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적극적으로 수비 가담을 했다. 패싱 능력과 경기 조율 능력 등 기술적인 부분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5.2 선수 경력
1996년 브라질 리그의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데뷔했으며,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플루미넨세 FC로 임대되어 활약했다. 2007년 포르투갈 리그의 CD 나시오날로 이적해 자신의 첫 해외 이적을 이뤄냈으며,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브라질 리그의 EC 바이아로 임대되기도 했다.
2011년 계약금 7만 달러와 연봉 20만 달러에 1년 임대 형식으로 대구 FC에 입단했으며, 먼저 영입한 끼리노와 함께 호흡을 맞출 것으로 기대되었다. 팀의 프리시즌 훈련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적 이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코너킥, 프리킥 등 세트 플레이를 맡기도 했으며, 8 라운드인 울산 현대 호랑이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데뷔 골을 터뜨렸다. 15 라운드인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역시 페널티 킥으로 득점에 성공해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으며, '15 라운드 베스트 11'에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체력 저하로 부진이 계속되어 구단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는 못했고, 결국 시즌 종료 이후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15경기 2골이라는 기록을 남긴 채 원소속팀으로 복귀하였다.
2003년 브라질 U-20 국가 대표팀에 발탁되어 FIFA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6경기를 뛰며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득점하는 등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
6 Carlos Alberto Carvalho dos Anjos Junior
파일:Attachment/Carlos Alberto Carvalho dos Anjos Junior.jpg | 풀 네임 | Carlos Alberto Carvalho dos Anjos Junior (재티아 나이트 카를루스 알베르투 카르발류 투스 안주스 주니오르) | |
생년월일 | 1977년 9월 15일 | ||
국적 | 브라질(Brazil) | ||
출생지 | 살바도르 | ||
포지션 | 스트라이커(Striker) | ||
키 | 174 cm | ||
프로 입단 | 1996년, 바이아 | ||
클럽 경력 | 바이아(1996~1998) 빌라 노바 FC(1999) 우니앙 상조앙 EC(2000) SE 파우메이라스(2000~2002) 가와사키 프론탈레(2003~2011) 가시마 앤틀러스(2012~2013) |
6.1 개요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로, 일명 주니뉴(Juninho)라고 한다. 과거 일본 J리그의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스피드와 슈팅에서 강점을 보이며, 뛰어난 득점력을 겸비했다.
원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나, J리그 이적 이후에는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6.2 선수 경력
1996년 브라질 리그의 코리치바 FC에서 데뷔했으며, 이후 발라 노바 FC와 우니앙 상 조앙 EC를 거쳐 2000년 SE 파우메이라스로 이적했다. 2002년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후 부진의 늪에 빠지며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막지 못해 흐지부지되었다.
그 뒤 2003년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해 일본 무대를 밟았으며, 당초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포지션을 스트라이커로 변경했다.[6] 입단 첫 시즌부터 가공할 만한 득점력을 보여주었으며, 두 시즌만에 39경기 37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하며 당시 2부 리그였던 팀을 1부 리그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활약상으로 인해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레알 베티스로부터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팀에 충성심을 보이며 잔류를 선택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기록을 세웠으며, 2007년에는 31경기에서 22골을 넣어 1부 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은 2006년과 2008년, 2009년에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2007년과 2009년에는 J리그컵에서 준우승에 올랐다.
엄청난 활약으로 한 때 J리그 최고 몸값 선수에 등극하기도 했지만, 비록 이후 사과하긴 했지만 2011년 9월 24일 자신의 J 리그 200번째 출전 경기인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되자 감독의 악수를 거부하고 경기가 끝난 뒤 무단으로 귀가해 물의를 빚었다. 여기에 2011년 32경기에서 9골을 넣으며 이전에 비해 다소 저조한 활약을 보였으며, 결국 2012년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였다.
1996년 브라질 청소년 대표로 4경기에 출전한 바 있다.
2008년 일본 축협의 제안으로 시민권을 따 귀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7]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결국 귀화 신청이 무산되었다(...).[8]
정대세가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독일 무대로 이적하기 전까지 함께 투 톱을 맞추던 상대였으며,[9] 이 투 톱은 2007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전남 드래곤즈를 탈탈 털어버렸기 때문에 한국 축빠들 사이에서도 제법 유명하다(...).[10]
이후 2009년 한일 올스타전 대회인 '조모컵' 당시 J리그 대표로 참가했으며, 1골을 넣어 팀의 4:1 승리에 일조해 한국 축빠들에게 여러모로 인상을 남겼다(...).
- ↑ 물론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법에 의하면 정확한 표기는 주니뉴이지만, K리그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주닝요라는 이름을 등록명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 참고로 당시 팀내 최다득점자는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뛴 바 있는 도도이며, 리그에서 15골을 넣었다.
- ↑ 수원으로 입단하기 이전에 몇몇 언론으로부터 3년 계약설이 제기되었는데, 구단측은 이를 부인했다. 뭐, 진실은 저 너머에 있지만...
- ↑ 이름 표기에 대해서는 위의 주닝요 참조.
- ↑ 처음 입단 당시에는 주니올(Junior)이라는 이름을 썼었는데 결국 등록명은 주닝요로 정해졌다.
- ↑ 당초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주니뉴 대신 CR 플라멩구의 산드루 히로시를 영입할 계획이었지만, SE 파우메이라스와의 연습 경기에서 주니뉴의 기량을 확인하고 영입 대상을 주니뉴로 바꾸었다고 한다.
- ↑ 물론 주니뉴 본인도 귀화를 원했으며, 여기에는 비단 일본 국가 대표팀에 선발되는 것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지낼 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 또한 작용했다.
- ↑ 일본어를 듣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말하는 것이 능숙하지 못했다고 한다.
- ↑ 2009년에는 서로 득점왕 경쟁을 벌이다보니 페널티 킥 상황에서 서로 자기가 차겠다고 설전을 벌인 바 있는데, 결국 감독이 나서 주니뉴를 페널티 킥 키커로 결정했다.
- ↑ 당시 전남과 가와사키는 3차전과 4차전에서 만났는데, 3차전에서는 주니뉴가 2골을 넣었으며, 4차전에서는 주니뉴가 1골을 넣고 정대세가 2골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