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말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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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름파올로 체사레 말디니
(Paolo Cesare Maldini)
생년월일1968년 6월 26일
국적이탈리아(Italy)
출생지밀라노(Milano)
신체 조건186cm, 86kg
포지션풀백(Full-back), 센터백(Centre-back)
유소년 클럽AC 밀란 (1978 - 1985)
소속 클럽AC 밀란 (1985 - 2009)
국가 대표126경기[1] 7골
프런트마이애미 FC (2015 - )
AC 밀란 영구결번
No. 3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프랑코 바레시
(1991~1994)
파올로 말디니
(1994~2002)
파비오 칸나바로
(2002~2010 )
EURO 2000 BEST XI
FW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FW
프란체스코 토티
MF
지네딘 지단
MF
파트리크 비에이라
MF
에드가 다비즈
MF
루이스 피구
DF
파올로 말디니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로랑 블랑
DF
릴리앙 튀랑
GK
프란체스코 톨도
2005 FIFPro World XI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프랭크 램파드
MF
클로드 마켈렐레
MF
지네딘 지단
MF
호나우지뉴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존 테리
DF
카푸
GK
디다
1995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조지 웨아
2위
파올로 말디니
3위
위르겐 클린스만
1994 Ballond'or
수상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2위
로베르토 바조
3위
파올로 말디니
2003 Ballond'or
수상
파벨 네드베드
2위
티에리 앙리
3위
파올로 말디니

1 소개

"현 시점에서 리오넬 메시가 최정상에 있고 카카가 깊은 인상을 줬으며 지단은 의심할 나위 없는 천재였으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파올로 말디니다."

- 알렉스 퍼거슨

AC Milan No. 3.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자 올 타임(All-Time) No.1 레프트백.

디에고 마라도나, 마르코 반 바스텐, 로타르 마테우스, 로베르토 바조, 호마리우,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물론 이건 극히 일부분이다!)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과 공식경기에서 모두 상대해본 혹은 동료로 같이 뛴 유일한 축구선수.[2]

푸욜이나 긱스, 토티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 있었을 때의 라울조차도 그의 아성에 미치지는 못했다.

여담으로, 이름의 스펠링 Maldini를 재배치하면 'Di Milan'. "밀란의" 라는 뜻이 된다.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말디니 가문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냥 우연으로만 생각하기엔 운명적이다.

80년대부터 00년대 중,후반까지 축구사를 관통한 역사 자체이며 산 증인. 그와 함께 필드를 뛰었던 선수들은 세월을 못이기고 하나 둘 역사의 뒤로 사라졌지만 말디니는 굳건하게 20년 넘는 세월동안 산 시로와 밀란 그리고 이탈리아를 지켰다. 밀란 제너레이션의 1,2기를 모두 주전으로서 이끌었다는 점만 생각해봐도 얼마나 오랫동안 뛰었는지 알 수 있다.

프란츠 베켄바워, 프랑코 바레시, 가에타노 시레아, 다니엘 파사레야, 바비 무어,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함께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수비수. 거기다 저 6명은 모두 리베로 보직의 선수거나 센터 백인 데 반해 말디니의 주포지션은 왼쪽 풀 백이다.[3]

체사레 말디니의 아들이다.

2 선수시절

1985년 1월 20일, AC 밀란 vs 우디네세. 세르지오 바티스티니의 부상으로 교체된 말디니, 이 때 나이 고작 16세. 더 놀라운 건 17세의 나이일 때 AC 밀란의 주전이 되었다.

그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오로지 AC 밀란을 위해 활약했다. 자신의 아버지인 체자레 말디니와 함께 AC 밀란 최고의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다.

2.1 커리어

국대엔 88년, 19세의 나이에 승선되면서 그때부터 2002년 은퇴하기 전까지 국대에서도 언터처블이었다. 아주리에선 총 126경기를 뛰면서 칸나바로에 의해서 기록 경신이 되기 전까지 아주리 최다 출전자였다.

2.1.1 클럽 커리어

말디니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많은데, 설명하려면 입이 아플 정도. 챔피언스 리그 우승 5회[4], 세리에 A 우승 7회, 수페르코파 우승 5회, UEFA 슈퍼컵 우승 5회, 인터컨티넨탈 컵 우승 2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까지. 상당히 사기적인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2.1.2 국대 커리어

화려한 클럽 커리어를 뒤로 하고...

국대에선 콩라인.

국대에선 클럽과는 다르게 우승컵을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디니는 4번의 월드컵(90, 94, 98, 2002)와 2번의 유로(96, 2000)에 출전했는데,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3위, 94년 미국 월드컵에선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 이어 유로 2000 결승전에서도 트레제게에게 통한의 골든골을 먹고 준우승에 그쳤다. 따라서 국대에서는 무관의 제왕.

일단 국가대표 데뷔는 1988년 이었는데 확실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 답게, 88년에 데뷔하자마자 그해 유로와 올림픽에 참가한다. 유로 4강, 올림픽 4위로 그 한해를 마무리 한다.

월드컵 단일 대회 역사상 최강의 수비 라인으로 평가받고 월드 컵 단일 대회 최장 시간 무실점을 기록한 90년 월드컵 키퍼 왈테르 젱가에 말디니-바레시-페리-베르고미[5]로 이어지는 라인 중 한 명이었다. 여러모로 수비에서는 레전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대한민국에 패배해 탈락. 더군다나 이 경기에서 이천수에게 뒤통수를 까이는(...) 안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6] 그래서 그런지 2002년 월드 컵은 안 좋은 기억 밖에 없는 생애 최악의 대회라고 한다. 이 경기만 이겼으면 로타어 마테우스를 제치고 월드컵 최다 경기 출전, 최다 시간 출전 기록자에 오를 수 있었으나 무산.

흔히 90년대 말부터 00년대 초, 중반까지 이탈리아 수비 라인의 베스트를 말디니-네스타-칸나바로-잠브로타 로 뽑는데 국제 메이저 대회에서 이 라인이 제대로 가동된 적은 유로 2000과 2002년 월드컵 조별 리그 첫경기 에콰도르전밖에 없었다.

특히 유로 2000에서는 그마저도 결승전에서는 4강전에서 잠브로타의 퇴장으로 발동 될 수 없었고... 그것은 결국 결승에서 통한의 역전패로 이어진다.

그리고 2002 월드컵은 조별 리그 첫 경기를 제외하고는 부상 당한 네스타 땜빵으로 들어간 마테라치의 돌고래짓에 허우적대다가 결국 마테라치의 커버 플레이를 해주던 칸나바로가 경고 누적으로 16강전에 못 나가게 되었다. 이 직전 시즌 말디니의 선수 생활에 손꼽히는 부상이 있었고 실제로 까딱했으면 참가를 못할 뻔했었다. 이 부상의 여파가 월드컵까지 이어지는 불운이 있었다. 거기다 네스타의 대회 중 부상과 칸나바로의 경고 누적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말디니를 센터 백으로 기용했는데 한국과의 16강전은 연장 후반 안정환의 헤딩을 제대로 커버 못해서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졌다. 참고로 말디니가 국가 대항전이나 국제 메이저 대회에서 커맨더 센터 백으로 선 경기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7]

어쨌든 94년 월드 컵에서의 말디니[8]는 윙어와 무한 스위칭을 하며 상대의 오른쪽을 공격시에는 초토화, 수비시에는 우주방어로 고사시키는 포지션이었다. 특히 한창 팔팔했을 때 참가한 94년 월드컵에서는 로베르토 바조, 코스타쿠르타와 함께 셋이서 월드 컵 결승에 진출시켰다고까지 평가받으며[9] 사람들이 모르는 것 중에 하나가 "94년 월드컵 결승전 MoM'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로 2000까지 계속된다.

확실하게 센터 백으로의 포지션 체인지를 한 건 06년 쯤이었고, 그 직전 시즌까지만 해도 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로 대표되는 후덜덜한 라인의 왼쪽에서 군림했다. 이후 스탐이 떠나고 카푸가 슬슬 노쇠화하고 말디니의 체력도 떨어지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센터 백으로 완전히 보직을 변경했다.

이 즈음해서 예전같은 오버래핑보다는 네스타와 함께 안정된 수비로 안습 시절 밀란의 구세주로서 공격 조작보다는 안정된 수비를 추구했으나 은퇴 시즌에 마지막 홈 경기와 원정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삘 받으셨는지 아니면 팬들에게 옛 추억을 주려 하신 건지 갑자기 센터 백에서 상대방 진영까지 올라오셔서 패스를 찔러주시고 중거리포를 때리시는 등의 리베로 플레이를 보여주셨다.

마르첼로 리피는 파올로 말디니에게 2006년 월드컵을 함께 하자는 제의를 했고, 그 전에는 트라파토니가 말디니에게 2004년 유로 대회를 같이 하자고 제의를 했지만, 말디니는 두 제의 모두 거절.

근데 이탈리아는 2006년 월드컵에서 우승해 버렸다. 안습. 더구나 이 때 충분히 주전으로 뛸만한 기량이여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말디니가 은퇴한 직후 2010년 초에 마르첼로 리피는 이탈리아 축구 협회 측에 요청하여 이탈리아 vs 북아일랜드 경기를 말디니의 국대 마지막 경기로 정하려고 했지만, 이 역시 거절되었다. 42세에 국대에서?

2.1.3 그 외

말디니는 부상이 크게 없는 선수로 또 유명하지만, 2001/02 시즌에는 저주가 걸렸던(…) 산 시로 구장에서 그만 부상을 당해 15경기를 뛰는 데 그친 바 있다.[10] 하지만 다음해 29경기를 소화하면서 부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에서는 웬만한 젊은 수비수보다도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아스날전에선 평점이 제일 높았다. 사실 그 경기를 보면서 가장 혀를 찼던 것은, 상대 팀 아스날의 주장이라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말디니가 프로 데뷔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은 새파란 것이었으니(파브레가스 87년생, 말디니 1군 데뷔 85년)...

저 유명한 말네스카 라인이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에만 만났다면 그 당시 밀란이 챔스를 몇 번은 더 먹었을 거라고 호사가들은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90년대 말 00년대 초라면 이들 각자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었거나 전성기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 말 그대로 수비계의 갈락티코.정작 말네스카가 만났던 00년대 중반에 네스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3명은 슬슬 정점에서 내려오는 시기였다. 그리고 저 4명중 네스타를 제외한 3명이 사이좋게 돌아가면서 부상을 달아서...

다만 말디니 본인의 경우 일찍이 말네스카를 능가하는 진정한 밀란 역대 최고의 수비진이자 세계 축구 역사상 통틀어봐도 손꼽힐만한 수비진인 파올로 말디니-프랑코 바레시-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마우로 타소티 라인의 멤버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3번이나 한적이 있었으니 아쉬움은 좀 남았어도 여한은 없었을듯?[11] 어찌보면 80년대말~90년대초의 역대급 수비진과 2000년대 중반의 역대급 수비진에 동시에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이 정말이지 말디니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가 잘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원래는 2007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할 예정이였다. 재계약을 시도하던 밀란과의 협상도 연봉 문제로 진전이 안 되었지만, 5위로 그치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긴 밀란이 안타까웠는지 2008년까지 더 뛰겠다고 발표를 했고, 다음 해에도 그 때 쯤 또 한 시즌 연장. 2009년에는 결국 2위로 시즌을 마침과 동시에 은퇴를 했다. 그가 뛴 경기는 총 902경기(챔피언스 리그 등 포함) 로, 오로지 밀란에서만 뛴 경기다.

은퇴 시즌인 08/09 시즌 말기에는 유베와의 경기에서 키엘리니한테 빡쳐서 키엘리니의 목을 조르는(...) 평소 말디니답지 않은 거친 행동을 보이면서[12][13] 경고를 받기도 했고, 그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는 밀란 팬들에게 야유를 받기도 했다. 밀란 팬들은 말디니를 존중하지만, 우리의 캡틴은 영원히 바레시라고 했는데, 이는 예전 2004/05 이스탄불에서 벌어졌던 결승전에서 밀란 팬들이 밀란의 드라마틱한 패배에 분노하여 비난하자 말디니가 역으로 팬들을 비난했던 것에 대한 보복이였다나 뭐라나. 또 다른 설은 밀란 보드진의 막장 경영 때문에 애꿎은 말디니가 희생되었다는 것.

어쨌든 이 일은 유럽 축구계의 저명한 선수, 인사들 모두가 '희대의 병신짓'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희대의 병크였다.[14] 그래서일까, 바르사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08-09 챔스 우승 이후 우승의 영광을 말디니에게 돌리는 등 그에 대한 존경심을 전했다.

이후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과 함께 첼시로 간다는 루머가 있었고, 실제로 안첼로티가 말디니에게 코치직을 제의했었다. 그러나 말디니는 이를 거절했고, 밀란 유스 팀의 코치를 맡는다는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

3 은퇴 후

2015년 5월 20일 북미 축구리그(NASL)[15]의 12번째 팀 마이애미 FC 구단주로 취임하였다. 해당 링크

밀란이 최근 들어서는 폭망한 상황인데 지금 개판 5분전인 밀란을 보는 말디니의 심정은 어떨까...[16][17]

이후 망해가는 밀란에게 쓴 소리좀 하시다가 뜬금없이 스페인 라 리가의 아틀레틱 빌바오에게 원클럽맨 트로피를 받게 되었다. 물론 말디니는 밀란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빌바오와 엮일 일이 전무하지만 빌바오의 특성을 볼때 끝까지 클럽을 지킨 파올로 말디니에 대한 예우와 존경심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밀란 팬들은 클럽 최고의 레전드가 다른 팀에서 더 대우받는 모습을 보고 씁쓸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18]

4 플레이 스타일

수비 끝판왕
풀백의 플레이의 교과서 그 자체
처음엔 왼쪽 풀 백이었지만 2002년부턴 센터 백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고 나중엔 오른쪽에도 기용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원래 그가 오른발잡이였다는 것. 왼쪽에 주로 기용될 것이 확실시되자 왼발을 오른발과 같이 쓰기 위해 죽도록 연습했다고 한다.[19]1998년 월드컵에서의 말디니의 공격력과 수비력[20]

4.1 공격력

개인기가 좋아서 다른 수비수들이 공격수 사이에 둘러싸이면 주로 뻥축구를 하는 것과는 달리 말디니는 개인기로 공격수를 농락하고 드리블하여 오버래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흔히 말디니의 플레이를 '우아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의 이런 훌륭한 개인 능력에 있다. 이런 개인 능력의 진수가 가장 잘 발휘된 장면은 이탈리아가 3 백을 쓰고 윙 백으로 말디니가 나선 유로 2000인데, 특히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말디니가 측면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때는 지단도 어쩌지 못했고 경기는 이탈리아가 잡고 있었다. 물론 말디니는 당시에도 노장이었다. 프랑스의 골은 말디니의 체력이 떨어진 이후에 나왔다.


이 영상을 보라. 도대체 이게 어딜 봐서 수비만 잘하는 풀 백이라고 하겠는가. 전성기 시절 그의 공격력은 무시무시했다.

4.2 수비력

수비 능력은 역사상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훌륭하다. 수비수로서 가져야 하는 모든 능력을 완벽하게 갖췄다. 그 중에서도 상대의 공격 방향을 예측하여 그 맥을 끊어 버리고 공격하지 못하도록 구석으로 밀어 버리는 능력은 절륜 중에서도 절륜. 유로 2000에서 네덜란드와의 4강전에서 당대 최고의 스피드 윙어인 오베르마스가 말디니를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돌파하지 못하고 막혔다. [21] 지금도 '말디니 오베르마스' 라고 치면 그날 경기에서 말디니와 오베르마스의 1대 1 경합 동영상이 있다. 말디니의 수비력을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장면. 특히 이 경기는 이른 시간에 이탈리아의 퇴장이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했다. 오베르마스 역시 대단한 선수[22]기에 말디니를 돌파할 뻔한 모습도 보여주지만 그 때마다 말디니가 반칙을 써서라도 그를 확실하게 저지했다. 동료들 입장에서는 든든할 수밖에 없는 수비력. 그러니까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최근의 로벤이 컨디션도 빨딱 서 가지고 돌파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단 한 번도 돌파를 못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다 오베르마스만 돌파를 시도한 게 아니라 오른쪽 풀 백이었던 젠덴이 오베르마스와 계속 스위칭하면서 돌파한 것. 사실상 혼자서 2명을 상대했다는 건데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다는 건 경이적이다.[23]

필요없는 첨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윙, 풀 백으로서는 역대급 수비력을 자랑했지만 말년에 뛰었던 중앙 수비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24] 주포지션인 레프트백으로는 단연 1위.[25]

5 퇴장? 그게 뭐죠?

더 놀라운 사실은 20년이 넘는 커리어 중, 퇴장당한 건 단 두 번 뿐이라고 한다. 그 말은 말디니가 파울을 할 때도 상당히 지능적으로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위의 오베르마스와의 1대1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절대 이 선수가 신사적으로 축구하는 선수라서 퇴장이 없는게 아니다. 손으로 밀기 다리로 걸기 모두 다 폭 넓고 더럽게 구사한다. 단 심판이 카드를 꺼내야 하나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게 하는 수준으로. 그렇기 때문에 호나우두디에고 마라도나를 비롯해 지네딘 지단,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호나우지뉴, 루이스 피구 같은 선수는 말디니가 가장 힘들었던 수비수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 반면 말디니 자신은 호나우두가 밀란으로 이적할 때 "호나우두는 여지껏 내가 마크했던 공격수 중 두 번째로 막기 힘든 선수"라며 격찬했다. 두 번째라니 무슨 개허세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첫 번째가 마라도나...

여담으로 처음 마라도나와 붙었을 때 '에이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뭐 다를 게 있겠어?' 라고 생각하고 마라도나와 경기에서 부딪혔고 당연히 그 경기에서 몇번의 신체적인 충돌이 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허벅지가 쑤셔서 보니 멍이 나있었다고...

6 기타

파일:Attachment/sizemaldini legend.jpg

풋볼 매니저에서 기묘하게 부상을 당한 짤방이 돌기도 했다.[26] 훈련이라고 했지만 축구훈련이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6.1 부전자전

두 아들인 크리스티앙 말디니와 다니엘 말디니도 지금 현재 AC 밀란 유스 팀에서 성장 중이며 둘다 수비 쪽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다고... 다만 큰 아들 크리스티앙 말디니는 브레시아 유스팀으로 임대를 간 상태이다.

만일 두 아들 중 한 명만 AC 밀란 성인 팀에 데뷔만 하게 된다면, 아버지의 후광 때문에 성격이 웬만큼 개차반만 아니면 주장 완장을 채워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말디니 家는 3대가 유럽 굴지의 명문 클럽의 주장을 역임한 가문이 된다.[27]

그의 등번호인 3번은 영구 결번 되었으며, 말디니는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이 나중에 성인 팀에 데뷔를 할때 그 번호를 물려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파올로(말디니)의 등 번호 3번 역시 아버지였던 체사레 말디니의 3번을 물려받은 것이니, 어쩌면 등 번호마저 3대가 이어서 달게 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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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짜리가 벌써부터 카테나치오를 하고 있다.
5살짜리가 사람은 내버려두고 공만 슬쩍 빼내는 것도 놀라운데 잘 보면 태클을 하기 직전 일부러 속도를 줄이고 있다(...). 참고로 동영상 속의 세도르프라는 선수는 그냥 세계적인 선수가 아니라 말디니와 마찬가지로 FIFA 100에 선정된 선수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 다른 세 개의 팀[28] 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며,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 붙박이 멤버이기도 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꼭 영입하고 싶었던 선수라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인 체자레 말디니를 경기장에서 만나 자신이 얼마나 그를 영입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자 체자레 말디니는 미소지으며 "제 할아버지도, 제 아버지도, 저도 AC 밀란에서 뛰었습니다. 제 아들도 그리 해야지요."라고 답했고 퍼거슨 감독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고.

아무튼 크면 얼마나 잘해줄지 기대가 되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유스 레벨에서도 파올로의 두 아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명성을 잇기엔 너무도 평범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큰 아들이 2013-14 시즌 겨울 이적 시장 때에는 1군에 올라와서 훈련 기회를 받고, 2014-15 시즌부터 프리마베라의 주전으로 뛴다니 일말의 기대감은 놓지 말자..였으나 첫째는 결국 일말의 성장도 보여주지 못한채 리가프로의 레지아나로 이적했다.[29]

현재는 둘째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1]

7 기록

  • FIFA 100에 선정
  • 월드 사커에서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바 있다. 이는 월드 사커 사상 수비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 1994 미국 월드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
  • 셀틱전을 통해 챔피언스리그에서 100번째 경기를 달성하였다.[30]
  • 통산 성인 경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한 선수이다. [31]
  • 2004/05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말디니의 골로 2개의 기록이 갱신되었다. 하나는 결승전 최단 시간 골 기록, 또 하나는 결승전 최고령 득점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이...
  • AC 밀란에서는 902번의 경기를 가졌다. 흠좀무.
  • 인터콘티넨털컵에 5회 진출. 이는 코스타쿠르타와 같은 기록이다.
  • UEFA 챔피언스리그에선 8번의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최다 우승 기록자인 프란시스코 헨토(레알 마드리드)와 동일한 기록이다.
  • 부자가 챔스 우승을 경험하였다.[32] 파올로의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는 주장으로서 처음으로 밀란에게 빅 이어를 안겨준 바 있다.[33] 현재 밀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장식한 알파가 체사레라면 오메가는 파올로라고 볼 수 있다.
  • 월드컵에선 23경기를 뛰었다. [34]
  • 월드컵에서 뛰었던 23경기는 모두 풀 타임 출장이다.
  • 월드컵에서 무려 2217분을 뛰면서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35].
  • 세리에 A에서 58경기 무패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1991년 ~ 1993년)
  • 22세에 26개의 타이틀을 얻었다.
  • 월드 사커에서 1999년에 선정한 20세기 역대 최고의 선수 21위(말디니 이상의 순위에서 이름을 올린 수비수는 베켄바워와 무어, 그리고 바레시. 각각 순위는 베켄바워는 4위, 무어는 14위, 바레시는 19위). 해당 링크
  • 월드 사커에서 2013년에 선정한 20세기 역대 베스트 11에서 당당히 왼쪽 풀백을 차지했다. 참고로 월드 사커에서 뽑은 역대 베스트 11 수비 라인은 말디니-베켄바워-바비 무어-카푸. 말디니는 이 수비 라인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지만 당당하게 왼쪽을 차지한 것을 보면 말디니의 위대함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랑스 풋볼지 선정 지난 60년간 최고의 선수부문 1위에 선정되었다. 이건 꽤나 괄목할 것인데 어떤 조사기관을 찾아봐도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뽑히는 베켄바워를 제치고 1위에 선정된 것이다.

8 파올로 말디니에 대한 말, 말, 말

"풀백으로 뛰면서 그는 레프트 윙을 아예 자기 소유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는 모든 걸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쉬운 것인 마냥 해냈다."

- 필리포 갈리
"말디니는 39살에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그만큼 그는 뛰어난 운동선수고,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선수와 월드클래스 선수와의 차이는 말디니에서 볼 수 있다."

- 프랑코 바레시
"내가 본 선수들 가운데 가장 열심히 노력하던 선수였다. 그가 수비에 있을 땐 정말 믿음직스러웠고, 공격에 있어서는 창의적이었다. 말디니는 진정한 리더쉽을 갖춘 훌륭한 올-라운드 축구선수이다."

- 안드리 셰브첸코
"말디니는 축구에서 좋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대표하고 있다."

- 다비드 비야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뛰면서 말디니를 상대로 몇번 맞붙었었다. 나는 그가 윙어로부터 따돌려지는 것을 한번도 보질 못했다."

- 테디 셰링엄
"그는 스타일리쉬한 센터백과 풀백이었다. 말디니의 경기를 읽는 능력, 태클의 타이밍 그리고 경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그를 다른 선수들로부터 구분시켜줬다."

- 데니스 어윈
"말디니는 내가 상대해 본 수비수들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수비수였다. 그는 강했고, 똑똑했고, 훌륭한 맨-마커였다. 그는 완벽한 수비수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그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수비수다. 그에 대해서 정말 놀라웠던 것은, 그가 공을 가졌을 때 그는 수비수가 아닌, 정말 고풍스러운 미드필더와 같은 플레이를 펼쳤다는 것이다."

- 호나우지뉴
"바레시 옆에 서 있던 말디니는 내 선수 생활 본 수비수 중 최고였다. 80년대 후반 AC밀란을 굴리트와 반 바스텐의 공격 중심 팀으로 기억하는데, 그 팀은 말디니를 중심으로 한 단단한 수비로 구성된 팀이었다."

- 마르셀 드사이
"말디니의 공격 그리고 수비는 둘 다 월드클래스였다. 그는 18세 때의 기량을 39살이 된 2007년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루드 굴리트
"1994년, AC 밀란이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린 챔스 결승을 기억하나? 바레시와 코스타쿠르타가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했을 때, 센터백으로 출장한 말디니는 일생동안 거기에서 뛴 것마냥 우월했다."

- 로날드 쿠만
"훌륭한 선수들이 있고,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경지를 뛰어넘는 지배자가 있다. 말디니가 그 예시다. 그는 밀란의 상징이다."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 파올로 말디니는 내가 상대했던 수비수들 중에서 단연 최고다."

- 호나우두
"말디니는 제게 있어서 아이돌 중 한명, 그를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매우 머리가 좋은 선수며, 팀을 조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디니밖에 가능하지 않은것. 제 꿈의 하나는 그를 추월하는 것이었습니다."

- 호베르투 카를로스
"그보다 더 뛰어난 풀백이 있었던가?"

- 데니스 베르캄프
"그는 모든 스포츠스타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 릴리앙 튀랑
"나에게 있어서 말디니는 본받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 알레산드로 네스타
"우리 팀(AC 밀란)이 이스탄불에서 패하지 않았떠라면, 말디니가 골든볼(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됐을 것이다."

- 안드리 셰브첸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밀란의 위대한 힘이며, 모범이 되는 선수입니다. 그와 같은 선수는 이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마시모 암브로시니
"브라질이 펠레를 잃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말디니를 잃어야한다."

- 지아니 리베라
"말디니는 20년 이상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나는 그에게 정중히 모자를 벗으며 정말 잘했다라고 밖에 할말이 없다."

- 다비드 트레제게

9 경력

9.1 우승

9.2 준우승

9.3 국가대표팀

9.4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유럽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84/85AC 밀란세리에 A100000
1985/86AC 밀란세리에 A2706060
1986/87AC 밀란세리에 A29170--
1987/88AC 밀란세리에 A2621020
1988/89AC 밀란세리에 A2607070
1989/90AC 밀란세리에 A3016080
1990/91AC 밀란세리에 A2643040
1991/92AC 밀란세리에 A31371--
1992/93AC 밀란세리에 A31280101
1993/94AC 밀란세리에 A3012040
1994/95AC 밀란세리에 A29210110
1995/96AC 밀란세리에 A3003080
1996/97AC 밀란세리에 A3113060
1997/98AC 밀란세리에 A30070--
1998/99AC 밀란세리에 A31120--
1999/00AC 밀란세리에 A2714060
2000/01AC 밀란세리에 A31140140
2001/02AC 밀란세리에 A1500040
2002/03AC 밀란세리에 A29210190
2003/04AC 밀란세리에 A3000090
2004/05AC 밀란세리에 A33000131
2005/06AC 밀란세리에 A1420090
2006/07AC 밀란세리에 A1810090
2007/08AC 밀란세리에 A1710040
2008/09AC 밀란세리에 A3000020

9.5 개인 수상

  1.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역대 3위,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가 2002년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있었던 우리 나라와의 월드컵 16강전이다.
  2. 선수생활을 한 년도로만 따지면 가에타노 시레아, 마르코 타르델리, 파올로 로시, 울리 슈틸리케 (1982년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이다.) 까지도 겹친다.
  3. 물론 30대 중반 이후에는 체력 문제로 센터 백으로 전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풀 백으로도 뛰었다.
  4. 밀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가 7회라는 점으로 볼 때 클럽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태반 이상의 공적을 세운 셈.
  5. 페리와 베르고미는 유기적인 포지션 체인징을 보여주었다. 일단은 페리는 센터백.
  6. 이천수가 JTBC 뉴스룸에서 밝힌 바로는 일부러 깠다고 했다.
  7. 보통 말디니가 센터백에서 뛸때는 전문 센터백인 파트너의 커맨드를 받으며 보조를 맞췄다. 바레시, 코스타쿠르타, 네스타 등.
  8. 이때 대표팀 감독이 바로 밀란 제네레이션 시절 은사였던 아리고 사키였다.
  9. 바레시는 부상으로 아웃. 기적적으로 결승전에서 복귀한다. 역으로 바레시의 공백을 완벽하게 커버했던 코스타쿠르타는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 불참.
  10. 그래서 데려온게 칼라제다.
  11. 네스타도 말디니와 함께 밀란의 2000년대 2차례의 챔스 우승의 주역이었다. 다만 맨유에선 트레블의 주역이었으나 밀란에선 무관으로 그친 스탐이나 아예 주역으로 챔스우승을 해보지 못한 카푸는...그대신 카푸는 국대커리어가 끝판왕
  12. 카카와의 공중 볼 경합 중에 키엘리니의 손이 카카의 얼굴에 닿았는데 그걸 본 말디니가 "너 이 새끼 왜 카카 때려"하면서 목을 조른 것.
  13. 이 일로 키엘리니는 완전 상처를 받았는데, 다름 아닌 키엘리니의 우상이 바로 말디니이기 때문. 키엘리니는 프로 데뷔 시절부터 레프트 백과 센터 백을 오갈 수 있는 차세대 말디니로 각광받기도 했고, 본인도 말디니를 따르다 못해 본인은 그에 비하면 미천한 몸이라고까지 하며 하악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당시 장면을 보면 멱살은 잡혔으나 싸우거나 화를 내기는 커녕 말디니에게 하소연하는 키엘리니의 모습에서 억울함과 서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실제로 나중에 울었다...안습. 결국 말디니가 추후에 사과했다.
  14. 심지어 상대였던 로마의 감독 스팔레티도 격분하였다.
  15.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의 하부리그로 2부리그 개념이지만 별도의 승강제는 없다.
  16. 말디니가 건재하던 시절의 밀란은 챔스 진출은 기본으로 깔고 심지어는 결승 진출만 8회라는 정신 나간 전적을 자랑해서 강적인 면모를 자랑하는 팀이었는데 지금은 유로파리그 진출도 굉장히 어렵다!
  17. 당연히 폭망한 밀란에 대해 지적을 한 적이 있다.
  18. 지금 밀란이 망란화되면서 최근까지 클럽을 지탱하던 모든 레전드와 척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다 레전드 대우를 형편없이 한 밀란 보드진, 그리고 베 총리 때문이다.
  19. 말디니가 정말 대단한 것은 죽도록 연습한 덕분에 프리 킥과 같은 데드 볼 상황에서도 왼발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 아무리 양발을 잘 사용하더라도 데드 볼 상황에서는 주로 자신있는 발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의 연습량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유로 2000 4강 네덜란드전 승부차기에서 왼발로 킥을 했다. 비록 결과는 실축이었지만.
  20. 공격할 때 농락당하는 선수는 지네딘 지단이고, 수비할 때 농락당하는 선수는 유리 조르카에프이다.
  21. 오베르마스가 엄청 빠르다는 걸 감안하면 스피드도 상당히 빨랐을 것이다. 게다가 그때는 말디니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33세였다. 저 나이에도 그런 미친 스피드를 탑재한 상태라는 것이다....... 애초에 테크닉이 아무리 좋아도 못따라 잡으면 무슨 소용인가?
  22. 90년대 후반에는 단연코 월드클래스 윙어였다. 2000년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기록한 250만 파운드의 이적료는 당시 네덜란드 선수 이적료 최고가를 경신한 기록. 다만 바르샤 이적 이후 부상으로 인한 스피드 저하로 폼이 확 죽어버리며 조기은퇴를 하고만다.
  23. 혼자서 2명을 상대하면 당연히 뚫리니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서는 좀 과장된 서술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2명을 정확히는 번갈아가면서 상대한 건데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스타일도 그렇고 놀라운 플레이였던 것은 맞다.
  24.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앙 수비로 형편없었다는건 절대 아니고 준수했다. 풀/윙백으로는 역대 최고급이었고 센터백으로도 당대에 뛰어난 선수였다. 93/94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4:0 승리, 94년 월드컵 준우승, 2000년대의 밀란의 두차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은 센터백 말디니가 이룬 위대한 업적들이다.
  25. 2위를 뽑는다면 90년대 이후에는 현역선수를 제외하고 호베르투 카를로스비센테 리사리수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올타임 기준으로 뽑는다면, 그들의 위치는 확 뒤로 밀려난다. 브라질 내에서만 하더라도 월드 컵 4회 출전에 2회의 우승을 이끈 니우통 산토스가 있고, 인테르의 전설인 지아친토 파케티라든가, 토탈 풋볼의 수비 핵심이었던 뤼트 크롤 등이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말디니는 꿋꿋하게 올타임 베스트 레프트백 No. 1을 지키고 있다.
  26. 자세히 보면 첫 문장에서 팀 닥터와 말디니의 이름이 바뀐 것을 볼 수 있다.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닐텐데
  27.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인 체자레 말디니도 밀란 주장출신이다. 참고로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대단한 가문.
  28.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AFC 아약스
  29. 일부 말의 의하면 축구선수를 은퇴하고 다른 직종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30. 챔피언스리그에서 100경기 이상 뛴 선수는 라울 곤살레스, 호베르투 카를루스, 안드리 솁첸코, 파올로 말디니, 데이비드 베컴, 올리버 칸, 루이스 피구, 클라렌서 세이도르프,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티에리 앙리, 게리 네빌,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이케르 카시야스, 사비 에르난데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필립 람까지 모두 18명 뿐이다.
  31. 이 기록을 달성한 또 다른 선수로는 라이언 긱스, 하비에르 사네티 등 몇명 되지 않는다.
  32. 이런 사례는 말디니 부자를 포함하여 딱 세 번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마누엘 산치스 마르티네스와 그의 아들 마누엘 산치스 온티유엘로(마누엘 "마놀로" 산치스 온티유엘로). 바르셀로나의 카를레스와 그의 아들 세르히오 부스케츠. 신기하게도 모두 부자가 같은 팀이었다.
  33. 결승 상대는 당시 구트만의 저주를 첫타로 맞은 에우제비우벤피카였다.
  34. 이 기록을 넘는 선수는 로타어 마테우스(25번)밖에 없다. A매치 150경기를 뛴 괴물인 것은 덤. 최근엔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24번째 경기를 뛰며 말디니의 기록을 넘은 또 하나의 인물이 되었다.물론 모든 경기가 풀타임은 아니었기에 말디니보다 플레이 시간은 적다.
  35. 2위는 2052 분을 뛴 마테우스
  36. 이탈리아의 스포츠 전문지 《궤린 스포르티보》(Guerin Sportivo)가 매년 유럽의 젊은 축구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