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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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리진 호주인(Indigenous Australian)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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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 해협인(Torres Strait Islanders)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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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북부 배서스트 섬의 주민. (출처 : 위키미디어 공용) 오오 몸짱 할배

1 개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유럽인이 도래하기 전부터 거주하고 있었던 민족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애버리지니 (Aborigine, 어보리진이라 알려져 있다) 또는 Indigenous Australian(호주 원주민)이라고 불리며 가끔씩 퍼스트 오스트레일리안(First Australi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Indigenous Australian이라는 개념은 다시 어보리진 호주인(Aboriginal Australians)과 토레스 해협인(Torres Strait Islanders)으로 분류된다.

퀸즐랜드 북부에선 파마(Pama)라고 하며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선 늉아(Nyunga)라고 스스로를 일컬었는데 (물론 지역차는 있다) 이를 따서 파마늉안어족이란 말이 생겼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파마늉안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북부나 태즈메이니아 섬 원주민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들의 인구는 어보리진 호주인은 60만 6164명(2011년), 토레스 해협인은 48,005명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3%를 구성한다. 특히 노던 준주(Northern Territory)에선 인구의 30%가 어보리진 호주인이지만 나머지 지역에선 비중이 적다. 원래는 250여개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상당수 언어가 사용되지 않으며 영어가 널리 사용된다. 그래도 칼라라가우야어피찬차차라어처럼 널리 쓰이는 언어도 존재한다. 이들 언어의 사용자 수를 모두 합치면 5만 명 정도로 오스트레일리아 내 한국어 사용자 수와 비슷하다.

1885년 출간된 독일의 백과사전 Meyers Lexikon에서는 이들을 흑인으로 분류했고 한동안 이러한 분류가 널리 통용되었으나, 흔히 생각하는 아프리카 계열 흑인과는 유전적 특징이 상당히 다르다. 최근에 하플로그룹 조사 등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독자적인 그룹인 오스트랄로이드인 것으로 여겨진다. 2009년 연구에 따르면 호주 원주민의 머리카락 유전자를 추출한 결과 인도 최초의 원주민인 드라비다계와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는데 원래 이주 루트가 뉴기니 지역을 통과해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으로 정착한 것이니만큼 이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1]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조상은 유럽인과 아시아인의 공통조상과의 유전적 차이가 적어도 6~7만 년쯤은 떨어져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이를 토대로 추측하여 보면, 대략 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 반도예멘의 경류를 따라 남아시아로 진출한뒤 다시 오세아니아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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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머리카락의 색이 다채로운 편이다. 갈색은 고사하고 금발도 흔한 편. 물론 흑발도 많긴 하다. 또한 머리카락을 통해 성적 이형성(Sexual Dimorphism)이 발현되는 사례라서 남성들은 위의 사진과 같이 돌돌 말린 심한 곱슬머리가 나타나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물결형의 머리가 많다. 이는 파푸아뉴기니를 포함한 멜라네시아 지역도 동일.

2 역사

2.1 식민지 개척 이전

이들은 5만여 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으며,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오스트레일리아였지만 발달된 기술 없이도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었다. 잘 알려진 것이 "세계의 배꼽" 이라고 불렸던 울루루. 다만 태평양 섬 지역에서는 비교적 널리 보급되었던 농경은 척박했던 북부로부터 인류가 유입되는 바람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사라졌다. 또한 기후 변동이 심하고 토질이 좋지 않은 특성상 농경이 도입되었어도 실패했을 확률이 높았다.[2]

한편, 물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기후가 적합한 동남부 지역에서는 야생 기장을 수확하고 화전을 통해 지력을 향상시키는 방식을 통한 원시적인 농업이 행해졌으며 어장과 수로를 통한 물고기의 양식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인근의 마오리족, 뉴기니 섬 등과 비교해도 기술적으로는 발전 정도가 낮았다. 만일 마오리족이나 파푸아인들이 기후가 비슷한 호주 동남부 원주민들과 인접해 있었더라면 이들의 농업기술이 호주에도 대대적으로 전해졌겠지만 안타깝게도 뉴기니와 뉴질랜드의 거리는 호주 동남부와는 너무 멀었다.

이외에도 노던 준주퀸즐랜드에 살던 원주민들은 해삼 채집을 위해 온 동남아시아(특히 인도네시아)인들과 자주 접촉했고, 교역도 이루어졌지만, 카누 제조법과 같이 원주민의 관점에서 쓸모있어 보이는 몇몇 기술을 제외하곤 이들이 보여준 농경이나 철 제련법을 받아들이진 않았고, 발전된 형태의 국가도 나오지 않았다.

2.2 식민지 개척 이후

호주의 흑역사

18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 전염병이 들어와 1788년부터 1900년까지 원주민의 90%가 감소했으며 19세기경엔 이에 학살까지 더해져 감소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침략에 저항해 3,000여 명을 살해했지만 백인 이민자들은 이보다 많은 수를 살해해 (약 1만명 이상) 원주민 인구는 18세기 약 50만여 명에서 5만 명으로 10분의 1으로 줄어들었다.

흔히 원주민들은 오랜 옛날부터 북서부를 중심으로 살았다는 통설이 돌고 있지만, 《총, 균, 쇠》에 따르면 사실은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 동부에서는 다 죽거나 쫓겨나고 백인들이 그 곳에 적합했던 지중해성 작물을 기반으로 정착하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엄밀히 따져보면 현재 원주민 비율이 30%에 육박하는 노던 준주의 경우 분류상 동부에 속한다.

이후 백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완전히 장악한 이후 원주민들은 광산 등에서 노동자로 일했으며 세계대전 때에도 군인으로 참전하기도 되었다. 1930년대부터 원주민 인구는 다시 늘기 시작했으나 이미 태즈메이니아에서는 절멸된 후였다.

백인과의 화합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 뉴질랜드마오리족과는 달리 20세기 중반까지 상당히 핍박받으며 지내왔다. 심지어는 시민이 아니라 자연 유산으로 분류되기도 했을 정도. 호주가 백호주의를 버리기 시작한 1960년대에 와서야 국민들 대다수의 투표로 다른 민족들과 함께 선거권을 인정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1900년부터 1972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와 교회는 원주민 개화 정책으로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해 10만 여 명이 입양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으며, 원주민 언어는 금지당했고 부모들이 찾지 못하도록 아이들은 어디로 보내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뿐더러 방문과 편지조차 금지되었다. 이들은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라 불린다. 2007년 9월에 들어서야 이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2008년 호주 총리 케빈 러드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사과하였다.

3 현재 상황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최하층을 구성하고 있으며, 소득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타 인종의 평균 3분의 1에 불과하고 실업률과 범죄율은 3배 이상에 달하며 평균수명은 타 인종보다 20세 가량 짧은 60세 남짓에 불과하다.

범죄만 일으키고 못 사는 주제에 정부로부터 돈 받아가고 처벌이 미미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비원주민 인구에 비해서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다. 원주민들의 대다수는 도시 외곽이나 빈민촌에 살아서 인프라와 공공시설의 부족 등으로 인해서 비원주민보다 평균수명이 짧다.

또한 교육수준도 낮아 12학년을 모두 마치는 비율도 39%에 불과하다(일반 호주인은 75%). 또한 그들은 아직도 잔재하는 인종차별 등으로 인해 취직 하기도 훨씬 어렵고 원주민들은 비원주민 인구에 비해 수감율이 15배나 높고 특히 청소년 수감율은 28배나 높다. 인종차별은 그 외에 원주민에 대한 여러 비하어에서도 나타나고, 일부 사람에게는 가끔씩 이들을 알코올 중독자라든가 살인자, 강간범, 도둑 등으로 여기는 선입견 또한 있다.

캔버라의 옛 국회의사당 앞에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침략한 백인들에게 항의하기 위한 원주민 천막대사관이 있다. 이들은 1967년이 돼서야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인정받았고 1984년이 되어서야 투표권을 인정받았다. 한편 2011년 호주 최대 야당인 자유당의 토니 애벗꼴통 당수가 애버리지니 천막대사관이 무의미하다고 철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원주민 시위대가 백인의 도착을 기리는 호주의 날 행사에 참석한 총리를 습격하고 국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이 때 전 뉴사우스웨일스 주지사 밥 카는 "원주민 천막대사관은 진작에 없어졌어야 했다"며 원주민의 과격한 행동을 비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원주민 천막대사관은 원주민 평등화와 호주 원주민 인권 운동의 상징이며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4 창작물에서

도둑맞은 세대에 관한 소설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바 있는 《니웅가의 노래》가 있다. 저자는 원주민 혼혈로 외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오빠가 도둑맞은 세대 출신으로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그 외 국내에도 개봉한 《토끼 울타리》라는 영화도 도둑맞은 세대에 관한 영화로 유명하다. 배즈 루어먼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다루긴 했지만 선남선녀 니콜 키드먼휴 잭맨이 뜨겁게 연애질하는 영화라서 그닥 좋은 평은 못 듣는다.

도둑맞은 세대 이외에도 니컬러스 로그의 《워크어바웃》이나 워릭 손턴의 《삼손과 데릴라》, 롤프 더히어의 《열 척의 카누》와 《찰리의 나라》, 캐트리오나 매켄지의 《새틀라이트 보이》 같은 영화에서도 이들의 문화와 힘든 현실을 다루고 있다. 특히 《워크어바웃》에 나오는 애보리지니 배우인 데이비드 걸필리는 이후 꾸준히 활동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영화계에서 중견 배우로 자리잡았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비중있는 역으로 출연한다. 사실 애버리지니 소재 영화를 찾아보다 보면 상당히 높은 빈도로 나오시는 분이다

  1. Y염색체 기준으로 따졌을 때 하플로그룹 S가 강하게 나타난다.
  2. 스웨덴의 경영학자 칼 에릭 스베이비의 《모든 것을 살아있게 하라》에 나오는 한 예로 달링 (Darling) 강 인근에 거주했던 바르킨지 (Barkindji) 부족은 농경을 시도해 보았지만 생산성 면에서 수렵이나 채집보다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이외에 다른 원주민 부족들, 특히 물이 풍부한 뉴사우스웨일스와 빅토리아 지역의 원주민들은 원시적인 형태의 농경을 했다는 증거들이 남아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 균, 쇠에서 만일 호주 대륙에 유럽인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들 부족들을 중심으로 호주 남부에서 기장을 바탕으로 한 농경 및 물고기의 가축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