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군/행정

횡성군
횡성읍
우천면안흥면둔내면갑천면
청일면공근면서원면강림면

1 개관

횡성군은 1읍 8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각 읍면 소개

2.1 횡성읍

횡성군의 중심지이다. 운암정, 횡성향교, 송호대학, 중앙고속도로 횡성IC, 원주공항이 있다.

2.2 공근면

삼마치고개/삼마치터널을 통해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과 연결된다. 상동리 삼층석탑이 있다. 5번국도 타고 공근면에서 횡성시외버스터미널이나 원주시 쪽으로 갈 때 공군부대가 있는 곳과 나란히 달리며, 가는 중간에 원주공항도 보인다. 홍천종합버스터미널에서 원주시외버스터미널로 국도 타고 갈 때 반드시 공근면을 지나가며, 공근면에서 중간에 승하차도 한다.

2.3 서원면

대산계곡, 풍수원성당이 있다. 6번 국도를 통해 양평군 청운면과 접한다.

2.4 우천면

영동고속도로 새말IC가 있다. 안흥면과는 42번 국도 전재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미술관 자작나무숲, 한국골프대학교, 오원저수지가 있다.

2.5 강림면

1989년 안흥면 강림출장소에서 강림면으로 승격되었다. 한국통나무학교, 천문인마을, 부곡계곡, 치악산국립공원, 태종대가 있다. 411번 지방도를 통해 영월군 수주면과 접한다.

2.6 안흥면

찐빵이 유명하다. 민족사관고등학교, 롯데푸드 파스퇴르 공장이 있으며 문재터널을 통과하면 평창군 방림면이 나온다. 민족사관고등학교 기숙사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청소년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다.

2.7 갑천면

횡성자연휴양림, 병지방계곡, 섬강을 막아 건설된 횡성댐이 있다. 참고로 횡성에 '갑천'이라는 지명이 하나 더 있는데, 아래의 청일면에 있는 갑천다.

2.8 청일면

봉복산, 소구니계곡, 신대계곡, 농거리 야영장, 봉복사[1]와 신대리 3층석탑이 있다. 먼드래재(19번 국도)를 통해 홍천군 서석면과 연결된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무대이기도 하다.[2] 특산물로 더덕을 밀고 있으며 매년 9월경 더덕 축제가 열린다.

2.9 둔내면

영동고속도로 둔내IC, 태기산, 청태산 자연휴양림, 둔내 자연휴양림, 주천강 자연휴양림, 웰리힐리파크(구 현대성우리조트)[3]가 있다. 평창군 봉평면과의 사이에 양구두미재(6번 국도)라는 고개가 있다.

위치가 고지대에 속하는데다 평창군에 인접해서인지 유독 겨울 날씨가 군내의 다른 지역과 따로 노는 특성이 있다(...). 횡성읍내나 다른 지역에는 눈이 안 오거나 아주 약간만 오고 그치는 와중에 둔내는 거의 폭설 수준으로 눈이 오는 등(...).[4]

태기리에는 주민이 거주하지 않고, 1960~70년대에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으로[5] 태기분교터만 남아있다. 1960년대 당시 정부에서는 화전 개발 사업을 펴면서 화전민들을 정착시켜 고산식물 및 약초 재배 등으로 생활 터전을 개발하려 했으나, 환경 자체가 척박한데다[6] 수도 시설을 비롯해 각종 생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주민들의 생활도 열악했고,[7] 결정적으로 화전 사업이 이렇다할 성과 없이 실패한 뒤 정부가 화전 정리 정책을 펴게 된다. 이후에는 주민들이 모두 떠났고, 아무도 거주하지 않게 되어 현재는 법정리로만 남아 있는 상태. 태기산 풍력발전단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과 관련된 전설이 남아 있다. 또한 당시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태기산성터도 이곳에 있다.

덧붙여 태기산은 풍력발전단지의 풍력발전기와 산 능선이 만든 풍경 때문에 사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출사 포인트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고 산행 코스로도 나름대로 많이 알려져 있다. 단 산 정상에는 군부대 통신 시설 등이 있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1. 이름 때문에 봉복산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덕고산에 위치한다.
  2. 영화의 주인공인 노부부가 거주하던 곳이 청일면 고시리다. 그래서 도로변에 영화 촬영지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3. 뒤편으로 평창군 방림면과 접한다.
  4. 심지어 4월 초순까지도 눈이 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5. 당시 태기리를 비롯해 둔내면 일대에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다보니 도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 당시 화전민으로 추정되는 백골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6. 다만 산지임에도 물이 풍부한 편이라 농사는 가능했다고 한다.
  7. 해발 1260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그야말로 격오지인 만큼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당시 태기분교에 다녔던 화전민 자녀들 중에는 심지어 돈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문자 그대로 돈이라는 물건의 사용 방법 자체를 몰랐다는 뜻이다)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